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보다 반칙이 앞서는 세상의 종말
원칙보다 반칙이 앞서는 세상의 종말
  • 김균식
  • 승인 2020.06.3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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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2020년 최저인금 인상안에 대해 논란이 많았던 민주노총이 노동자 가구 최소 생계비 보장을 위한 2021년 최저임금을 월 225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놨다.

이를 월 노동시간 209시간으로 나눠 시급으로 환산하면 1만770원이고 올해 8590원과 비교하면 약 25.4% 인상된 금액이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고 근로자를 대표하는 노동단체의 주장을 정부나 경영자들이 감히 갑론을박할 여지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어느 쪽이라 감히 말할 순 없지만 단체의 머리 숫자는 선거 때 투표수와 맞물린 것이고 근본적인 대안 보다는 무리들의 주장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440만 저임금 노동자가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라는 주장에 나오는 숫자의 나열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자영업자나 기업보다 근로자들의 머리수가 많고 무리만 지으면 노점상도 버젓이 불법영업을 할 수 있는 게 현재 진행형의 모습 아닌가. 선거 때 표심만 얻을 수 있다면 머릿수 많은 무리들의 주장이 맞고 안 맞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당선이 되거나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내년에도 자영업자들의 한숨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자고로 걱정거리는 어느 정도 해결의 여지가 있을 때 하는 것이지 아예 막연하면 편하게 접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반칙의 악순환이 돌아가는 판이 어이가 없다. 또한 군인은 군인다워야 하며 군의 기강인 군기가 있어야 상명하복의 원칙이 선다.

인권보장이라는 명분으로 7월 1일부터 일과시간이 끝나면 스마트폰 사용이 전면 허가된다. 물론 사기를 높이는 방법일수도 있고 월급도 올려주고 복무기간도 줄여주니 누가 싫어할까. 군 입대를 앞둔 부모들, 장병 당사자, 친구, 연인 등 주변인들이 반길 수밖에 없는 변화다.

이대로 점차 발전 한다면 종래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그 다음이야 어찌되든 표가 될만한 소재라면 앞뒤 안 가리고 원칙을 무시하면 당장에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무너진 원칙을 어찌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사람의 몸이나 입이 간사해서 침대 아니면 잠을 못자고 에스컬레이터 없이는 다중이용시설도 고객의 발길이 끊긴다. 온갖 양념에 길들여진 입맛은 이제 인스턴트나 일회용 식단을 벗어날 수 없게 됐다.

편익만 추구하다 정작 중요한 걸 잃어버린 사례가 어디 한둘인가. 이기적심리만 부추기며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마음을 키운다면 종래에 이 사회는 얼마나 각박해질까.

이제 국내 어린이들의 어려운 상황이나 외국의 극빈국가들의 굶주린 영상으로 빌미삼아 기부금을 거둬들이는 것도 한계가 오고 있다.

동정심의 남발, 흔해지는 감성 팔이에 점차 이웃사랑도 메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정작 도움 받아야 할 계층까지 구조의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최근 위안부 할머니 사건에 대한 후원도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 작금의 현실, 문제의 국회의원을 정권이나 언론이나 기타 시민단체까지 함구하고 있다.

각설하고, 과거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맞은편 도로에서 상향등을 깜빡여주던 시절이 있었다. 과속단속을 하는 경찰이 있으니 속도를 줄이라는 신호인데 서로 모르는 운전자들 사이에도 훈훈한 온정이 오가는 정서였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경찰이 아니라 운전자들끼리 블랙박스에 찍한 영상으로 신고하는 투철한 시민정신이 잘 발달되어 있다. 물론 도로교통법준수와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이 얼마나 각박하고 살벌한 사회풍토인가.

김영란 법 이후 뇌물이 자취를 감추긴 했지만 그래도 로비스트의 세계는 물밑 교섭으로 과거와 변함없이 잘 돌아가고 멀쩡한 요식업만 된서리를 맞았다.

학생들은 교사의 사소한 꾸지람도 신고하고 병사는 장군의 심부름도 신고하여 군의 사기가 땅에 처박히는 현실이 평등이나 인권을 존중하는 게 아니다.

직장에서는 경험자의 말이 꼰대의 잔소리가 되고 반갑다고 손만 잡아도 엉뚱한 성추행으로 뒤집어쓰는 각박한 세상, 사람이 잘못하면 야단도 맞아야 하고 참으로 혼날 짓을 하면 혼쭐나게 벌도 받아야한다.

서로 감시하고 일러바치고 고자질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고 권력은 앞뒤 안 가리고 표심만 쫓아가는 현실이 국민적 공감대를 사고 있다.

일본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당시 조선을 떠나면서 “한국은 참으로 위대하고 찬란한 나라다. 하지만 서로 이간질하며 미워하는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결국 안전이나 기타 사회적 투명의 명분은 있지만 예언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차량 100만대 이상에 주차 면은 절반도 되지 않다보니 퇴근시간 이후의 주차전쟁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하다못해 경기도 31개 시·군의 스쿨존은 모두 2931곳인데 담당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주민신고제를 시행하고 있다.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신고하면 과태료 낸 운전자가 신고한 주민을 어떻게 생각할까. 한마디로 별 해괴한 발상을 다하는 행정이다. 자고로 법이란 공동사회의 편리를 도모하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원칙을 빙자한 반칙은 이 사회가 가야할 방향을 모두 적신호로 만드는 것과 같다. 할 수만 있다면 초록색 신호등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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