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숙현 선수의 선택 어제오늘 일인가
고 최숙현 선수의 선택 어제오늘 일인가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0.07.09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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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터질게 터졌다. 새삼 온 나라가 오두방정이다. 마치 몰랐던 사안들을 새삼 발견된 일인 마냥 대통령까지 강력한 조치를 강조했다.

국방부에서는 장군의 갑질로 하루아침에 똥별이 되고 학원폭력으로 누군가 저세상으로 가야 온갖 법안을 마련하고, 스쿨존에서 사고라도 발생하면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다수의 주장에 힘을 실어 이름까지 붙인 법안이 마련된다.

국민적 관심만 들끓으면 정치권의 요동은 언론의 부추김에 난리 부르스를 춘다.

문제가 발생하면 필요한 법안을 마련하여 대책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이지만 작금의 사태가 발생한건 대한체육회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가 드러난 것임에도 새로운 비리가 터진 것처럼 탑 뉴스를 장식한다.

그동안 체육종목별로 폭행·가혹행위가 심심찮게 불거졌지만 그때마다 잠시 떠오르다 만 것이 어제오늘 일인가.

사람이 사는 과정에 목적 달성을 위해 감정이 개입되고 때로는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한 것이 스포츠다.

일초라도 단축시키려는 선수와 감독과 코치의 관계는 목표를 향한 처절한 노력과 과학적 훈련과정이 필요함에 따라 불가피한 독려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간과하면 성적이 떨어지고 다그치자니 인격이 문제가 된다. 오죽하면 대한체육회 스포츠 인권센터라는 부서가 생겼을까.

이번 사건에서 불거진 센터의 역할은 과연 그 기능과 역할이 제대로 된 건지 아니면 형식적인 부서에 불과했는지 의문이다.

과거 군부대 내에서 소원수리라는 절차가 있었다. 평소 근무 중 불편한 사항을 무기명으로 적는 것인데 결국 누가 적은지 알게 되고 위하는 척하던 상급 기관에서는 불편사항을 적어내는 사병보다 괴롭히는 고참병에게 힌트를 주어 입막음을 하게 하는 일들이 허다했다.

인권센터에 고발한 내용이 누설되어 소속 단체의 법적 대응을 예고해 주었다면 이는 무노조 보다 못한 어용노조라 할 것이다.

물론 아니길 바라지만 지금까지 스포츠분야의 폭력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가해자의 뻔뻔함에 가능했던 것 자체가 이 같은 요인이 작용된 건 아닐까.

문제는 일부의 현상이 전체에 적용되면서 엉뚱한 부작용을 낳는다는데 있다. 자칫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편들기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번 글에서 이춘재 하나로 전 경찰이 도매금으로 넘어가선 안 될 것이며 경찰이 기 죽으면 결국 수혜자인 국민이 피해자라는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가해 감독 한 사람의 행위로 인해 나름 정상적으로 애쓰는 타 종목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겪게 되는 감정적 갈등이 심화된다면 스포츠계가 쌓아온 공든 탑은 어쩔 것인가. 군대에 군기가 필요하듯 체육계의 훈련은 필수적이다.

일부 변질된 훈련과정이 전부일수는 없다. 마치 마녀사냥하듯 대한체육회 전부를 싸잡아 비난의 도마위에 놓고 난도질한다면 현재 꿈과 희망을 안고 금메달을 향해 정성을 기울이는 모든 스포츠 인들의 자존심과 사회적 인식은 어찌 회복할 것인가.

잘못된 범죄를 덮자거나 미화 하자는 게 아니라 자칫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생각나는 경우다.

어떤 이유로도 폭행이나 인격모독이 정당화 될 수 없으며 훈련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필드에서 뛰는 선수나 이를 감독하며 함께 호흡을 맞춰야할 지도자가 별개의 생각으로 목표가 이분화 된다면 한국 스포츠계의 미래는 암울해질 것이다.

스포츠는 음악·미술에 이어 국위선양에 지대한 몫을 하는 분야다. 하루아침에 유능한 선수가 생길수도 없고 각기 종목마다 막대한 투자와 선수개인의 선택과 뒷받침해 주는 가족은 물론 경제적 버팀목도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특히 대중성을 가진 축구·배구·야구·골프 등 구기종목은 덜하다.

필자가 지난 2018년 일본열도의 제패를 꿈꾸며 추진했던 한국권투의 현실을 예로 들자면 때리고 맞아야하는 경기 룰과 연령대에 따라 자칫 현역에서 은퇴해야하는 단명이 문제였다.

당시만 해도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금·은·동 모든 메달을 획득하여 일본 열도의 모든 일본인은 물론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나란히 올라가는 세 개의 태극기에 함께 경례를 표하는 울컥한 장면을 꿈꾸었다.

물론 국민적 무관심, 열악한 환경, 운영의 미숙으로 완성을 보지 못했지만 스포츠계의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외국과 한국의 스포츠 발전은 그 틀부터가 다르다. 멀리보고 지속적인 투자와 훈련을 병행하는 방식과 달리 성급히 결과에 치중하는 과정을 보면 조급함이 가져오는 폐단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무조건 빨리 가려는 조급함에 선수는 물론 감독과 관계자들이 일명 스파르타식 교육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 또한 강한 훈련이 낳은 부작용 중 하나이며 그 배경에는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그래도 된다는 안일한 대한체육회의 묵인이 한몫을 한 것이다. 진정한 한국 스포츠의 발전을 추구하려면 실질적인 기능과 역할은 못하면서 자리만 꿰 차고 앉아 월급과 권위에만 젖은 일부 인사들부터 물러나야한다.

돈으로 귀결되는 관행은 물론 선수의 자질보다 인맥이 우선 시 되는 폐단도 척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이번처럼 아무리 난리쳐봐야 쇼맨십으로 그치게 된다. 암에는 수술이 필요한 것이지 머큐로크롬 시뻘겋게 발라놓는 다고 낫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번에도 이러다만다. 한 두 번인가.

머리 처박고 지나가길 기다리는 묵은 구렁이를 잡아내지 않는 한 둥지안의 새들은 절대 안전하지 못하며 한국 스포츠는 제자리 걸음내지 후진성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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