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의 기자수첩] 어떻게 이룩한 독립인데···
[박미경의 기자수첩] 어떻게 이룩한 독립인데···
  • 박미경 기자 miorange55@naver.com
  • 승인 2021.08.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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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기자
▲박미경 기자

화성 ‘제암리 3.1 운동순국기념관’에서 제암리 학살 사건을 기억하자는 의미의 [읻따] 전이 열리고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그들이 있고, 우리가 잇다’라는 부제가 달린 [읻따] 전시회는 내년 삼 월까지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멀리서 보아도 너무도 평화로운 마을이라고 느껴졌다. 화성에서도 3.1 독립 만세 운동에 못지 않은 격렬한 저항운동이 있었다.

1919년 4월 15일 일제는 화성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나는 만세운동을 총칼로 제압하다가 자국 순사부장도 피살되는 결과를 맞는다. 이에 일제는 아리타도시오 중위를 필두로 잔혹한 살해계획을 세운다. 이들 일당의 총과 칼에 의해서 희생된 이들이 이들은 제암교회에서 23분, 그리고 고주리에서 6분. 총 29분의 순국열사가 발생하였다.

제암교회 안에서 순국하신 분들이 대부분 젊은 남자라서 29분 중에서 15분의 대가 끊기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살아남은 유족들은 일본이 지배하는 기간 동안 요시찰 인물로 박해를 받았다.

5.18 사건을 전세계에 알린 기자 힌츠페터가 있다면 제암리, 고주리 사건을 알린 외국인으로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가 있다. 그는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이 일어난 이틀 뒤인 1919년 4월 17일에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놀란 마음으로 수원역까지 기차를 타고 오고 제암리 현장까지 검문을 피하기 위해서 자전거로 왔다. 그리고 시체가 나뒹굴고 타는 냄새가 진동하고 혈족과 잃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렌즈에 담았다. 당시의 상황을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을 외관은 너무나 황량했다.

집이라곤 8호 정도만 남아있었고, 나머지 31호 정도의 집과 교회 건물은 모두 불에 타 잿더미가 된 상태였다. 도대체 이 마을 주민들은 어떤 짓을 했기에 이렇게 끔찍한 심판이 그들을 엄습했단 말인가? 이 마을 주민들은 왜 하루 아침에 미망인이 되어야 하고, 그들의 어린 자녀들은 고아가 되어야 하는가?” 그는 이 사건을 전 세계로 알리고 이후 영구 귀국했다. 그리고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국립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묻혔다.

제암리 사건으로 남편을 잃고 평생에 묻은 한을 담은 책이 있다. 바로 순국열사 안진순님의 처 전동례님의 구술기록을 담은「두렁바위에 흐르는 눈물」이다. 해방이 되고 나서 3.1 독립운동추모비가 1946년에 제암리 마을 입구에 가 세워졌다.

뒤엉켜지고 불태워진 유골들은 현장에서 4Km 떨어진 도이리 공동묘지에 아무렇게나 매장되었고, 유골 발굴 사업은 2002년에서야 이루어다. 당시에 외신들의 여론이 좋지 않자 행동대장인 도리타마시요에 대한 재판이 1919년 8월에 이루어졌다.

‘범죄는 인정되나 형법에 규정된 범죄가 아니다’라는 판결이 나와 무죄로 판명되고 이후 유족들은 아무 배상도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 아마 이들의 시간은 그때 그 시간으로 멈추어있을 것이다.

기념관을 나와 고주리학살터를 찾아보았다. 제암리교회에서의 학살이 끝나자마자 일본 경찰들은 바로 고주리로 넘어갔다. 고주리 주민들은 이웃마을 제암리에서의 학살 소식을 알고 있었기에 대부분 피신한 상태였다.

통정대부의 벼슬을 했던 집안인 김흥열 일가는 ‘내가 죄가 없는데 무슨 일이 있겠느냐?’며 집에 있었고, 6분이 몸이 산 채로 여섯 조각으로 찢어지는 결과를 맞았다. 표지판을 보고 물어물어 찾아간 장소에는 개인 소유의 비닐하우스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자꾸 묻고 찾아오고 함이 귀찮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국가적으로 너무 무심하지 않은가 싶었다.

다행히 화성시에서 「화성독립운동연구」, 「화성시 3.1운동사」등의 연구서를 출간하였고, ‘화성독립운동기념노래’(김명철 작사,김창기작곡)도 제작되어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다. 31km에 이르는 ‘화성만세길’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실지로 찾아서 걷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정신대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힘이 약해서 겪어야 했던 진실을 망각하는 국가를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고주리 순국선열운동가의 후손인 김연목님의 글과 박찬세 시인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자꾸 잊혀져 가잖아. 자꾸 세대가 바뀌면, 내일모레 또 바뀌면 잊혀져가고 …… 자꾸 더 잊혀져가니까 안타까운 거지. 크게 바라는 것도 아닌데 ……”  (김연목님의 글)

“3.1 만세운동 100주년 / 태극기를 흔들다 일본 순사 칼에 잘려진 /변씨의 팔이 돋아난다./돋아난 팔이 태극기를 잡고 흔든다.‘봄바람을 타고 넘실거리는 만세소리/살다 갔고 살아가고 있다/ 같은 듯 다른 얼굴로 한자리에서”(박찬세 시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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