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어느 자영업자의 하소연
[덕암 칼럼] 어느 자영업자의 하소연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3.0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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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설치고 8월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말로만 할 게 아니라 미력이나마 실행에 옮길 마음으로 생명존중 전문 강사 과정에 입문하여 소정의 교육을 마쳤다.

한국자살예방센터에서 주관하는 교육은 예상보다 까다롭고 깊이 있는 이론을 요구했고 나름 노력 끝에 정식 자격증과 지사 개소식에 대한 공식 통로를 마련한지 8개월 동안 몇몇 분들의 상담을 진행하면서 어떤 마음과 정성이 필요한 지 체감한 바를 올려본다.

물론 이 짧은 지면에 그동안의 과정을 적시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대체로 공통된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벼랑 끝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경기도 서부지역에 거주하는 40대 중반 최 씨의 사연이다.

창문밖에는 봄꽃이 조금씩 눈을 뜨는 날씨가 이어지던 날, 잠시 소나기인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1년이 지나고 이제나 저제나 하던 거리두기는 고무줄 처럼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니 의사나 정치하는 자들이나 누구 말이 맞는지 구분도 안 간다.

근근이 먹고 살던 문구점은 학생들이 등교 안 해서 그 흔한 볼펜 하나 사러 안 온다. 아내는 밀린 월세 갚는 답시고 식당 나가서 늦게 취한 모습으로 귀가하는 날이 허다하고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은 학교 안 가는 날이 많다보니 PC방이 자기 집이다. 요즘 같을 때 딸 없는 게 천만다행이다.

돈은 없는 데 그놈의 인터넷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가게 문을 닫은 지 5개월째 갈 데도 없고 가봐야 돈도 없어 TV를 켜니 여전히 코로나19 확진자가 380명이란다.

어제랑 비슷하고 300명 후반대나 400명 초반대가 고정적으로 선을 지킨다. 코로나는 참 착한 바이러스인가보다. 텔레비전에서 밤 9시 이전에는 안 나타나고 5명 이상 집합금지 되니 4명까지는 안 나타난다.

명절에도 백화점이나 지하철은 아무리 사람 많아도 안 나타나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한테는 꼭 따라 붙어 괴롭힌다.

더 착한 것은 공중을 붕붕 떠다니는 코로나가 플라스틱 칸막이를 치면 못 넘어가고 마스크를 써야 안 옮겨진다. 코로나19는 놀고 먹는 팔자인가 보다. 걸핏하면 헌팅포차나 PC방, 나이트클럽에 자주 나타난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회를 나갔다. 코로나19 때문에 몇 명 안 나왔지만 졸업한지 30년이 넘어서 만난 덕분에 반가웠다. 근데 한 친구는 식당하고 다른 한 친구는 전철역 앞에서 포장마차 하는데 둘이 싸움이 났다.

먼저 식당 하던 친구가 노점상한테 재난지원금 왜 주며 자기들 돈도 아닌데 생색을 내냐고 입에 침을 튀기며 쌍욕을 하니 가만히 듣고 있던 노점상 포차 친구가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끝내 세금도 안 내는 놈이라고 말해 격분한 그 친구가 술상을 엎어버렸다.

결국 동주민센터에 근무하는 공무원 친구가 조용히 듣고 있다가 슬그머니 나가 버렸다. 군대시절 운전병을 하다 전세버스로 전국을 누비던 친구와 얼마 전 귀농했다고 큰소리치던 친구는 재난지원금에서 제외됐다며 누가 그런 기준을 정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난리를 친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텔레비전에서 광명·시흥 신도시에 평당 5만 원짜리 땅을 사서 묘목을 심고 보상을 몇 십 배나 받을 것이라는 투기성 뉴스에 아나운서는 핏대를 올려가며 성토한다. 순간 욱하며 목구멍에서 욕이 나왔다.

홧김에 죄 없는 주인한테 채널 딴데 돌리라고 소릴 치자 이번에는 19조 8천 억짜리 부산 가덕도 신공항을 예비타당성도 없이 지역주민들한테 의논 한마디 조차없이 보궐선거전에 통과시킨다는 뉴스가 또 나온다.

돈이 지천에 넘쳐 나는가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무원 하는 건데 후회가 된다. 사는 낙이 없다. 택시나 해볼까 하고 전화했더니 사납금 도로 집어 넣는 게 태반이란다. 막노동  이라도 해보려 인력시장 갔더니 외국인 근로자들이 덤핑치는 바람에 한국 노동자는 아예 안받아준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일거리가 없다. 아내와 아들은 전화비 없다고 난리를 친다. 다들 받았다는 재난지원금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다시 인터넷을 뒤졌다. 일자리 창출이나 일자리 안정자금 등 별별 일이 다 있지만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수 십 조원을 퍼부었다는데 대체 누구에게 줬는지 알 수 없다. 날은 어두워지고 평소 자주 가던 마을 뒷산 공터를 찾았다. 온갖 생각 끝에 아버님이 생각났다.

돌아가신지 5년이 지났지만 산재사고로 받은 보상금은 어머니 병원비와 문구점 차리느라 다 써버리고 그나마도 모자라 대출까지 받았으니 이제 회복할 길은 막막하다.

발신정지가 된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내일까지 아들 녀석과 자기 전화비 안 내면 끊긴다며 전기세, 수도세 등 공과금은 어떻게 할 거냐고 난리를 친다.

재작년만 해도 문구점은 그냥저냥 굴러갔다. 학교 교무부장이란 인간이 걸핏하면 뒷돈을 달래서 안 줄 수도 없고 다음 주에는 행정실장이 또 손을 내민다. 그래도 주문만 늘어나면 안 되는 것 보다는 낫다.

사는 게 다 공생 아닐까. 돈 빌릴 데는 없고 신용불량이 되었으니 단전·단수될 집안의 대책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차라리 편히 눈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니 우체통에 쌓인 건 온갖 청구서와 압류예고 통지서뿐이다.

차에 두고 온 담배가 생각나 문을 여니 보닛 앞 유리창에 체납으로 인한 번호판 압수고지서가 붙어있고 매형 명의로 구입한 중고차의 번호판은 이동식 단속차량 카메라에 적발되어 운행이 불가해졌다.

곧 매형에게 독촉 고지서가 날아 갈텐데 안 그래도 불만 가득한 매형의 독설이 들리는 듯하다.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차량키를 꽂으니 뉴스가 들린다.

서울과 부산을 당장 뒤집어 엎을 만큼 대단한 공약들이 한여름 앵앵거리는 매미소리 처럼 시끄럽게 들린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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