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이면 더 간절한 프로메테우스
식목일이면 더 간절한 프로메테우스
  • 김도윤 기자
  • 승인 2019.04.0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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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기자
김도윤 기자

지난 5일은 제74회 식목일이었다. 제법 따스한 봄날 모종삽과 묘목을 들고 나무를 식재하노라면 왠지 겨우내 움츠렸던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눈부실 봄 햇살이 평화롭게 느껴지던 기억이 난다.

굳이 십년지 대계니 나무가 산소공급원이니 하는 원론적인 얘기를 접더라도 나무식재 행위 자체만으로 왠지 자연과 친해진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올해는 지난달부터 운영하고 있는 영흥도 리조트 주변에 유실수라도 몇 그루 심어보려 하지만 문득 상기되는 건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아픈 과거를 재조명해본다.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독수리로부터 생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신화속의 프로메테우스, 세월이 지나 강원도 태백산 산골짜기에서 생산된 석탄 기능공이 바로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로 명명되고 있다.

지하 수천 미터에서 검은 진주를 캐내던 탄광의 광부들, 훗날 폐 속에 쌓인 석탄분진가루를 종신토록 끌어안고 고통 속에 생을 마감하고 있는 이들은 정부나 국민들로부터 잊혀져가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공장은 전기가 부족해 근대화산업이 더디었을 것이고 집집마다 연탄대신 산에 나무하러 가는 풍경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군불 때던 아궁이가 연탄이 생산되면서 조금씩 숲이 울창하기 시작했고 추운 겨울 날 연탄보일러는 목욕물은 물론 온 방바닥이 아랫목 윗목 할 것 없이 절절 끊던 날이 있었다.

아마도 석탄이 없었다면, 광부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북한의 산야처럼 벌거벗은 허허벌판이었을 것이다. 모 광고대사처럼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하지만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다면 어쩔 수 없이 벌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산림 곳곳에 자취가 남아 있는 임도는 나무운반트럭이 다니던 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현재의 울창한 숲이 있기까지 국민적 묘목식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이면에 깔린 광부들의 희생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석탄산업의 희생자는 베트남 전쟁당시 사망한 숫자와 맘먹는다.

베트남에서 벌어진 전쟁 사망자는 3,806~4,960명으로 추정되고 막장에서 석탄을 캐다가 사망한 광부들은 4,101명에 이른다. 전쟁이 국민을 지키고 국가를 위한 희생이었다면 광부들의 죽음 또한 국민을 먹이고 재우는데 필요한 연탄수급을 위한 희생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한 때 산업전사라 명명되던 이들이 에너지 산업의 변천으로 차츰 잊혀지고 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산업전사 위령탑에는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다.

위령탑 관계자의 넋두리가 생생하다. 대통령 화환이라도 한번 받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정부인사는 물론 누구도 광부들의 희생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단순히 돈벌이 하다 숨져간 산업재해 근로자 취급이 전부라는 것이다.

해마다 사고는 끊이지 않았고 전성기였던 1973년부터 1988년까지는 해마다 평균 150명이 막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광산에서 근무했던 광원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어제까지 같이 웃고 막걸리 마시던 동료가 다음날 시커먼 주검으로 실려 나오는 걸 보면서 그 자리에 다시 투입되어 채광작업에 나서야 했던 일들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지하수맥을 터트려 수장되기도 하고, 지하에 매장된 가스를 마시고 질식하는가 하면 무너진 갱도에 깔려 생매장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필자 또한 태어날 때부터 수 십년을 탄광도시인 태백에서 자라고 두 아들까지 태어난 곳이기에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석탄산업 합리화에 대한 대안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모든 결과에는 과정이 있는 법이다.

울창한 숲이 있기까지 나무를 지켰던 건 대체연료인 석탄이 있었기 때문이고 광부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점을 꼭 기억해 주길 바래본다. 식목일 한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시커먼 탄가루에 장화를 신고 갱도를 나오는 광부들이 문득 떠오르는 건 어떤 연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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