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누가 나와 나라를 바꿀 수 있을까
[덕암 칼럼] 누가 나와 나라를 바꿀 수 있을까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6.07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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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인데 하늘 위와 아래에 내가 있어야 모든 게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자신의 중요성을 의미하며 자신이 있어야 가족과 이웃과 세상과 우주가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하지만 지난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보면 그런 말이 쑥 들어간다.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애국지사는 물론 전쟁터에서 고지전을 벌이며 과연 어떤 마음으로 그 귀한 자신보다 나라를 우선시 할 수 있었을까. 과연 지금의 우리네 세대들도 얼마나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현재 대한민국은 동남아시아 주변 국가들을 한국보다 후진국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과연 그럴까. 한국전쟁 전만 해도 우리보다 더 잘 사는 나라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북한도 남한보다 더 경제력이 우월했다.

하루아침에 이렇듯 모든 분야에서 강대국과 어깨를 견주게 된 것은 아닐진대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오만과 거만이 하늘을 찌르고 언제부터 복지가 그렇게 잘 되었다고 일하는 국민보다는 머리 잘 쓰는 사람, 요령껏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사회가 되었다.

공직사회에서 정보나 빼서 요리조리 부동산 투기나 잘 하고 주식이나 가상화폐의 일확천금에 미래를 거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을까. 이러라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지켰던가. 어찌 찾은 나라이며 자유인가. 미국의 원폭덕분에 덤으로 얻은 광복이었다.

한국군이 벼르고 있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항복한 건 원폭이었고 자유 또한 숱한 최루탄을 마셔가며 군사독재에 엄청난 희생의 대가로 얻은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필자 또한 1988년 탄광 지대의 석탄 합리화 사업에 반대하며 민주시민회의 선봉에 섰다가 서슬퍼런 보안대 형사들로부터 협박과 곤욕을 치르며 태백 땅을 등진 과거가 있었다.

그렇게 모든 분야에서 모종의 수업료를 치르고 얻은 국가이자 주권회복이었다. 하지만 영·호남으로 분리되고 꼰대세대와 젊은층으로 구분되며, 여성평등이라는 명분으로 진정한 여성의 가치가 추락하며, 당초 자유가 이념 갈등의 소재로 변질되는 세상이 되고 말았던가.

견해 차이가 국론의 원인이 아니라 정치권의 입맛에 따라 언론이 여론을 조성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호국보훈의 달, 모두가 알고 있는 현충일이 일요일과 겹쳐서 아깝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쩌면 저렇게 철이 없을까 싶다.

오늘 하루만 태극기 앞에 고개 숙이고 기자들이 사진 찍어 홍보하면 애국자일까.

전몰군경 유족이나 경제적으로 가난을 대물림하는 애국지사들의 후손들에게 소리 없이 방문하여 손 한번 잡아주고 적은 돈 이나마 지갑을 털어준 것이 있던가.

그 많은 예산 중 애국하면 가난이 3대라는 말이라도 헛소리임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까. 군기와 인권은 양날의 칼이다.

요즘 군대 좋아졌다고 한다. 필자가 1986년 육군 병장 근무시절만 해도 말끝마다 통신보안 하던 연락망이 요즘은 개별적으로 휴대폰을 사용하고 상급자가 까라면 쪹으로 밤송이도 까야 한다는 군대는 사라졌다.

과연 그럴까. 인권보장이라는 명분으로 엄격해야할 군기만 사라지진 않았을까.

최근 군인들의 식사 내용물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한 번씩 터지는 군부대 비리를 보면서 향후 이 나라에 국난이 닥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우려된다.

그 많은 국방비 중 일선에서 총을 들고 지켜야할 군인들이 식사, 군량미가 허술한데 무슨 애국심과 전투력 향상을 기대할 것인가. 자주국방, 내 나라를 내가 지킨다? 우리영공, 우리바다, 우리 땅을 우리가 지킨다? 군 통수권자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며 미 연합 합동사령부의 지침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데 전쟁이 난다면 과연 어느 국가가 적국이 될까. 72년 전처럼 북한이 주적일까. 아니면 중국일까. 일본일까. 한미합동훈련이나 대부분의 군 전략전술은 북한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그동안 국난의 위기에 따라 희생된 군인들을 위해 국민과 국가는 얼마나 기억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가. 얼마나 정치 흐름에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언론의 장단에 국민들이 춤을 춘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흔히들 세월호 참사와 천안함을 비교하기도하고 오랜 경력의 장군도 공관병의 제보로 하루아침에 별똥별이 되는 현실이다. 잘잘못을 떠나 언론은 여론을 이끌고 여론은 곧 절차나 검증 없이 정의가 된다.

최근 충남 서산의 공군 20전투비행단에 근무하던 女중사가 극단적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지난 4일 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이 물러났다.

일선 경찰관이 사고를 쳐도 경찰청장이 같은 지휘 책임이 따르지만 자칫 방치했다가는 여성단체와 국민 여론이 돌풍같이 일어날 것이 우려되니까 대통령도 분노를 감추지 않고 6일 오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차려진 이모 중사의 추모소를 방문했다.

잘못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여론이 무서워 윗선부터 정리된다면 그만한 인재가 사라진 만큼 신성한 국방의 지휘능력에 대한 공백은 어쩔 것인가.

만약 공군 참모총장이 옷을 벗어도 군 전략에 별 차질이 없다면 처음부터 있으나마나 한 이른바 똥별이란 결과 밖에 더 되는가.

더 가혹한 절차와 징계를 내리더라도 일시적인 민심달래기로 비춰질 수 있다. 공군 파일럿 한 명을 육성하려면 경전투기 1대 사오는 비용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전 세계의 어떤 공군이든 공군 장성의 절대 다수는 조종사 경력자다. 전투기 기종 전방석 출신이어야 장성 진급이 될 확률이 높아지고 대한민국 공군의 중장급 이상은 모두 포함된다.

별 4개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개인의 영광보다 국방의 역할이 더 컷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천분의 일이라도 성 범죄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안에 대한 방법이 일회성 난리보다 효율적인 매뉴얼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공군 女중사의 이번 사건 피해 내용만 돌이켜 보더라도 얼마나 성범죄에 대한 관리와 허술함이 많았는지 개선의 여지가 상당하다.

이러한 환경을 방치해 두고 장군 하나 날린다고 달라질까. 아니다. 소나기만 피해갈 뿐 상대적으로 추락하는 군인들의 사기 저하는 일단 유사시 전쟁에 나설 의지를 꺾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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