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의 사퇴와 한·일간의 변화
아베 신조의 사퇴와 한·일간의 변화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0.08.3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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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이웃나라 라면서 역사적으로 우여곡절을 두루 거친 일본, 최근 양국간 갈등이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는 시기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격사임을 발표했다.

1993년 중의원, 미국으로 치자면 하원의원으로 첫 발을 디딘 정계는 이후 탄탄대로를 걸으며 9선으로 당선의 장수 드라마를 펼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05년 한때 관방장관까지 지낸 경력으로 2006년 1차 집권할 때도 이듬해인 2007년 궤양성 대장염으로 사퇴한바 있으며 2012년 2차 집권이후 지금까지 최장수 총리로 기록을 남겼다.

이제 약 1년 남짓 남은 임기는 결코 아름다운 퇴임은 안 됐지만 최소한 비난받고 물러나는 모양새는 면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열도 전역이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긴급 기자회견으로 발표된 사퇴는 일본 자국뿐만 아니라 외신에서도 특종으로 다루고 있다. 그만큼 세계 경제에 기반을 다졌다는 점이 반증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차기 총리가 누가 될 것이며 한·일 양국간의 변화는 어떨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돌아보면 1954년생으로 올해 66세인 아베는 위안부나 강제 징용이 행해질 시기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나이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인 아베 총리는 한국과는 줄곧 악연이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딛고 재기한 일본의 이미지와 아베노믹스 성과를 적극 선전하는 장으로 삼으려 했던 2020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이 코로나19로 1년 연기되면서 아베 총리의 정국 구상은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2013년 12월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전범국가의 근성을 드러냈고 2014년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을 인정했던 고노 담화를 검증하는 작업으로 양국 관계에 풍파를 가져왔으며 2015년 7월 강제동원 시설이 포함된 일본산업유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았다. 결국 강제징용에 대한 대한민국 법원의 승소판결로 2019년 7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등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이어오던 중 전격 사임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경제난이나 올림픽을 연기에 대한 후폭풍도 이유였겠지만 하락하는 지지율과 검찰총장 물망에 올랐던 구로카와 히로무 전 도쿄지검장이 내기 마작혐의로 사임하면서 현 정권의 방패막이가 허술해짐에 따라 죽기 전에 다치는 선으로 마무리 짓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어쨌거나 현실적으로 아베총리는 사임했고 일본의 차기 총리 정권 출범 시 꽉 막힌 한·일 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등의 문제가 자민당 지지층에게 민감한 이슈라 차기 총리가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공간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차기 총리의 임기는 아베 총리의 당 총재 임기인 내년 9월까지다. 이제 남은 건 유종의 미다. 장기집권에 성공한 아베 총리가 박수칠 때 떠나는 길은 마무리가 중요한 것이다.

모든 건 때가 있는 법이다. 사과도 받아줄 때 할 수 있는 것이지 한국 법원의 판결에 성질내면서 버틸게 아니라 전범국가로서 수용했다면 국제사회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기회였다.

수출금지로 맞받아친 결과치고는 양국의 냉각기류만 키운 셈이다. 한국이 과거 식민지시대 한국이 아닐진대 그동안 쌓인 반일감정을 감안해서라도 지소미아의 종료는 당연한 것이며 필수원료에 대한 수입금지로 자급자족의 기반을 만들게 됐으니 잠시 아프더라도 국익에는 도움 되는 동기를 유발시켜준 셈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긴급사퇴는 이미 예고된 바나 다름없었지만 측근도 모를 만큼 버텨온 걸 감안할 때 제 아무리 대단한 정치인이지만 건강 앞에는 무력한 걸 볼 때 인생무상의 일면을 볼 수 있다. 군사대국이 경제대국으로 전환했다면 지난해에 G20이 일본에서 열렸을 때 G20 중 문재인 대통령만 아베 총리가 만나지 않았던 점은 옹졸함의 일면이 아닐까.

차기 총리에 전범의 외손자가 아닌 국제 감각이 있는 자가 선택되어 한·일간의 물꼬라도 트는 노력을 해본다면 어떨까. 만약 필자라면 일단 위안부 할머니부터 찾아가 허리 숙여 사과하는 대범함을 보일 것이다.

선대의 죄를 후대가 사과하는 것은 원인제공자가 아니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임에도 여전히 한국을 졸로보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막달 할머니가 지난 29일 97세를 일기로 부산에서 별세했다. 17세였던 1940년 대만의 위안소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시달렸고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17명에서 16명으로 줄었다. 때를 놓치면 사과해도 가치가 전과 같지 않은 것이다.

다음 총리가 얼마만큼 뒤집어놓을지 모르지만 전범국가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재기하여 경제 부국이 되었다면 여유 있게 배려하고 과거를 사과하는 일이 대국다운 일이며 동남아시아는 물론 글로벌 안테나에 대범하고 배려 깊은 나라로 인식될 것이다.

사람도 국가도 인정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며 강국이 이를 행동으로 옮길 때 지난 허물이 용서되는 것이다.

언제까지 한·일간 축구경기나 경제전쟁에서 각축전을 벌여야 할지 지도자의 판단이 아쉬운 시기다. 문재인 대통령도 강경화 외교부장관도 발빠른 움직임으로 미래를 대처하는 등 향후 벌어진 변화에 미리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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