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보다 꼴찌에게 박수를
금메달 보다 꼴찌에게 박수를
  • 김균식
  • 승인 2020.10.15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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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인류 최대의 축제 올림픽, 정치·경제·군사·문화를 떠나 모든 지구인이 동일한 조건 속에 승부를 거는 운동회다. 남녀 종목은 물론 장애인 경기까지 차별과 편견의 벽을 넘어 기량을 겨루는 올림픽이야말로 외부의 간섭이나 반칙이 허용되지 않는 공정한 룰이 적용된다.

국가별 제원이나 역사는 다르더라도 우승이 가져오는 국위선양은 금전으로 환산되지 않을 만큼 대단한 애국이자 선수 개인에게는 영광이다. 특히 올림픽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마라톤은 42.195km의 1등에게 씌워주는 월계수관과 우승 선수의 소속 국가가 울려 퍼지는 장면이야말로 가슴 뭉클한 감동의 드라마다.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전 776년부터 서기 393년까지 1,200년 동안 4년에 한번씩 293회까지 열렸으나 로마에 정복당한 이래 중단되었다가 1896년 아테네에서 다시 제 1회 경기를 치른 이래 1988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24회를 치른 바 있다. 2018년에는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도 치르고 나서 대한민국의 스포츠 입지는 한층 더 높아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막대한 예산과 각 국가별 종목별 선수들의 열전이 치열한 경쟁을 이루는 올림픽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인류발전의 일면을 장식하는 대목이다. 오늘은 정부가 1963년 시행된 이래 매년 한 번씩 돌아오는 ‘제58회 체육의 날’이다.

화려한 1등,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은 모든 체육인의 꿈이자 목표다. 하지만 이 한 장면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선수가 피땀 흘린 연습 과정이 있었을까. 국내 경기로는 전국체전, 각 지방별로 도 대항별 체육대회와 종목별 경기까지 경쟁의 결과를 건전한 스포츠로 겨루는 방법이야 말로 경기에 나선 선수나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뜨거운 함성이 하나 되는 축제나 다름없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 경기라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선수들의 훈련까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게 때가 있듯 개최시기에 맞춰 기량을 모았던 선수들의 타이밍이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되면서 선수 개인은 물론 감독, 코치, 선수가족, 경기에 기대를 모았던 관중들까지 일본 도쿄 올림픽의 연기는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2021년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 1년간 연기된 올림픽은 일본 도쿄 현지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지만 무엇보다 때를 놓치게 된 선수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비보나 다름없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내 손톱 밑에 가시가 아픈 것이지, 남의 심장 상하는 건 남의 일이듯 선수들의 심신에 닥친 불행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다 아는 비밀 중 하나인 한국 체육계의 모순도 이번 기회를 통해 재고되어야 한다.

어쩌다 스포츠가 권력화, 정치세력의 산하기관으로 전락했는지 알 수 없으나 각 지자체별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의 통합 이래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자칫 덩치만 커진 생활체육이 실업팀을 능가할 만큼 세력화되고 이를 보다 못한 정부가 칼을 빼든지 수년이 지났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 체육의 부패는 이미 오래 전부터 단절되지 못하는 연결고리의 족쇄에 묶여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목별 선수들이 주인공이어야 할 스포츠가 돈과 폭력, 훈련을 빙자한 가혹행위의 무대가 되었고 일부 선수들은 견디다 못해 국외로 나가 기량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었다.

형평성을 잃은 심판과 체육인을 위해야 할 조직이 자신의 밥그릇 챙기는 도구로 전락한 예도 숱하게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작금에야 인터넷의 발달과 인권 보호라는 미명하게 조금씩 드러나는 체육계의 부정·부패와 어두운 그림자들이 외부로 표출되지만 그동안은 불편한 부분이 없었을까. 더 하면 더했지 아니었다고 누가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개인적 자질을 어느 민족 못지않게 우수한 유전인자를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내부적 갈등과 욕심으로 인해 정작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조폭은 싸움을 잘해야 하고 기자는 기사를 제대로 써야하며 화가는 그림을 잘 그려야한다. 해당 분야의 부패는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것이며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스포츠의 중심에는 선수들의 자질과 우수한 성적을 향한 노력과 과학적인 뒷받침이 하나 될 때 국위선양의 참된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자면 은반위의 김연아, 골프 박세리, 베트남의 영웅 박항서 감독 등 한국을 빛낸 영웅들이 한 둘 이었던가.

지금까지야 그랬다 치더라도 앞으로 한국 스포츠가 발전되려면 금메달을 향한 질주만이 대접받는 영웅이고 나머지 선수들의 기량은 관중의 안목에서 외면당하는 풍토부터 고쳐야 한다. 위로는 권위적인 조직이 투명하게 개선되어야 하고 선수들은 눈치 보지 않고 훈련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하며 관중들은 꼴찌에게도 박수를 칠 수 있는 성숙함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체육인들과 관련된 종목별 관계자들이나 관중들이 머리 숫자로 정치적 표심의 타깃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표가 될 만한 곳이라면 예산도 퍼주고 행사 때마다 정치인들이 무대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는 쇼가 중단되지 않는 한 한국의 스포츠는 늘 제자리를 걷게 될 것이다.

정치와 체육이 분리 되지 않는 한 발전은 꿈에 불과하다. 2년 전 한국 최고의 주먹을 골라 태극기 3개가 나란히 게양되고 일본 열도에 애국가를 울리는 순간을 위해 프로모터 대표로서 열정을 쏟았던 시절이 있었다. 현실이 따라주지 않아 포기했지만 문득 링 아래 경기를 준비하던 복서들의 눈빛이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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