[윤성민의 기자수첩]야속한 블랙프라이데이
[윤성민의 기자수첩]야속한 블랙프라이데이
  • 윤성민 기자 kmaeil86@naver.com
  • 승인 2015.10.07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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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안산시내의 한 백화점은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를 맞아 매장을 찾은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세월호 참사에 이은 메르스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를 비웃기라도 하듯 백화점 매장은 손님들로 북적였지만 정작 그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해당 상품은 신제품이기 때문에 이번 할인에서 제외 되었습니다”라는 직원의 말은 한 쪽에 파격세일 딱지를 붙이고 널브러져 있는 철 지난 이월상품에게 오버랩 돼 소비자들의 표정을 더욱 굳게 만들고 있었다.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 연말 쇼핑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매년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시작돼 연말까지 이어지는 이 기간은 미국 연간소비의 20%가 집중되는 미국 최대의 소비시즌이다. 유통과 내수가 촉진되고, 제품 가격의 경쟁력을 높이는 이 기간에 소비자들과 기업은 물론 유통업체와 정부까지도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다.

 이에 반해 최초로 시행된 이번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에서 웃음 짓는 이는 정부뿐이다. 너도 나도 지갑을 열기 시작한다는 신문기사와 연신 북적이는 백화점이 방영되는 뉴스는 소비자들을 백화점으로 이끌어 소비 과열만을 만들어내고 있다. 50~90%가량 저렴하다는 기사에 속아 큰 맘 먹고 백화점으로 향한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제품을 집어 들고 있다.

 고객들로 가득 차 있지만, 백화점의 표정도 썩 밝지만은 못하다. 행사답지 못한 행사가 되고 세일답지 않은 세일을 마주하는 소비자들은 그 비난의 화살을 모조리 기업으로 돌려 기업의 한없는 이미지 추락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에 따르면 가벼운 세일이라 해도 준비에만 서너 달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간과한 채 정부가 강행한 이번 행사는 빈 수레를 더욱 요란하게 만 들고 있을 뿐이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강행된 행사이기 때문일까, 파격세일이 파격적이지 않고 파격할인에는 할인이 없다.

 기업과 소비자들이 한숨을 내쉬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블랙프라이데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바쁘다. 텅 빈 강정의 사정을 감추려고 혈안이 된 정부는 홍보란 이름의 포장을 덧씌우기에 급급하다. 가계부채가 1100조원을 넘어선 작금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이 과연 소비촉진일지 고민해야 한다.

 청년실업이 심화되고 내수가 침체된 경제회복의 신호탄이 될 거라 기대하고 기획한 이들은 평소 쇼핑과는 거리가 먼 책상머리 인사들이다. 제대로 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장기적 안목의 소비기획이 앞서야 할 이 때, 소비자들의 얇은 지갑만을 우롱하려는 정부의 행태는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뿐이다.

 윤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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