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주 오랜 옛날이야기(2)
옛날 아주 오랜 옛날이야기(2)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0.11.2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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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곰곰이 생각하니 태어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시름시름 앓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첫 아들 김주국이 지금의 이 꼴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싶기도 하고 지금 와서 죄 없는 마누라 들볶는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홧김에 담배도 피워보고 자식이 웬수라며 옆집 자식들과 비교도 해봤지만 무슨 소용일까.

다 술김에 사고를 친 자신을 한탄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집안은 부패 쓰레기가 도처에 넘쳐나고 넋놓고 싸움질만 하더니 눈치는 있는지 한번씩 집중단속이라는 오두방정을 떠는 통에 뽑으라는 잡초 대신 농약을 범벅으로 뿌리니 멀쩡한 농작물까지 죽어 가는 형국이다.

오죽하면 온 동네에 듣도 보도 못한 소문이 날까. 어쨌거나 고민에 빠진 우리의 김서방, 매파 할미가 떠들어대는 통에 옆집 최미국 대감도 윗집 강중국 대감이나 아랫집 이일본 대감 집까지 소문이나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홧김에 다시 저잣거리로 나가 해결책을 찾던 중 눈에 번쩍 띄는 문패가 있었으니 바로 다음정 이었다. 주막을 들어서니 곱게 단장한 여인네가 운영하는 자그마한 규모에 정리·정돈이 말끔히 된 집 안 구석구석이 김서방의 마음을 움직였다.

희망선반 위에는 꿈복숭아가 얹혀있었고 부엌의 선반에는 정직가루와 성실간장이 차곡차곡 줄이어 놓여있었다. 마당의 장독대에는 질서고추장과 정의된장이 보기만 해도 먹음직했다. 더구나 다음정 주모의 호패에는 차세대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아직 나이로 보나 외모로 보나 남정네 근처에도 안 간 처녀임이 틀림없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김 서방의 머리에는 오만 생각들이 영화 속 필름처럼 지나갔다. 술김에 마누라 안은 죄로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던가. 집안은 엉망이고 동네 소문은 더럽게 나고 아무 희망이 없었던 김서방의 뇌리에 스치는 뭔가가 있었다.

그래 한번뿐인 인생인데 새 살림을 차리자. 더는 마누라 하고 같이 살 의미나 이유가 없는 것이라 여긴 김 서방은 다음정의 차세대 주모에게 모든 걸 올인하게 된다.

당연히 마누라 등살이나 여자의 육감에 아슬아슬한 순간이 시도 때도 없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젠 늙어 근처에도 가기 싫지만 딴 여자한테 눈독들이면 이판사판이라며 절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한 해 두 해 세월이 가면서 마냥 어리게 보이던 다음정 주모도 제법 성숙한 여인네 티가 나고 이제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야겠다는 각오가 서던 어느 날, 그날도 김 서방은 마누라와 등 돌리고 잠을 청하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차 주모가 딴 놈한테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고 자다 깬 김 서방은 한걸음에 다음정으로 달려갔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다음정 뒷마당에 정한수 떠다 놓고 빌고 비는 차 주모의 기도는 대충 이러했다. 신령님·용왕님·천지신명님, 우리 김국민 서방님이 지금은 어려우나 언젠가는 제가 뫼시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실 수 있도록 빌고 비오니,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도록 굽어살펴 주시 옵소서.

부족한 제가 서방님의 자식을 낳아 서로 싸우지 않고 형제간에 화기애애하여 집안의 부패를 청소하고 구석까지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부지런한 아들을 낳도록 신이시여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귀하신 우리 국민 서방님과 우리 후손들이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을 믿사옵니다.

그토록 그리던 차세대 주모의 바람이 자신과의 부부 인연이라니, 꿈인가 생신가. 용기로 인기척을 내어 차세대 주모에게 그 바람이 진심이냐고 물었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살포시 가슴에 묻혀왔다. 이때 차세대 주모의 한마디가 김 서방의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게 했으니 그 내용이 이러했다.

오래 전 서방님 집안에 김범무와 김종창이 다툼이 심하던 시절, 서방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생각하니 제가 달리 도와 드릴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어리나 훗날 언젠가는 서방님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둘 낳아드리고 지극정성으로 뫼시어 김국민 서방님이 왕인 세상을 만들어드리려 했습니다.

그날 밤, 달은 기울고 소쩍새는 우는 데 하늘거리던 촛불마저 꺼지자 어둠속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가 아름답다했던가. 천둥·번개 대신 별빛이 초롱 했고 달마저 부끄러운지 구름속에 숨어버렸다. 몇 번인가 땀이 비 오듯 하고 새로 태어난 여인의 정갈한 숨소리에 어슴푸레 여명이 밝아왔다.

이제 새날인가. 그렇게 새 장가를 간 지 한 해 두 해 해가 지난 김 서방의 집안에는 웃음소리가 끊기는 날이 없었다. 큰 아들 김법무와 작은 아들 김총장은 서로 우애 있게 지내며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이웃집 일까지 거드는 정성을 보였다.

당연히 김국민 서방은 마음 편하고 넉넉한 살림에 만고 걱정이 없게 됐다. 그리 말 많고 흉만 보던 주변의 대감댁들도 마냥 부러워만 했다한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 그랬다는 이야기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 했고 같은 칼이라도 강도가 들면 흉기요 요리사가 들면 귀한 도구가 된다.

같은 펜이라도 누가 드느냐에 따라 칼보다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기에 기자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수 천 번도 더 새겼다.

같은 정치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국민을 지키라고 쥐여 준 총으로 국민을 쏘게 하는 게 권력이라면 그 권력, 국민의 이름으로 회수해야한다.

국민을 위해 쓰라고 모아준 세금으로 정치인들의 생색용 분탕질을 한다면 그 돈 제대로 밝혀서 국민에게 낱낱이 보고해야 한다. 언제까지 국민을 호구로 아는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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