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린 아이와 늙은 개!
[칼럼] 어린 아이와 늙은 개!
  • 김동초 기자 chodong21@hanmail.net
  • 승인 2018.04.2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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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나뭇가지마다 연두색 초록이 소복이 쌓여가던 어느 봄날.

멍파크란 곳에서 까꿍 이란 늙은 강아지가 낡은 꽃가루처럼 내 눈에 들어왔다.

포도송이 같은 두 눈이 꼬불거리는 금빛 털과 무척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푸들이었다. 그때도 뒤뚱이며 노인 티가 나는 어르신이었다.

그리고 걸음이 서툴러 역시 뒤뚱이며 달리고 자꾸 자빠지는 여자아이처럼 머리가 긴 예쁜 아기가 분가루처럼 멍파크에 나타났다.

아기는 빨리 자라고 강아지는 더 빨리 늙는다는 어느 눈물많은 여류작가의 말처럼 일 년이 다되는 지금 어린아기는 한 뼘 정도 더 커졌고 거의 자빠지는 일이 드물어지는 만큼까꿍이란 개는 이제 더 늙어 청력마저 거의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질병으로 인해 포도같이 예쁜 두 눈 중 하나를 뽑아내 애꾸 눈 선장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어린아이와 늙은 개라는 묘한 조합 속에 애잔한 삶의 아이러니가 일어난다.

어느 별에서 왔을지 모를 개는 탄생이 분명한 아이와 우리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언어로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지난 겨울, 코가 시릴만큼 춥던 어느 날! 열대 식물처럼 쑥쑥 자라는 아이가 유난히도 부산스럽던 시간이었을까!

까꿍 이란 늙은 개가 내 옆에 다가와 미지근한 온기로 조용히 몸을 기대왔다.

살며시 들어 올려 만져보니 앙상한 몸체에서 이가 듬성 듬성 빠진 빗처럼 뼈들이 잡혀 왔다.

왠지 모를 막연한 설움이 어두운 거리에 버려진 일회용 애정같이 아팠다. 정성스레 믹스커피가 먹기 좋게 식을 만큼의 시간을 몸 구석구석 안마를 해주었다.

버석하게 굳어버린 육체에 조금씩의 습기가 느껴질 때 가만히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나를 바라보던 그 눈의 물기 때문에 감정이 여린 나 역시 조금을 울먹거렸다.

아! 이렇게 꾸역꾸역 시간은 흐를 것이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다시 왔던 자리로 되돌아감을 느끼며 또 한 번 조금 더 울었다.

오늘 밤은 쉬운 잠이 어려울것 같아 차라리 의식을 조각조각 쪼개다 보니 밤새 내리는 빗소리 틈으로도 어느덧 창밖이 뿌옇다.

그 어리고 귀엽던 아이와 세월을 흠뻑 뒤집어쓴 늙은 개의 아주 평범한 이야기는 멍파크 어느 구석 숲 속에 부서진 햇볕처럼 채곡채곡 쌓일 것이다.

기억 또한 한 뼘씩 멀어질 것이다. 그게 평범한 우리네가 사는 평범한 인생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마저 낡아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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