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트로이 목마(Troy 木馬)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
[사설]트로이 목마(Troy 木馬)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
  • 이찬엽 논설위원 kmaeil86@naver.com
  • 승인 2020.12.3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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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엽 논설위원
이찬엽 논설위원

트로이 목마는 전설속의 목마이다. 아니, 역사속의 목마다. 그리고 트로이 목마는 살아있지 않은 목마다. 나무로 만든 목마다. 2층짜리 목마다. 대략 높이가 6.5m 정도 되는 목마다. 헤리티지월드 세계유산이다. 그리스에서 만들었지만 터어키 이름으로 등재된 목마다.

이와 같은 트로이 목마가, 최근 우리 정치사에 입당(入黨)했다. 놀랍다. 외국산 목조 말이 한반도에 상륙한 것이다. 여당에도 야당에도 “각각 몇 마리씩”! 소름이 돋는다. 그 속에는 적군이 숨어있다. 승조인원은 딱 30명! 공교롭게도 “상어급” 북한 잠수함과 같다. 그리고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전투를 수행한다. 아무도 모르게! 상대방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속수무책이다. 모든 게 허무하다! 아. 이래서 등하불명(燈下不明) 이랬던가! 

트로이 목마는 그리스 출생이다. 명확하게는 스파르타다. 최근 EU(유럽연합)에서 “국가부도(sovereign default)”로 골칫거리가 된 그리스가 고향이다. 그래서, 한국에 와있는 트로이 목마는 용병인 셈이다. 실정이 이렇기때문에, 트로이 목마는, 고단한 외국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가 한낱 이름없던 마케도니아에게 멸망한 이유가 “용병의 병폐”였던 것을 보면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자국은 자국민이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래서, 지금 필자는 “향토예비군”노래가 생각난다. 그럼. 잠시 불러보자. (힘차게)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직장마다 피가 끓어 더 높은 사기(중략). 예비군 가는 길엔 승리뿐이다! 다시 불러보니 참 좋다. 과거, 트로이 목마는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고 타국을 섬멸하는 계략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눈물꽤나 흘렸을 목마”였던 것이다.

얼마전, 경기도 여주에서는, 높이 25.16m, 길이 22m, 부피 50㎥의 세계 최대 규모의 트로이의 목마가 조형됐는데, 실명은 세종대마다. 수입목재에 대한 제재로서 국산을 애용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여기서의 트로이 목마는, 타향에서 그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는 바가 큰 목마다. 좋은 의미다. 과거 남몰래 눈물 흘리던 그런 목마가 아니다. 희망의 목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목마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통상, 지중해에서 벌어진 전쟁으론, 페르시아전쟁,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주로 연상한다. 그리고 페르시아전쟁을 동양과 서양 간의 최초전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트로이 전쟁이 실제 존재했던 전쟁이라면 이것이 동양과 서양의 최초전쟁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왜냐면, 그리스와 트로이는 지정학적으로 서양과 동양에 각각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서양과 동양은 애당초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원인은, 서양의 동양에 대한 보이지 않는 우월감 때문이었다. 실제로, 고대의 전쟁에서는, 서양이 다소 우세했다. 근대(近代)에서도 영국의 인도경영, 중국과의 아편전쟁 승리도 그중 하나로 꼽힌다.  
     
이와 같은 트로이 전쟁의 배경이 된 곳은 지중해다. 지중해는 “대서양의 부속해”로서 296만 9,000㎢의 면적, 4,000km의 길이 규모로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3개 대륙에 에워싸여 있는 내륙 바다이다. 대서양이 총 8,200만 ㎢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니, 그것의 27분의 1에 해당한다. 이렇게 보면, 아주 작은 지역에서 발생한 국지전이었다. 우물안 개구리전쟁이었다. 

상기,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850~800년경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등장하는 전쟁이다. 거기서 가장 눈여겨볼 것은 단연 “트로이 목마”다. 트로이 목마는 현대에서도 활약 중인 말이다. 생명도, 기원전 1200년경을 묘사한 것으로 보았을 땐, 최소한 3200년의 세월을 보낸, 오래된 말이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에 이용당하면서. 이젠 정치사(政治史)에까지 그가 등장한다니. 참으로 영욕의 세월을 보낸 친구 아니던가.

트로이 전쟁의 발단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 왕의 미녀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 프리아모스 왕의 미남 “왕자 파리스”가 유혹함에서 였다. 일종의 약취유인에서 촉발됐다. 즉, 이 전쟁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는 고대의 전쟁이나 현대전이나 동일한 양상이다.

그렇지만 위의 원인은 피상(皮相)이고, 실질은 트로이가 지중해와 흑해의 길목인 다르다넬스에서 “관세를 부과”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르다넬스해협”은, 갈리폴리반도와 소아시아반도 사이 좁고 긴 해협으로 길이 61km, 폭은 1~6km로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가 된다. 지정학적 요충지며 교역의 핵심지역이다. 즉, 이 전쟁은, 경제적인 문제에서 출발했다. 트로이의 “무역교란행위”가 그리스를 자극했던 것.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전쟁”인 것이다. 전쟁에서 지면 상대국가의 노예가 되는 구조이며 생계가 막막했다. 기필코 이겨야 했다. 지금, 우리의 정치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면 큰 집으로 다이렉트다.

항상 전쟁이 그렇듯, 초반에는 격렬하게 중반과 후반에는 협상과 함께 수행하지 않던가. 갖은 “잔꾀”를 부려가며. 트로이 전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랜 전쟁으로 국민은 지쳐갔고 왕에 대한 불신은 하늘을 찔렀다. 그 기간은 9년 3개월이나 지속됐다.

그리스군에는 아킬레우스(우군 사령관, 바다여신 테티스의 아들)와 아가멤논(좌군 사령관, 왕의 형, 소위 빽으로 된 장수) 두 지휘관이 있었고, 역시 이 둘은 불화로 갈등을 식사(食事)하듯 했다. 그럼 그렇지! 고려말 이성계(좌군 사령관)와 조민수(우군 사령관)도 이와 같았을 게다. 조민수는 1390년 이성계에 대항, 서인(庶人)강등, 유배중 사망 등, 2인자가 걸었던 처참한 일생을 정확히 걸었던 것이다. 그러게. 원팀(One Team)되기가 그리 쉽던가! 안 그런가. 윤 대장군. 김 비상장군. 유 전장군!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는 승리의 보증수표였다. 그의 갑옷만 내걸어도 사기충천, 칼과 창은 하늘을 찔렀다. 결국, 아킬레우스가 적장 헥토르(트로이 왕의 장남)의 목을 벰으로써 겉으로 보기엔 승부가 끝난 듯 보였다. 그러나 폴리스 시대는 이면(裏面) 동맹이 잦았기 때문에 트로이는 함락하지 않고 버텼다. 다만 “오디세우스”의 목마 전략만이 승리를 가능케 할 뿐이었다. 이순신의 12척의 배처럼. “합리적, 과학적 전략가”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었다. 지금도.

트로이측, 라오콘과 카산드라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목마를 성안에 들인 트로이는 “기어코” 일을 내고 만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신 똑바로 박힌 위정자(爲政者)는 항상 존재했다. 그리고, 실상 10여 년의 전쟁은, 1명의 간첩에 의해 잘나가던 트로이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그리스가 보낸 간첩은 “시논(Sinon)”이었다. 트로이의 “정보오류”와 “단 한 명의 간첩묵인(默認)”은, 목마와 더불어 그리스 승리를 견인했던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와 상황이 비슷하다. 아니 똑같다. 일각의 오차도 없다. 트로이 목마가 현대에 등장한 이유도 여기 있다.

위의 전쟁에서, 그렇게 잘나가던 아킬레우스도,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쏜 화살에, 유일한 약점인 발뒤꿈치에 맞아 죽고 말았으니, 이 어찌 허무하지 않단 말인가? 헥토르의 동생이 사고뭉치 파리스였던 것.

파리스 왕자는 여인납치로 트로이 전쟁을 발발케 했던 화상(畵像) 아니던가. 이렇게 보면, 국소적(局所的)으론 비극이었다. 결자해지 꼴! 정치도 비극의 종말이 다양하다. 토머스 그레샴의 말처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것”이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지만, 자질이 높은 사람은 조직에서 사장(死藏)되고 자질이 낮은 사람들만 생존하는 정치의 현주소와 왠지 같아 보인다.

오늘날, 뜬금없이 트로이 목마가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왜일까. 언급했듯이, 트로이 목마의 의미는 양분돼 있다. 한쪽에서는 좋은 뜻, 다른 한쪽에서는 나쁜 뜻. 그런데, 유독 우리 정치권에서는 “간첩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중이니 어찌된 일인가? 

누가 트로이 목마인지는 안 보아도 잘 알 것. 하지만, 거기서는, 알면서도 눈을 질끈 한 번 감으면 나의 사욕은 채워지고 만다. 버팔로가 살을 뜯기면서도 천연덕스럽게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것과 같은 양상이다.

트로이 목마의 입장에선, 남몰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3200년전 그리스가 전쟁에서 그를 이용하지만 않았어도 그의 눈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트로이 목마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 이젠, “트로이 목마의 시간”이다. 우리도 그가 쉴 시간이 됐음을 자각해야 한다. 역사속, 전설속, 트로이 목마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에게 휴식을 줘야지 않은가 해서, 작으나마 충언(忠言)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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