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말 없는 땅에 주인만 바뀐다
[덕암 칼럼] 말 없는 땅에 주인만 바뀐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09.16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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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얼마전 수도권 중에서도 꽤나 괜찮은 땅에 동물농장이 생겼다. 얼핏 봐도 약 2만평 규모의 넓이에 푸른 잔디가 깔린 운동장은 물론 각종 유실수까지 심어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한 가운데는 자그마한 연못에 정자까지 갖춰져 머물고 싶은 욕심이 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좋은 장소에 얽힌 내막을 듣고 나니 한시도 앉아 있기 싫었는데 사연인즉, 일제 강점기시대 일본인의 소유였다가 광복 이후 함께 살던 머슴한테 일시적으로 등기해 놓은 걸 지금까지 보관하다가 졸지에 주인이 된 땅이었다.

대충 계산해도 1천억은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땅이 땅은 말이 없고 주인은 바뀌었으니 등기부 등본에 올라간 지주만이 부동산가치를 누리며 호의호식 하는 게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불과 십 수년 전에도 모 씨가 도시개발계획을 미리 빼내 수 만평의 토지를 구입했다가 말썽이 날것을 우려해 차명으로 등기했다가 통째로 날린 사건이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진짜 토지주는 분노와 스트레스로 세상을 떠났지만 맡겨둔 땅으로 주인이 된 토지주는 최근 정부의 신도시 개발계획 발표로 대박을 치게 생겼으니 세상사 누가 앞일을 알 수 있을까.

요즘처럼 친족이 줄어들고 사람은 늙을 수밖에 없으니 상속인도 없는 땅이 임자를 찾지 못해 국고로 귀속되는 사례가 속출한다.

일제 잔재뿐만 아니라 문중으로 된 공동명의, 썰물 때 나타났다가 밀물 때 사라지는 땅, 공동 등기했다가 한쪽이 사망해서 상속자도 모르게 처분되는 땅, 관리인이 졸지에 주인이 되는 등 땅은 가만있는데 사람이 온갖 오두방정을 다 떤다.

전 국토를 뒤져보면 주인없이 방치된 첩첩산중의 땅부터 언제 개발계획에 포함되어 사람팔자를 바꾸는 로또가 될지 모르는 게 땅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상황이 다르다. 대충 내 땅으로 만들던 시대는 끝났다. 물론 해먹으려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등기부를 언제 어디서든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제1회 디지털 지적의 날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전국 지자체, 국토정보공사, 민간업체에서 우수사례의 경진대회를 가진 결과 총 761건의 사례가 접수되어 사전심사를 통과한 3개 분야 12편의 우수사례가 발표된 날이다.

지적재조사사업을 통해 구축되는 디지털 지적정보는 토지소유권 보호, 국토의 효율적인 관리뿐만 아니라, 국토 디지털화로 한국판 뉴딜 정책을 실현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지적의 날은 일제 강점기때 등록된 지적공부를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디지털화 하는 지적재조사사업을 기념하기 위해 2011년 9월 16일 지적재조사특별법 제정일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주최하고 한국국토정보공사가 주관한 이날은 향후 점점 더 밝아지는 국토정보가 디지털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운 좋게 서류장난으로 주인 없는 땅을 슬쩍하는 사기꾼들의 지난 시대는 봄날이었다. 평생 땅 한 평 가져보지 못한 일반 서민들이야 굳이 관심가질 이유가 없겠지만 광활한 한반도의 구석을 뒤져보면 보물 같이 귀한 명당도 있을 것이고 지하수를 개발하다 온천이 나올 수도 있다.

뿐인가 강원도 모 토지주는 평범한 산을 절토하다 게르마늄 광산을 개발하기도 했다. 어설픈 필자가 아는 것만도 이정도니 일반인들이 모르는 갯벌이나 섬, 해양, 광맥 등 재산가치의 척도는 찾아볼수록 무궁하다.

사람의 수명이 30살은 되어야 사회생활에 정착할 것이고 80살이면 끝난다고 봤을 때 한껏 설쳐봐야 50년이다.

5천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반도의 털끝도 겨우 건드리다 죽을 단명의 인간이 계획하는 걸 다 이루자면 수명이 천년은 돼야 할 것 같다. 죽어라 욕심을 내지만 결국 한 평도 못 가져갈 땅에 죽어라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건 땅이 거짓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구려, 조선의 토지주가 대대로 물려준 땅으로 현재의 후손들이 두고두고 잘사는 건 재물이야 빼앗기고 없고 집이야 불타고 없을 수 있지만 오도가도 못할 땅이야 말로 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갈수록 밝아지고 있다. 언젠가부터 땅보다 건물이 부동산 가치를 높이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10 마지기 논보다 30평짜리 아파트가 더 값이 나가고 5천평짜리 과수원보다 50평짜리 상가가 더 중요해지는 부동산가치의 변화가 대지 지분보다 건물지분을 중요하게 하고 있다.

땅의 바닥보다 땅위의 건물이 중요해 지는 건 이용하는 사람들의 가치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갈수록 도·농간의 격차가 심해지는 작금의 현실을 볼 때 이번 제1회 디지털 지적의 날을 기준으로 불모지를 활용할 방안도 찾아내어 말만 번지르르한 국토균형발전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행정 능력을 기대해본다. 수도권 집중으로 지방도시의 사막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번 제정에 필요한 행정력과 예산이 또 하나의 낭비사례가 되지 않도록 현실적이고 효율성 있는 정책이길 바란다.

지금까지 그럴듯하게 내밀었다가 슬그머니 사라진 정책이 한둘이었던가. 아니면 말고 식의 낭비보다 어차피 판 벌인 거 잘 되길 바란다.

코로나19 이후 실업자 양산은 물론 귀농에 대한 꿈은 있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에게 디지털 지적 재조사가 어떤 역할을 할지 신중히 검토해 본다면 이 또한 묘안이 아닐까. 자연으로 돌아가 초야에 묻혀 사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가겠지만 있는 동안이라도 마음고생 덜하며 자연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 국가가 국민에게 해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노력이자 성과가 될 수 있다. 물론 하기 나름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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