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국민행복 음주가무 봄날은 간다
[덕암 칼럼]국민행복 음주가무 봄날은 간다
  • 김균식 기자 kyunsik@daum.net
  • 승인 2021.01.2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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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덕암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덕암 김균식

한국사회의 음주문화를 보면 상식을 벗어나는 사례가 많다. 가장 먼저 술도 음식이라는 명분으로 대우하면서 막상 술은 마시지 말라하고 술병마다 지나친 과음의 절제를 요구하고 있다. 

사실 술의 기원을 보면 적어도 수천 년 전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며 흥을 돋우고 동석자와의 경계심을 늦추게 하다 보니 비즈니스의 윤활유역할을 해왔다.

좋은 기분으로 마신 술은 약이 되고 괴로워 혼자 마신 술은 독주가 된다는 말도 있고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셨다가 술이 술을 먹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는 다는 말도 있다.

술, 악마가 바빠서 대신 보냈다는 말도 있고 심지어 범죄를 저질러도 술을 얼마나 마셨느냐에 따라 심신미약 또는 약물중독에 의한 미필적 고의로 형량을 줄여주니 술에 대한 견해는 보는 이의 해석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쨌거나 한국인의 특성 상 술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면서도 그 폐단 또한 만만찮은 게 현실이다. 신기한 건 음주에는 가무가 따라 붙으니 아마도 국민성과 관련 있지 않을까. 멀쩡하던 사람도 취기가 돌면 흥얼거리며 흔한 유행가라도 한 곡조 하게 되는데 이러한 분위기에 히트 치던 업종이 노래방이나 가무가 가능한 업종의 번성이었다.

이미 주택가 골목까지 점령한 가무 문화는 평소 쌓인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인간  관계를 돈독케 하는 중매역할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위치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누군가의 선구자가 있기 마련인데 노래나 춤이라는 게 최초 공연자가 있어야 모방이나 창작이 가능하기에 자연스레 선망의 대상이 인기가수나 요즘 유행하는 한류 전도사인 방탄소년단의 등장이다.

도덕적 잣대로 잴 게 아니라 사람 사는 맛으로 재어 본다면 음주가무는 빼놓을 수 없는 삶의 향기다. 노래 한곡 권하면 안 한다 하면서도 막상 마이크를 잡으면 어디서 배운 건지 너도나도 한 두 곡씩은 멋들어지게 뽑는다.

하지만 2020년 2월부터 창궐한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게 얼어붙었다. 시중에 노래방은 물론 문화예술 스포츠 까지 죄다 냉동상태로 접어들었다.

이대로라면 국민들의 흥은 식어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치 불 꺼진 용광로가 다시 쇳물을 토해놓으려면 쉽지 않듯이 흥을 잃은 국민들의 무거운 침묵은 자칫 우울증이나 낙심의 출발이 될 수 있다.

정부의 방역지침은 그 누구도 아니라할 수 없는 국민건강을 담보로 하는 만큼 이제 노래방문화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나름 어렵다던 2019년은 엄살이 됐다. 어쩌면 올해 대비 2020년도 예고편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깨닫게 됐다.

삼삼오오 모여서 취하고 노래하지 않아도 나름 살아갈 수 있음을, 집 콕이나 혼술 혼 밥도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사람 사는 세상에 환경에 따라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언젠가는 본능적으로 행복할 여지는 남겨둬야 할 것이다.

마치 가뭄이 닥쳐도 명년 농사지을 볍씨는 남겨둬야 하는 것처럼 비록 한파가 매섭지만 봄이 오면 흥을 찾을 여지는 보존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유행하는 미스터 트롯과 미스트롯의 열광은 유튜브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참여는 못하더라도 바라는 볼 수 있는 여흥의 존립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마져 없었다면 얼마나 썰렁하고 막연했을까.

하지만 특정인들에게 집중 조명된 만큼 나머지 대다수는 설자리를 잃었다. 이 또한 코로나19가 가져온 관심의 빈부격차다.

(사)한국연예예술인 총 연합회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무용 가수 연기 등 전국에 약 54,000여명의 회원들의 모든 활동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뿐일까 출연자 1명이면 무대, 조명, 홍보, 등 관계자와 관객들의 3대 요소까지 더할 때 그 무형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사람 사는 건 다 대동소이하다. 각자의 환경이 다르고 성향도 다르지만 마지막 보루는 지켜야한다. 최근 국회는 문화예술 관련 예산을 가차 없이 삭감해 버렸다. 지금 시국에 무슨 공연이냐며 기존에 서있던 예산까지 모조리 코로나19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앞만 보고 옆이나 뒤는 못 보는 근시안적 판단이다. 농사도 그렇지만 모든 분야에는 기반 이라는 게 있다. 서두에 어필했듯 용광로가 식어버리면 재가동에는 몇 배의 시간과 노력과 예산이 소요된다.

작은 불씨라도 남겨두면 곧 돌아올 희망의 봄날에 모두가 활기를 찾고 노래하며 춤출 수 있는 날이 올수 있음에도 오직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형국이다.

문화예술 스포츠 또한 코로나19로 망가진 현실을 감안하여 최후의 방어선은 구축해야 한다. 전쟁이 나서 온 백성이 힘들어도 궁궐은 지켜지듯, 식민지가 되어도 임시정부라도 수립하여 다음을 기약하듯 국민의 행복만큼은 최소한의 예산이라도 세워서 지켜야 한다.

구심점만 보존되면 태풍이 지난 후 어떤 식으로든 재가할 여지가 생길진대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덮어버리면 힘없는 작가나 선수들은 어디에 이 진실을 알리며 누가 지켜줄 것인가.

영원한 겨울이 없고 무한한 봄이 없듯이 돌고 도는 게 세상이치라지만 보이는 눈앞의 현실보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행복도 지켜져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저수지 둑에 금이 붕괴로 이어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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