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人材)를 구하는 정성(精誠)
인재(人材)를 구하는 정성(精誠)
  • 柳 晩 翠 수원대 명예교수 kmaeil@
  • 승인 2007.08.2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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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인사(人事)는 만 가지 일의 근본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어지러움은 오직 인재를 어떻게 등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인재등용에 있어서 긴요한 일은 지도자 자신이 확고한 믿음과 지극한 정성과 밝은 덕으로써 인재를 널리 구하는 태도이며, 기본철학은 “사람을 쓰거든 의심하지 말고 사람을 의심하거든 쓰지 마는 것이다.” 서경(書痙)의 상서(商書) 열명(說命)편에 중국 고대 은왕조(殷王朝)의 제 22대 고종(高宗 : 武丁)이 ‘부암(傅巖)’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 ‘열(說)’, 곧 ‘부열(傅說)’을 찾아내어 등용한 경위와 부열이 왕께 진언한 정견(政見)이 전해지고 있어서, 이에 되새겨보고자 한다.먼저 고종이 부열을 기용한 경위를 요약하여 보면, ‘고종은 선왕의 3년 복상을 마친 뒤 즉위 초에 공손히 그리고 조용히 왕으로서 올바른 정치를 어떻게 시행해야할 것이며, 당시 공석 중에 있는 수상(首相)의 적임자를 어떻게 선임할 것인가에 대하여 노심초사하였다. 이윽고 고종의 꿈속에 하늘이 훌륭한 보필자를 내려주신 현몽(現夢)이 있었다. 이에 고종은 꿈속에서 본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해 천하에 그와 꼭 닮은 인물이 있을 것을 확신하고 널리 찾아보았다. 그러던 차에 마침 ‘부암(傅巖)’이라는 곳에서 집과 담장을 건축하고 있는 ‘열(說)’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구안지사(具眼之士)였으나 아직 초야에 묻혀 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의 모습이 고종의 꿈속에 나타난 사람과 꼭 같았다. 그리하여 고종은 부열을 하늘이 내려주신 훌륭한 보필자로 생각하면서 그를 수상에 임명했다.’다음은 부열이 고종께 진언한 정견을 요약하여보면, “첫째 정치는 하늘의 도를 따라 행해져야 한다. 둘째 국가지도자는 근면과 노력의 습성을 길러야 한다. 셋째 군비는 철저히 하되 전쟁을 함부로 일으켜서는 안 된다. 넷째 공이 있으면 반드시 상을 주고 공이 없는 자에게는 함부로 은혜와 상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인재등용에 있어서는 정실을 배제하고 어질고 덕 있는 유능한 사람을 가려 써야한다. 여섯째 매사에 일마다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을 것이다(有備無患). 일곱째 국가지도자는 사사로이 한 인물만을 총애하지 말고, 자신이 과실을 범했을 때에는 즉시 밝히고 고쳐서 행하여야 한다. 여덟째 예의를 존중하며 솔선수범해야 한다. 아홉째 옛 성왕의 남기신 가르침을 겸손하게 배우며 실행해야 한다.”는 등이었다.고종은 즉위 초에는 특별히 뚜렷한 정사를 펴지 못하였으나 부열을 등용해 그의 정견을 받아 들여 선정을 베풀은 결과 은왕조의 중흥과 위축된 국위를 회복하는데 성공을 거두게 됐다.이와 같이 고종이 인재를 구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바친 결과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 이듯이 꿈속에 현인을 만나 보게 되었으며, 그 현인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실제 인물을 찾아내어 재상으로 기용했다는 옛 이야기는 그 가치를 정당화하거나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전설이나 신화가 사실에 우선한다는 진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한나라의 지도자가 이와 같이 믿음과 정성으로써 인재를 구한다면, 어찌 부열같은 인물이 옛날 고종 때에만 나타났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인재는 도처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도자가 인재를 구하는 믿음과 정성과 철학과 경륜이 부족하기 때문에 안목을 두루 갖춘 인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오늘날에도 국가지도자는 고종의 옛일을 거울삼아 혈연·지연·학연 등의 측근에서만 인재를 안일하게 구하지 말고 널리 지극정성을 기울여 인재등용에 힘을 써 나아가야한다고 본다.본명 : 柳錫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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