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잊지말자. 세월호. 기록하자. 세월호
[기자수첩] 잊지말자. 세월호. 기록하자. 세월호
  • 박미경 기자 miorange55@naver.com
  • 승인 2021.04.16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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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기자
▲박미경 기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7년이 지났다. 사건 직후 필자는 현장, 정확히는 팽목항 현장에 갔다.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누구 하나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나인지 친구인지 머리가 긴 여성이 그지없이 아름답기만 한 바다를 향해 하염없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 슬픔이 결코 줄어들지 않았음을 안다. 유가족들과 살아남은 친구들에게 어떤 위로가 도움이 될까? 꽃 피어나는 봄날, 처음 가는 먼 여행에 큰 배를 타고 아이들은 아이답게 설렜겠지.

"언젠가 알았던 아이가/언젠가 몰랐던 아이처럼/멀뚱하게 나를 본다/헤어졌다는 뜻은 /절대로/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뜻/그러니까/그 아이의/푸른 브라운관을/물끄러미 바라보는/단단한 이마를 지닌/단단한 이마를 지닌/옆모습의 아이/다시는 만질 수 없는/바람부는 날의/팔랑개비꽃 피는 언덕 위로/함께 갈 수는 없는/그 북쪽의 무연한/바람 한 점/멀리서 들려오는 /분홍색 살결냄새/한 스푼" (윤백경 시,「봄 바다,파도 그리고 4월 16일」 전문)

강력한 트라우마에 노출된 이의 우울과 슬픔은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 그 숫자는 6명이라고 한다. 적어도 6명은 이전과 같은 삶을 다시는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에어포켓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나돌 때 온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은 삼풍 때의 기억을 생각하며 희망을 걸었다.

소수라도 제 2의 박승현, 유지환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탑승자 전원이 바다 밖으로 살아서는 나오지 못했다.

필자는 세월호 피해자 수습 중에 진도체육관에 가보았다. 나이키 265mm, 회색 필라 100 사이즈 면티 이런 식으로 희생자를 찾는 문구가 A4용지에 적혀있었다. 종이를 바라보는 아직 젊은 아버지의 먹먹한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게 박혀있다.

모두 전원 구조라는 뉴스는 오보였다. 목포 MBC에서 그게 아니다. 거의 전원 사망이다. 라는 연락을 중앙 방송에 여러 번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목포 해경에 근무하는 분의 가족이 SNS에 거의 모두 사망이다,라고 진실을 이야기했으나 댓글 내용을 믿을 수 없었다.

유튜브에 떠도는 생존자의 마지막 목소리와 문자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가만히 있으라고 가서 가만히 선실에서 웅크리고 있던 아이들이었다.

“난 살고 싶다고. 내가 왜 이 나이에 죽어야 하냐고.”
“엄마. 내가 더 쓰지 못할 것 같아 지금 써. 사랑해.”

목포 한국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 K를 비롯한 여러 의료진들의 증언도 있었다. “실려 온 아이들이 손톱이 다 뭉그러졌어요.”

오늘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이하여 세월호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진상 규명이 이뤄지도록 끝까지 챙기겠다고 약속하셨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도록 끝까지 챙기겠다고도 약속했다. 촛불을 통해 우리 손으로 뽑은 우리의 대통령이니 믿어봐야 겠다.

진실을 덮으려는 많은 시도에도 진실은 덮어지지 않았다. 아직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다. 한참 꿈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화양연화 시기의 아이들. 미안하다. 미안하다. 어른들 잘못이다. 용서하지 말아라. 다시 꽃처럼 피어나렴. 잊지 않으마. 잊지 말아라.

역사는 증언하는 자의 몫이라고 했다. 잊지 말아야한다. 증언해야 한다. 기록해야 한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 속죄해야 한다. 속죄 받아야 한다. 신이 있다면 가만히 안 계실 터이다. 비 뿌리는 꾸물꾸물한 하늘을 본다. 속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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