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와 공익제보의 차이점
파파라치와 공익제보의 차이점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0.12.02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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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어제는 늦은 밤까지 글을 쓰다 야식이 생각나 인근 통닭집을 찾았다.

맥주라도 곁들이면 갈증과 허기가 면해질 것은 같은 기대감으로 찾아간 단골집의 젊은 사장은 인상이 여간 찌푸리는게 아니다.

이유인 즉 마스크 안 쓰고 찾아온 고객에게 통닭을 팔았다가 마 파라치에게 사진이 찍혀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 받고 15일간 영업정지명령을 받았다는 하소연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인해 평소 보다 절반도 안 되는 매출로 차라리 폐업하는 게 더 낫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정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고자질과 일러바치기가 직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아예 대 놓고 파라치 방법과 보상금 수령에 대한 절차를 강의해 주는 학원이 있을 정도니 더 말해 뭐하랴.

국민건강을 위해 정해진 마스트 착용은 당연히 해야겠기에 그 어떤 변명도 못하고 벌어도 시원찮을 판에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온다는 넋두리다.

이어 가계 문 닫으면 자신도 카메라 들고 파파라치 시장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신고할 것이라는 분노가 가득했다.

어쩌다 불법에 대한 단속의 손길이나 행정력 낭비가 심하다는 현실의 대체인 파파라치의 탄생의 배경은 누가 어떤 식으로 만들었는지 두고 볼 일이다.

당초 취지와는 달리 남이야 죽든 말든 나만 살면 된다는 안일한 사고에서 비롯된 파파라치, 같은 모양인데 전혀 색깔이 다른 공익신고와 겹치면서 우리 사회는 서로 으르렁 거리며 분열과 갈등의 도가니가 끊이지 않고 있다.

원래 파파라치는 정치인, 연예인 등 대중에 널리 알려진 유명 인을 대상으로 몰래 사진을 찍는 사진사를 의미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반인의 범법행위 장면을 몰래 찍어 행정기관 등에 신고 목적으로 제출하는 사진사로 변질된 것이다.

과거를 거슬러 보면 2001년 3월 교통위반 신고보상금제가 도입되면서부터 자동차와 파파라치의 합성어인 카파라치가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쓰레기불법투기를 신고하는 쓰파라치, 학원의 불법영업을 신고하는 학파라치, 약국의 불법사항을 신고하는 약파라치 등 법규를 위반하는 모든 분야로 확산되지 이제는 서로 눈치보고 신고하는 경계와 불신의 위험한 상황들이 빠르게 번졌다.

특히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는 차량에 대해 암행순찰차가 등장, 외형상으로는 일반 차량과 다를 바 없으나 위반차량이 발견되면 내부에 설치된 경광등과 사이렌까지 작동되면서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러한 단속으로 인해 사고위험이나 도로교통법의 위반차량도 줄일 수 있으나 반대로 모든 차량이 언제든 암행단속차량으로 나타날 수 있으니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변해갔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누구든 믿지 못하는 불신사회의 조장은 감히 누구도 지적하지 못하다 보니 법을 정하는 자의 결정이 곧 법이 되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약 30년 전만해도 고속도로를 주행하다보면 맞은편 방향에서 오던 차량이 상향등을 번쩍거리며 교통단속이 있음을 암시하는 신호를 전해주고 가는 차량 또한 오는 차량에게 같은 안내를 해주는 훈훈한(?)인심의 국민정서였다.

지금은 사거리 신호를 위반하게 되면 언제 어느 곳에서 블랙박스에 찍혀 신고될 지 모르는 살벌한 교통 환경으로 변모했다.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파파라치가 성행하고 모든 업종에서 여차하면 신고대상이 되어 과태료가 부과되며 신고한 자는 적절한 보상금을 챙기는 사회, 소위 당한 자는 피멍이 들지만 그래도 위반자라는 처지에 누구에게 말도 못하는 상황, 과연 이 사회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거미줄 같은 법망에 걸면 안 걸리는 게 없는 규제, 오죽하면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까.

필지가 취재를 하다보면 별 말도 안 되는 제보가 다 들어온다. 대부분 법대로 하다 안 되거나 이래저래 해보고 안 되면 찾아오는 자들이다. 물론 한쪽말만 듣고 같이 부하뇌동 하다가는 언제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서로 이간질하고 미워하며 당한 자는 분노로 또 다른 고발자가 되는 도미노 현상을 보면서 장차 이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나 싶다. 물론 신고에 대한 순기능도 있지만 법을 정하기에 앞서 역기능에 대한 신중한 검토도 필요하다.

이대로 간다면 누구든 신고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앞으로 이 사회는 배려보다는 이기적 분위기가 팽배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오래 전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을 떠나면서 조선총독 아베노부유키가 예언한 말이 새삼 상기되는 건 섬칫할만큼 정확히 적중되고 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조선의 정기를 말살했기 때문에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그 이유는 일본이 조선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지교육을 심어 놓았다고 큰소리 쳤다.

그리고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이 적중하고 있다. 대안이 있을까.

어떤 법이든 현실에 맞게 충분히 검토하여 신중히 정하고 이를 국민정서에 합당한지를 다시 한 번 살펴야 할 것이며 법안 제정 인들이 민초들을 염려하고 안배하는 배려가 겸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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