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들의 정견을 청취하는 첫 자리인 ‘제19대 대통령후보선거 후보자 비전대회’는 사실상 김진태 의원(재선·강원 춘천시)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 무대였다.
17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비전대회에는 김 의원을 지지하는 친박(친박근혜) 단체 회원들이 대거 출동해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말 하나하나에 대해 ‘찬양’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한국당은 9명의 후보에 대한 지지자들에 대해 각각 100개의 좌석을 제공했다. 하지만 김 의원을 지지하는 이들은 100개의 좌석도 모자라 행사장 뒤편에 서거나 양쪽 벽에 기대 정견발표를 들었다.
이들은 노년층이 주를 이룬 가운데 대부분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흔들었다.
이들은 인명진 당 비상대책위원장와 정우택 원내대표 등 지도부에 대해서는 격한 야유를 쏟아냈다. “나쁜 놈”, “X새끼” 등의 원색적인 욕설과 함께 “내려오라”며 고함을 질렀다. 친박 단체 회원인 이들은 인 비대위원장을 위시한 당 지도부가 최경환·윤상현·서청원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에 대해 징계를 내린 데 대한 불만을 마음껏 표출했다.
9명의 후보 가운데 네 번째로 연단에 나선 김 의원의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지지자들의 환호는 극에 달했다. 김 의원이 정견 발표를 시작하면서 “여러분, 잠시만 조용히 해주십시오. 15분 동안 이야기하려고 1억원 냈습니다. 1분에 700만원이 더 듭니다.”라고 지지자들을 달랠 정도였다.
지지자들은 김 의원의 당부 하나하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앉아달라면 앉고, 환호를 그쳐달라면 그쳤다. 그러면서도 정견 발표문의 문장 하나가 끝나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김 의원의 이름을 외쳤다.
김 의원도 이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달래려는 듯 대선 후보로서의 정책 소개보다는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는 질문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의 부당성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두는 모습이었다. 그는 또 통합진보당 해산 및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체포에 자신의 공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여기 계신 훌륭한 선배님보다 경력도 연륜도 부족하지만 문재인, 안철수보다는 잘할 수 있다”고 말해 우레와 같은 환호를 이끌어냈다. 특히 “죽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겠다”면서 “배신자들은 이미 여러 번 죽은 것 아니냐”고 말하며 자신과 바른정당 의원들을 비교할 때는 함성이 절정에 이르렀다.
김 의원의 연설이 끝나자 지지자들은 곧바로 자리를 뜨는 모습이었다. 다음 순번의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연단에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약 500명의 지지자들이 행사장 밖으로 향하자 사회자가 이들을 만류하기도 했다.
김 의원의 발표 이후의 정견 발표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후 7번째로 정견발표에 나선 안상수 의원(3선·인천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은 9명의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당 지도부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인 비대위원장과 정 원내대표가 김진태 의원 지지자들로부터 원색적인 비난을 받아 행사가 난장판이 된 상황에서 다른 후보들은 지도부에 대한 이렇다할 언급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안 의원은 “우리 당이 백척간두에 있을 때 온갖 풍파 속에서도 아홉 분의 대선 후보가 경선에 나와 서로 정책을 발표할 수 있도록 수많은 역경을 헤치고 당을 정립해준, 존경하는 인명진 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에게 감사 말씀을 드린다”며 정견발표를 시작했다.
안 의원은 당내 친박-비박 갈등 양상을 염두에 둔 듯 ‘통합’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당과 함께 보수의 힘으로 우리나라를 통합하는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우리나라는 이념갈등, 지역갈등, 세대갈등, 계층갈등 수많은 갈등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고, 태극기와 촛불로 큰 골이 패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도 세력들을 우리 품으로 안아야 한다”면서 “우리끼리 똘똘 뭉쳐 우리의 주장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당내 친박(친박근혜)계 일부가 강경 행보를 걷는 데 대한 비판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안 의원은 인천시장 시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협력해 시정을 이끌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시장 재직 시절 인천대교 건설 및 송도국제도시 조성 업적을 소개하며 “안상수의 중도와 실용, 통합의 정치가 지금의 인천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서는 “분열의 리더십, 독선과 아집의 리더십은 대한민국을 망하게 한다”며 “적폐청산만을 부르짖는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분노와 원한에 휩싸인 문재인 후보의 적폐청산의 결과는 정치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안 의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안보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저는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을 해본 사람으로, 당선되면 바로 미국에 건너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안 의원은 문 전 대표에 대해서는 “당선되면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문재인 후보”라며 “NLL을 부정하고 북한인권법을 북한에 물어봤다는 의심을 받는 문재인 후보는 결코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재차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을 한 유일한 정치인인 저 안상수가 군비협상, 한미 FTA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국익을 지키고 국민의 안전과 국토를 수호하겠다”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해서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의 보복조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약속했다.
안 의원은 자신의 캐치프레이즈인 ‘일자리 대통령’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송도국제도시를 만든 저 안상수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1억평 농지 개조를 통한 1000만평 규모 ‘일자리 도시’ 10개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안 의원은 또 다시 문 전 대표를 거론하며 “국민의 혈세로 공무원 숫자나 늘리겠다는 문재인 후보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말만하는 정치인”이라며 “책임지고 정부를 운영해본 적이 없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대한민국은 망한다”고 비난했다.
안 의원은 분권형 개헌도 약속했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인 87년 헌법은 그 수명을 다했다”며 “이젠 국민과 소통하는 새로운 헌법, 분권형 헌법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되면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고, 오는 2020년 국회의원과 대통령선거를 동시에 치루는 분권형 개헌을 하겠다”고 했다.
안 의원은 개헌과 관련해서도 문 전 대표를 몰아세웠다. 그는 “개헌을 반대하는 문재인 후보는 비선정치, 실세정치, 문고리정치를 하는 제왕적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라며 “제왕적 대통령이 하는 적폐청산은 우리 보수에 대한 정치보복이 될 것”이라고 힐난했다.
국회 박정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