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편리함의 끝은 불편함이다
[덕암 칼럼] 편리함의 끝은 불편함이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8.12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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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물질문명의 발달이 가져오는 장점이 자칫 인류 스스로를 자멸시키는 폐단으로 돌아올 수 있다.

출발은 편리함이지만 도착은 비만과 나태와 생물학적 퇴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당초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연구했던 일들이 서양의 문물이 아무 검증되지 않고 유입되면서 한국인 특유의 정서는 속수무책 문명의 편리함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너도나도 모여 동네 전체를 빗자루로 쓸며 안부도 물어보던 시절에서 쓰레기봉투의 유료화와 음식물·재활용·일반 쓰레기로 분류되며 수거차량이 다니자 하루아침에 아침 풍경은 변해버렸다.

내 집 문안에만 깨끗하면 되는 세상이 오고 연탄재 버리던 일도 없어지니 이제 편리함은 빠른 속도로 일상생활에도 확산되었다.

도심에서 전동차와 엘리베이터의 자동문이 열리고 닫힐 무렵 시골 동네에서도 양동이로 날라 먹던 공동우물이나 공동수도가 사라졌다.

밤새 일어나는 모든 정보를 들을 수 있었던 우물방송국(?)은 문을 닫았고 집집마다 수도만 틀면 밤낮없이 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사라진 두 가지의 문화는 새로운 변화의 신호탄에 불과했다. 현관에 얼쩡거리기만 해도 불이 켜지는 센서, 평생을 양복 만드는 일에만 몰두하여 가업으로 물려주려던 양복점 사장과 구두 제작에는 최고의 자부심이 가득하던 신발수선 가게, 미세한 고리를 연결하여 장인정신 운운하던 액세서리 기능공 등 많은 분야의 전문가와 장인들이 하나 둘씩 대량생산의 기성품 출시에 실직했다.

6층까지도 당연히 걸어 다녔던 건물구조에 3층에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으면 입주가 안 되는 세상으로 변했고 그렇게 편리함을 일변도로 추구하다 보니 아랫배가 나왔느니 비만으로 살 빼기 위해 헬스클럽을 다녀야 하느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건물 밖에 나와도 사람 대신 기계가 역할을 하기에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공원을 가거나 다중이용시설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최신 자판기는 이제 일상이 됐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생소하던 매장 내 자동판매기의 범위는 점차 확장되어 햄버거 매장과 고속도로 휴게소의 음식점까지 늘어났으며 동네 세탁소와 인형뽑기 매장은 물론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 잡화점부터 아이스크림 무인 판매소까지 점차 빠른 속도로 파고 들고 있다.

특히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면 통행요금을 내야하는 고속도로 요금징수 창구가 하이패스 센서로 정차없이 통과되는가 하면 주유를 위해 주유소를 가도 셀프 주유라는 시설로 주유를 해주는 직원 구경하기가 힘들다.

앞으로 자율주행시스템이 기업들의 막대한 투자와 행정기관의 협조로 점차 현실화 되고 있다.

이제 얼마 후면 사람이 어떻게 직접 차를 운전하고 다녔을까 하는 시대가 돌입할 것이고 주로 구인직종에 단골 메뉴이던 요식업조차 사람 대신 로봇이 설치는 세상에 도래할 것이다.

실제 서울의 일부 식당에서는 분식집 메뉴에 해당되는 떡볶이·김밥은 물론 순대에 어묵까지 로봇이 제조하고 설거지까지 식기세척기로 이동시킨 로봇이 마무리한다.

맛도 일관적이고 위생적이라 고객들의 평가에 호응이 좋아 다른 식당에서도 곧 동참할 태세다.

코로나19로 인한 1인 1가구가 주를 이루자 배달중심의 음식이 가져온 변화중 하나인데 로봇 요리사는 급증하는 만큼 시장성 규모도 약 390조에 이를 만큼 천문학적이다.

음식점은 재료, 인건비, 임대료가 주를 이루는데 이중 4대 보험은 물론 예상 밖의 불규칙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로봇이야 말로 인기가 오를 수 밖에 없다.

일부 메뉴는 사람이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차질없이 조리를 하는가 하면 고객들이 길들여진 입맛을 차질없이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근로자 지위와 복지를 주장하던 사회적 분위기가 점차 바뀌는 형국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폐단을 공감하게 된다. 하나는 편리함을 도모하다 불편해진 모든 것들과 자동화가 가져온 직종의 변화, 그리고 줄어든 일자리와 하나 둘씩 기계에게 밥그릇을 내주어야 하는 참담한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정부가 최저임금 상승과 최저 근무시간 주 52시간제를 법제화하면서 근로자들의 참세상이 온 것처럼 홍보한다.

과연 그럴까. 줄어든 근무시간 대비 늘어난 임금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어느 경영주나 사업자가 적자 행진을 하면서 제때 급여를 줄 수 있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일할 수 있을까.

일이란 게 어려운 일은 급여를 많이 주어야 하고 가볍고 쉬운 일은 적게 받는 게 당연한 것이다.

수요와 공급은 시장자유 경쟁체제에 그냥 두었더라도 자연스레 자리 잡을 일이었는데 이를 정부가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다 보니 돈 더 받아주고 일 덜 시킨다는데 싫어할 근로자가 어디 있으며 그렇게 해준다고 같이 덩달아 춤추면 실제 돈줄 당사자들이 가만 있을 리 없으니 당연히 성가시고 말 많은 사람보다 초기 투자는 조금 들더라도 기계나 로봇을 사용하는 게 훨씬 속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밀려난 실업자들의 갈 곳까지 처음부터 부추겼던 정부가 책임져 줄까. 천만의 말씀이다.

기껏 부채질해 놓고 막상 시끄러워지면 엉뚱한 예산 퍼부으며 일자리 창출이니 별별 해괴망측한 구상을 다 해서 추가로 공무원 자리를 만드는데 연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는 게 어려워지고 직접 할 수 있는 일도 안 하게 되면서 실질적인 사용법이나 물리적 능력은 소멸된다.

진정 공정하고 정의롭고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근시안적 정책으로 당장에 안위나 공감보다 멀리 내다보고 국민을 위하는 중·장기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참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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