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이 교도소에서 ‘보내온’ 편지
‘조두순’이 교도소에서 ‘보내온’ 편지
  • 이찬엽 논설위원
  • 승인 2020.11.3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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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엽 논설위원
▲이찬엽 논설위원

 

(경인매일=이찬엽 논설위원)“죄형법정주의”라는 말이 이렇게도 휴지조각처럼 느낀 적이 없다. 아무리 인간이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존재라고는 하지만 범죄 후에 발생하게 될 많은 사회적 파장까지 예측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범죄를 저지르는 방법은 크게 “격정”에 의한 범죄와 “계획”에 의한 범죄로 나눌 수 있다. 또한 고의범과 과실범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는 범죄학에서 형벌과 보안처분을 과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부분이다. 내가 아무리 사고를 쳐도 형법과 특별형법의 구성요건에만 해당하지 않으면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못돼먹은 명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동해보복(同害報復)심이 불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죄형법정주의는 또 하나의 상처를 줄 수 있다.   

최근 안산지역 주민들이 들끓고 있다.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까 걱정된다. 모든 원인은 조두순에게서 기인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형벌을 받고 출소하면 법상으로는 자연인이 되는 시스템이다. 티비에 나오는 자연인이야 다정한 자연인이지만 이 사람은 그러한 자연인이 아니다. 조두순은 성폭력 및 상해치사 등 전과가 17범인 “패덕광(悖德狂)”이다. 즉, 올바른 도리나 도덕, 의리 따위에 어긋나는 행동을 광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정신적 문제가 있는 자다. 그가 운영하고자 하는 커피숍의 커피가 갑자기 머리를 강타한다.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대가는 크게 형벌(9가지)과 보안처분이다. 조두순은 형벌은 이행했지만 아직 남아 있는 것은 “보안처분“이다. 조두순에는 주거지 반경 1km 이내 지역을 여성안심구역으로의 지정 및 CCTV 증설, 방범초소 설치 등 범죄예방환경을 조성하며 피해자 접근 금지, 음주 금지, 아동시설 출입 금지, 외출 제한 등 특별 보안처분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환경공학적 범죄예방(셉테드: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의 병폐이다. 

셉테드는 첫째로 자연적 감시(Natural Surveillance: 범죄발각용이, 가시권 최대화), 둘째로 자연적 접근 통제(Natural Access Control: 진출입차단, 노출 위험증가, 접근에 심리적 부담증대), 셋째로 영역성(Territoriality: 소유의식‧책임의식강화) 넷째로 활동성의 활성화(Activity Support: 거리의 눈, 유대감증대), 다섯째로 유지관리(Maintenance And Management: 기능의 유지관리) 등 세부 사항으로 이루어졌다. 우리의 상황에 부합하는 경우로는 플로리다주 게인스빌(The City of Gainesville) 시 조례(1986년 4월: 주차장 조명의 조도기준‧감시카메라의 기준 마련)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활동성의 활성화”인데, 거기에 초점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금 번 일련의 사건에 대하여 경찰과 행정청 당국은 엉뚱한 데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이는 조두순의 “옥(獄)내정치”에 놀아났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부분이다. 조두순의 주거지역이 바뀌게 되었는데도 방범초소, CCTV 등을 종전 거주지 위주로 설치하고 증가시킬 예정이라니 말이다. 선거로 뽑았으면 주민의견을 먼저 수렴하고 과학적 대처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국내에는 1990년대부터 관심을 받았고 2005년에는 부천시가 일반주택단지를 “셉테드” 시범지역으로 지정된 바 있으며 광교 신도시 및 은평뉴타운 일부에서 이를 시범적으로 시행한 바 있다. 이 제도는 예산이 많이 소요된다는 문제점이 있고 상황에 따라 효과의 편차가 크다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조두순에게는 이러한 방식보다는 원천적 봉쇄 즉, “약물적 거세”가 그에겐 맞다. 그러나 슬프게도 거세법은 그에게 적용할 수 없다. 

그놈의 죄형법정주의 때문에. “소급효금지”라나 어쨌다나. 이것을 보면 똥오줌 못 가리는 외국이론을 무조건 받아들인 죄가 크다. 조두순은 교도소에서 팔굽혀펴기를 수천번씩 한다고 한다. 교도소 식단이 많이 개선됐나 보다. 스테이크는 물론 짜장까지 제공되니 말이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전과 18범을 채우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 자는 헌법상 기본권 즉, 명예훼손, 거주이전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을 주장할 가능성이 농후한 자로 판단된다. 정신 나간 학자나 판사는 범죄자의 인권 운운하며 이에 동조할 수도 있다. 기가 막힌다. 필자도 오늘부터 “퓨샵”이나 해볼까. 아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그만두련다.

조두순에게 과해진 형벌은 징역 12년이었다. 범죄행태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약한 형벌이었다. 형법상 강간상해죄에 해당하는 죄값 이었다. 이 당시 구형검사는 멀쩡했지만, 문제는 담당판사였다. 여기서 판사의 법적 사고가 얼마나 국민의 “법감정”에 “역행”했는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다. 아니 모를 가능성도 있다. 지금도 법관으로서 승승장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명감 결여 판사는 아웃시켜야 한다. 법관은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다. “증거와 경험칙”을 바탕으로 합리적 판단을 해야 한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 형법은 “괴물적 원리”를 도입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原因에 있어서 自由로운 行爲, actio libera in causa)”이론인데, 참. 이 이론은 썩었다. 

이는 행위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자기를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의 상태에 빠지게 한 후 그 상태에서 범죄를 실행하는 것을 말하고 이 경우 행위자의 형법적 책임이 감경‧조각되지 않고 완전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문제는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①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③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처구니없다. 자신의 범행을 예견하고 심신장애를 일으킨 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나 조두순은 이를 예견하고 남음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상습범 아닌가. 

이와 관련하여 “질서위반행위규제법” 등에서는 아직도 “필요적 감경”으로 규정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법에서 제아무리 “네모반듯”하게 서술해 본들, 그것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하자가 있거나 비효율적이라면 “무용지물” 아닌가. “조두순의 편지”를 받아보는 순간 아찔한 예측이 눈을 스친다. “교도소”는 “병원노릇”을 해야 하는 곳이다. 그곳은 “육체적‧정신적 범죄성상”을 “치료”하는 곳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완전한 치료가 덜 된 것 같다. 종전 거주지 주변으로 복귀하고자 한다니 말이다. 그런데 전자발찌부착, 보호관찰관의 파견 등이 “피해자의 권리‧지역주민의 권리”보다 더 중요한가. 이는 재범을 막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발(始發)되었을 터. 그러나, 이 상황은 주민들과 피해자의 입장이 충분히 대변되지 못했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불완전하고 괴물적인 이론이 “회복적 사법”인데, 주요 골자는, 범죄자와 피해자가 “화해”함으로써 종전상태를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살인이나 강간, 강간상해, 국권침탈 등의 범죄에 있어서도 이 이론이 그대로 적용될까.

필자는 의구심을 갖는다. 말로 화해했다고 참혹한 과거가 완전히 잊혀질까. 아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가. 우선 “국회의 잘못”을 지적한다. 중대 범죄의 경우 범죄자의 종전생활역에의 복귀를 막는 법을 진작 발효시켰어야 했고, 경찰이나 행정청은 전문적 연구를 통하여 “행정낭비”를 줄였어야 했다. 왜 이리 늦는가. 왜 이리 답답한가. 피해자는 “두려워”하고 있고 주민은 “우려”하고 있다. 다음으로, 조두순의 “심리상태”를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라면 석방후 조두순은 자발적으로 그곳에서 멀리 떠나야 한다. 보안처분이 미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필자가 궁극적으로 하고픈 말은 이것이다.

자. 이제, 출소를 앞둔 “조두순에게 ‘보내’는 필자의 편지”를 마치려 한다. 종결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해자와 주민들의 이익으로”라는 법언과 범죄자에 대한 지나친 호혜로 인해 피해자가 역차별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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