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접경지역을 가다] ③남북분단의 역사가 숨 쉬는 섬 ‘교동도’
[남북접경지역을 가다] ③남북분단의 역사가 숨 쉬는 섬 ‘교동도’
  • 박정훈 기자 dogomasung@nate.com
  • 승인 2019.07.0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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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이 만든 대룡시장과 교동제비집
교동도, ‘평화나들길’ 조성 남북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섬 변모
교동도 최북단에 조성된 망향대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본 북한의 모습. 건물 형태가 또렷이 보이지만 사람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사진=박정훈 기자)
교동도 최북단에 조성된 망향대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본 북한의 모습. 건물 형태가 또렷이 보이지만 사람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사진=박정훈 기자)

교동도 최북단에 조성된 망향대에서 북한을 바라보았지만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망원경으로 보이는 북한의 모습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건물의 형태만 또렷이 보인다. 망향대에서 북한까지는 직선거리로 3km 남짓. 교동도 전체를 둘러싼 철조망이 가로막지 않았다면 교동도에서 북한의 연백군까지는 나룻배로 30분이면 닿을 거리다. 망향대 주변에는 고향을 그리다 끝내 유명을 달리한 실향민들의 무덤이 고향 땅을 향하고 있다.

망향대에서 건너보면 연백군은 진산인 비봉산과 남산, 남대지 등 드넓은 연백평야가 눈앞에 전개되어 소리를 지르면 북한 들녘까지 울려 퍼질 듯하다. 분단 이전에 교동도와 연백군은 같은 생활권이었다. 지금도 교동도와 황해도 사이 바다는 물이 빠지면 모래톱이 드러난다. 망향대는 6·25전쟁으로 교동도에 피난 온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며 연백군이 마주 보이는 곳에 비를 세웠다. 매년 이곳에서 북녘을 바라보며 제사도 올린다.

분단되기 전, 강화도는 북한과 교류가 활발하던 곳이었다. 예성강을 통해 교역선이 오갔고 동네 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고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했다. 교통도 섬 전체를 둘러싼 철조망 너머 곳곳에는 북한의 연안군과 배천군 해안과 교역했던 포구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개성인삼이 강화도로 와서 유명한 강화인삼이 되었고 개성의 방직 기술자들이 강화에 방직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교동도 사람들의 고향은 대부분 황해도 연백군이다. 전쟁을 피해 교동도에 정착한 이들은 잠깐 이곳에서 살 것으로 예상했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가지 못해 만든 ‘대룡시장’, 아픈 상처가 깃든 ‘교동제비집’

교동제비집은 살던 곳으로 돌아오는 습성을 지닌 제비처럼 언젠간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실향민들의 마음이 담긴 곳이다. 교통제비집은 교동도 관광명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자전거도 대여할 수 있다. (사진=인천관광공사)
교동제비집은 살던 곳으로 돌아오는 습성을 지닌 제비처럼 언젠간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실향민들의 마음이 담긴 곳이다. 교통제비집은 교동도 관광명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자전거도 대여할 수 있다. (사진=인천관광공사)

교동도에 정착한 이들은 연백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얼기설기 집을 짓고 고향 사람들과 모여 살았다. 고향 연백시장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생계를 꾸리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대룡시장이 됐다.

교동도에서 작지만 가장 큰 시장인 대룡시장은 이들 연백 사람들이 삶의 터전이 된 곳이다. 대룡시장은 60~70년대 풍경이 곳곳에 남아있어 관광 명소로 부상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남북한의 아픈 과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연백에서 온 이발사가 운영하는 이발관, 여든이 훨씬 넘은 어르신이 지키는 약방, 옛날에 맛보았던 쌍화차를 파는 다방, 북한의 냉면 맛을 고스란히 살린 냉면집까지. 현대에 발맞춰 변화가 있었지만, 최대한 그때 그 모습을 보존돼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교동도 교륭시장 안 상점의 모습. (사진=인천관광공사)
대룡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1970~80년대로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 착각에 빠지게 된다. 사진은 교동도 교룡시장 안 상점의 모습. (사진=인천관광공사)

대룡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70~80년대로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 착각에 빠지게 된다. 대룡시장은 2014년 교동대교 개통과 함께 1970년대 만들어진 영화세트장 같은 모습이 알려지면서 관광명소가 됐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은 교동이발소, 동산약방, 중앙신발로 예능프로그램 방송이 나간 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나들목식당과 거북당도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50여 년간 교동도 경제발전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시장을 만든 어르신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인구도 급격히 줄어들면서 시장 규모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교동제비집은 살던 곳으로 돌아오는 습성을 지닌 제비처럼 언젠간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실향민들의 마음이 담긴 곳이다. 고향 연백에서 찾아오는 제비에 대한 실향민들의 애정이 담긴 특별한 곳이다. 교동도 제비는 오랜 세월 교동 주민들에게 기쁨과 위안이 되었고 청정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교동의 상징이 되었다.

역사가 깃든 섬 ‘교동도’

2014년에 개통된 교동대교를 건너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 유학을 배우며 성현을 모셨던 교동향교이다. 교동향교는 고려 충렬왕 12년(1286년)에 문선공 안유 선생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이곳에 처음으로 모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2014년에 개통된 교동대교를 건너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 유학을 배우며 성현을 모셨던 교동향교이다. 교동향교는 고려 충렬왕 12년(1286년)에 문선공 안유 선생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이곳에 처음으로 모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교동도는 강화도 서북쪽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북한의 황해남도 연안군·배천군을 마주하고 있다. 면적은 46.9㎢로 인천공항 간척으로 거대해진 영종도(50.5㎢)와 비슷해서 꽤 큰 편이다. 실제로 섬 내에 있는 교동평야는 강화군 전체에서도 가장 넓은 들판으로 손꼽히고 해풍을 맞으며 자란 교동쌀은 명품에 든다.

교동도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해상교통로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방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한때는 삼도수군통어영이 교동도에 설치되어 서해바다를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교동도는 조신시대 왕족의 유배지였다. 고려 때 희종이 최충헌에 의해 폐위되어 이곳으로 귀양 왔고 중종반정으로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 광해군의 형 임해군, 동생 능창대군이 이곳으로 귀양을 왔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주로 왕족들이 귀양을 왔다.

2014년에 개통된 교동대교를 건너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 유학을 배우며 성현을 모셨던 교동향교이다. 교동향교는 고려 충렬왕 12년(1286년)에 문선공 안유 선생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이곳에 처음으로 모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교동향교를 향하는 길 입구에 읍내리 비석군이 있다. 읍내리 비석군에는 비석 40개가 모여 있는데 이들은 수군절도사, 도호부사, 삼도수군통어사 등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를 한 곳에 모아 놓은 것이다.

교동도를 지켜주었던 교동읍성은 고을의 방어를 목적으로 축성한 성곽이다. 교동읍성은 인조 7년(1629년) 교동에 경기수영을 설치하면서 축조한 것으로 삼도수군통어영의 본진이었다. 성의 둘레는 870m이고 높이 약 6m로 동 · 남 · 북쪽 3곳에 성문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남문) 부분만 남아 과거의 규모를 추측해 볼 뿐이다.

남북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섬으로

교동도 북쪽 철책선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길은 철책 너머로 보이는 북녘땅의 모습을 보기 위해 시선을 거두기 힘들 정도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사진=박정훈 기자)
교동도 북쪽 철책선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길은 철책 너머로 보이는 북녘땅의 모습을 보기 위해 시선을 거두기 힘들 정도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사진=박정훈 기자)

교동도 평화나들길은 남산포전망대에서 난정리전망대~난정저수지~교동망향대~고구저수지를 잇는 총 30km 자전거길로 교동도가 남북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변모를 꾀하고 있다.

교동도 북쪽 철책선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길은 철책 너머로 보이는 북녘땅의 모습을 보기 위해 시선을 거두기 힘들 정도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화개산(259m)을 제외하고는 평화나들길 주변으로 작게 솟아오른 봉황산(75m), 봉재산(42m), 율두산(89m), 수정산(125m)은 고도가 낮아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도보여행을 해도 좋다.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배편으로 이동하는 교통편은 모두 끊겨 한산해 보이는 월선포구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배편으로 이동하는 교통편은 모두 끊겼다. 남산포구에 고깃배 한 척이 정박해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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