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의 기자수첩] 아름다운 사람 하나
[박미경의 기자수첩] 아름다운 사람 하나
  • 박미경 기자 miorange55@naver.com
  • 승인 2021.06.1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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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기자
▲박미경 기자

(경인매일=박미경기자) 어떤 사람은 죽어서 더 조명을 받고 더 유명세를 타는 경우가 있다. 고정희 시인이 그런 경우이다.

30년 전 6월 9일은 고정희 시인이 작고한 날이다. 고정희 시인은 「실락원 기행」「초혼제」「지리산의 봄」 등 시집을 통해 우리나라 여성주의 문학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었으며,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과 ‘또 하나의 문화’ 동인 활동 등을 통해 198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나타난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여성시인이다.

지난 6일에 여성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고정희 시인의 묘소를 찾았다. 고정희 시인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정희 기념사업회의 고정희 문화제에 김경윤 시인의 초청으로 시를 낭송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면 눈온 날 아침/엄마,아빠가 나란히 손을 잡고 죽어있는 꿈/형제들이 모든 부모를 놔두고 보석들이 장치되어 있는/모모랜드 안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가는 꿈/아무리 칭얼대며 보채도 아주 편안하게 누워있는 꿈처럼/세상을 다 잃은 듯이 울지만/결코 눈물처럼은 아닌 흰 색의 투명의.”(윤백경 시,「꼭 눈물처럼은 아닌」,『이따금 푸른 기별』,시와 에세이,2020 중에서)천재는 미래를 예견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강신무(降神舞)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천재이다. 30년 전에 작고한 고정희 시인의 시를 보면 지금의 현실을 묘파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고정희 시인이 쓴 ‘한국 성폭력 상담소 탄생에 부쳐’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시를 보면 지금의 상황을 적확하게 묘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피맺힌 팔자들이 운명의 가시를 털고/늠름한 숲으로 돌아오는 세상/순결 정절 형틀에 불길 확 끼얹어/풀잎으로 풀잎으로 파도치게 하는 세상/각자 자존의 깃발/각자 목숨의 깃발/창공 끝간데까지 나부끼는 세상/그런 살맛나는 세상을 위하여/새로 태어나는 딸의 머리 위에/축복의 향유를 붓고/새로 출발하는 신부의 발걸음에/자유의 꽃다발 평등의 꽃다발을 바치는/그런 살맛나는 세상으로 가기 위하여.“(고정희,「살맛나는 세상을 위한 풀잎들의 시편」 부분) 사실 고정희 시인처럼 그 엄혹한 시절에 여성억압의 역사를 그린 여성시인은 없었다.

바로 옆동네에 남자 시인인 김남주 시인이 여성 고문을 시로 증언했다. 공교롭게도 두 시인이 모두 땅끝마을 해남출신인 점이 경이롭다. 김남주 시인의 생가는 게스트하우스로도 활용되고 있어 시인은 사후에도 후배들에게 베풀고 계시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정희 시인의 사후 30주년이 되는 올해는 6월과 7월에 거쳐 고인의 유품전시행사와 포엠콘서트,시그림전이 열린다. 6월 6일에는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는 고정희 생가 바로 옆에 있는 고정희 시인의 무덤 앞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의식을 치렀다.

고인의 친구라고 밝힌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와 이경자 소설가는 이틀 연속해서 고인을 기억하며 이야기하고 친구의 무덤에 술을 따랐다. 여성억압의 역사를 학자로서 소설가로서 말하던 두 분의 30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우정은 감동적이었다. 문학동네에서 시집출간을 담당하는 김민정 시인은 문학동네에서 복간된 시인의 첫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를 들고 왔다.

사람은 물리적인 죽음이 있고나서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 비로소 죽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정희 시인은 행복한 시인이다.

고정희 시인은 안산 예술인 아파트에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아마 살아계셨다면 세월호 진실 규명을 목놓아 외치시지 않았을까 싶다.

대도시의 많은 유명한 시인들이 제대로 된 예우를 못 받고 있는 현실에서 해남의 고시인은 한편으로는 부러움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사석에서 이원화 작가는 그러니까 제자를 잘 키워해요,라고 말했지만 스승도 스승 나름이고 친구도 친구 나름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 정치권은 매우 뜨겁다. 당대표를 뽑는 MBC 「백분토론」은 패널들의 설전에 예상치 못한 높은 시청률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누가 진정성을 가지고 우리 국민을 보다 행복하고 억울하지 않은 세상으로 이끌 것인지 불안하고 궁금하다.

양대 정당의 당대표가 결정이 되었다. 토론에 능한 30대 당대표라는 낯선 현상을 대중들은 각각의 잣대를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 나라 정치가 모두가 더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물꼬를 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엘리트건 비엘리트건 부자이건 빈자(貧者)이건 누구에게도 평등한 소중한 한 표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끝까지 잘 지켜볼 예정이다.

우리는 ‘살맛나는 세상’을 원하는 여리고 힘이 없지만 바람이 불면 더 빨리 몸을 낮추어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이 멈추면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날 줄 하는 풀잎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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