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출입 60년 지난날을 되새긴다 (⑨)
도정출입 60년 지난날을 되새긴다 (⑨)
  • 김운성 편집국장 kmaeil@
  • 승인 2007.09.1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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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분뇨차 오물 뒤집어 쓴 高陽 O군수청받아 방문한 출입記者 본둥만둥오물 방류 막지 못한 과장들에 쩌렁쩌렁 호통만1970년 7월 O씨가 고양 군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통일로가 탁 트이고 단장 됐던 그 무렵, 연도의 몇몇 군데에는 盛夏의 기호식인 보신탕 집 몇 군데가 문전성시를 이루었었다.지금은 여차여차한 이유로 일부층은 금기식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보신탕은 최고의 스테미너 식품으로 뭇사내들의 회를 동하게 했었다.K기자와 동료인 J기자도 보신탕이란 말만 나오면 회가 동하던 차에 O군수의 초대를 받게 되었다. 벼르고 벼르던 두 기자는 약속한 날 기대를 안고 고양군청을 찾았었다. 두기자의 마음 한쪽엔 쇠주 몇 잔과 보글보글 끓는 예의 그 스테미너 요리가 군침을 흘리도록 움크리고 있었다.군수관방을 노크하려는 순간, 방 안으로부터 O군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건 또 무슨 변고인가.”두 기자는 바깥에서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얼마쯤이 지났을까.한결같이 시무룩한 얼굴을 한 과장들이 관방으로부터 나오는 순간. 두 기자는 힐끗힐끗 눈치를 살피며 방안으로 들어서서 너털대며 O군수에게 인사를 건넸다.“자아 이렇게 초대를 받고 기꺼이 왔습니다!”하지만 반가와 해야 할 O군수는 신드렁한 안색으로 건성건성 인사를 받았다. 아예 눈길은 주지도 않은 채다.사람을 오라고 해놓고 이럴 수가 있을까. 두 기자는 불쾌해졌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公은 公이요 私는 私인데, 설사 기분 나쁜 일이 있었기로서니 손님에게 이럴 수가 있는가.하지만 두 기자는 O군수가 입고 있는 옷 형편 무인지경임을 알아챘다.흙투성 이었으며 여기저기 오물이 튀긴 흔적이 역력했다. 고약스런 냄새 마져 풍겨왔다. 보아하니 일을 치러도 예삿일을 치룬 행색이 아니었다.한바탕 치루고난 그의 얼굴엔 여전히 악몽을 꾼것과도 같은 일그러진 표정이 남아있었다. 냄새 잘 맡고 눈치 빠르기는 선수권 보유자인 두 기자는 일진을 잘못짚었나보다 생각하곤 하직 인사를 했겠다. 부화가 잔뜩 올라 심기 불편한 사람은 혼자 있게 해주는 것이 상책이니 말이다.두 기자가 뒷걸음쳐 엉거주춤 물러서려하자 그제서야 O군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앉으라고 권했다.담배연기를 길게 한 모금 뱉어낸 O군수가 주섬주섬 꺼내놓은 그날의 사연은 이러했다. O군수는 이날 이른 새벽 일찍이 작업복 차림으로 통일로 주변의 환경미화 점검을 나섰다.한참을 이곳저곳 살펴가던 O군수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통일로 옆을 따라 흐르는 奉日川에다 서울시의 위생차 표시를 새긴 오물 차 3대가 분뇨를 마구 방류시키는 것이 아닌가. 꼭두새벽, 주위의 눈을 피한 채. O군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분뇨차로 달려갔다. 막무가내인 서울 시청 안부들과 치열한 실갱이를 벌였다. 분출전(栓)을 막으려다 오물세례를 받기도 했으며 비탈길을 뒹굴기도 했다.그 광경을 목견한 인근 주민들이 몰려와 O군수와 합세했다. 가까스로 그 오물차를 서울로 쫓아버린 것은 1시간여의 한바탕 전투 끝이었다. 사태를 마무리한 O군수에게 이번에는 몰려왔던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주민들의 말인 즉슨 오물방류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벌써 일주일 전부터 야간을 이용하여 야금야금 이렇게 내다버렸다고 했다. 개울물이 온통 분뇨수로 변하였고, 그 악취가 이루 말할 수도 없이 온 동네를 진동하고 있다고 했다. 칠팔월 한더위에 그 냄새가 오죽했겠는가.주민들은 처음 그 일이 있고 난후 벽제읍에 진정을 했고, 벽제읍은 다시 고양군의 관계 과장에게 보고를 했다. 허나 일개 군의 과장이 무얼 어찌할 수 있었으랴. 상대는 다름 아닌 서울시라는 천하무적 강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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