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농업인의 날
제25회 농업인의 날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0.11.1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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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밥은 어디서 생겼을까. 초등학생에게 물어보면 쌀 나무라 말한다. 볍씨에서 출발해 모내기와 추수 때까지 거치는 과정보다는 슈퍼나 마트 가면 언제든 살 수 있는 양곡일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과수원에서 나는 각종 과실 종류나 땅 밑에서 자라는 뿌리식물까지 자연이 인간에게 무한정 베풀어 얻을 수 있는 결실을 당연한 듯 누리며 산다.

우리는 각각의 영역에서 분업을 통해 농·축·수·임업까지 풍부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과학적 영농시스템 덕분에 농민들의 수고를 별도로 생각할 여지가 없어졌다.

내 돈 주고 내가 사는 것이며 농사를 짓는 것은 농민들이 그만한 수확이 있으니 굳이 별도로 알아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일반 상식이다. 물론 이렇게 구분하자면 사람이 하는 일 중 중요하지 않은 게 어디 있을까마는 오늘만큼은 농민들의 수고를 생각해 보는 겸손함 마음을 가져보자.

매년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다. 정부에서는 늘 그랬듯이 온갖 상을 시상하고 부상도 주며 다양한 이벤트로 이 세상에서 농민이 최고로 대단하고 수고 많다고 번지르르하게 칭찬한다.

물론 하루만이다. 평소 농민이 땡볕에 땀 흘리며 온갖 고생할 때는 시원한 사무실에서 냉커피 마시며 징검다리 휴가로 해외 갈 궁리를 하던 높은 분들이 밭에 고구마·감자 한번 안 심던 분들이 농민들의 고통을 이해한다며 화려한 말잔치다.

수해로 진흙 범벅이 된 논을 배경으로 방송국 신문사 기자들 불러 새 장화 신고 기념사진을 찍는 동안 논 주인은 망연자실 하며 방송국에서 주문한 시나리오대로 고통을 호소해야 한다. 물론 거기까지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모든 정치인이 다 그렇고 지자체 공무원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평소 농민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관심과 행동이 있었다면 농업인의 날 이해한다거나 고생했다고 시상을 줄 자격이 있는 것이지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들러리로 농민이 억지 미소를 지어서는 안 된다.

이쯤하고 점차 귀농인구가 늘고 있고 언제부턴가 산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자연인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단면만 보면 골치 아프고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신선한 자연 속에 땅 냄새를 맡아가며 마냥 행복할 것 같지만 현실은 천만의 말씀이다.

먼 곳에서 보기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살고 싶겠지만 글쎄다.

수도권 주변은 보통 수 백 만원하는 땅값이 건축비를 포함하면 적어도 수억 단위는 훌쩍 뛰어넘는다. 물론 다시 되 팔때는 주인 만나는 게 기약이 없고 도심의 아파트처럼 집값 상승기대도 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결론은 겉만 보고 신중하지 않은 선택으로 농민을 흉내 내지 말라는 것이다.

자영업 성공률보다는 높지만 귀농의 성공은 그리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만큼 농사짓는 일이 어렵다는 뜻인데 돈으로 당연하듯 사기보다 포도 한 송이, 수박 한 통 키우느라 고생한 농민들의 고마움도 알아주는 배려가 이웃사랑의 실천이라는 의미다.

언제부턴가 지방의 농촌을 다녀보면 60대가 청년이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귀농이 대체하지 못한 영농인들의 전반적인 연령층이 점차 높아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현재의 청·장년층이 이어받지 못한 농업기반의 실질적 운영 주체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아무리 과학영농이니 기계화니 해도 결국 사람의 손이 가야 성장하는 것이 자연에 대한 당연한 절차이자 결과치다. 현재 국내 농산물의 자급률이 얼마나 될까. 언제든 마트 가면 구할 수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을까.

실제 식당의 원산지 표지판을 보면 중국산은 당연한 것이고 어지간한 재료는 호주산, 미국산, 베트남, 러시아 등 수입농산물이 판을 친다. 물론 한미 FTA를 떠나 내 나라 자동차, 반도체, 조선 산업, 홍삼 팔아먹었으면 남의 나라 물건도 사줘야 하는 게 맞지만 다른 건 몰라도 농업은 먹거리요 삶의 기반이다.

한번 무너지면 다시 자립생산을 되살리기 어려운 만큼 언제든지 국제거래에 문제가 생기거나 나이 든 농업인들이 자연과의 호흡하는 기밀 배턴을 넘겨주지 못할 경우 후손들의 식량문제가 재앙 수준으로 닥쳐올 수 있다.

밀 농사의 기반이 무너지고 우리밀이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투자가 병행되었으며 그때까지 방부제 잔뜩 섞인 밀가루를 짹소리 못하고 먹어야 했던가.

농업인들의 진정한 영농법은 하늘과 땅과 물이 추수에 끼치는 영향을 온몸으로 익힌 것이다. 인터넷을 뒤지면 찾을 수 있고 농사짓는 법만 안 다고 곡식이 자라주진 않는다.

벌이 없으면 꽃에 화분을 옮기지 못해 과실이 못 자라듯, 바람과 이슬까지 고마워하며 한여름 따가운 햇볕도 마다하지 않는 정성,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농민의 마음이다. 내줄 건 내주지만 다 주지 말아야 한다. 여차하면 우리 먹거리만큼은 우리가 심고 추수해서 지어먹을 수 있는 농사기반을 지켜야 한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하루 삼시 세끼 쉬지 않고 먹어야 하는 오천만개의 입을 채우려면 적어도 수 십 년 앞을 내다보는 항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농업정책과 일선에서 고생하는 농업인들에 대한 대우에 정부와 입법기관의 관심이 더욱 높아져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시골가면 늙은 노인네가 굽은 허리와 주름진 얼굴로 버텨 줄 거라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양보다는 질이다. 아침이슬 머금은 호박잎을 따다 밥 위에 쪄서 집 된장에 쌈 싸먹는 맛이 과학에서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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