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칼럼> 행정의 신뢰는 농심에서 출발
<덕암칼럼> 행정의 신뢰는 농심에서 출발
  • 경인매일 회장 德岩 金均式 kmaeil86@naver.com
  • 승인 2018.09.18 1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이 있다. 농사가 천하의 가장 큰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일이란 뜻인데, 오랜 과거부터 내려오던 중요한 격언으로 농업 생산에 큰 역할을 하는 소마져 함부로 도축하지 못하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작금에야 축협에서 체계적으로 위생적인 방법으로 축산업이 발달했지만 어쨌거나 농업은 인류의 삶에 근본이 되는 분야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보급물자 중 절대적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밀가루다.

하지만 수입에 의존하던 밀은 재배부터 유통까지 분식을 즐기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수 십년 동안 우리밀의 농업기반을 상실케 했고 다행히 1991년부터 국내에서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번 자리를 내준 밀 농업의 복구는 상당한 수업료를 치르고 나서야 겨우 과거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지만 정작 정부의 안일한 행정은 국민의 정성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2008년 우리 밀 자급률을 2020년 5.1%, 2022년 9.9%까지 확대하겠다던 방침은 우리 밀 자급률은 잠시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다시 곤두박질쳐서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99%라는 절대적 우위를 차지한 수입 밀은 연간 420만t인데 비해 우리 밀은 수입 밀 대비 1%대도 못 미치고 있다.

방부제와 농약을 거의 쓰지 않는 우리밀의 강점도 가격 경쟁력에서 관세가 면제되다보니 이겨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시아주버님 떡도 싸야 산다’는 말이 있듯이 소비자가 기준 대비 3배나 비싼 밀을 한두 번도 아니고 달리 대책이 없는 것이다.

중요한건 어렵사리 살린 밀 농사 기반이 다시 또 무너지면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과연 이 같은 현실을 정책면에서 짐작치 못했을까.
올해 우리 밀 전체 수매 예상량은 2만3700t 으로 기존에 재고량 1만8000t을 합하면 4만 톤에 이르고 유지관리 비용에 대한 예산까지 감안하면 밀 농사에 목맬 농심은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뒤늦게 공공비축 안으로 양곡관리법 시행령을 변경했지만 이 또한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정부의 달콤한 장밋빛 정책만 믿고 밀농사로 전농했던 농민들은 시름과 분노에 젖었고 이도저도 못하고 폐기처리 해야할 밀 알곡은 탁상행정의 산물로 남게 됐다.

정부가 국제 곡물 수급에 따른 가격 변동과 천재지변·전쟁 등의 비상시에 대비하고 안정적인 식량 확보를 위한 국산 밀 산업 기반을 다질 필요성을 내세우는 반면 국회 농해수위에서는 해당 법안이 여전히 대기 중이다.

정책이 멈추는 동안 농사 시기가 같이 기다려주진 않는다. 얼마를 어떤 방식으로 재배해야 하는 지 계획이 나와야한다. 멀쩡한 밀을 폐기하고도 모자라 탁장행정과 어깨춤을 주며 농심을 멍들게 한다.

먼 나라 이국땅에서 옮겨올 수 밖에 없는 환경과 수입 이후 유통기간을 감안할 때 다량의 방부제는 피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국내 어디든 하루도 안 걸려 수송이 가능한 우리 밀은 방부제는 물론 유통기한까지 최단기간에 신선하고 영양가 높은 밀이 식탁까지 올라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민건강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관심과 어렵사리 밀농사 기반을 회복한 농민들의 노력을 감안한다면 지금처럼 수 만 톤이 폐기되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신토불이의 이치는 벗어날 수 없다.

사람 사는 행복중 하나는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는 제철음식만 먹어도 잘 살았다고 한다. 정부와 국민들의 무관심속에 하나둘씩 밀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들의 호미자루가 쌓이질 않기 간절히 바란다.

수입에 의존하는 밀가루로 온갖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 우리와 후손들의 건강을 위한다면 아직도 늦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한국인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일류국가로 성장한 것처럼 가을에 심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이듬해 거둬들인 밀이 주식이 되길 희망하며 힘든 농민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