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지금의 민주화는 과도기의 희생이 낳은 선물이다
[덕암 칼럼] 지금의 민주화는 과도기의 희생이 낳은 선물이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4.1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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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필자가 육군 말년 병장으로 한창 끗발이 오르던 1987년 4월, 요즘처럼 벚꽃이 눈처럼 날리던 봄날 부대 밖 바깥 세상은 어수선하기 그지 없었다.

부대 내에서는 군중들의 데모를 저지하는 충정훈련을 하느라 군화발로 땅을 구르며 연신 악을 썼지만 국민을 지키라고 세금 모아 사준 총으로 국민을 진압해야 하는 연습이야말로 못 할 짓이었다.

다행히 한 번도 출정을 못 나가고 7월 초여름 산들바람이 부는 날 제대할 수 있었지만 요즘 한창 국제사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미얀마 사태와 다를 바 없는 형국이었다.

1987년 4월 13일 당시 전두환 씨가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개헌 운동과 관련된 논쟁을 종식시키고 기존 헌법을 고수하겠다고 발표한 특별 담화는 국민들의 저항에 불을 붙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앞서 1월에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이 어렵게 세상에 밝혀지면서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위한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고 이는 6월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당시 전두환 씨는 임기가 다 되어감에 따라 정권을 넘겨줬다가는 후환이 두려워 군부독재를 이어갈 계산으로 직선제를 미루는 전략을 구사했다.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 및 대통령 선거를 연내에 실시하고 개헌 논의를 서울 올림픽 대회 뒤로 미루겠다고 밝힘으로써 직선제를 통해 제대로 심판 받자는 민주화의 열망을 중단시키는 의도였다.

이른 바 전두환 정권 당시의 헌법을 지키는 ‘호헌’을 중단하고 군사정권을 타도 하자는 국민적 저항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거리에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자동차 대신 사람들로 도로를 메웠고 이는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종교계를 중심으로 호헌 반대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해 6월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당시 야당과 재야 세력이 결합해 1987년 5월 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고 들불처럼 타오른 민주화의 거센 항변은 노태우의 6·29 선언을 통해 슬그머니 철회됐다.

군사독재시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서빙고 분실로 언제든지 잡혀갈 수 있는 공포의 시절이었다. 온갖 고문은 말할 것도 없이 그렇게 득세하던 정권의 하수인들은 지금도 청산되지 못한 채 피해자들의 원한을 사고 있다.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이 정치를 휘어잡으면서 발생하는 온갖 부작용은 국가발전에 중대한 걸림돌이 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면서 개인의 소유물로 전락했다.

1년 전인 1980년 5월 18일 벌어진 살육의 현장은 누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판단조차 하기 어려운 시절, 버젓이 권력을 연장하려던 꼼수는 국민적 저항에 노태우의 6·29라는 대국민 드라마로 무사히 고비를 넘긴 것이다.

국민들을 얼마나 호구로 보았으면 이런 발상을 했을까. 서슬퍼런 군부독재의 시절에도 민주화의 열망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지독한 고통도 이겨내는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유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당시 무릎 꿇고 손을 비비며 조아렸다면 아마 지금까지 군인들의 철저한 감시 속에 민주화는 남의 나라 일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화의 열망은 강제로 꺾을 수 없음을 미얀마 사태에서도 재현되는 것이다. 과정도 유사하다. 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향후 5년간 재집권을 목전에 둔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의 지도자들과 의원들을 체포하고 민선 정부를 무너뜨렸다.

이런 군부의 쿠데타에 반발하는 미얀마 시민들이 봉기하여 전국적인 시위를 벌이자 군부는 민간인들에게 실탄사격을 함으로써 막대한 인명피해를 발생시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군부의 무자비한 진압에 맨손으로 저항하기에도 벅찬 시민들은 국제사회 개입을 호소하는 한편 자신들도 소수민족 무장반군과 손을 잡고 무장저항을 벌인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작년 11월 8일 실시 된 총선에서 약 8백여 만 명의 선거인 명부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아웅산 수지 정부의 해명을 요구했다.

스스로 쿠데타가 아니라 했지만 국제사회에서 보는 눈길은 그리 곱지 않다. 마치 한국의 군사정부가 탄생할 때와 유사하다.

민주정부가 나라 살림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것이라며 자신들의 군림을 정당화 했지만 그걸 믿어줄 나라는 드물었다. 대한민국이 민주화에 성공한 반면 미얀마의 미래는 하기 나름이다.

성공해서 민주화를 이루든 군부에 져서 공포의 시대로 돌아가든 그들만의 몫이다.

양측의 대립 속에 군부의 배후가 중국이 아니냐는 의문도 꼬리를 물고 있다. 마치 광주민주화 운동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냐는 의문과도 유사하다. 어떤 식이든 총을 든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점 또한 유사하다.

격동하는 시대적 과도기에 애꿎은 국민들의 희생이 전제된다. 이러한 사태가 더 이상 없을까. 아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서든 충분히 발생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지금도 코로나19로 나라의 안녕이 위협받고 있다. 질병으로 출발했지만 가난이라는 과정에 부패라는 분노가 더해지면서 국가 전복은 몰라도 참다 못한 계층의 대규모 집회가 충분히 예상되는 시국이다.

국태민안·태평성대, 그리 어려운 일 아니다. 이렇듯 착한 국민들과 기본만 잘해도 충분히 끌어갈 수 있는 게 우리나라다. 말해 뭐하랴.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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