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 새해 혹한의 신고식
신축년 새해 혹한의 신고식
  • 김균식
  • 승인 2021.01.1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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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려면 소정의 신고식이라는 절차가 있었다.

조폭 세계에서나 있음직한 신고식은 군대나 교도소는 물론 문화·예술·스포츠 단체와 기업이나 대학교 동아리 모임까지 일종의 새로운 신입 멤버의 합류를 앞두고 벌이는 일종의 환영식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폭력과 음주가 난무한 분위기에서 건전한 대화와 식사자리로 달라지는 과정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신고식은 새롭게 맞이해야 할 환경에 대한 이벤트임은 확실하다.

소띠의 해 신축년이 시작되는 2021년 24절기의 첫 출발인 소한이 출발부터 이름값을 하기 시작했다.

6일부터 서서히 시작된 한파는 5일째 영하 15도 이하를 기록하며 올해 신고식을 다부지게 치르게 한다. 안 그래도 코로나19여파로 인해 충분히 힘든 상황인데 같은 매라도 아플 때 맞으면 더 아픈 법이다.

집합금지 명령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상향되면서 어렵사리 배달이라도 매출을 올리려했던 자영업자들은 눈길에 배달이 중단되자 속수무책 쌓이는 눈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불과 1년 전과 달라도 너무 다른 상황이다.

형편없이 줄어든 매출에 배달 중단은 자영업자 뿐만 아니라 식자재 납품처부터 일하던 종사자들, 오토바이 배달원이 육지의 모습이라면 바다조차 얼어붙어 조업이 불가능해졌다. 얼어붙은 바다는 출항을 준비하던 어부들의 발목을 잡았고 잎채소 추수를 하려던 농민의 일손을 쉬게 했다.

농사를 짓던 비닐하우스는 급격히 떨어지는 수은주에 맥없이 얼어붙었고 웬만하면 버티던 공동주택이나 변두리 지역의 수도관은 그대로 냉동파이프가 됐다. 이미 민생고가 바닥을 친 상태에서 이번 한파는 육체적 체감온도보다 정신적 체감온도를 더 낮게 만들었다.

어제까지 소방당국 집계를 보면 구조인원 37, 수도계량기 4947건, 수도관 253건 등 모두 5200건을 넘어섰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복구야 되겠지만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정전사태는 요즘처럼 조금만 불편해도 못 견디는 시대에 참혹한 형벌이었다.

남부지방에서도 채소류 농산물 피해가 속출했지만 가축이나 물고기들 또한 별반 대안이 없었다. 사람이야 어찌하든 아프면 아프다 말이라도 하겠지만 짹소리도 못하고 한파에 휩쓸려가는 피해는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물론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역으로 볼 때 해충들이 박멸하는 효과도 기대되지 않을까. 한해의 시작이 꽤나 이름값을 하면서 출발했다. 긍정의 힘은 그 효과가 무한대다. 번개만큼 강력한 지구청결제가 없고 태풍만큼 확실한 먼지털이가 없다.

언젠가 중국의 마오쩌둥이 참새가 벼의 알곡을 먹는다고 온 나라 사람들에게 참새 소탕령을 내렸다가 20억마리를 잡은 후 천적이 없어진 해충의 극성으로 농사를 망쳐 2천 만명이 아사한 사건이 있었다.

하나를 잃으면 둘을 얻는다고 볼 수 있는 긍정적 견해, 눈을 잃으니 귀가 밝아지고 전쟁이 끝나면 재건의 여지가 생긴다는 것과 같다.

신축년은 이제 시작이다. 한해 운명은 다 살아봐야 아는 것이고 얼마든지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 올해 가을은 어느 해 보다 풍년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출발하는 게 중요하다. 얼마나 잘 되게 하려고 혹한의 신고식을 준비했을까.

두려워 벌벌 떤다고 달라질게 없으며 어차피 피하지 못할 일은 즐기는 게 맞다. 코로나19, 백해무익한 질병이었을까. 불필요한 모임절제와 독자적인 공간에서 평소 못했던 취미와 특기를 찾아보는 기회는 되지 않았을까.

앉아 있을 때는 모르는 힘듦을 서보면 알 수 있듯이 먹고 살기 2020년 이전에는 괜찮았던 시절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때도 그 이전에도 힘들다는 아우성은 늘 쳐왔지만 돌아보니 엄살이 아니었던가. 죽기 살기로 애쓰지 않았음을 일깨워준 한해 였다.

무릇 인간의 삶이란 환경에 끌려갈 게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고 리드하는 존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이다. 자만하자는 게 아니라 잘 이겨 낼 수 있다는 뜻이며 작정하고 덤비는 자가 제일 무섭다 했다.

작정이라는 것 또한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든 마음먹기에 따라 소유할 수 있는 삶의 비법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노래방을 비롯한 헬스클럽 등 종목별 휴업거부 저항이 시작되고 있다.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는 취지인데 한군데 허가하면 다른 분야에서는 가만히 있을까.

통제 불가능사태로 이어지면 지금 같은 행정시스템에서 막가파로 나가는 업주들을 무슨 수로 막을 것이며 우려대로 감염이 일파만파 확산된다면 그때 어쩔 것인가. 지금까지는 정부의 방역 매뉴얼을 신뢰해서 준수했을까.

아니다 국민건강이 위협받기 때문에 지침의 효과보다는 국민으로서 책임과 의무감이 바로 서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혹여 너도나도 영업을 재개 했다가 별일 없으면 다행이지만 확진자가 무더기로 증가하면 그때 어쩔 것인가. 지금까지는 재난 수준이었지만 자칫 재앙수준으로 간다면 과태료나 휴, 폐업이 문제가 아니다. 유럽의 상황을 눈으로 보고서도 설마 하는 것이라면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게 된다.

막상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돌입하면 방역당국도 의료진도 그 누구도 해결할 주체가 사라진다. 여태 참고 견딘 게 아까워서라도 버텨봐야 한다. 문제는 정부의 대응이다.

죽겠다고 아우성인 백성에게 육모방망이를 들게 아니라 피부와 가슴에 와 닿는 진심어린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미 겉 발린 말로 할 때는 지나고 있다. 신고식이 요란했으니 한해 농사 잘 지어 가을에는 풍년을 맞이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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