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현재는 미래의 과거로서 책임이 따른다.
[덕암 칼럼] 현재는 미래의 과거로서 책임이 따른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2.1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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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최근 학교폭력에 대한 미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여자프로배구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에게 15일 무기한 출전정지와 국가대표 자격도 상실됐고 남성 배구 선수 송명근·심경근도 마찬가지로 피해 당사자의 응어리가 가해자들의 성공에 제동을 걸었다.

학폭 가해자는 어떤 분야든 가리지 않고 군중들의 분노를 샀고 꼼짝없이 중도하차하는 결자해지의 모습을 보였다. 이미 성폭력에 대한 미투가 한차례 어두운 과거를 들춰내면서 현재의 모든 언행은 미래의 과거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부족함 없었다.

연예인으로는 TV조선 경연 프로그램 미스트롯2에서 출연해 주목받았던 가수 진달래가 학폭 의혹을 받은 지 하루 만에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중도하차했다. 뿐만 아니라 공직자 입성도 발목을 잡았다. 중학교 때 자신을 괴롭히던 자가 어찌 경찰이 될 수 있냐며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굳이 성공하지 않았더라도 때린 사람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지금상태라면 일명 짱 으로 통하는 학폭의 주인공은 훗날 두고두고 과거의 어두운 흔적이 발목을 잡을 것이고 현재 당하는 학생들은 세월이 지나더라도 꼭 폭로해서 보복을 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그렇다면 과거에 통용되던 폭력이 현재 와서 거론되는 것은 일명 맞은 사람이 다리 뻗고 잔다는 속담과 연결된다. 때린 사람과 맞은 사람의 입장을 들어보면 가해자는 우연히 무심코 손을 댓다가 별 저항 없으면 습관적으로 손찌검을 하며 일명 가학의 재미를 붙이게 된다.

심약한 마음과 양심적 가책을 느끼던 초심에서 사춘기에 느낌직한 영웅심과 약자를 괴롭힘에 따라 우월감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폭력은 미화될 수 없다. 특히 가정폭력과 특수집단인 군대 폭력, 체육계뿐만 아니라 대학 동아리 모임까지 폭력이 난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사이의 폭력이 새삼 들춰내서 그렇지 어제오늘 일일까. 폭력의 형태에도 처음에는 일시적인 분노와 절제부족으로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다가도 주먹으로 발전하고 발길질도 병행되는 것이다.

그다음은 일명 연장을 들게 된다. 각목이나 마대자루면 다행인데 어설픈 영화라도 본 게 있어서 조직폭력배들이 쓰던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나 오 파운드 곡괭이 자루의 성능은 맞는 자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한다.

이렇게 상상 가능한 폭력이 만연하다보면 그 다음은 무차별 폭력이라는 형태로 발전되는데 앞뒤나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맞는 사람의심경이나 형편은 고려하지 않게 된다. 손발과 연장사용은 물론 닥치는 대로 때리다 보면 맞는 사람은 무방비 상태에서 무기력한 자존감 상실을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무차별의 경우 자칫 평생 불구가 되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으므로 더욱 위험한 경우다.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상황도 순응하게 되고 감히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용기조차 잃게 된다.

이러한 것이 때리는 상대방에게 다음 폭력의 연장선장으로 이어갈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게 되고 만약 수직관계라면 반항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왜 바보같이 맞고 사느냐고 말하지만 가정폭력도 학원폭력도 당사자 간에 오도 가도 못하고 직면해야하는 환경이라면 피할 수 없기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청소년의 경우 피해가 번복되면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가하면 자칫 빗나간 우정으로 발전해 맞은 만큼 때리는 역지사지의 보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폭력에 대한 미투가 이어진다면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고도 멀쩡히 교육계의 중책을 맡고 버티는 교사도 폭력 미투의 대상이 되기에는 마찬가지고 군부대 근무시절 학대와 폭력을 휘둘렀던 고참도 사회적으로 출세할 시 인성에 문제를 삼을 수 있다.

그렇다고 덮을 수 있을까. 미투 고유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맞은 자의 정신적 고통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 같은 폭로전은 계속될 것이다. 문제를 제기했으니 대안도 제시해야할 것 아닌가. 학폭 뿐만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한 폭력은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도 나쁘지만 문단속을 허술히 한 사람도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굳이 대안을 논하자면 아닌 건 아니라고 표현해서 매도 한번 맞고 말 일이다. 감독이나 고참이나 선배가 우월적 위치에 있더라도 처음 제대로 대응했더라면 강도가 약해지거나 주춤거리게 되어 있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다시 말해 만만하게 안보는 것이고 순응하면 표적이나 만만한 호구가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한테는 4학년이 하늘같이 대단해 보이는 것이고 일병한테는 병장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처음부터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지키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몫이지 경찰이나 부모의 도움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것이야 말로 훗날 가해자를 덜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자신도 악몽 같은 추억을 갖지 않게 되는 비결이다. 물론 여기에는 솜방망이법과 권력이나 돈을 가진 자들이 지 자식만 감싸고돌거나 가정교육을 잘못시킨 탓도 있지만 사람 패는 걸 쉽게 여기는 자는 어설프게 구속시키지 말고 과거마냥 태형으로 다스려야 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하면 어찌 그리 잘 아느냐고 되묻는다. 양쪽 모두 풍부하게 겪어본 자 말할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건 폭력은 어떤 식으로든 미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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