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성냥팔이 소녀를 구하라
현대판 성냥팔이 소녀를 구하라
  • 김균식 기자 kyunsik@daum.net
  • 승인 2020.12.2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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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김균식 회장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1845년 12월에 발표한 단편소설 성냥팔이 소녀는 1889년 삽화로 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약 30년 뒤인 1928년 삽화는 르누아르 감독의 무성영화로 제작되어 2017년까지 총 8번이나 재구성될 만큼 명작으로 부상했다. 

연말인 겨울 성냥을 팔지 못하면 아버지에게 혼났기 때문에 성냥이 다 팔리기 전까지는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소녀가 팔던 성냥을 하나씩 켜다가 죽어가는 비극적 종말을 그린 영화다. 

성냥을 팔던 소녀는 성탄절 분위기에 들떠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고 집에 들어가지 못한 소녀가 하나씩 성냥불을 켤 때마다 따뜻한 집과 맛있는 음식의 환상이 보이자 마지막 성냥까지 다 켜고는 다음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안타까운 내용이다. 

지난 20일 경기도 포천에서 캄포디아 국적 여성 이주노동자가 영하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제 서른 살의 이 여성은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강추위로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이었지만 어디하나 기댈 데가 없었고 한국에 오기 전에 살던 더운 나라를 그리워하다 숨진 것이다. 

농장 숙소는 정전 상태였고 난방이 되지 않았다는 동료의 말을 빌리자면 겨울에는 화재에 여름에는 수해피해를 감수해야하는 비닐하우스 내부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물론 불법이다. 사계절 여름이던 자국의 자연환경과 가족들과 영영 이별했다. 

차츰 얼어가는 육체는 현대판 성냥팔이 소녀와 뭐가 다를까. 부분을 보고 전체를 논할 수 없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건까지 취합한다면 연일 가족 동반자살자와 극단적 선택은 남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전북 익산의 한 아파트에서도 43세 가장이 아내와 자녀 둘을 살해한 뒤 자신도 죽음을 선택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이유는 빚 독촉 때문이라고 한다. 

시달려보고 산전수전 겪어본 경험이 있다면 배 째라 하거나 벌어서 분할이라도 갚을 테니 기다려 달라고 말하겠지만 없이 살아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해 본 사람이라면 빚 독촉은 죽음을 부르는 장송곡이나 다름없다. 

또 다른 곳에서는 가장이 아내와 합의하고 유서까지 같이 쓴 후 자녀를 살해한 가정이 있었다. 이유는 채무에 시달리다 못해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라는데 얼마나 괴로웠으면 귀한 목숨을 버렸을까 싶다. 

쥐도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주고 싶어도 없어서 못주는 사람에게 계속 독촉하면 악만 남을 것이고 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 외에 딱히 해결책이 없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자녀를 동행하려는 판단은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거나 보호자의 위치를 역으로 여기는 발상이다. 자신이 괴로우니 자식들도 살아봐야 더 나을게 없을 거라는 임의적인 판단이다. 과연 그럴까. 사람이 태어나면 지 먹을 건 갖고 나온다는 말이 있다. 

언제는 서민들의 삶이 쌀밥에 고깃국 먹고 등 따시고 배불렀던가. 늘 허리띠 졸라매고 허덕거리며 알뜰살뜰 쪼개고 아끼며 살아왔다. 이 세상에 가난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사업해서 망할 줄 알고 시작한 사람은 또 어디 있겠는가. 

동물과 달리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며 살려두면 뭐가 되도 되며 다 살아지는 게 세상이치다. 갈려면 혼자가고 죄 없는 마누라랑 자식들까지 동행하는 건 무슨 심보인가. 가난의 최종 책임자도 가장이고 사업의 성공도 자신의 몫이다. 

코로나19는 지지기반이 견고하지 못한 사회 취약계층이나 가난해진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아동기관 휴관 및 개학까지 연기되면서 결식 우려 아동들의 허기진 배는 누가 채워줄까. 

개학을 기다리는 아동, 현재 결식아동 33만여 명, 전체 아동 인구 4%가 허기진 배를 주리며 현대판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그나마 하루 5천원 짜리 급식카드라도 받아 사용하지만 일반 백반 집 식대가 7,500원인 점을 계산해 볼 때 겨우 하루 한 끼도 해결이 어렵다. 그렇다 치고 나머지 두 끼는 어쩔 것인가. 현재 급식 지원 대상에 포함돼 지자체로부터 한 끼만 지원받는 아동은 약 8만9000명으로 집계됐다. 

어차피 적은 돈으로 식당도 못가니 편의점이 그 대상이다. 필자도 자주 가는 편의점은 간식이나 일시적으로 급한 상품이 주요 구매목록이지 입맛대로 구매하기에는 영 시원찮은 편이다. 빵, 우유, 삼각 김밥에 컵라면이 전부다. 

이렇게 부실하게 먹은 아이들이 수십만 명인 대한민국, 같은 또래 아이들이 넉넉하게 먹을 동안 늘 부족함에 그늘진 계층은 어느 국가에서나 존재하지만 위기일수록 더 위험한 상태에 방치된다. 자기방어 능력이 안 되는 어린이나 미성년자들의 취약한 환경을 이용하여 성 욕구를 채우려는 구매자들이 도처에 넘친다. 

성냥을 팔아야 살 수 있는 소녀들을 온라인으로 유혹하여 성을 팔아 허기를 면하게 하는 상황으로 만든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물론 사리분별이 어려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검은 손을뻗치는 자도 문제지만 이를 적발해서 처벌하는 책임을 가진 자들이 방심한다면 이 또한 직무유기라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사각지대를 다 같이 찾아내어 현재 있는 거라도 나누며 이 위기를 넘기는 용기와 실천이 필요하다. 성냥을 팔아야 집에 갈 수 있는 소녀와 가난에 찌든 부모의 눈치를 보며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소녀와 뭐가 다를까.

2020년 크리스마스이브는 유난히 추운 날씨다. 혹여 앞서 어필한 이주 노동자처럼 단전상태에 전기장판도 켜지 못하고 컵라면 끓일 물도 없이 버티는 계층이 있다면 집합금지 명령으로 스키 못 탄다고 화난 계층과 함께 사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때 보다 가진자의 배려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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