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오늘은 새날의 출발점
33년 전 오늘은 새날의 출발점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0.06.1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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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1987년 6월 10일 아침 외출 준비를 서두르며 졸병들이 닦아놓은 군화를 신고 말년휴가를 나서던 날, 하늘은 맑았고 거리에는 부산 특유의 사투리가 왁자지껄 소란하던 골목길에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점차 늘어가는 인파는 개금삼거리에서 서면 로타리쪽 대로변을 가득 메우며 민중가요가 우렁차게 거리에 울려 퍼졌고 행진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유모차까지 등장했다. 집회시위 라기보다 퍼레이드나 행사분위기 였는데 어디에도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노란 작대기 네 개를 달고 군복을 입은 필자의 복장은 자칫 몰매를 맞아도 구제해줄 여지가 없는 분위기였다. 당시만 해도 군부대 내부에서는 적군인 북한에 대한 대적보다는 자국인 국민의 시위를 대비하는 일명 충정훈련이 일과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군홧발로 지축을 울리며 일사불란한 폭동진압 훈련은 부대별로 경연대회가 벌어질 만큼 당연한 훈련 과목이기도 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진압훈련의 공격 대상이 국민이라는 점과 과감한 진압요령에 대해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다행히 한번도 실행하지 않고 전역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요행이었다.

이렇게 출발한 6·10항쟁은 훗날 민주화운동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서 19일 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마치 새날이 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행해졌던 삼청교육대는 물론 서슬퍼런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서빙고 분실 등 공포의 밀실수사는 누구든 한번 걸려들면 항복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었다.

공포의 이모 수사관의 고문 실력은 당시 내로라하는 시위주동자들의 뇌리에 ‘죽음의 사자’라는 대명사로 불렸으며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성고문과 폭력적인 조사방법이 특권자들의 권한이기도 했다.

물론 세상이 변하면서 한둘씩 밝혀지긴 했지만 여전히 세월이 약인 구석도 상당한 편이다. 군사독재정권 당시 사회의 진풍경은 자유와 방종의 갈림길이었다. 외국 문물이 물밀 듯 밀려와 근대화 과정의 성숙함이 자리도 잡기 전에 몸집과 외형만 커졌지 검증이나 우리민족 정서에 걸맞은 숙성과정이 없었다.

얼핏보면 자유 같지만 상류층이나 사회지도층의 철딱서니 없는 리더십으로 인해 순진하고 선량한 국민들은 흉내내기 바빴다. 하루아침에 자유 대한민국의 새날이 밝아온 듯 군중은 기쁨에 젖어 해외여행의 러시에 너도나도 공항은 붐비기 시작했고 국토개발은 막대한 부동산 땅부자들을 낳았다.

정계는 청문회를 통해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으며 백담사로 유배 가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비칠 때 이제야 한국의 민주화가 제대로 되었는가 싶었다.

6·10항쟁의 도화선은 그렇게 민주화의 불길이 되었으나 33년이 지난 2020년 6월 10일 여전히 정치권은 정쟁의 소리가 멈추지 않고 국민들의 삶은 외려 피폐해 졌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버스 좌석 뒤편에 담뱃재떨이가 달려있었고 음주운전이 당연히 되던 시절, 고속도로 운전자들의 쌍 라이트 켜주기가 당연한 의리가 되어 도로 한 가운데까지 뛰어다니던 경찰의 짭짤한 수입이 줄어들던 시절, 연애과정에 남자의 구애를 알고도 모른 체 거부하는 척 넘어가주며 부부가 되어 지금의 5천만이 되는 과정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작은 범법행위도 서로 일러바치기 바쁜 사회적 분위기는 과거에 있었던 인간적인 미풍양속은 사라졌다. 거리는 말끔해졌고 버스정류장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으며 손녀 뻘 되는 여성이 할아버지뻘 되는 남성 앞에 보란 듯이 담배를 꼬나물어도 쳐다보지도 못하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

남성의 구애는 여성의 수치심이라는 제한 선을 밟은 순간 범죄자가 되었고 자칫 회식자리에 참석시켰다가는 다음날 인터넷을 통한 여론의 비난소재가 되어 갑질 의혹이나 성추행 꼬리표가 붙게 된다.

물론 일부이기도 하겠지만 성적 욕구불만은 음지의 한쪽에서 대체인형이 불티나게 팔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혼율 증가, 흡연, 임신, 자살 등 청소년의 불미스런 통계 속에 온라인상에는 풍기 문란의 극치를 달리는 각종 범죄들이 소리도 없이 인간성 회복 불가의 사태를 불러왔다.

결혼, 출산, 집 마련을 포기한 삼포시대, 급격히 줄어드는 출산율과 반대로 늘어나는 실업률은 먹고 살기 힘든 사회의 병적 요소였고 아래위가 사라진 동방예의지국의 현주소는 오직 황금만능주의로 치닫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럴려고 그렇게 피 흘리고 최루탄 가스 마셔가며 군사독재와 투쟁을 벌였던가. 휴대폰 들고 다니고 자동차가 집집마다 있다고 행복할 수 있을까. 물질문명의 발달에 자유가 방종으로 변질되진 않았을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예술, 종교, 스포츠 어느 한 분야를 보더라도 과거와 현재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달라졌다.

발전을 향한 변화가 요원했던 한국의 과도기적 시대, 빗나간 발전은 퇴보만도 못하다. 한 겨례신문이 창간되던 해 이제야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가 시작되는 것 같은 꿈에 젖었었다.

강원도 태백의 산등성이를 뛰어다니며 광부들의 사택에 신문을 뿌리던 추억을 새기며 언젠가는 성숙한 국민의식이 이 나라의 재산이 되어 지구의 종주국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한글이 인류공통어가 되는 그날, 6·10 항쟁은 후손들에게 또 다른 이정표로 평가 될 것을 믿는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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