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예산안, ‘국회선진화법 위반’ 오명 속 국회 지각 통과
2018년도 예산안, ‘국회선진화법 위반’ 오명 속 국회 지각 통과
  • 박정배 기자 jayman1@naver.com
  • 승인 2017.12.0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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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조8339억 규모 예산, 한국당 표결 불참 속 가결
한국당 의원들이 6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54회 국회(정기회) 제17차 본회의에서 2018년도 예산안 수정안이 가결되자 로텐더홀에서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2018년도 예산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법정 처리 시한을 나흘이나 넘기는 진통을 겪으면서 국회선진화법을 지키지 못했다는 오명을 쓰게 됐다.

국회는 6일 본회의를 열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보다 1375억 원 줄인 428조8339억 원(총지출 기준) 규모의 2018년도 예산안 수정안을 표결에 부쳤다. 그 결과 재석 178명에 찬성 160명, 반대 15명, 기권 3명으로 수정안이 가결됐다.

자유한국당은 예산안 가운데 공무원 증원과 법인세법 개정 등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이날도 한국당은 끝내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당 의원들은 일단 본회의장에는 들어왔으나 ‘사회주의 예산 반대’, ‘밀실 야합 예산 심판’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기습 시위를 벌인 뒤 본회의장에서 나왔다.

당초 국회는 6일 자정 전, 즉 5일에 예산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야당이 무더기로 반대 토론에 나서면서 본회의는 자정을 넘기게 됐다. 이에 정세균 국회의장은 차수를 변경했다.

본회의는 5일 오후 9시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의원총회를 진행하던 한국당은 자신들을 배제한 채 본회의가 열리자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들어와서도 자리에 앉지 않고 정세균 국회의장을 향해 사퇴를 요구하며 고함을 질렀다.

애초 한국당은 정우택 원내대표가 전날인 4일 여야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간 협상에서 수정 예산안에 대해 잠정적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당내 강경파의 반발에 부딪혀 끝내 반대 당론을 밀어붙였다.

한국당 의원들의 반발에 직면한 정 의장은 30분 동안 본회의 정회를 결정했다. 정회 후 다시 의총을 연 한국당은 본회의에는 일단 참석했지만, 표결 자체는 거부했다.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안은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법정 시한보다 나흘 늦게 국회를 통과했다. 선진화법을 시행한 이후 정부 예산안이 뒤늦게 처리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정 의장은 5일 오후 9시 51분 한국당 의원들이 의총에 참여하는 동안 초고소득 증세를 위한 법인세와 소득세법 개정안을 잇달아 처리했다. 그는 법인세 개정안 가결 직후 본회의장에 입장한 한국당 의원들이 대거 의장석 방향으로 몰려가 “일방적인 진행을 멈추라”, “정세균 의장은 사퇴하라” 등의 발언을 하면서 항의하자 원칙론을 앞세워 반박했다.

정 의장은 ‘의총 중에 회의를 진행하는 게 어디 있냐’는 정우택 원내대표 등의 항의에 “아침부터 지금까지 11시간 동안 시간을 드렸다”며 “합의된 의사일정에 따라 하는 것인데 왜 방해하냐”고 반문했다.

그는 한국당의 항의가 계속되자 여야3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 즉석 합의 시간을 준 뒤 30분 정회 결정을 내렸다. 이후 다시 회의를 속개해 6일 새벽 내년도 예산안을 상정해 처리했다.

내년 예산은 분야별로 보면 보건·복지·고용 예산이 144조7000억 원으로 원안보다 1조5000억 원 줄었다. 일반·지방행정 예산(69조 원)과 외교·통일 예산(4조7000억 원)도 각각 7000억 원, 1000억 원 감소했다.

반면 올해 예산 대비 20% 삭감됐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심사 과정에서 늘었다. SOC 예산은 1조3000억 원 늘어난 19조 원으로 책정됐다.

정 의장은 예산안 처리 후 “국회는 선진화법이 시행된 2014년 이래 예산안에 대해 법정시한 내 여야 합의 처리라는 관행과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이번에 그런 노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에 대해 저를 비롯한 여야 모두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 앞에 부끄러운 국회가 되지 않도록 여야 모두 자성과 분발을 당부드린다”고 했다.

여야는 예산 처리 직후에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웠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본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새 정부의 정책 기조와 청년세대를 위한 최저임금을 시행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면서도 “민생이 어려울 때 야당이 전혀 책임지지 않는 자세,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모습은 굉장히 국민에게 염치없고 무책임하다”고 한국당을 비판했다.

강훈식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부족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사람중심, 민생예산이 확보됐다”면서 “야당과 협의 과정에서 공약을 일부 수정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하며, 국민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고 사과했다.

김경진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국민의당은 국민 부담을 가중하는 예산을 조정하고 국방, 농업 같은 꼭 필요한 예산을 조정해 큰 틀의 타협을 유도했다”며 “지역 간 불균형을 바로잡고 소외된 곳에 대한 지원을 늘리기 위해 노력을 다했다”고 자평했다.

반면 한국당은 표결 뒤 국회 로텐더홀에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당은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선거구제 뒷거래를 통한 야합에 의한 2018년도 예산안 처리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한국당은 내년도 예산에 대해 국가 재정의 건전성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열고 “국가 재정 파탄 예산안을 저지하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린다”며 “앞으로 닥칠 대한민국의 참혹한 재정위기는 사상 최악의 예산안을 뒷거래로 야합한 정치세력들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민주당과 국민의당을 향해 경고했다.

국회 박정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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