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과 변질의 노하우
배신과 변질의 노하우
  • 원 춘 식 편집국장직대 kmaeil
  • 승인 2008.07.17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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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이 있다. 귀엣말을 잘하는 측근도 마찬가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소곤소곤한 말엔 변질의 독소가 담겨있다고 했다. 퇴임 후 역사의 단죄를 받을 때 그가 한 씁쓸한 독백이다. 쉽게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은 먼저 배신의 행보를 보인다는 경험이다.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는 다양한 배신의 군상(群像)을 낳았다.5년 대통령제의 정권 출범?교체기 때마다 우리의 정치문화는 일그러졌다. 배반과 변심, 보복과 권모술수, 줄타기와 철새로 얼룩졌다. 그런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권력의 변방에서 갑자기 핵심에 들어간다. 그런 뒤 핵심에서 멀어지면 어느 날 반대쪽으로 가 있다. 권력에서 밀려난 게 억울하다는 느낌이 강할수록 배신의 칼날은 날카롭다. 그들은 자신을 진실게임의 주인공으로 믿는다. 지난 김영삼(YS)정권의 12?12 재판 때 권정달씨의 행각이 그런 논란의 사례다. 당시 권씨의 증언은 전씨측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했다. 권씨는 전씨의 과거 하나회 멤버가 아니고 변방에서 신군부의 핵심에 진입했다. 장영자 사건으로 밀려난 뒤 그는 5?6공 내내 찬밥 신세였다. 찬밥의 한이 변절로 표출됐다는 게 전씨 측 의심이다. 반면 권씨는 진실을 증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규선 게이트는 한풀이 폭로극이다. 최씨는 기형적 통로로 권력에 진입했다가 어느 순간 최고 권력자의 신임을 잃었다. 권력 향수, 신임 상실에 대한 뒤틀린 원망은 폭로로 나타났다. 그의 복수욕은 김대중(DJ)정권의 부패를 실감나게 보여준 역설적 공헌을 했다. 배반은 습관성이다. 한번 의리를 저버리면 반복하기 쉽다. 노선?이념은 뒷전인 채 단맛만을 쫓기 때문이다. DJ정권은 출범 때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에 입당한 의원 중 일부는 사무총장?장관을 맡아 으스댔다. 정권의 힘이 떨어진 지금 그들은 새로운 권력의 단맛을 찾아 탈당에 앞장선다. 배신은 과대포장 된 인물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판을 흔드는 거사를 즐겨 모색한다. 그러나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한 탓에 그 행각은 스스로의 함정이 돼 버린다. 전두환씨, 노태우씨 두 전직 대통령이 건국 이래 처음으로 검찰에 의해 구속 실형을 받고 복역 중에 특사로 출감했다. 당사자는 말 할 것도 없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도 부끄럽고 참담했었다. 그 당시 외국의 유력 시사주간지는 「한국의 수치」라는 제목으로 노태우 사진을 표지에 실리기까지 했다. 전(全)씨, 노(盧)씨는 연희동 집을 떠나 검찰에 구속되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저지른 비리에 대한 참희였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비리와 비자금 계좌를 발설한 「심복」에 대한 배신감이었을까. 물론 동양적인 의리(義理)전통에 비추어 본다면 자신이 받들어 모시던 사람의 비리를 폭로한 아랫사람에게도 분명 문제는 있다. 그러나 너무 쉽게 믿는 도끼에 발등을 보여 준 윗사람에게도 문제는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면 누가 감히 그 발등을 찍겠다는 생각을 했겠는가. 믿는 도끼를 믿지 말라는 것이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처세술(處世術)이지만 처음부터 발등 찍힐 허점을 만들지 않는 것은 더욱 값진 섭세(涉世)의 슬기인 것이다. 음모와 보복의 정치는 배신과 변절을 키운다. 신뢰와 믿음의 정치를 되살리는 것은 원칙과 정도(正道)의 리더십만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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