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2021년 한국현대문화포럼 신춘문예 문화비평평론 김요섭 당선작
제4회 2021년 한국현대문화포럼 신춘문예 문화비평평론 김요섭 당선작
  • 김장운 기자
  • 승인 2021.01.0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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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론(論)- 국내 거북선 사례로 본 임진강거북선 복원의 상징성 분석 

김요섭

Ⅰ. 서론

경기도 파주시가 조선초기인 1413년 서해안과 연결된 파주 임진강에서 왜구 격퇴를 위해 모의훈련을 했던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실물 크기 복원에 나섰다.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은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의 태종실록 25권( 태종 13년 1413년 2월 5일 갑인 1번째 기사)에서 첫 등장한다.

태종실록에는 “임금(태종)이 임진도를 지나다가 거북선(귀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어 2년 뒤 1415년 7월 16일(태종실록 30권 신해 2번째 기사)에는 “태종이 신하 좌대언 탁신이 거북선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 라는 건의를 수용했다”라는 기록도 나타나 있다.   모의훈련을 통한 결과이지만, 임진강 거북선이 돌격선으로써 당시 조선술과 항해술에 능했기에 자위권 차원에서 이웃 나라를 침략해 약탈을 일삼던 왜구(왜선)을 응징한 평화군선이었다는 정사의 기록이다. 아쉬움도 크다. 태종실록이 조선 최초 거북선에 대한 첫 기록 임에도 불구, 임진강거북선이 왜선과 충돌해도 견고했다 라며 선박재료가 튼튼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은 있으나 그 외 길이, 높이 등 구조나 형태, 치수 등을 엿 볼 수 있는 표현 없이 단순 전투력만 언급 됐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607년 전에 임진강과 서해안으로 연결되어 할아버지강이라는 불리는 조강의 상류 줄기인 임진강에서 거북선(귀선)이 탄생한 것은 뚜렷하지 않지만 대체로 3가지로 정리 된다. 하나는 여말선초 때 임진강에서 있었던 극심한 왜구약탈에 대한 평화적 방어 목적이었고, 둘째는 한양천도한 조선초기여서 구 수도인 개경에 있는 반왕조 깃발을 내건 토호 세력의 경계와 함께 다른 하나는 임진강이 개성으로 가는 교통요지로 의주대로가 있는 길목이었기에 철저한 방어 태세가 필요했기 때문에 최정예 군선인 임진강 거북선을 중무장시켜 배치한 뒤 모의훈련을 했던 것으로 추정 된다. 

경기도 파주시가 우리나라 거북선 역사 맨 꼭대기에 놓여 있는 이런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복원에 나선 데는 인문학에 밝은 민선 7기 최종환 파주시장이 이를 핵심 선거 공약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시는 이에 조선 최초의 임진강거북선을 태종실록을 근거로 실물 복원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과정을 거쳤다.  2019년 3월 27일 국내 최고의 거북선 연구가, 교수, 향토사가, 언론계등 각계 인사 12명으로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복원 추진위원회를 발족한데 이어 관련 학계와 연구소 등을 차례로 방문, 기초자료 확보에 매진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경기도 파주시의 개략적인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복원 일정을 보면 2020년 5월 발주한 기초설계(학술연구포함)가 완료되는 동시에 실시설계를 거쳐 오는 2021년 8월쯤 임진강 거북선 모형 제작과 함께 거북선 실물건조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 되고 있다.

만시지탄이기는 하나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복원사업은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전에 어느 주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창제한 거북선의 원형(원류) 모습을 찾는 역사적 대 사건이기도 하다. 

학계에서 이순신 장군 거북선은 어느 날 돌연 나타난 군선이 아닌 삼국시대를 거쳐 화약 발명 등 각종 군수용품이 개발됐던 고려 때 배무이 영향을 받은 조손 결과로 인정하고 있기에 1413년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복원은 179년 뒤인 1592년 이순신 장군 거북선의 옛 형태를 살펴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은 조선왕조실록에 몇 줄 언급될 뿐, 관련 학계에서조차 16세기 거북선 연구에서 도입부에 간단히 스케치만 할 정도로 낮은 비중을 갖고 있다. 국내 거북선 변천사에서 이에 대한 연구가 방치되다시피 했다.

이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거북선보다 무려 200년 가까이 먼저 탄생했지만, 각종 문헌 등 사료 미비로 오랫동안 변방에 머물러 잊혀야만 했던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이 임진강에서 건져 올려지게 됐다.

그 역사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우선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복원은 거북선 원형에 대한 표준모델에 도전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남해안 지방에 실물 복원한 이순신 장군 거북선 모형들이 각종 기록 들을 버무려 건조됨에 따라 고증논란으로 여전히 표준모델로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 하면 주목할 만하다.

둘째 거북선 역사를 기존 16세기에서 1400년대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므로 보다 활발한 거북선 연구의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 수도권인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에서도 세계적인 대발명품 평화 군선인 거북선의 전시 및 체험, 운항, 관람 등 각종 형태의 관광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8~11 C 맹활약했던 ‘침탈자’이자, ‘문명전달자다’라는 양면적 평가의 바이킹족 후손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해양 강국들이 이순신 장군 거북선 활약 이후 시기 실전에 투입시켰던 군선을 인양, 복원했고 1천 년 전 옛 군선을 복원해 세계적인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북서유럽 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국내로는 해군사관학교, 경상남도, 전라남도 등 1980년부터 거북선 실물 복원에 나섰던 지역의 사례도 함께 기술해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의 복원 후 앞으로 활용방안 등에 대해 제언을 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해외 고군선 복원 및 활용 사례)

영국 등은 최고 군선들을 어떻게 복원했으며 활용하고 있을까.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의 복원 후 활용에 있어 해외 고군선 복원 및 활용 실태를 먼저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이젠 완성 단계에 이른 영국 등 해양 강국의 고군선 활용방안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의 복원 후 활용에 대한 정답에 가까운 솔루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고에서 다룰 해외 고군선 과 조선최초 임진강거북선의 복원사업과는 사실 결이 다르다. 사례로 든 해외 고군선들은 원형이나 군선 특정 부분을 바다 등지에서 인양해 낸 뒤 탈염작업 등을 거쳐 원형 실물을 관광 사업화 한 것이기에 현시점의 당대 문헌연구 등 만을 토대로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을 복원해 활용하려는 것과는 출발부터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군선을 복원해 도시의 성장 동력으로 멋지게 활용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은 해외나 경기도 파주시에서든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1. 16~17C 최고 군선을 인양, 복원한 영국과 스웨덴

영국과 스웨덴은 실제 전투에 임했거나 나섰던 고군선을 원형 내지는 군선 특정 부분만을 인양한 뒤 복원, 당대 컬렉션이 포함된 박물관을 만들어 그 지역 도시재생으로까지 연결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을 복원해 경기도 파주시 북부권역 마을 살리기(도시재생)는 물론 남북한 평화관광의 핵심으로 이어지게 하려는 경기도 파주시의 시정책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1) 세계적 관광명소로 우뚝 선 영국 메리로즈호 박물관, 도시재생 원동력 

⓵ 영국 메리로즈호 박물관
영국 런던에서 남부지방으로 100여km 거리에 있는 해안 도시 포츠머스 시 히스토닉 독야드에는 영국 최고 군선 메리로즈호 박물관이 바닷가에 서 있다. 박물관 외형이 곡선의 미를 잘 살린 날렵한 우주선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그림-1] 외형이 곡선의 미를 잘 살린 날렵한 우주선같은 메리로즈호 박물관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1] 외형이 곡선의 미를 잘 살린 날렵한 우주선같은 메리로즈호 박물관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인구 20만 명으로 우리나라 충청북도 충주시 규모만한 포츠머츠시는 1194년 국왕 리쳐드 1세가 조성한 해군기지이자 1495년 세계 최초로 왕립조선소가 설립된 유서 깊은 도시로써 19세기까지 영국 최정예 전함을 건조한 해양제국 영국의 핵심 군항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능이 축소돼 군함 보수 및 유지만 하는 낡은 군항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가 구세주를 만났다. 16세기 대영제국 타임캡슐 메리로즈호를 바다에서 인양해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조성되면서 해양문화자본으로서 위력을 크게 발휘하고 있다. 

메리로즈호 박물관은 인양한 메리로즈호 선체를 독안에 가둬두고 그 위에 상부갑판, 주갑판, 하부갑판 등 총 3층 구조로 지었다. 길이 45m 폭 12m 670t 규모로 500명 이상 탑승이 가능했던 메리로즈호는 영국 최고 군선이었으며 영국 최고 왕인 헨리 8세 지시로 포츠머스시 왕립조선소에서 1511년 건조된 영국 최초 함포를 갖춘 장군함이기도 했다.

그러나 투더왕조 왕실문장문양인 장미와 헨리 8세가 그토록 사랑했다는 메리 공주 이름을 합쳐 메리로즈호라고 명명한 이 군함은 30년 동안 활약 한 뒤 1545년 프랑스와의 전쟁 때 포츠머스시 연안 솔벤트 해협에서 침몰, 겨우 30여 명만이 생존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침몰 420년 뒤인 1965년 메리로즈호가 기적적으로 발견돼 1979년 첫 인양을 시작으로 1982년 10월 11일 메리로즈호 선체일부(좌현뼈대)가 포츠머스시 항구로 옮겨져 본격적인 보존 및 복원 작업이 시작됐다. 

<그림-2> 메리로즈호 박물관 내부에 전시되어있는 메리로즈호 좌현뼈대

⓶설계도 없는 영국 메리로즈호는 16세기 투더 왕조 컬렉션 보고 
헨리 8세가 지켜본 가운데 솔벤트 해협에서 어이없게 침몰한 메리로즈호의 선체 전부가 아닌 일부만 바다에서 건졌지만, 청동제 대포, 총기류, 화살 등 무기류는 물론 투더 왕조 컬렉션으로 불리는 선원들의 놀이기구, 의복, 항해기구, 의료 및 요리기구 등 16세기 수중 문화재 2만여 점 가까이 출토, 전 영국인들이 환호했다. 최종 인양한 1983년 10월 약 6천만 명이 TV 시청을 할 정도로 폭발성을 보였다. 앞서 찰스 황태자는 직접 잠수, 바닷속에 묻혀 있던 메리로즈호를 탐사하는 등으로 왕조 차원의 깊은 관심을 보였다.

메리로즈호는 선체 인양 후 곧바로 박물관을 지은 것이 아니었다. 30여 년간의 긴 보존과정을 거쳐 2013년 5월에 돼서야 공식 개관됐다. 물론 설계도가 없어 당시 해양화, 기록을 추정해 복원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쳐 제대로 복원됐는지 확인도 병행 했다.

메리로즈호 보존 및 복원 과정은 모두 시민들에게 공개, 호기심을 유발하며 대기업, 시민들이 건립 기부에 나서도록 유도했다, 당연히 박물관 완공시 겉면에는 이들 기부자의 이름을 빼곡히 새겨 놓아 감사함을 표했다.

박물관 안에 메리로즈호 선체는 관람객이 이동하는 구간과 유리 칸막이로 분리, 전시돼 있다. 주갑판인 2층은 당시 전투원들이 선상 생활을 하던 실제 모습을 현역 배우들이 연기한 영상 60여 개의 프로젝터로 쏴주며 생생하게 상황묘사를 해 주고 있다. 

⓷ 연회장과 레스토랑으로도 사용되는 열린 공간

메리로즈호박물관은 바닷가 전망이 좋은 박물관 앞부분은 각종 연회장과 레스토랑으로 활용,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체험코너를 만날 수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16세기 의상을 입고 안내하고 있는데 당시 실제 적 섬멸에 사용됐던 대포체험은 물론 돛 들어올리기, 선상 요리도 지도 후 시연할 수 있다. 무기 전문가들이 참여해 포, 화살 시연도 하며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시설로 액션 스테이션을 별도 건물로 만들어 선상생활모습을 현장학습 할 수 있게 한다.

[그림-3]어린이들의 선상체험을 할 수 있는 액션스테이션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3]어린이들의 선상체험을 할 수 있는 액션스테이션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어린이들의 선상체험을 할 수 있는 액션스테이션박물관 인근에는 16 ~17세기 각종 군선을 건조하는 조선소를 만들어 포츠머스시  대학(조선공학과)과 연계해 고선박기술자를 양성하고 있는 등 군선 마케팅도 뛰어난 점을 눈여겨 볼만 하다. 

<그림-4> 박물관 옆에는 조선소가 있어 고선박을 복원하고 있다.

 ⓸ 유물을 통한 새로운 가치(문화컨텐츠), 끊임없이 창출
 메리로즈호 박물관측은 방문자교육프로그램으로 유물이 보유한 역사, 과학, 수학, 의학, 고고학적 가치 제공은 물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정기적으로 워크숍을 실시, 메리로즈호의 가치를 범국가적, 교육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나서 유물 등을 아카이브(기록화)하는 과정도 꾸준히 실행에 옮기며 메리로즈호 박물관을 대 국민과의 소통 창구로도 활용하고 있다. 

박물관측은 특히 메리로즈호 인양 및 복원 전 과정을 영국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런 16세기 투더왕조 문명으로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 문화마케팅에 열중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나아가 뮤지컬은 물론 애니메이션, 오페라 등으로 제작되는 등 새로운 가치창조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재탄생 되고 있는 것이다. 

⑤ 16세기 세계 최고의 문명을 스토리로, 도시재생은 덤이다.
영국 헨리 8세는 강력한 군주로 영국을 해양 강국으로 만든 왕으로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다. 투더왕조시대를 이끌며 대항해시대를 선도했다. 이런 왕이 건조한 당시로선 영국 최초의 함포를 갖춘 메리로즈호가 1545년 침몰했으니 당시 역사를 아는 영국인들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탐사를 거쳐 1982년 최종 인양, 복원되면서 영국 해양역사의 타임캡슐이 일순간에 벗겨졌으니 영국인들의 환호는 짐작할 만하다. 당시 배와 함께 출토됐던 무기류, 생활문화유물들은 당시 세계 최고라는 차별적 문명을 문화적인 가치와 경제적인 가치로 혼합시켜 강력한 문화자본으로써 권력을 획득하는 원동력이 됐다. 영국이 자랑하는 16세기 세계 최고의 문명상품은 이렇게 탄생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메리로즈호박물관 전 층 관람 및 체험 후 빠져나오는 1층에 메리로즈호 복제품, 관련 서적은 물론 수많은 액세서리 등 16세기 당대 컬렉션을 전시해 놓은 깊이 있고 구매 충동을 일으킬 기념품점이 발길을 머물게 한다. 

메리로즈호박물관의 화려한 비상은 결국 낡은 군항도시인 포츠머스시의 도시재생에결정적 기여가 됐다. 1983년 인양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등 세계 곳곳에서 16세기 영국 투더왕조 향수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며 줄지은 방문에 힘입어 포츠머츠시에 대형 쇼핑몰, 주거공간이 새로 세워 지는 등 도시재생에 획기적인 역할을 구현해 나가고 있다.  부산광역시가 2015년 부산신항을 조성할 때 메리로즈호박물관 개관이 포츠머스시의 도시재생에 미친 영향 및 효과를 종합적으로 벤치마킹 하기위해 메리로즈호박물관 관계자를 초청, 진지하게 청취했을 정도로 메리로즈호박물관개관 및 운영은 영국 해양문화자본으로서의 막강한 파워를 전 세계에 과시해 나가고 있다.       

(2) 군선 전체가 예술 작품인 바사호를 복원한 스웨덴

⓵ 바사호 박물관
노르웨이 등과 함께 바이킹 후손 중 하나인 스웨덴은 한때 북방의 사자 왕으로 불리던 바사왕조 구스타프 2세 명으로 건조됐으나 전투한번 치려 보지 못한 채 침몰했던 바사호를 인양해 복원했는데 임시박물관에 머물러 있다가 1990년 5월 스톡홀롬의 스칸센 서쪽 유르고덴 섬에 6층 구조의 바사호박물관을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그림-5] 바사호 박물관 내 전시된 바사호 전경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5] 바사호 박물관 내 전시된 바사호 전경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바사호는 길이 69m 높이 52.2m 중앙 폭 11.7m 무려 64개의 함포 장착과 그리스 신화 등을 기반으로 한 온갖 화려한 장식이 조각돼 궁전으로까지 불렸던 17세기 세계 최대 군선이었다. 
 사자왕조답게 바사호 후미에 길이 4m 무게 450 kg에 이르는 사자상도 조각해 놓은 바사호는 1625년 건조돼 3년 뒤인 1628년 폴란드 원정을 위해 처녀항해에 나섰으나 분명치 않은 이유로 스톡홀롬항 2km 지점 수심 32m 아래로 침몰, 1961년 최초 인양되기까지 무려 333년 동안 바다에 잠겨 있었다. 인양 당시 1만4천500 조각과 500여 점의 의복 등 17세기 당시 생활 도구 등이 함께 무더기로 출토됐다. 
 
⓶ 원형의 98% 복원 바사호가 운영 프로그램 그 자체
바사호 박물관의 절대적 매력은 인양한 바사호를 4만 조각에 이르는 각종 파편을  당시 시대 상황에 맞게 퍼즐 맞추듯 꿰맞춰 복원율이 원래 모습의 98%에 이르도록 복원, 통째로 전시해 놓았다는 데 있다. 바사호 박물관은 붉은 청동 지붕으로 씌웠고 범선임을 나타내듯 돛 3개 형태로 외형이 디자인됐는데 복원에는 17세기 당대 스웨덴의 사회, 문화, 역사가 모두 녹아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물관 안 중앙 부분은 바사호를 실물 그대로 전시해 놓았고 중앙통로 옆 각 층에서 바사호를 부분적, 전체적으로 집중하여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층마다 전시공간을 확보, 인양 당시 발굴한 의복 등 수중문화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 안에는 1/10 크기의 축소모형이 바사호 실물 그대로 정교하게 복제돼 전시돼 있고 층마다 당시 선원들이 사용했던 도자기 등 선상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구 등이 전시돼 있다. 심지어 침몰 후 사망한 선원들의 해골을 마스크로 생생하게 재현해 놓기도 했다,

<그림-6> 바사호의 1/10로 축소한 모형

 바사호 소개 영상관에는 바사호 제조, 침몰 과정, 1956년 해양고고학자로 선박인양전문가인 엔더스 프란첸에 의해 첫 발견 및 탐사했던 과정을 1시간여 동안 흑백과 컬러 화면으로 혼합 상영, 바사호 전 과정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림-7> 바사호 인양 후 탈염작업 등 보존복원 작업과정

⓷ 체험시설과 바사호의 현 수준 유지도 관람거리
 바사호 박물관에는 바사호만 볼 수 있는게 아니다. 각종 체험시설도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배 균형 잡기(아마도 바사호 침몰 원인설 중 하나인 무게중심 때문으로 보임), 체험용으로 만든 바사호 망루에 올라가 항해 지시, 전투 지시등 체험하기, 대포 등이 바다에 빠졌을 때 건져 올리는 다이빙벨 체험 등도 있다.

우리나라 국보 제32호로 대몽항쟁의 결연한 의지가 새겨진 고려 팔만대장경(제작기간 1237~1252)이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에서 800년 가까이 잘 보존되고 있는 것처럼 바사호가 지속해서 보존되도록 박물관 안 습도와 온도 등을 외부환경과 어떻게 조화를 유지해 현 수준으로 버티어 가는지에 대한 박물관 측의 지혜도 세계인들의 주요 관람 거리 중 하나다.

⓸ 비운의 바사호, 17세기 세계 유일 군선이라는 문명, 문화를 팔다.

바사호박물관 안에는 17세기 스웨덴 생활상을 알려주는 벽화가 상당수 있을 정도로 바사호는 당시 스웨덴인들의 자부심, 상징, 그 자체로 인식되고 있다. 바사호 인양은 단순한 선박을 인양하는 것이 아닌 당대의 스웨덴 역사를 한꺼번에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는 곳에 있다. 

스웨덴이 바사호를 군선보다는 최고 예술작으로 추겨 세우며 출토된 수중문화재 의복류 등 수장품과 함께 17세기 문명, 문화를 팔고 있는데 이는 바사호박물관을 세계적인 고군선 관광자원이라는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 해 평균 200만 명에 가까울 정도로 스칸디나비아 반도(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최고의 박물관으로서 전 세계 문화기부의 상징적 존재가 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삼성전자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의 기부가 쇄도할 정도로 안정적인 수익구조로 박물관 유지에 별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바사호박물관 1층에는 세금을 면제해주는 기념품점이 있는데 바사호 모형을 만든 부착용 장식 액세서리는 물론 관련 책자들, 연필 등 바사호에 연관된 온갖 기념품들이 전세계 호기심 많은 관광객을 맞고 있다. 

<그림-8> 외부에서 바라본 바사호 박물관 전경
 2. 1천 년 군선 깨운 바이킹 후손 덴마크와 노르웨이
 
바이킹족은 노르웨이,덴마크등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정착해 생활한 노르만 민족이었다. 학자들은 8~11 C 기간에 바이킹족은 농촌공동체 생활을 했다가 이웃 국가들과의 교역을 통해 탈 농촌화를 가속했다고 보고 있다.

바이킹족의 침략으로 일컫는 해외 진출은 영국은 물론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북미에 이어 러시아까지 무역 등 원정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했다. 전통적인 바이킹 배인 롱십이라는 군선에 의해서다. 롱십은 선수와 선미 구분 없는 구조로 매끈한 선형과 선체구조가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보여줬으며 선수에는 용맹성을 갖춘 용 등 동물 머리를 장식, 그 위용을 과시했다.

<그림-9> 바이킹배 용머리형상

노르웨이, 덴마크 등은 자신들의 선조이면서 서양 군선 뿌리이기도 한 바이킹족이 1천 년 전에 활용했던 군선 복원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유럽정복 등 세계역사를 뒤흔든 바이킹족의 후손으로서 침탈 등 지우고 싶은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내 놓고 역발상으로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역사로 바꾸어 가고 있다.

(1)  콜롬버스보다 500년 앞서 북미대륙 발견, 노르웨이 

⓵ 노르웨이 바이킹 박물관
 노르웨이 오슬로 소재 바이킹 박물관 외형은 십자가 형태인데 이교도였던 바이킹족이 정교로서의 기독교로 개종한 역사적 상징성을 부각한 측면에서다. 박물관 내부는 바이킹족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800~ 900년대 건조된 배 3척을 수장품과 함께 복원, 전시해 놓았다. 1867~1904년 사이 피요르드에서 발굴돼 그 지명에 따라 배 명칭이 정해졌다.

<그림-10> 노르웨이 바이킹박물관 전경

 배 앞뒤 장식이 긴 뱀 형상을 닮고 섬세한 조작무늬가 일품인 오세베르그호는 길이 21.6m 폭 5.1m 높이 1.6m 규모인데 인양당시 원형의 95%를 유지한 채 발굴, 복원됐다. 인양당시 두 명의 여성인골과 함께 동물의 머리 형상 등 수준이 높은 공예품 등 수중유물을 건졌다.

<그림-11> 배 앞뒤 조각무늬가 일품인 오세베르그호

<그림-12>노르웨이 지폐 100크로네. 고크스타호문양이 새겨져 있다.       

노르웨이에서 발견돼 복원된 바이킹배중 가장 큰 길이의 고크스타호는 100% 온전한 형태로 인양돼 노르웨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길이 24m 중앙 폭 5m 양쪽 현에서 총 32명이 노를 저을 수 있는 전형적인 바이킹배다. 드넓은 대양을 항해하기에 적합한 구조로 건조됐다. 앞서 2척보다 앞서 1867년 출토돼 복원된 18m 규모의 투네호는 원거리 항해용으로 만들어졌다. 
 박물관측은 내부 중앙계단 2층에 발코니를 설치, 관광객들이 위에서 아래로 전시된 3척의 배 내부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 했다.

또한 내부에 새로운 인터랙티브 영화 대형 스크린이 있는데 바이킹 선박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보는 특별한 시각적 여정을 관광객들에게 제공 한다. 바이킹롱쉽이 건조되는 과정부터 피요르드와 바다를 항해하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과 왕비의 장례선까지 바이킹 선박의 일생을 살펴볼 수 있도록 짜임새 있게 구성됐다.          

⓶  박물관 바깥에는 헐게 잉스타부부 동상
바이킹박물관은 정기적으로 바이킹 테마 전시회를 열고 있다. 주된 소재는 바이킹 헬멧 보유국이라는 자부심이 녹아 들어간 세미나 등으로 바이킹 현대화에 앞장서고 있다.

바이킹 박물관 야외에서는 계절에 따라 레스토랑 운영 등 다양한 테마를 만들어 관광객 편의제공도 한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노르웨이 바이킹족이 이탈리아 탐험가콜럼버스가 1492년 북미대륙을 첫 발견한 시기보다 무려 500년 앞선 992년 북미대륙을 발견했던 사실을 당시 역사적 기록 등을 토대로 학문적으로 뒷받침한 헐게 잉스타 부부상이다.

헐게 잉스타 부부 연구로 북미대륙을 역사상 최초 발견한 노르웨이 바이킹배는 인양돼 복원된 바이킹 배중 가장 길이가 큰 고크스타호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노르웨이는 화폐개혁을 통해 100크로네 (우리나라 지폐 1만원권 가치와 비슷)에 고크스타호를 문양으로 새겨 넣을 정도로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림-13> 박물관 바깥에 세워진 헐게 잉스타부부 동상
     
⓷ 기념품점은 기본, 바이킹배 복제 미대륙 횡단 역사 마케팅
바이킹박물관 출입구에는 관람 전후 이용할 수 있는 기념품점이 있다. 바이킹 투구, 인양된 바이킹 배에 관한 연구 서적은 물론 각종 장식품, 그림책, 열쇠고리, 바이킹 의복 등 바이킹 컬렉션을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노르웨이 바이킹은 오늘날 유럽무역항로를 개척했고 라틴어를 전파하는 등 해외 원정을 통해 교역과 문화교류에 힘썼다고 확신하고 있는데 고크스타호를 원형 그대로 복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실제로 전형적인 바이킹 군함으로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서 북미대륙을 발견한 이 고크스타호를 그대로 복제한 드라켄하랄 호르파그레호를 건조해 지난 2016년 4월 옛 바이킹이 항해했던 항로대로 오슬로에서 출발해 아이슬란드~그린란드~캐나다 뉴펀들랜드 등을 5개월여 동안 항해한 뒤 미국으로 출발, 시카고 국제박람회장에 도착하는 등 노르웨이 바이킹의 항해술과 조선술을 선보여 최초 북미대륙을 발견했다는 자긍심을 뒷받침 했다.

노르웨이가 이처럼 바이킹 군선 복원에 힘쓰는 이유는 국가 정체성을 찾게 해 주고 신비에 싸여 있던 바이킹 시대에 대해 인양한 선박을 통해 복원함으로써 역사를 현실화하고, 당시 세계 최고 나라였다는 자긍심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바이킹문화를 현대로 이끌고 나오는 역사 마케팅을 펼치고 재방문을 유도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림-14> 바이킹족 컬렉션이 전시된 기념품점
          
⓸ 축제도 한몫

노르웨이 바이킹 박물관이 있는 오슬로지역이 인양된 바이킹 배의 복원으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보레지역에서는 중세축제로 바이킹을 널리 알리고 있다. 

매년 여름철에 대규모 중세축제를 여는데 단연코 축제 중심은 바이킹족 축제다. 바이킹 시대 물물 교환이라는 장터 구성은 물론 각종 솜씨 좋은 장인들이 만든 당시 반지, 목걸이 장신구 만들어 보기, 음식류 제조해보기와 보석류 복제품 등도 팔아 인기몰이를 하는 등 바이킹 생활문화를 적극 마케팅하고 있다.
 
(2) 평등사상 등 민주주의 첫 꽃핀 바이킹족 후손, 덴마크

⓵ 덴마크 바이킹 박물관
 덴마크 로스킬데 해변가인 피요르드만 접힌 곳에 세워진 바이킹 박물관은 전함 등 용도로 사용했던 6척의 바이킹족 배를 전시해 놓았다. 이중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3척뿐이다. 나머지는 상당히 많이 훼손됐다. 뻘 등 좋은 조건에 묻혀 있어 온전한 형태로 인양된 노르웨이 바이킹 배와 달리 덴마크 바이킹 군선은 오랫동안 바다에 잠겨 선체가 크게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양 당시 겨우 20% 정도로 뼈대만 앙상한 채 발굴됐다.

<그림-15> 덴마크 로스킬데 피요르드만에 있는 바이킹박물관

 대표적 군선이었던 셉베알스호는 길이 17m로 20명 정도가 노를 젓고 항해하며 각종 전투를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덴마크는 이 군선을 1969년 기록과 실증적인 검증 작업을 거쳐 복원했다.

길이 30m의 하우잉스텐호는 원형만 알아볼 수 있는 구조로 인양됐는데 60여 명의 승선이 가능했다. 2004년 복제선으로 건조했다. 또 다른 선박인 오타르호는 기록상 1030년 때 무역선으로 복제선으로 만들어져 로스킬데 피오르만 주변을 항해하는 체험 선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림-16] 바이킹박물관에 전시된 바이킹배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16] 바이킹박물관에 전시된 바이킹배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⓶ 관람만이 전부가 아니다, 복제된 바이킹배 승선해 항해

이 기조에 맞게 덴마크 바이킹 박물관 측은 관광객을 전시된 바이킹 배 관람에만 머물게 하지 않게 하고 있다. 바이킹 시대 배를 직접 타 보는 등 다양한 체험시설과 부속 시설 등을 운영하며 덴마크 바이킹족만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다.

<그림-17> 바이킹배에 복제선 체험시설 안내판

 바이킹 박물관 옆에는 뮤지엄 아일랜드는 조선소가 운영되는데 이곳에서는 바이킹시대 배 만들어 보기, 복제된 바이킹 배 승선해 보기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그림-18> 바이킹 배 복제선 

 조선소에서는 1984년에 1030년 때 활약했던 바이킹 무역선 길이 14m 폭 3.4m, 5t 규모의 오아킬데호를 복제해 전시해 놓은 것을 시작으로 19C 배 9척 등 총 40척의 고군선을 복원했다.

<그림-19> 바이킹박물관 옆 뮤지엄아일랜드 조선소 

 모든 연령체험프로그램으로 조선소에서 배 건조과정을 지켜보며 참여 할 수 있다. 목수와 대장장이가 나무를 자르고 쇠붙이를 만드는 과정을 실제 체험해 보며 바이킹 배 건조 전 과정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그림-20> 한 방문객이 풍무질을 체험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조선소에서 제작된 바이킹 복제선 중 하나인 오타르호에 승선해 로스킬데 피요르드만을 1시간여 가까이 항해하며 바이킹 배를 체험케 하고 있다. 조선소는 바이킹 배를 복제하면 항해 및 선박전문가, 역사학자들과 함께 복제된 배를 바다에 띄워 실제 항해가 가능한지를 구석구석 꼼꼼히 따지며 거듭 보완해 나가고 있다.     
 
⓷ 무엇을 마케팅하고 있나.
 덴마크 바이킹 박물관은 복원된 바이킹 배외에 민주주의 시초를 덴마크 바이킹에서 찾고 있고 이를 스토리로 만들어 상품화하고 있다. 덴마크 바이킹족에 형성됐던 남녀차별이 없던 개념이 오늘날 평등개념을 낳았다고 스토리텔링화 하고 있다.

실제로 바이킹 선박 내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항해, 로프 끌어올리기 등 각자 주어진 일을 하며 수평적 질서 관계를 형성했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오늘날 덴마크 민주주의 시초를 만들었다고 그들은 믿고 상품으로 팔고 있다. 
 
⓸ 축제는 물론 바이킹마을조성
 덴마크는 바이킹 박물관이 소재한 로스킬레지역 외에도 국가 전역에서 16개의 바이킹 유적지가 있어 차별화된 테마별 바이킹 역사를 체험케 하고 있다.

이들 유적지는 바이킹 축제를 매년 정례화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바이킹 후손은 물론 자연인을 꿈꾸는 관광객을 사로잡고 있다. 서바이벌 바이킹 축제도 그중 하나로 바이킹 시대 거주지였던 롱하우스와 천막 등지에서 일주일 정도 전기 없이 살아보고, 음식 만들어 보기, 사냥도 해보고 전투 장면을 재현해 최고전사를 뽑는 등 프로그램을 운영, 바이킹 후손들이 매년 또다시 찾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민속촌처럼 당시 바이킹 마을을 재현해 놓은 바이킹 마을도 있다. 코펜하겐에서 1시간 정도 거리인 트렐레보르 바이킹 마을로 2008년 참나무로 만든 바이킹 시대 나무 방패 등 발굴된 유물을 토대로 조성됐다. 1 천 년 전 덴마크 바이킹 시대 가옥을 바이킹 배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형태의 롱하우스로 만들어 놓는 등 이곳에서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바이킹족의 수준 높은 생활문화를 한 눈에 확인 할 수 있도록 했다.

Ⅲ. 본론 2 (국내 지방자치단체들, 경쟁적 거북선복원)
 
국내에서는 1980년 해군사관학교에서 첫 거북선 의 역사적인 실물 복원이 이루어 졌다. 
1934년 연희전문학교 미국인 호레이스 언더우드 교수가 조선 정조대왕 지시로 규장각 문신이었던 윤행임이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 있는 거북선 그림에 대한 형태와 내부구조 등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성과를 Tranactions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에 처음 발표한 이래 46년 만이다. 

호레이스 언더우드 거북선연구논문발표를 시점으로 영국이나 미국 등 해외 영미권에서 이순신장군 거북선과 학인진 등 각종 전술 등이 본격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됐다.
해군사관학교의 실물 크기 거북선 첫 복원 이후 1592년 임진왜란 때 상상을 초월하는 전과를 올린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실물 복원사업추진은 이순신 장군 해전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는 각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봇물을 이뤘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거북선에 대한 높은 인지도를 토대로 럭셔리한 관광 상품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 거북선에 복원에 매달리는 이유다. 거북선 보유 유무에 따라 관련 지방자치단체들의 관광수지가 달라졌다는 통계가 이를 입증 한다.

그동안 복원된 이순신 장군 거북선 모형은 실물 크기로 복원과 이를 축소형으로 만든 복원 등 두 가지 형태가 존재 한다. 실물 크기는 당시 거북선 크기를 추정해 제작됐고 축소형은 실물의 60%, 40% 혹은 이보다 더 작은 크기로 만들어 졌다. 

실물 크기복원은 경상남도 거제시, 통영시 전라남도 여수시 등 주로 남해안 중심이며 축소형 복원은 서울, 경기, 대전 등 수도권역 등이다.

거북선복원 시기는 해군사관학교 거북선 실물 복원에 나선 1980년을 시작으로 30년 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다가 2010년 광역자치단체인 경상남도의 이순신 거북선 찾기 프로젝트가 본격 추진되면서 전환점을 맞게 됐다. 

거북선 내부구조 등 복원 특징이 이 시기에 따라 크게 달라졌는데 관련 학계의 연구 진척 향상과 거북선 연구에 대한 학제적 접근이 폭넓게 진행 되면서 이순신 장군 거북선에 대한 기능과 형태, 구조 등이 예전 거북선 연구보다 더 원형에 가깝게 연구된 결과로 분석 된다.

거북선에 대한 활발한 복원 및 연구는 크게 환영할 만하나 1592년 경남 사천 해전에 첫 투입 됐던 이순신 장군 거북선을 위한 표준모델에 대한 혼란이 발생 되는 것은 불가피 했다. 

정부 주도로 해군사관학교에서 처음 제작된 거북선이 국내 거북선 표준모델로 인정돼야 마땅하지만 해사가 제작한 1호 거북선마저 1592년 이순신장군 거북선과 다르게 건조된 거북선 모형이어서 더욱 그렇다.

앞으로도 이순신장군 유적지가 산재한 또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거북선의 엄청난 부가가치 때문에 복원(학문적 원형 찾기든 혹은 상업적이든)에 나설 것이다.

분명한 것은 1592년 당시 거북선 원형에 가까운 복원이라는 당초 취지가 흔들려서는 안 되며 1795년 이충무공전서를, 기초로 건조된 18세기 거북선을 1592년 당시 16세기 이순신장군 거북선이라고 왜곡하는 사례도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1592년 때의 거북선 복원도 의미가 있고, 연구한계로 1795년 당시 거북선(통제영이 혹은 전라좌수영거북선) 복원도 역사적 가치를 부인할 수 없다.

1413년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이 탄생한 이후 거북선은 수백 년 동안 시대를 달리 하면서 대략 다섯 종류의 거북선들이 고비 때 마다 등장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질 수 있는 절대 절명의 시기 구세주였기에 그렇다.

<그림-21> 1934년 연희전문학교 호레이스 언더우드교수가 연구, 발표한 이충무공전서 거북선. 충남 아산 현충사에 복사본으로 전시돼 있다. 

1.1980~2009년 복원된 거북선, 내부구조 2층 고착

이 시기 30년 동안 여수돌산거북선, 한강 거북선 등 국내 거북선복원은 해군사관학교에서 1795년 정조 때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의 내부구조 해석을 근거로 건조했던 최초 실물 크기 거북선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이순신장군 때 뛰어난 전투력을 보였던 당시 거북선이 아닌 그보다 203년이 지난 거북선기록을 토대로 2층 구조로 건조됐는데 통제영거북선과 전라좌수영거북선이 각기 다른 거북선 형태의 복원이 아닌 이 둘을 합친 혼합형 거북선으로 제작 됐다.

복원된 거북선들은 모두 육상 전시나 부둣가에 정박해 해상전시만 돼 있지 노를 저어 적진으로 돌격, 함포 등을 쏴대며 전투했던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한편 일부 학자들은 거북선 선체가 2층구조 일 경우 수군들 간 의사소통은 원활하지만 용두에서 현자총통으로 철환을 발사할 때 작용, 반작용의 일정 면적이 필요한 점 등을 이유로 2층 구조에 대한 수정 필요성을 연구를 통해 공개 제기했으나 당시에는 반영 되지는 않았다.        

(1) 국내 첫 실물 크기 복원 해군사관학교 1호 거북선 그리고 2호 거북선

해군사관학교의 거북선은 1979년 해사 졸업식에 참석했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건조되는 등 사실상 국가 주도로 제작됐다. 당시 해사 연병장에 거북선 모형이 전시돼 있었는데 이를 보고 실물 크기로 복원해 해상전시 하라고 했던 것이다. 국가 최고 통치자(왕)에게 절대 충성했던 이순신장군의 위국헌신 정신을 널리 알리려는 정치적 목적이 다분했다.

[그림-22] 해사1호 거북선으로 남해충렬사 앞 해상전시 되어있다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22] 해사1호 거북선으로 남해충렬사 앞 해상전시 되어있다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해사는 대통령의 이러한 지시로 이충무공전서를 처음 완역한 노산 이은상 등 거북선 관련 학자 등 16명으로 구성된 거북선복원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당연히 1795년 이충무공전서에 기초한 거북선으로 제작된 해사 1호 거북선은 총 2층 구조였다. 대통령 지시 1년여 만인 1980년 1월31일에 완공, 해사 박물관 옆 해상에 전시됐다. 총 길이는 34.2m 선체 높이는 6.4m 선폭은 10.3m 홀수는 1.4m 함포는 14문과 승조원은 130명에 달하는 규모다. 노는 좌, 우현 각각 8개씩, 2개의 돛이 있으며 돛대는 누웠다, 세웠다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함포 구명은 14개로 좌우현에 각각 6개 뱃머리 용두에 와 꼬리 각각 1개씩으로 건조 됐다.      

⓵ 의미

해군사관학교 1호 거북선복원은 국가사업으로 진행되어 국내 복원 거북선의 표준모델과도 같다. 해사 거북선이 표준모델로서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지방정부인 경상남도 주도로 준비기간을 거쳐 2010년께 건조가 가시화되기 전까지 30년 동안 이 지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해사 1호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 거북선 이후 203년만인 1795년에 편찬된 이충무공전서를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그 모델은 전라좌수영 거북선이다. 

해군정비창에서 실제 크기로 건조된 해사 1호 거북선을 보면 그러나 100% 좌라좌수영 거북선 아닌 통제영 거북선의 구조와 형태를 혼용해 만들어 졌다. 통제영인지 전라좌수영거북선인지 헷갈린다. 물론 1592년 임진왜란 때 연전연승했던 이순신장군 거북선은 아니다.

1980년 당시 학계의 거북선 연구 총 결집체지만 거북선 연구가 원형에 가깝게 근접한 지금의 연구 잣대로 들여다보면 무척 아쉬움이 많이 남는 프로젝트였다.   
     
⓶ 3호 거북선설계 주목

1980년 건조된 해사 1호 거북선은 현재는 남해 충렬사 인근 해상에 전시돼 있다. 잘 아시다시피 남해 충렬사는 이순신장군이 왜구의 흉탄에 순국한 관음포해전 지역과는 불과 5km 떨어져 있으며 순국 당시 시신이 맨 처음 옮겨져 안치된 성지다.

해사 2호 거북선은 해사의 20년 단위 선박건조 방침에 따라 1호거북선 건조이후 1999년 1월 30일 건조, 현재 해사 앞바다에서 밧줄에 묶힌 채 정박돼 있다. 광양조선(충남 장항)에서 건조됐으며 임진난 거북선(수치 가감은 있으나 통제영거북선과 유사) 아닌 전라좌수영거북선을 참고로, 그동안 학계에서 연구돼온 1592년 이순신장군 거북선 형태를 부분적으로 차용한 혼합형 거북선이다.

해사 3호 거북선은 현재 설계 중에 있다. 전술에 언급했듯 해사 거북선은 건조돼 관광목적 등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는 달리 국가 주도로 최초 실물 크기의 거북선복원을 했다는 의미와 함께 앞으로도 거북선 표준모델로서의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설계중인 해사 3호 거북선이 어떤 형태와 구조를 뛸지 초미의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2020년 7월 현재 여전히 설계 내용이 베일에 싸였는데 이순신장군 거북선이 외국인에 의해 첫 연구 된 이후 국내 학계의 80여년 거북선연구결과를 반영, 그동안 내부를 2층 구조로 고집해온 해사 1~2호 거북선 설계 기조와 차이가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2) 한강 거북선

정부 아닌 지방정부에서는 서울시가 처음으로 1990년 처음 실물 크기로 제작된 한강 거북선은 한강공원(이촌동)에 정박되었다가 2005년 11월 14일 남북분단 이후 최초로 한강 하류 비무장지대 뱃길을 열고 경상남도 통영시로 임대해 전시됐다. 길이 34m 폭 10m 높이 6.3m로 180t 규모다.

[그림-23] 1990년 서울시가 실물크기로 복원한 한강거북선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23] 1990년 서울시가 실물크기로 복원한 한강거북선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23> 1990년 서울시가 실물크기로 복원한 한강거북선

한강 거북선은 해군사관학교 1호 거북선의 영향으로 2층 구조로 되어 있다.용두는 문헌에도 없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가하면 용두가 - 자형 아닌 ㄱ 자형 형태를 띠어 과연 이순신장군 장계에 언급되어 있는 용두에서 현자총통을 이용, 철환을 발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용두수치도 맞지 않게 복원됐다. 1795년 이충무공전서의 구선지제에 나오는 보면 용두너비는 3자(93.7cm), 길이는 4자3치(1.34m)인데 지켜지지 않았다.

물길을 헤쳐 나가는 노 또한 좌우현 각각 1개씩만 설치돼 어떻게 거북선을 움직일 수 있을지 상상도 안 갈 정도다. 1795년 이충무공전서에서 이순신장군 거북선과 유사하다고 기록된 통제영거북선과, 전라좌수영 거북선 노는 각각 좌우현에 20개, 16개의 노가 설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일각에서는 1592년 당시 이순신장군 거북선 노는 선체크기 등을 고려, 7~8개였다 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마저도 앉아서 젓는 서양식 노인지 서서 젓는 수직구조의 동양식 노인지 분간이 가지 않도록 건조 됐다. 뱃머리와 꼬리는 물론 좌우현 방패에 총혈 배치도 문헌과 크게 다르다.

⓵ 어떻게 활용했나
추진동력이 전통 노가 아닌 디젤엔진형식으로 건조됐다. 한강대교 ~ 동작대교를 오고가는 유람선 형태로 운행된 한강 거북선은 1990년 10월 1일 진수식을 할 때만 해도 당시 노태우 대통령도 참석할 정도로 세간의 관심 대상이었다. 거북선이 나루터에 정박했을 때는 이순신장군 등에 관한 전시장 용도로도 활용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강과 거북선 연관성의 기록이 전무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스토리텔링마저 빈약하자 시민들의 관심이 점차 멀어져 갔다. 덩달아 이용객들의 감소로 운영이 어렵자, 서울시는 한산대첩 전승지인 경남 통영시에 임대방식으로 대여, 2020년 만료를 앞두고 있다.

(3) 여수 돌산 거북선

여수 돌산도 해상에 밧줄로 정박돼 있는 여수 돌산 거북선은 해군사관학교 1호 거북선 건조 이후 6년 뒤 1986년 4월 약 4억 원의 건조비를 들여 민간영역인 (유)전라좌수영문화개발에서 건조했다. 길이 37m 높이 6.8m 넓이 8.20m 150t 탐승인원 130~150명 약 6노트 수준으로 만들어졌다.

여수시 지역 거북선연구에 밝은 장사홍 등이 이충무공전서 등 각종 고증을 참고해 만든 설계도를 토대로 전라좌수영 거북선형태(본영구선)의 실물 크기로 건조됐다.

선내 구조는 해사 1호 거북선의 영향으로 2층 구조이며 2층은 당시 수군들이 전투하는 모습을 마네킹으로 만든 인형 130개로 재현시켜 놓았다. 현자, 천자포 등 14문을 복제 배치했으며 1층은 24간의 각 선실을 만들어 병사들의 생활상을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그림-24> 민간이 운영하는 여수돌산거북선
 
⓵ 내부 2층 구조, 고증 한계

관주도가 아닌 민간이 주도해 실물 크기 거북선을 건조한 전국 첫 사례로 의미를 지니나 복원 거북선은 곳곳에서 기록의 불일치를 드러냈다. 본영구선 즉 이충무공전서의 전라좌수영거북선을 고증한 제작임에도 노가 없어 1795년 이충무공전서에 기록된 좌우현 노 각각 8개(총 16개)의 전라좌수영거북선 과는 차이가 있다.

포 위치는 전라좌수영거북선의 경우 거북선 선수 거북머리 아래에 포혈이 2개, 좌우현판에 각 1개 방패에도 각각 10개의 포혈이 있고 좌우현에도 각각 6개의 포혈이 있는 등 총 36개의 포혈이 있으나 여수돌산거북선 포혈 숫자는 그보다 한참 못 미친다.

특히 거북선 내부는 2층 구조여서 노를 젓는 노꾼과 포를 쏘는 전투원들을 분리하지 않고 한데 엉켜진 형태로 인형이 전시됐다. 하지만 학계의 포 발사에 필요한 일정 공간이 필요해 노군과 포수가 같은 공간을 공동 점용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는 고려되지 않았다. 
현자총통 등 복제된 포가 포혈에 맞추어져 있지 않고 내부 중앙 통로에 그냥 배치해 놓았다.

ㄱ자형 용두는 거북선이 유황 염초 등을 태워 연기를 내품었다는 기록에 따라 재현해 놓았지만, 이는 임진왜란 이후 200여년 뒤 통제영 거북선의 용두기능이다. 그렇지만 여수돌산거북선은 관이 아닌 민간주도로 복원 당시 연구한계와 제한된 인력풀로도 18세기 전라좌수영거북선을 실물 크기로 복원했다는 점과 이를 계기로 전남 여수시 등 다른 지역에 거북선 열풍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⓶ 드문 민간 운영 방식

초기에는 (유)전라좌수영문화개발에서 운영했으나 2017년부터 한 사업가가 운영권을 넘겨받아 일반인 내부관람과 함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이순신학교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거북선관람 매표소 안에 각종 건어물을 팔아 발생하는 수익금으로 여수 앞바다 공유수면점용 비용을 충당하는 등 쉽지 않은 거북선 경영을 하고 있다. 34년째 전남 여수시 등 공기관 도움 없이 민간영역에서 독자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림-25> 여수돌산거북선을 운영하는 매표소

2. 2010년 이후 복원된 거북선, 내부구조 3층 정립화 첫 시도    

1592년 임진왜란때 거북선의 내부구조에 대해 학계에서는 2층설, 2.5층설, 3층설 등 3가지 학설에 대한 학문적 논쟁을 지금까지도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각종 설은 주장 당시까지 철저한 연구기반으로 거북선내부구조를 들여다봤는데 현재의 괄목할만한 거북선연구 잣대로 보면 2층 구조설은 기능적 논리 부족과 실험적 한계로 설득력을 많이 잃었다. 

대신 거북선의 내부구조가 1555년부터 조선 주력 군선이던 판옥선처럼 포수, 사수등 전투원과 노군 등 비전투원을 분리시킨 3층 구조설과 함께 2.5층 구조설이 힘을 얻고 있다.

판옥선이 3층 구조라는데 에는 이견이 없는 가운데 판옥선보다 37년 후에 창제돼 활약했던 거북선 내부구조를 2층이라고 하는 것은 선박기능과 운영 등 여러 측면에서 퇴보가 되는 것으로 2층 구조 일 수 없다는 것이 주요 연구 논리다. 

연구 현실이 이런 가운데 이순신장군 전승지가 곳곳에 산재한 광역자치단체 경상남도는 2006년 10월 우리나라 거북선 연구 및 복원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의미심장한 사업추진을 발표했다. ‘이순신거북선프로젝트’다. 1592년 당시 이순신장군 거북선을 복원하여 역사적 정체성과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고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린다는 취지다.

경상남도는 이후 2007년 ‘거북선을 찾아라’ 출범식에 이어 2008년 5월 용역을 마치면서 본격적인 거북선탐사 출항식 및 해저유물탐사를 개시했다. 경상남도의 이순신장군 거북선 복원사업 발표 이후 국회에서는 2010년 2월 ‘세계최초 철갑선 거북선을 찾아라’ 정책 대토론회도 열렸다. 

경상남도는 관련 용역발주 당시부터 거북선 내부구조를 1592년 당시로 명확히 규정했다. 이충무공전서 토대로 건조된 1795년식 거북선의 복원 및 모형 제작은 1592년 임진왜란당시 거북선원형에 대한 실체규명에 한계가 있다며 처음으로 3층 구조 정립화에 나섰다.

1980년 해군사관학교 주도로 국내 실물 크기 1호 거북선 탄생에 이어 20년 뒤 2호 거북선이 잇따라 제작 됐고 이 영향을 받아 민간영역(여수)이나 광역단체주도(서울시)의 실물 크기 거북선복원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경상남도가 해사거북선과는 내부구조가 다른 거북선 복원에 나선 것이다. 

그 배경을 보면 해사 1호 거북선이 첫 복원 된 1980년 이후 근 30년 동안 이순신 거북선의 내부구조는 당시까지 최적의 연구 결과에 따라 2층 구조였다. 이후 활발하고 다양한 학제적 접근으로 이순신 거북선 연구가 진일보하면서 2.5층구조설 연구와 함께 3층 구조가 타당하다는 연구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거북선복원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경상남도는 이중 임진왜란거북선 내부구조를 2.5층이 아닌 3층구조를 택해 복원한다고 아래와 같이 천명 했다. 

제시된 논리적 근거를 보면 임진왜란당시 거북선은 빠른 속도로 적진에 돌입하여 강력한 화포로 왜선을 격멸했던 최정예 군선이므로 전투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내부구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선체를 3등분하여 운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분석했다. 즉 1층은 군량, 무기창고와 수군침실을 2층은 노군과 사수의 전투장소로, 3층은 포수들의 전투장소로 운영됐다는 것이다. 

이는 거북선내부구조를 기존 2층 전투공간에 그 위에 반층 정도 되는 공간( 2층과 3층이 완전 차단되지 않은 원두막 형태)을 추가로 확보, 시야확보와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는 등 전투력을 향상시킨 이른바 2.5층설과도 다른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이렇듯 경상남도 주도의 거북선복원은 지금까지 유지돼온 거북선 내부구조가 2층설과 2.5층설을 뛰어 넘어 외형적으로는(실제 복원과는 달리) 3층설을 굳히게 되는 계기를 정부주도 아닌 광역지방단체에서 시도했다는 점에서 거북선복원사에서 중대한 전환기로 평가되고 있다.

경상남도가 애초 거북선복원 취지대로 1592년 당시 이순신 장군 거북선(조선후기 통제영거북선과 유사하다는 1795년 이충무공전서를 근거로)원형 복원 했는지를 실제 건조 된 실물크기 거북선 모형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실물 크기 거제 1, 2호 거북선

 지세포항을 내려다보며 경남 거제시 거제조선해양문화관 광장 내 육상 전시된 거제 1호 거북선은 3층 구조로 건조 됐다. 안내판에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을 고증을 통해 복원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복원 거북선은 길이 25.6 m 폭 6.87m 높이 6.06m로 선체 부분인 1층은 병사들의 휴식처와 창고로 2층은 노역, 3층은 전투를 할 수 있도록 건조됐다. 원래 지세포항에 해상전시 됐으나 거북선 안으로 물이 들어 올 것을 염려해 해상에서 들어 올려 육상전시하고 있다. 

거제시 대우조선해양건물 앞 육상 전시된 거제 2호 거북선(옥포거북선)은 임진왜란 때 거북선복원으로 거제 1호 거북선과 마찬가지로 길이 25.6 m 폭 6.87m 높이 6.06m, 무게 122t으로 건조됐다. 
   
<그림-26> 거제조선해양문화관 광장에 전시된 거제1호거북선

<그림-27> 거제대우조선해양건물 앞 공원에 전시된 거제2호거북선

⓵ 이순신 장군 거북선 기록과는 다르다.

1795년 통제영거북선은 수치에 대한 약간의 가감은 있지만 1592년 이순신장군 거북선에서 유래 했다고 이충무공전서에 나와 있다. 그 기록에 따라 거제 1호, 2호 거북선 내외 구조를 비교하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내판을 보면 현재 복원된 대부분의 거북선이 1795년 정조 어명에 의해 간행된 이충무공전서에 의해 복원된 반면 거제 1, 2호는 임진란 거북선이라며 단편적으로 드러난 기록을 토대로 1592년 당시 거북선을 복원했다고 설명되어 있다.

거제 1, 2호 실물을 보면 이같은 설명과 달리 임진난 당시 거북선 기록과는 많이 다르게 복원됐다. 우선 용두가 ᄀ자형으로 이 형태로는 포를 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전라좌수영거북선모형으로 임진왜란당시 – 자형 용두에서 현자총통을 발사했다는 이순신장군 거북선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용두도 총통을 이용, 철환을 쏘기에는 크기가 너무 작게 만들어 졌다. 이충무공전서에 용두(통제영거북선) 길이가 1.34m,  넓이는 1m 약간 못자란 93.9cm 라고 기록돼 있다. 
3층에서는 정면뿐 아니라 측면에서도 함포를 발사한 것으로 연구되어 오고 있으나ㅓ 그런 구조의 복원이 아니 였다. 

노 또한 통제영거북선이 좌우현 각각 10개 총 20개인데(일부 학자들은 이순신장군 거북선 노는 좌우현 14~16개) 거제 1,2호 거북선 노는 좌우현 7개씩 14개다. 개판 위 돛이 2개 설치됐으나 전투하거나 이동시 누웠다, 세웠다 해야 하는데 그 구조(기능)마저 없이 고정 돼 있다.

거제 1호, 2호 거북선의 포혈도 임진왜란 기록과는 큰 차이다. 기록에는 좌우 방패 판에는 각각 6개의 포 구멍을 뚫는 등 전체 14개 포혈이 있었다. 이 기록과는 다르게 거제 1호, 2호 거북선의 포 구멍을 비교해 보면 그나마 1호는 몇 개의 포 구멍이 있으나 2호는 아예 포 구멍도 없이 건조됐다.

거북선 앞 귀신 문양도 거제 1호는 있으나 2호는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다. 1795년 이충무공전서에는 귀신문양은 전라좌수영거북선에는 있지만 통제영거북선에는 없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1층 비하의 경우 역삼형 형태가 아닌 일직선 형태의 곡목 인데 거제 1호는 곡목으로 2호는 이런 형태를 유지하지 않고 모두 역삼형으로 건조 됐다.

또한, 이순신장군 장조카인 이분의 ‘충무공행록’에는 거북선 뒤로는 거북꼬리처럼 되어 그 밑에 포혈이 있다고 했는데 거제 거북선들은 꼬리를 살펴 볼 수 가 없다. 

일부 학자의 연구결과이나 현재 복원된 거북선들의 선미에 포혈이 있고 꼬리 없이 위로 치솟는 형태의 미익만 있는데 이런 형태의 복원거북선(특히 전라좌수영거북선모형)은 어느 시기 거북선인지 설명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꼬리 유무에서 찾고 있다. 

거제 1,2호거북선은 임진난거북선이라는 설명과 달리 그보다 203년 뒤인 조선후기 거북선 형태와 구조를 띠고 있다고 봐야 한다. 

⓶ 조형물에 그쳐 

임진난 거북선을 표방한 거제 1호, 2호 거북선은 바다에서 돌격하던 거북선이 아닌 목선의 움직일 수 없도록 육상 전시돼 있다. 조형물로만 만족하는 실물 복원이다.

1호는 내부관람 시설이 없어 외부관람만, 2호는 내외부 모두 관람도 가능하다. 2호 거북선은 내부에 천자총통 6기 지자총통 7개 현자총통, 7개 황자총통 5개 등 비치해 놓았다. 노군 2~3명이 서서 1개의 노를 젓는 형태의 인형이 만들어졌으며 같은 층에서 각종 총통은 포 구멍이 없다 보니 중앙통로 등에 비치해 놓아 임진왜란 당시 노를 저어 돌진해 전후 좌우로 포를 쏘며 왜선을 격멸했던 거북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노군과 포수가 같은 층에 있고 내부 관람이 허용된 거제 2호거북선은 이 때문에 외견상 3층 구조를 표방하고 건조됐으나 실제 내부로는 2.5층 구조로 복원됐다라는 시각도 있다. 노를 젓는 노군인형도 임진왜란당시 나대용 기록에 의하면 거북선 노 1개를 5명이 저었다라고 한 것과도 다르다.       

⓷ 체험과 도슨트로 일자리 창출
거제조선해양문화관 광장에 육상전시 된 거제1호 거북선은 거제조선해양문화관 해설사들에 의해 조선 강국 거북선이라는 의미로만 설명될 뿐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한다. 내부관람을 하지 못하도록 복원된 이유 때문이다. 

반면 거제2호 거북선은 내부관람이 가능함에 따라 신중년 도슨트와 함께 하는 역사 교사들의 경력과 전문성을 활용한 거북선해설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경력형 일자리를 창출해 내고 있다. 도슨트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쉽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 내용을 설명하는 전문 해설가다.

아울러 조선수군의상 등을 입고 포토존에서 사진 찍기, 활쏘기 체험 탁본체험등도 할 수 있는 등 어린이들을 겨냥한 체험시설 공간도 마련돼 있다.
          
(2) 통영 거북선

한산대첩의 본 고장인 경남 통영시 도남관광단지 앞 해상에는 통제영 거북선과 전라좌수영 거북선 그리고 판옥선 등 4척이 복원돼 전시돼 있다. 움직이지 못한 채 밧줄에 매여져 있다. 

임진왜란 이후 203년만인 1795년 정조의 명에 따라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의 거북선구조 기록을 토대로 2012년 2월 3층 구조로 제작된 뒤 개방됐다.

[그림-28] 통영시 도남관광단지 앞 해상에 전시된 통제영 거북선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28] 통영시 도남관광단지 앞 해상에 전시된 통제영 거북선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29] 통영시 도남관광단지 앞 해상에 전시된 전라 좌수영 거북선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29] 통영시 도남관광단지 앞 해상에 전시된 전라 좌수영 거북선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29> 통영시 도남관광단지 앞 해상에 전시된 전라 좌수영 거북선

⓵ 1795년 이충무공전서 토대로 복원

 안내판에는 이순신 당시 거북선과 같은 통제영거북선은 별도의 장식이 없는 두꺼운 덮개판을 씌워 수군과 노군을 보호했다. 대포를 쏠 수 있게 용두를 – 자형으로 만들었다. 전라좌수영거북선은 용두가 ㄱ자형으로 되어 있으며 덮개판에 거북 무늬가 있고 뱃머리에 단 용두를 통해 유황과 염초를 태운 연기를 토해내어 혼란시켰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임진난 이후 200여년 뒤 출현한 통제영 거북선 용두 설명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라좌수영과 통제영 거북선의 목판 그림이 새겨진 안내판은 1795년 이충무공전서 토대로 복원했다고 하나 공히 노가 좌우현 2개에 불과 당시 통제영거북선 좌우현 각각 10개씩, 전라좌수영거북선 좌우현 8개씩과는 다르게 복원 됐다.

포혈은 조선후기 통제영 거북선이 좌우 개판 각각 12개 등 포혈이 총 72개이나 통영 거북선은 지켜지지 않았고 전라좌수영거북선 또한 개판 좌우 6개 포혈 등 총 36개 포혈이 만들어진 이충무공전서 기록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⓶ 내부관람 가능

조선군선 매표소에서 통제영 거북선 등 실물 크기로 복원된 거북선 내부를 탑승해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내부에서는 1개의 노를 2~3명(임진왜란 때는 4~5명)이 젓는 노군과 포를 준비하는 수군이 마네킹으로 전시돼 있다. 거북선완성 퍼즐게임 등 어린이들의 체험활동을 돕고 있다.           
 
(3) 경남 사천 거북선

임진왜란인 1592년 5월 29일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장군이 처음으로 거북선을 이끌고 사천 해전에 실전 참여했다. 당시 왜선 13척과 왜군 2천600여 명을 격침시켰다고 기록돼 있다.

사천거북선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을 그대로 고증, 3층 구조에 전체 길이 25.6m 높이 6.06m, 승선 인원 125여 명, 전면 목재로 복원돼 이순신공원에 전시돼 있다. 2012년 12월 제작이 완료, 육상 전시했다. 내외부 모두 관람이 가능하다. 거제시 거제 1,2호선과 전체 길이 등 제원이 동일하다.  

<그림-30> 사천거북선은 내부구조가 3층 구조 복원이라고 안내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3층이 원두막 형태의 2.5층 구조로 봐야 한다.    

⓵ 내외부 구조가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과는 차이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는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은 통제영 거북선과 유사하다라는 기록을 토대(물론 수치 가감은 있다고 했다)로 노가 좌우현 각각 10개씩 20개가 돼야 한다. 사천 거북선은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을 복원했다고 했는데 실제 노는 좌현 3개 우현 7개 등 총 10개만 만들어져 이순신 거북선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용두 또한 통제영 거북선 식 형태로 – 자형을 보이나 현자총통을 발사한 용두처럼 포를 쏠 수 없고 크기 또한 기록과는 다르게 축소돼 복원됐다. 내부에는 노 젓는 수군은 2층, 각종 총통은 어정쩡하게 만들어진 3층에 전시돼 있다. 

통제영 거북선의 포혈이 좌우 개판 각각 12개 등 총 72개였다고 하나 사천거북선은 그대로 복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사천 거북선은 처음 복원 목표인 내부 구조가 완벽한 3층 (2층과 3층 간판이 완전 분리된 구조)아닌 2층에 오두막 형태(혹은 다락같은)의 3층 공간을 확보한 2.5층으로 복원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⓶ 사천 거북선 마을

경남 사천시 용현면에 위치한 거북선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최초로 거북선을 출전시켜 왜선을 격퇴한 사천해전이 펼쳐진 장소다. 사천해전의 바다 사천 만을 껴안고 있다.

거북선 마을을 표시하는 거북선 마을 브랜드는 숫자 1을 거북의 목과 연결해 최초 거북선길 의 의미를 상징화했고 날아가는 빛들을 형상화해 함포를 발사하는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캠핑장, 거북선길 걷기 축제, 거북선 마을 노을 축제 등 거북선을 테마로 한 다양한 페스티벌이 마련돼 있다.

<그림-31> 사천 거북선마을 상징물

3. 수도권 등 거북선 복원모형은 축소형 거북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 유적지인 남해안 일대 지역에는 1대1 실물 크기로 복원된 거북선이 전시돼 있으나 이들 지역을 제외한 서울, 경기도 등 수도권 지역에는 실물 크기 거북선 모형이 없다. 단지 축소형 거북선 모형이 만들어져 있을 뿐이다. 박물관 내지는 기념관, 과학관 등 실내 공간에 전시돼 관람 대상이 되고 있다.

(1) 충남 아산현충사

한때 이순신장군 묘역과 사당이 있는 충남 아산 현충사에는 실제 1/6 크기의 축소형 거북선이 만들어져 전시돼 있었다. 1969년 현충사 성역화일환에 따라 각계 성금으로 제작돼 기증받아 전시됐으나 고증문제 등 이유로 전시된 지 45년만인 2014년 철거, 현재는 현충사 내 창고로 장기 보관 중이다.     

[그림-32] 아산현충사 경내에 설치됐다 철거된 거북선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32] 아산현충사 경내에 설치됐다 철거된 거북선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⓵ 고증 지적  
당시 전시된 거북선은 용두가 ㄱ자형으로 거북선 정면에 귀신 모양 그리고 노가 좌우현 8개씩 제작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 거북선(통제영거북선과 유사) 아닌 1795년 정조 때 편찬된 이충무공전서 기록을 토대로 만든 전라좌수영거북선 모형이다.

2층 구조로써 개판에는 귀신 귀자의 깃발과 함께 돛 2개가 누울 수 있도록 제작됐고, 거북 무늬와 함께 쇠창살 등이 촘촘히 박혀 만들어졌다. 노 구조는 전통 노처럼 수직 구조가 아닌 수평식의 서양식 노로 제작됐다는 지적을 받았고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포혈 숫자와도 맞지 않고 같은 층에서 포와 노를 함께 젓는 내부구조 또한 이충무공전서 기록과는 다르다는 지적도 받았다. 

총체적으로 일부 수치에 대한 가감이 있지만 이순신장군 당시 거북선과 유사한 통제영 거북선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복원된 채 전시돼 있었다. 현재 아산현충사에는 거북선 모형 없이 조선후기 이충무공 종가에 전해 내려오는 두 장의 거북선 그림만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하나는 거북선(전라좌수영거북선)의 크기와 구조를 4언시로 칭송한 글이 있는데 이 시 내용 중에는 거북선의 설계 수치를 기록하여 놓은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원식은 “마치 거북선 설계안을 시로써 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며 “전라좌수영에서 거북선을 꾸몄으니 뱃 밑 길이는 50자요, 배의 너비는 25자다. 배의 몸통길이는 65자요, 방패문은 좌우로 26개다. 거북등에 장대를 세우고 위에 좌대를 만들어 장막을 두르고...” 조선후기 거북선의 구조와 형태를 다소나마 알 수 있는 귀선송이다. 또 다른 그림의 거북선에는 덮개 위에 장수가 올라서서 명령하고 지휘하던 곳인 장대를 설치하고 머리와 꼬리(미익 아닌)가 표범 모양이다.

<그림-33> 1795년 정조때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된 전라좌수영거북선 

[그림-34] 이충무공 종가 귀선도. 그림 상단에 귀선을 칭송하는 귀선송이 4언시로 써져 있다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34] 이충무공 종가 귀선도. 그림 상단에 귀선을 칭송하는 귀선송이 4언시로 써져 있다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34> 이충무공 종가 귀선도. 그림 상단에 귀선을 칭송하는 귀선송이 4언시로 써져 있다. 

(2)  대전국립중앙과학관과 경기도 과천국립과학관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2층 군사기술관에 복원 전시된 거북선은 용두와 귀신 문양 형태로 미뤄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축소모형이나 노 등이 당시 기록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관람자들이 거북선 내부구조를 확인하도록 절반은 골격만, 나머지는 원형대로 만들었다. 크기 및 제작년도 등 자세한 설명문이 비치돼 있지 않아 구체적 내용을 알 길이 없다. 

<그림-35> 대전국립중앙과학관에 전시되어있는 축소형 거북선

 과천국립과학관 내 전통과학관에 2층 구조의 축소형 거북선 모형이 만들어졌다. 전시공간에 유리 안에 설치된 거북선은 용두가 – 자형이어서 통제영 거북선으로 추정되는데 좌우현 10개 노가 설치된 통제영 거북선과는 달리 노가 하나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포혈 수도 통제영 거북선과 큰 차이를 보이며 제작됐다. 거북선 해전 모습을 실사 촬영한 뒤 CG, 자료 영상, 해설 제작 방법으로 조이스틱으로 거북선 여행을 하도록 제작됐다. 포쏘기, 노젓기 등 3D 플래시게임을 통해 거북선을 체험하도록 했다.

<그림-36> 과천국립과학관 내 전시된 축소형 거북선
 
(3) 서울 용산전쟁기념관 거북선

용산 전쟁기념관 1층에는 실물의 40% 크기로 축소형으로 만들어져 전시돼 있다. 부분적으로 만들어진 투명창을 통해 내부를 엿 볼 수 있다. 전쟁기념관 축소형 거북선은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이순신장군 거북선을 원형 복원하기 위해 1795년 이충무공전서에 기록된 통제영 거북선 기록을 토대로 제작됐다. 1592년 이순신장군 거북선과 1795년 이충무공전서의 통제영 거북선은 비슷하다고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제작된 용두를 보면 통제영보다는 전라좌수영거북선 용두로 당연히 용두에서 현자총통을 쏠 수 없는 구조로 복원됐다. 통제영 거북선 포혈수와 제작된 축소모형의 포혈수도 맞지 않다.
개판 또한 통제영 거북선과는 다르게 복원되는 등 전체적으로 통제영과 전라좌수영거북선을 혼용한 형태로 제작됐다.     

<그림-37> 서울용산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있는 축소형 거북선

Ⅳ. 본론 3 (경기도 파주시의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복원 및 활용)

[그림-38] 조선최초 임진강거북선 훈련장소 파주임진리. 국내 유일 임진강거북선 유적지다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38] 조선최초 임진강거북선 훈련장소 파주임진리. 국내 유일 임진강거북선 유적지다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그림-38> 조선최초 임진강거북선 훈련장소 파주임진리. 국내 유일 임진강거북선 유적지다.  

오는 2021년 하반기 개략적인 임진강거북선 모형 등 형태를 드러낼 경기도 파주시의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 프로젝트는 1:1 실물 크기로 임진강 거북선을 복원한 뒤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나. 오래전부터 이순신장군 유적지가 곳곳에 있는 경남 거제, 통영 전남 여수 등지의 전국 지자체들은 앞다퉈 거북선을 실물 크기로 복원한 뒤 상품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어 경기도 파주시의 임진강거북선이 조선 최초 거북선이기는 하나 후발주자로서 여건이 그리 녹록치는 않은 상황이다.

국내외 거북선 등 포함 고군선 복원 및 활용 사례를 현장에서 목도해 본 결과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거북선 원형인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이 실물 크기복원 뒤 상품성은 몇 가지 전제만 부합되면 월등한 비교 우위에 있다고 감히 확신한다.영국 등은 복원 후 전시, 그리고 체험을 병행해 활용한다. 

반면 국내에서 실물 크기로 복원된 거북선은 육상 전시 내지는 밧줄에 묶여 해상전시 된 채 내부 관람하는 것이 고작이다. 체험이라는 것도 실내에서 거북선 퍼즐게임이나 활쏘기, 당시 수군 의복 입고 사진 찍기 등 단순한 프로그램으로 일관되어 있다. 운항도 안 되는 등 움직임이 없는 정적 체험이 전부다.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 때 거북선을 돌격선으로 만들어 함포를 쏘고 왜선에 근접해 초토화시킨 움직이며 전투할 수 있는 거북선복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거북선 내부구조에 대한 해석도 제각각 달라 거북선이 2층, 2.5층, 3층 구조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1592년 이순신장군 거북선을 복원했다고 하면서도 1795년 정조 때 등장한 통제영거북선(이순신장군거북선과 비슷)과 전라좌수영 거북선을 혼용해 복원한 것에 대한 일반인들의 거부감도 있다. 

따라서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은 해외 사례를 중점 모델로 경남 통영시 등 국내 거북선복원실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조선 최초 거북선 원형 모습에 근접해 복원한 뒤 실제로 노를 젓고 움직이며 포를 쏘는 모습을 재현하고 차원 높은 스토리텔링 마켓팅을 강화하는 등 차별화 할 경우 판문점에 이어 또 하나의 세계적인 평화관광 상품이 되어 확고한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 

 1. 임진강,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의 탄생지며 성지(유적지)다. 조선 최초를 넘어 세계 최초인 임진강거북선은 1413년 임진도 (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리) 임진강에서 왜선을 상대로 모의 훈련한 것으로 조선왕조실록(태종실록 25권),태종 13년 2월 5일) 첫 등장 한다. 이어 2년 뒤 1415년 모의훈련 결과가 좋아 거북선을 더 튼튼하게 더 많이 만들라는 태종의 지시가 떨어진다. 179년 뒤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했던 거북선의 탄생이 임진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북한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에서 2001년 발간된 김흥규저 거북선에는 조선 최초 거북선 출현 시기를 조선왕조실록에서 기록한 것과 똑같이 1413년 2월로 봤다. 이 책에는 북한 전함역사서인 조선전사 9권 281쪽을 인용, “원래 거북선이라고 이름이 붙은 싸움배는 우리나라에서 15세기 초에 창안되고 그 전투적 위력을 임진강에서 실험해 본 일이 있었다. 16세기의 (이순신) 거북선은 이러한 성과에 기초하여 새롭게 완성한 철갑선이다. 함포를 갖춘 전함이었다”고 설명돼 있다. 

남북한이 조선 최초 거북선은 임진강거북선이라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어 임진강은 거북선 원형을 찾고, 확인할 수 있는 대한민국 유일의 최적의 입지를 갖춘 유적지이자 탄생지이며 성지(유적지)로써 손색이 없다. 
 
2. 거북선 훈련장 등 연계시설 주목

태종실록을 고찰해 보면 임진강거북선은 모의 훈련지였던 임진강에서 왜선과 충돌했다고 기술돼 있는데 이는 파손된 거북선을 수리하는 공간이 임진강 주변에 있었다는 의미다. 또한, 당연히 군사들의 휴식공간과 군사들을 상대로 하는 주막 등 과 태종이 모의훈련을 친람한 관청도 있을 것으로 추정돼 이들 연계시설에 대한 인식과 활용에 대한 부분도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복원 못지않게 중요 하다.

3.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복원 구조, 형태, 기능 및 활용은

(1) 움직이는 동적 체험이 가능토록 복원돼야 
전술했듯 국내에서 이미 복원된 실물 크기의 거북선은 모두 육상 전시나 해상전시된 채 운항되지 않은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단순히 내외부 관람만 할 수 있도록 했다. 태종실록은 물론 이순신장계, 이순신장군 장조카인 이분의 ‘충무공행록’ 등에서 기록됐듯 적진(왜구 및 왜선)을 향해 이동하며 포를 쏴대던 돌격선으로서의 거북선 본래 기능이 상실된 것이다.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복원은 거북선 원형으로서 실제로 움직이며 포를 쏘는 거북선으로 만들어 차별화해야 한다. 노와 함포 비치 등 15세기 초 조선 시대 군선, 선상 생활 등 당대 기록을 총 결집도 해야 한다.

(2)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복제선 제작해 마장호수 등에서 체험
영국 메리로즈호 박물관과 덴마크 바이킹 박물관은 주변에 조선소를 만들어 인양된 군선은 복원 뒤 전시해 놓았지만 당시 기록을 토대로 전시된 군선의 동일 혹은 축소형으로 복제 선을 제조, 인근 연안을 항해하는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복제품의 건조는 선박전문가등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시뮬레이션과 함께 인근 해상을 운항하며 혹 발생한 미진한 부분을 찾아내는 등 꼼꼼한 점검이 이루어진 뒤 실제 운항에 들어가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도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복원 뒤 동적 체험 장소로 607년 전 거북선 훈련장소인 임진리에서 체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준설미비 등 여건이 안 되면 주변 마장호수 및 애룡저수지 등도 체험 장소로 충분히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실물 크기 원형 복원된 거북선 모형은 전시관 등에 전시해 놓고 축소된 복제 선을 만들어 체험하는 운항 프로그램을 고려해 보는 것이다.

(3) 복원 전 과정 공개
영국 메리로즈호박물관은 메리로즈호 최초 인양 후 탈염 작업등 모든 과정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했고 스웨덴 바사호 박물관도 동일한 과정을 거쳐 박물관을 완성 했다. 

일반인들로 하여금 그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해 어떤 형태로든 박물관건립에 참여를 유도하게 하는 고도의 전략이다. 당연히 후원금 모금 계기가 됐고 후원자들은 박물관 혹은 전시관에 그 이름을 새겨져 자긍심을 갖도록 했다. 우리나라 삼성전자는 물론 석유메이저인 영국 BP사도 문화기부에 참여한 것이 좋은 사례다. 

경기도 파주시의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복원 과정도 치밀한 전략을 통해 목재 구입부터 갑판제작 및 일반인들의 관심이 큰 용머리 제작 등 과정을 공개, 각계각층의 흥미를 유발할 필요가 있다. 관련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4) 거북선 훈련장 복원과 거북선 마을 조성 

임진강 거북선 훈련장을 복원하는 한편 수군 숙소, 모의훈련을 통해 파손된 거북선 선체 수리를 위한 조선소 등도 클러스터 형태로 복원할 것을 제안한다. 

바이킹족 후손인 덴마크와 스웨덴 등은 자국 내에 바이킹 마을을 조성해 관광 상품화하고 있는데 임진강 거북선훈련장주변에도 임진강 거북선 마을을 조성해 거북선 축제, 음식, 장신구 판매 등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 이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리 주변 마을을 살리는 도시재생에 그대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15 C세기 조선시대 문화, 문명이 담긴 조선최초 임진강거북선 전시관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은 무얼 팔아야 할까. 당연히 조선 최초, 세계 최초로 함포를 쏘며 움직였던 거북선의 원형을 팔아야 한다. 임진강 거북선 전시관은 15세기 조선 초 당대 문화와 문명 콘텐츠가 가득 채워져야 한다.

실물 크기로 임진강 거북선 모형을 제작해 전시하고, 200년 단위로 거북선 크기가 4 ~ 5m씩 달라지는 조선 역대 거북선 모형 제작과 함께 거북선 관련 설계 자료 등을 구입해 전시해 놓아야 한다.

영국 등 해외처럼 전시된 거북선 모형을 전체적으로 관람하면서도 층별 수군 생활 모습을 프로젝터로 쏘며 보여주고 있듯 당시 수군들 선상 생활문화상을 여실히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IT 기술을 접목해 AR/ VR 시설을 도입하고, 15C 당대군선에 관한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고 임진강거북선관련 기념품 제작 및 당시 생필품 복제품 제작 판매도 필요하다.

(6) 뮤지컬 제작 등 럭셔리 관광 마케팅

영국 메리로즈호박물관은 메리로즈호 관광 홍보를 위해 이를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등 안양 당시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국내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아이템을 생산해 내고 있다.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은 거북선이라는 브랜드가 이미 세계인들이 잘 알고 있는 최고의 상품가치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군선 스토리텔링을 토대로 게임, 뮤지컬, 오페라, 애니메이션, 영화 ,3D입체영상 분야까지 다양한 문화컨텐츠로 그 가치를 넓히는 과감한 도전을 시도해 봄직 하다.

특히 또 다른 영역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아이템인 임진강거북선에 관한 다양한 시각의 논문을 전 국민을 상대로 공모하는 등 연구의 폭과 질을 지속적으로 향상 시키고 임진강거북선을 소재로 한 소설 등 창작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4. 향후 운영 및 관리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복원 후 운영 및 관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전남 여수 돌산 거북선은 개인이 30여 년 넘게 운영하고 있고 나머지 복원된 거북선은 지방자치단체의 위탁을 받아 지방공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의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은 본격 운영에 앞서 운영 및 관리에 대한 부분을 집중 고려해야 향후 재정부담을 줄일 수 있다. 

몇 가지 운영 및 관리방안을 제안하면 파주 도시관광공사가 위탁하는 방안과 함께 파주평화 곤돌라처럼 민자를 유치해 운영하는 방안 즉 SPC(특수목적법인) 설립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울러 영국 메리로즈호 박물관이나 스웨덴 바사호 박물관처럼 트러스트(신탁 혹은 조합) 혹은 가칭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 재단을 만들어 대기업 등의 꾸준한 문화기부를 통해 운영하는 방안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Ⅴ. 결론

영국, 스웨덴 등 강력한 해양문화자본으로 현재 전 세계의 문화매력을 이끌고 있는 리더쉽들은 군선에 대한 마켓팅은 실체에 대한 완벽한 고증에 무게를 두는 것보다는  당대 문화, 문명을 몽땅 팔 수 있는 역사적 안목이 더 우선시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100% 고증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되지만 너무 고증에 집착한 나머지 주변에 있는 알찬 팩트들을 외면해 선 안 된다는 경험칙이다.

실제로 영국 메리로즈호 박물관 큐레이터 알렉산드라 힐드레드 박사는 좌현뼈대만 인양했던 메리로즈호복원의 힘든 과정과 관련, “100% 만족시키는 복원이란 없다. 당시 기록을 실증적으로 검증하면 된다”라며 추정 가능한 기록에 대한 편린들을 레고 퍼즐처럼 맞춰 복원하는 방안을 제시 했다. 또한, 스웨덴 바사호박물관 홍보담당자 마르티나 씨에그리스트 랴르숀씨는 “ 바사호인양은 당대 역사를 한꺼번에 건져 올리는 의미가 가장 컸다. 역사적 효용 가치가 높아 복원할 수 있었다”라고 복원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껏 어느 누구(주체)도 감히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복원이라는 대장정에 돌입한 경기도 파주시에 강력한 해양문화자본가들이 던지는 질문이자 조언이다.

비록 유물 인양 뒤 복원하는 방식(절차)이 아닌 기록마저 미진한 가운데 문헌사적으로 추정(추산)해 복원하는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의 복원사업은 한계가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며, 결코 부정할 수 도 없다. 

하지만 남북이 공유하는 경기도 파주 임진강에서 600여 년 동안 묵묵히 뭍혀 있던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의 역사를 건져 올리는(복원) 일은 다음의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문화매력으로, 세계적인 문화컨텐츠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경기도 파주시의 획기적인 소프트파워 문화성장 동력이 채굴될 것으로 기대 된다.

1. 국가주도 아닌 기초 자치단체에서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표준모델을 처음으로 만든다는 자긍심과 상징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국내에서 복원된 거북선들은 표준모델이 없다 보니 각종 고증 부실과 왜곡된 채 우후죽순 격으로 건조, 거북선모형에 대한 혼란을 유발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된다.

2. 거북선은 세계인이 익히 잘 아는 군선으로, 세계 최초의 장갑 군선이었던 임진강 거북선복원은 세계적 브랜드화가 가능한 치명적인 상품성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 미국, 독일, 포르투칼, 노르웨이 등에서는 우리나라 거북선 모형을 박물관 혹은 시청 청사 등지에 전시, 그 독특한 구조와 형태 그리고 자국보다 앞서 함포와 장갑을 사용한 점 등 뛰어난 문명 때문에 찬탄하고 있다.   

3. 찬란했던 500년 역사의 고려 문화, 문명을 이어 받은 15세기 함포를 사용한 조선 초기 군선의 당대 문화, 문명 스토리텔링이 가능 하다는 점이다. 현재 16~17세기 군선으로 전 세계 군선마케팅을 지배하는 영국이나, 스웨덴 등 보다도 무려 100 ~ 200년 앞선 차별적인 역사성을 보유 한다.

4. 왜구(왜선)와 모의훈련을 하며 돌격선으로써 전투력을 선 보였던 거북선원형인 조선 초기 임진강거북선 기능 그대로 실제 ⓵ 노를 저어 ⓶ 움직이며 ⓷ 포를 쏘는 등 체험적 3가지 행위가 동시 가능토록 복원하는 사업이다. 1980년부터 실물크기로 복원된 전국 거북선이 육상전시, 해상전시 등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조형물로 머물러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비교 우위를 갖는다.

5. 조선최초 임진강거북선의 탄생지며, 국내 유일한 유적지인 임진강은 남북이 공유하고 있는 데 조선최초 임진강거북선 복원으로(가능하다면 북한과 공동복원) 평화관광을 구현할 수 있는 남북화해모델로 만들면 전세계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북한은 조선 최초 거북선 출현 시기를 조선왕조실록에서 기록한 대로 1413년 2월로 봤다. 북한은 “원래 거북선이라고 이름이 붙은 싸움배는 우리나라에서 15세기 초에 창안되고 그 전투적 위력을 임진강에서 실험해 본 일이 있었다.

16세기의 (이순신) 거북선은 이러한 성과에 기초하여 새롭게 완성한 철갑선이다. 함포를 갖춘 전함이었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상으로 살펴본 것 같이 앞으로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이 복원하는 과정이 진행될수록 폭발적인 관심으로 뒤 덮을 것이다. 국내외에서 유일하게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에서 조선 최초, 세계 최초 거북선의 원형을 찾는 일이며 실제로 움직이는 동적 체험이 가능한 거북선으로 복원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차별적인 복원으로 DMZ(비무장지대) 평화관광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로 럭셔리 관광도 고려해 봄직 하다. 가능하면 북한도 임진강 거북선을 조선 최초 거북선으로 인정하고 있는 만큼 남북이 공동복원에 나서 분단사상 최초로 북한 뱃길을 여는 남북평화관광이라는 시대적 사명도 완수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이 거북선 원형으로서 동적 체험이 가능하도록 복원되어 한반도평화수도 파주가 전 세계인들이 수시로 찾아오는 소프트 파워를 보유한 세계적인 옛 군선(거북선) 평화관광도시로 탄생 했으면 한다.

<그림-39> 북유럽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시청사에 전시돼 있는 거북선 축소 모형. 

[문화평론 부문 당선자 김요섭 씨 프로필]

'제4회 2021 한국현대문화포럼 신춘문예' 당선자 문화비평평론 부문 김요섭(63년생. 사진. 신안산대 외래교수, 경기일보 기자) 씨.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제4회 2021 한국현대문화포럼 신춘문예' 당선자 문화비평평론 부문 김요섭(63년생. 사진. 신안산대 외래교수, 경기일보 기자) 씨. (사진=한국현대문화포럼)

 

 경희대학교에서 환경학 및 화학공학을 공부했으며,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환경관리학(CO전공)으로 보건학석사 학위를 취득 했다. 이어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보건학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경기일보에서 정부세종청사와 경기도 파주시를 출입하며 취재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신안산대학교(생명환경공학과)에서 외래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석사학위 논문으로는 ‘교통경찰관의 대기오염노출에 따른 건강영향에 관한연구 - CO 의 개인별 노출량 측정과 건강평가-‘ 와 공저논문으로 ‘건식흡착제를 이용한 저농도 이산화탄소 흡착연구(한국유화학회 2014)’ ‘CO2 직접제거를 통한 다중이용시설의 에너지 절감 및 경제적 효과에 대한 실험적 연구(한국유화학회 2014)’ 등이 있다. 수상내역으로는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한 제31회 한국기자상(2000)과 이달의 기자상(1999,2003,2007)을 세차례 수상했으며 지방신문 청와대와 국회출입기자로 구성된 한국지역언론인클럽에서 수여한 보도대상(문화예술분야 2019)를 수상했다. 아울러 안산시사 언론편(1999)을 집필했다.

<당선소감>

우리나라 거북선 역사의 맨 앞에 있는 ‘조선최초 임진강거북선’이 대한민국 문화를 비평하는 한켠의 소재로 인정 받아 기쁘다. 조선초 1413년 첫 등장이후 조선왕조실록에 600여년 동안 잠겨 있던 임진강거북선을 수면위로 건져 올려 진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하고 싶다.

대한민국 거북선의 대명사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절체절명의 시기에 등장한 1592년 이순신 장군 거북선이다. 세계 해전사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23전 23승에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럼, 왜 경기도 파주시의 임진강거북선 인가. 임진왜란때 구국의 철갑 거북선으로 적진을 헤집고 다니던 이순신장군 거북선의 최초 의 모습 즉 원형을 간직한 유형문화재이기 때문이다. 

조선초 전투선은 역사적으로 해전에 능했던 고려말 전통 한선의 영향을 받았다. 이른바 할아버지와 손자 관계다. 여말선초의 조선최초 임진강거북선의 기능과 형태,구조,무기체계 등이 이 관계로 180년 뒤 이순신장군이 창제한 거북선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북한도 임진강거북선은 임진도(현 파주시 문산읍 임진나루)에서 전투력을 실험하고 이런 성과를 기초로 새롭게 완성시킨 것이 이순신 장군 거북선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해양제국이던 영국 등보다 100 ~ 200여년 앞선 15세기 찬란한 조선의 옛 군선문화를 보유한 임진강거북선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려는 경기도 파주시의 시도는 원조거북선의 표준모델를 정립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경의를 표한다.

임진강거북선이 해외원정 첫 전투로 대마도정벌에 나섰다는 것이 학계주장이다. 이를 검증하는 ‘임진강거북선, 대마도에 간 까닭은’테마로 취재 하고 싶다. 생소 했던 임진강거북선을 수년째 지면 게재를 허락해준 경기일보사와 관련 자료 등을 아낌없이 지원해준 채연석 박사, 김현국 파주향토연구가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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