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침략근성의 DNA는 바뀌지 않는다.
[덕암 칼럼] 침략근성의 DNA는 바뀌지 않는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2.2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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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일본이 독도 영유권주장에 대해 집요하게 졸라댄다.

자기네들 맘대로 이름도 대나무섬이라는 뜻의 다케시마라 짓고 1905년 2월 22일 일본 제국 시마네 현으로 편입 고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00년 뒤인 2005년 1월 14일, 시마네 현 의원들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 안을 제정하여 2월 23일에 현 의회에 상정해 3월 16일 가결했다.

일본은 억지주장을 근거로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이를 제기해서 독도를 영토분쟁지역으로 만들려고 하는 음모인데 오죽하면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천년원수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번에는 차관급 인사를 동원하여 일본열도에 자국이 영토라고 대외적으로 홍보했다.

외교부는 22일 소마 히로히사 총괄공사를 초치해 일본 정부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억지주장에 대해 즉각 항의하고 행사 중단을 경고했지만 보란 듯이 아무 일 없이 밀어붙였다. 일본의 면적은 약 377만㎢로 한반도의 남북한을 합친 것 보다 1.7배나 많으며 인구도 약 12,647만 명으로 남한 인구인 5100만명의 두 배도 넘는다.

백년도 넘은 시공을 초월하여 새삼 영토 확장에 욕심을 부리는 일본의 심경은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걸핏하면 머리에 지진이 나도록 땅이 들썩거리니 어디라도 살 곳이 필요할 텐데 조상 때부터 온갖 나쁜 짓을 골라서 했으니 누가 일본사람을 받아줄 것인가.

반면 한국은 여유 있게 독도 플래시 몹을 통해 온 국민이 신나게 춤추고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서 얼마나 부러울까. 독도, 달라면 주자 대신 지진이 나서 설자리가 없을 때 주겠다는 단서를 달고 18만 평방미터의 면적에 5층 10층으로 쌓아야 1억 2천 만 명이 겨우 설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조아리고 서서 백년 천년 동쪽을 향해 절하고 반성하며 후손들이 그 죄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후손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현재 일본정부가 하는 짓이 하늘에게 지진을 통촉하는 것과 진배없다. 수 천 만 명의 원귀가 내리는 저주를 무슨 수로 막을까.

이럴 때를 알고 가토 가쓰노부 일본 내각부 관방장관이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과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지진을 대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선친들이 지은 죄를 후손들이 어찌할까.

가토 가쓰노부 장관은 1955년생이다 전범시절이면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이고 조상들이 지은 죄를 굳이 대대로 뒤집어 써가며 희생 국가들의 아픈 기억을 후벼 파서 무슨 덕이 될까. 미국이나 러시아나 중국을 상대로 짹소리도 못하면서 대한민국을 만만하게 봐서인지 시도 때도 없이 찝쩍거린다.

모든 자연현상도 우연 같지만 살펴보고 생각해보면 다 이유 있음이다. 새순이 단풍이 되는 것도, 바위가 모래가 되는 것도 세월이 필요하듯 일본 열도가 바다로 침몰하는 것도 유사한 이유다.

비바람 없이 바위가 깎이지 않고 죄 없이 괜스레 땅이 꺼지지 않는다. 티끌만도 못한 과학으로 우주의 섭리와 인과응보의 원리를 무시하는 일본의 미래는 참으로 안타깝다 못해 동정의 가치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축소해서 보자면 조선보다 군사나 문명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는 이유로 침략의 근성을 버리지 못해 발생한 전범의 딱지였다. 이미 한번 저질렀던 범죄 아닌가. 후손들이 재현하려는 욕심은 조상때 부터 침략근성의 DNA가 뼛속 깊이 자리 잡아서다.

전생에 채워지지 못한 땅 욕심이 내세에서 후손들을 앞세워 작은 섬이라도 가져보려는 근본적 본능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들이 일본의 행실에 대해 뭘 알겠는가.

승용차, 술, 담배, 옷, 기계, 문화, 예술까지 죄다 흉내 내지 못해 안달한 일부 국민들이 뭘 알며 까마귀고기 먹은 듯 잊어버린 선친들의 고통을 아련히 들어만 봤지 체감해보지 않는 것이 문제다.

다시 한 번 나라를 뺏기고 더한 고통을 겪어봐야 얼마 남지 않은 삼일절 태극기라도 내걸고 26일을 월차 내서 4박 5일 동안 연휴를 즐기려는 마음이 덜 들 것이다.

필자가 삼일절을 앞두고 이 같이 반일과 독도탐욕에 대해 일갈하는 것은 일본의 욕심보다 내 것의 귀함을 모르는 자국민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무릇 덤비는 자는 상대가 만만할 때 시도하는 것이다.

도둑질도 문단속을 제대로 안하는 집의 담을 넘는 것이지 철통같은 안전장치에 진돗개가 으르렁거리면 감히 마음을 먹지 않는 것이다.

비교해서가 아니라 위로는 러시아나 해양영토가 맞물려 있는 중국한테도 한국처럼 이렇게 들이댈까. 그렇다면 원인은 외교적으로 맞물려 있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국민들의 나라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필자와 같은 원망과 저주를 정부가 같이 할 수 있을까. 입장이나 국가적 결례이므로 마음은 있어도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민간 언론사라도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번이라도 일본으로 건너가 다케시마의 날에 똥물이라도 뿌려본 적이 있던가.

그럴 용기와 애국심이 있었던가. 개다짝과 쪽머리 형상에 불이라도 질러본적이 있던가.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동양 평화 론을 보면 일본에 대한 양국 간의 협력이 상호 발전이라는 논리가 베여있다.

정작 자신은 사형을 당할 입장이면서도 거시적 측면에서 어필한 것이다. 32살의 나이에 국제교류의 상생효과를 논한 것이다. 하지만 반일에 일본국민을 포함하는 것은 그들 또한 자국의 관리가 하는 짓에 묵시적 침묵으로 동조했기 때문이다.

용서도 묵인도 할 수 없는 과거의 개선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몫이다. 이대로라면 후손들에게 참으로 부끄러운 것이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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