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을까
누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을까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0.10.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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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하루가 다르게 수백 가지의 직종이 사라지고 생겨나는 시대적 변화 속에 언제부턴가 심부름이 전문 직업이 되는 세상에 도래했다.

말이 좋아 물류다 택배다 하지만 내용은 심부름이다. 무게, 거리, 내용물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전달하는 자와 받는 자의 입장 차이는 시도 때도 없이 논란의 소지가 생긴다.

필자가 오래전 읽었던 책의 내용 중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 이야기에 우편배달부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우편배달부가 가방을 메고 말을 타고 달리던 중 인디언들의 공격을 받아 상처를 입었지만, 책임감으로 끝까지 배달을 마친 적이 있는데 날아든 화살이 가방을 뚫고 편지를 찢는 일이 있었다.

피 묻은 손으로 겨우 편지를 전달했는데 이를 받아든 수령인은 “요즘 배달부는 편지하나 제대로 못 챙겨서 찢기고 피까지 묻혀 오는가.”라며 야단을 쳤다고 한다.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입장 차이는 이렇게 큰 것이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택배 수요가 증가하면서 물건을 전달하는 자의 전언에 따르면 차를 주차해도 교통범칙금이 부과되고 정문을 통과하려면 까다로운 방범 절차에 경비원들 눈치까지 봐야 하며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을 어렵사리 올라가 보면 엉뚱한 주소로 인해 헛걸음 하는 등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야 나름 베테랑이 된다고 한다.

일과가 시작되기 전부터 당일 배달할 물건에 대한 분류는 인건비도 못 받는 것이 당연하고 그 시간만 해도 상황에 따라 몇 시간을 허비한다고 하니 세상에 쉬운 일이 없는 것이다. 누가 편히 쉬고 싶지 하루에 수백 건도 넘는 택배 일을 달리고 달려가며 쉬지 않고 뛰고 싶을까.

집에서 편히 받아보는 물건은 과거에 자장면이 일번지였다. 달리는 철가방에 불지 않는 면을 지키려 신호위반은 물론 목숨 걸고 달렸건만 짜네 싱겁네 하며 단무지랑 고춧가루 더 가져오라는 진상까지 별 화상이 다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택배는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전문회사도 생기고 택배기사를 채용하는 기준이나 그들만의 세계가 생겼다. 하지만 가진 게 많고 배운 게 많았거나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면 몸으로 달려야 하는 험한 일을 누가 할까. 누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을까.

택시 운전을 하다가, 하던 가게를 폐업하고 나니 먹고 살게 없어서, 뭐라도 해야 살 수 있기에 덤벼든 택배기사의 하루는 해본 사람만이 아는 애로사항이 산적하다. 평소 직장을 다니거나 규모는 작지만, 생계를 이어갈 조그만 치킨 가게라도 해보던 일반 시민들은 이제 누구든 역지사지의 입장이 될 것이라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 하지 않았는가. 수 만 명의 종사자들이 근무하는 택배시장은 고객의 입장에서 억지를 쓰거나 불편을 초래할 환경을 줄여주는 것이 함께 사는 사회, 서로 돕는 이웃이 되는 길이다.

최근 배송 업무 중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숨진 택배노동자 김원종 씨의 추모는 남다른 애도의 발길이 이어졌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초라한 상가에 분향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고인을 방문한 방명록도 사라져 찾아본 결과 쓰레기봉투에 버려진 후 였다고 한다.

죽어서도 무시당하는 환경에 함께 했던 문상객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올해만 열 명의 택배노동자가 사망한 현실은 이제 택배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없는 한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공감하여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종교·의료인단체 등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택배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끊기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고 하니 참을 만큼 참아온 이들에게 그 어떤 대안이라도 생겨날 시점에 도래했다.

물론 사람 사는 게 쉬운 일은 없겠지만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은 말뿐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겠지만 언제 나도 그 입장이 될는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사다.

누구나 알고 있는 현상이겠지만 도로를 달리는 배달오토바이를 보면 아찔한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기껏해야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배달오토바이는 신호위반은 물론 차선이나 심지어 인도까지 누비며 종횡무진 곡예운전을 일삼는다.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고 자칫하다가는 생명까지 위험할 순간들이 일상의 생활이 되어 퀵 서비스 전문매장 앞에는 즐비한 오토바이 진열을 볼 수 있다. 경찰의 단속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달려야만 수입이 생기도록 짜여진 배달 비용도 문제고 조금 늦었다고 난리를 치는 고객의 오두방정도 문제다. 오죽하면 총알보다 빠르게 배달한다는 광고와 정해진 시간보다 늦으면 벌금까지 부과하는 악덕 매장이 경쟁의 전쟁터로 배달부를 내몰까.

이제 대안이라면 시간에 쫓겨 달리지 않도록 출발부터 안전한 주행시간을 정해야 하며 가만히 앉아서 물건이나 음식을 받으려면 합당한 요금을 추가로 부과시켜서 배달하는 자의 수입에 당위성을 더해야 한다.

사람이 중심이라 하지 않았던가. 사람 목숨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한해에도 도로를 달리다 하늘로 달려간 사람들이 수십 명에서 다친 사람은 수백 명이 넘는다. 이래도 선진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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