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계영배(戒盈杯)와 정치인의 신념(信念)
<칼럼> 계영배(戒盈杯)와 정치인의 신념(信念)
  • 김현섭 기자 k98snow@naver.com
  • 승인 2018.05.10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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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영배(戒盈杯)는 잔의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 내 버려진다.‘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의 이 잔은 고대 중국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생전에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 과욕을 경계했다는 이 잔을 공자 역시 가까이 두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계영배는 조선의 거상 임상옥에게 이어진다.

조선 왕실의 진상품을 만드는 도공 우명옥이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모두 탕진한 뒤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와 계영배를 만들었는데, 그 술잔을 임상옥이 늘 곁에 두고 과욕을 경계해 마침내 큰 재산을 이루었다고 한다.

한 달 여 앞둔 이번 6·13 지방선거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의 만남,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50%가 넘는 당 지지율 등을 반영하듯 어느 때보다 더불어민주당의 당내 경선이 뜨거웠다.

경기도 역시 여러 지역에서‘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예측 아래 네거티브 등 당내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특히 안양시에서의 예비경선은 더욱 치열했고 급기야 경기도당은 중앙당에 전략공천을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언론은 그 전략공천에 거론되는 인물로 정기열 현 경기도의회 의장을 적시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기열 의장은 중앙당의 전략공천 제의를 3일간의 숙고 끝에 고사를 했다.

이후 안양시장 후보는 2차 경선을 통해 최대호 전 시장이 결정됐다.

전략공천은 당내 지역 정치인들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는 기회, 즉 더 큰 무대로의 등용문을 차단하는 정치 전략이다.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경기도내 수원시, 의정부시 등에서 현직 시장을 단수 공천했다. 또한 포천에서는 야당의 거물 정치인을 입당 후 단수 공천을 했다.

당내 지역 정치인들의 더 큰 무대로의 정치 날개를 꺾는 이런 행위는 그 과정이 비록 투명하다고 해도 자제해야 옳다.

아무리 정당 가치, 즉 각종 선거에서의 당선이 가장 중요한 척도지만, 지역 정치인들이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정당 활동에 제약을 주어서는 안 된다. 물론 비정당인, 일반 국민으로서의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정기열 의장은 왜 전략 공천 제의를 숙고 끝에 정중히 거절했을까? 누구보다 지역 사회(안양시)를 위해 훌륭하게 시장직을 잘 수행한 뒤, 존경받는 지역 정치인으로 남을 정치인인데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그것이 궁금해서 물었고 그 답을 들었다. 그리고 그 답이 이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됐다. 정기열 의장은 “많이 흔들렸지만, 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대호 전 시장님이나 임채호 의원님 등은 오랫동안 시장 출마를 준비해 오신 분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나는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했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전략공천 제의를 받았다. 열심히 준비를 해온 분들이 시장 출마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나로서는 무엇보다 안양시민 등 경기도민들과의 불출마 선언 그 신의가 중요했다.

신의를 지키지 않는 정치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정치인 정기열의 신념, 즉 치사한 정치, 거짓 정치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기에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념(信念)’은 굳게 믿는 마음을 말한다. 즉 도덕적 원칙과 확신을 굳게 믿고 행동하는 양심을 말한다. 또한 예부터 선인(先人)들은 신념을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라고 권면해왔다.

이는 굳게 믿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를 실천하는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앞서 정기열 의장은 2016년 7월 제9대 후반기 의장에 당선된 직후 2018년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 이유는 “지방선거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헌신으로 도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이후 현대자동차 입사 이후‘내려놓기, 되돌아보기,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어쩌면 전략공천 제의를 고사한 것이 더 큰 정치를 꿈꾸는 그의 신념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또 정 의장은 첫 장만한 집이 사기분양에 날라갈 처지에서 태어나 처음 하나님을 찾았다.‘내 집만 찾아주시면 평생 하나님을 믿고 권력을 얻어 억울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습니다’는 정치 입문 계기 역시 남다르다.

기도를 통한 정치적 결단 역시 여타 다른 정치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특히 잘 나갈 때 잠시 멈춰 서서 숨고르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커다란 삶의 지혜를 깨달은 사람이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세상이치를 깨달아 실천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落花)의 한 구절로 글을 맺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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