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년”에 대한 “직무유기”와 “소년 정책 실패”, “장 자크 루소(Rousseau)”의 유언과 소파 방정환 선생의 “경고”!!
[사설] “소년”에 대한 “직무유기”와 “소년 정책 실패”, “장 자크 루소(Rousseau)”의 유언과 소파 방정환 선생의 “경고”!!
  • 이찬엽 논설위원 pinetree0516@hanmail.net
  • 승인 2021.10.18 15: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찬엽 논설위원
▲이찬엽 논설위원

“소년”에 대한 “사랑”이 식어 가고 있고, “소년만은 내가 꼭 지켜주어야겠다”는 “간절함”이 상실되고 있다. 최남선의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도 더 이상 신선하지 않고, 방정환의 “어린이날”도 이젠 점점 잊히어지고 있다.

남한의 소년은, “정치게임의 희생양”이 되었고, 북한의 소년은, “김형직 후손”과 군부의 “군사게임의 볼모”가 되었다.

여기서, 소년은 19세 미만의 어린 사람을 말하며, 청소년(靑少年)은 어린이와 청년의 중간 시기로서, 청소년보호법에서는 19세 미만자(13세~18세)를 지칭하고, 청소년기본법에는 9세∼24세의 사람을 뜻한다.

어린이는, 일반적으로, 영유아기 이후(4, 5세)∼사춘기(13세) 전까지의 사람을 말하지만, 아동복지법, 한부모가족지원법, UN 아동권리협약에서는 18세 미만인 자가 이에 해당한다.

즉, 소년과 청소년, 어린이의 연령대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경찰이나 검찰, 법원이 어떠한 법을 적용하는가에 따라 유죄냐 무죄냐가 갈린다!! 유동적이다!! 그러나, 소년들이여! 법을 떠나, 그대들을 지켜 줄 “호인들”은 한국에 즐비하고, “색동회”의 “수많은 방정환”이 존재함을 믿어달라!!

그런데, 사회구성원들은, 소년과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피와 땀을 쏟는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상당수의 청소년들은, 노인을 “적대시”하고, 폭력을 일삼고, 술과 담배를 하며, 동료들에게 풍속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그런데, 이를 억제하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면, “얻어터져”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최근 이러한 “이중적인 행태”에 대하여,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여론이 높다. 원인은, 황금만능주의와 무관심에서 비롯되었고, 소년법의 역사를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되었으며, “사회연대의 느슨함”에서 시작되었다!! 소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환경”이 문제였고, “정부 정책의 실패”가 문제였다!!

소년에 대하여는 “국가가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하며, “보호자의 태도”를 견지해야 하며, 사회가 “선생님”처럼 강요 없이 “목적 지향적”으로 대해야 하고, “하나님과 석가모니”처럼 사랑과 자비로써 포용해야 한다.

특히, 한국처럼, 태어나면서 “분단국가”가 고향이고, 팔자에도 없는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고통과, 굵직한 재산 하나 없는 것이 대부분이고, 무한경쟁 그리고, “빈부 양극화”를 부지불식간에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능력의 차이가 고착화 된 이후가 되는 국가에서는, 남다른 “배려와 관심”이 요구된다!!

특히, 경제의 악화와 사회유대감이 상실되면서, 최근 들어, 청소년들에 대한 무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가진 것이 없어도 패기 있게 앞날을 설계해야 할 청소년들이, 현실의 처참한 장벽 앞에 희생양이 되어버린 현실, 이를 감싸지 않고 수수방관하는 성인들을 생각해 볼 때,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하다. 전방초소 허물 듯 소년에 대한 방어“초소”인 “소년법”도 허물려 한다!!

연관하여, 영국에서 벌어진 사례를 들자면, 영국에 살던 “토마스 그리피스(17세)”는 2019년 어느 봄날, “엘리”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사귐을 청하였다.

그러나, 엘리스는, 이를 거절했고, 이에 모멸감을 느낀 토마스 그리피스는 급소를 흉기로 10회 찔러 엘리를 살해하고 만다. 이에 영국 소년법원은, 징역 12년 6월을 선고했다. “마그나카르타”로 유명한 영국에서는, 엄청난 형벌을 받은 것이다.

태국이나 아프가니스탄, 인도, 부탄 등에서는 만7세 이상이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고, 반면,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룩셈부르크 등은 만18세, 영국과 호주는 만10세, 그밖의 대다수 국가들(대만, 독일, 한국, 일본, 오스트리아 등)은 만14세가 되어야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

호주 같은 경우는 무죄로 추정하지만 “악의”가 발견했을 때에는 유죄로 전환된다. 그러나, 악의인지 고의인지 격정범인지를 구분하는 명백한 기준이 없어 법원의 판단은 우왕좌왕한다.

그리고, 얼마 전, 전철에서 할머니에게 욕을 하고 “목을 조른 사건”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흥분한 시민들은, “소년법을 폐지”하고 일반법인 형법을 적용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건 “언어도단”이며 “경거망동”이며 “루소”가 웃을 일이다!! 

그럼, 현행법을 살펴보자. 소년법 제4조(보호의 대상과 송치 및 통고)에 따르면, 소년부의 보호사건으로 심리하는 경우로서, 1. 죄를 범한 소년(“범죄소년”) 2.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소년(“촉법소년”) 3.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성벽(性癖)이 있다든지,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한다든지,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거나 유해환경에 접하는 성벽이 있다든지 하는 사유가 있고 그의 성격이나 환경에 비추어 앞으로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10세 이상인 소년(“우범소년”)을 규정하고 있다. 촉법소년과 우범소년에 해당하는 소년이 있을 때에는, 경찰서장은 직접 관할 소년부에 송치하여야 하고, 범죄소년, 촉법소년, 우범소년에 해당하는 소년을 발견한 보호자 또는 학교‧사회복리시설‧보호관찰소의 장은 이를 관할 소년부에 통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촉법소년과 우범소년이라는 말은 지구상에 “한국과 일본”뿐이다. 사실 언어상으로 봤을 땐 “일제의 잔재”다. 문제는, 촉법소년과 우범소년의 범위가 매우 넓어 이에 대한 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단 1일 차이로 교도소로 가는가 보호시설로 가는가가 결정되어 “피해자의 원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 정부의 “내로남불”에 그 원성이 더 폭발한다!! 

소년범과 관련하여 대법원도, 원심이 제1심에서 선고한 부정기형 대신 정기형을 선고함에 있어 불이익변경금지 원칙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부정기형의 장기와 단기의 중간형, 즉 징역 11년이 되어야 한다(대법원 2020. 10. 22. 선고 2020도4140 전원합의체 판결)고 판시함으로써, 형사정책상 그리고, 소년에 대한 보호주의, 국친사상과는 동떨어진 판결을 냈다.

즉, 불이익변경금지원칙에 있어서 범행 당시 소년에 대한 “엄벌주의”를 수용하고 있다. “외국의 경향”은 악의적 사유일 경우 성인과 같이 처벌하려는 엄벌주의가 힘을 받고 있다!!

연혁적으로, 소년법의 역사는 처절한 투쟁의 역사였고, 아주 긴 “고민의 향연”이었다. 영국에서의 “형평법이론”은 보통법을 기반으로 한 행정적 목적 즉, “사회복지 내지는 아동복지 측면”에서 접근을 하였고, 독일 등 대륙법계에서는 “형사정책론” 즉, 교육 내지는 목적형이론을 배경으로 한, 형벌을 가하기보다는 “개선과 교화”에 목적을 둔 “사법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현재는 이를 종합한 방식으로 소년에 대한 “소년법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최초의 소년재판법(일리노이주)과 1899년 시카고에 소년법원을 개원한 바 있다. “로스코 파운드(Roscoe Pound)”는 소년에 대한 지도와 이념 및 개별처우에 대하여 마그나카르타 이후에 “재판상 최대의 진보”라는 평을 했다.

로스코 파운드는, “프래그머티즘”의 입장에서 법을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판단, 서로 대립 되는, 사회적 이익이 희생되거나 마찰, 낭비되는 것을 최소화하고, 얻는 이익을 최대화하도록 조정하는 것이 “법의 의무”로 보았다.

소년법 또한, 소년에 대한 마찰을 최소화하고, 소년과 사회가 장래에 얻는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소년에 대한 비범죄화 즉, “낙인이론과 형법의 탈도덕화”를 내걸고 비형벌화, 비시설수용화, 대체처분(보호처분) 등 “소년법운동의 제2혁명의 길”을 가고 있다.

반면, 일본은, “청년사건의 형사사건화”을 통하여 18세 이상의 소년을 (소년과 다른) 청년사건으로 판단, 일반 “성인형사사건”으로 처리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소년에 대하여 선도조건부기소유예제도를 도입한 바 있으며, 영국은 소년전담재판소를 운영하지 않고 “약식재판소”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1985년 UN범죄방지 및 범죄자처우회의에서 청소년사법 운영 유엔 최저기준을 마련한 바 있고, 1989년 채택된 “아동권리협약(제19항)”에서 모든 아동을 신체적, 정신적 폭력, 상해, 학대, 착취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국가”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규율의 최종목적은, 시민참여(Civil Participation) 즉, 민간인 및 민간단체가 사법당국 및 교정관련 기관과의 밀접한 연계를 통한, 사회구성원의 무한한 협력이다. 그러나, 이러함에도, 현 정부는, 획기적 청소년 정책이 거의 전무 했고, “북에 대한 사랑과 권력 투쟁”밖에 없었다!! 

또한, 사상적으로, “루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교육론 “에밀” 저자 “장 자크 루소”의 생애를 회고해 보면, 그가 자신의 아이 모두를 “고아원”에 맡긴 것은 충격이었다.

물론, 프랑스에서 위탁은 관행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수녀원, 가정교사 등에게 보내진 것과 비교하면 충격이었다. 에밀은 그러한 모순적인 저자의 행보를 “스스로 비판”한 것이었고,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었다.

“페스탈로치(Pestalozzi)”가 주장한 “왕좌(王座)와 초가(草家) 등가론” 즉, “인간 평등론의 신념”과 “머리와 마음과 손의 조화적 교육론”을 정신적으로 “연모”한 “루소”였기에, 그의 “마지막 유언”은 “소년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에밀을 통해 거듭났고, 그의 진실을 규명해 주었다. 그의 사상에 힘입어 “로베스피에르와 레닌”은 혁명까지 일으킨다. 나아가 “김일성도 그를 선생님”으로 모셨다!! 그렇다면, 이에 동조하는 “왼쪽(좌) 파”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사상을 소년에 적용하면, 그것이, 합리적 교육이 되겠는가?? 논리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구체성 없는 프로젝트”가 소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루소가 “인간의 불평등”의 원인이 “사유재산”과 이를 인정하는 “사회체제”에 있음을 경고한 것과 현 정부의 실패정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딱 들어맞고 있다!!

즉, 불평등의 심화가, 소년 문제 증폭의 주된 원인이었던 것!! 경제도 망쳤지만, 앞날이 창창한 한국의 “청소년 및 2030세대의 앞날”도 망쳐놓고 말았던 것!! 소통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한낱 “거짓”이었다!!

지금, 한국의 소년‧소녀, 청소년들은 마음껏 공부할 곳도, 쉴 곳도, 스트레스를 풀 곳도, 놀 곳도 마땅치 않다! 거기다, 몇 수십 가지의 법은 그들을 옥죄고 있다.

그나마, 그들을 법적으로 후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소년법”이다. 특히, “촉법소년과 우범소년 규정”으로 말미암아, 아직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그들을 보호해 주고 있다.

다만, 억울한 피해자들의 심정은 당연히 헤아려 줘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형사적 배상 및 보상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소년법의 폐지를 들고나오는 것은, 소년에 대한 희망을 꺾는 것이고, 나아가, 수백 년 동안 “공들인 탑”을 일거에 허무는 일이다.

미국의 “보안관”처럼, “박문수”와 같은 “암행어사”처럼 소통하고, 모두가 이웃이라는 “사회연대적 사고”를 통해서, 이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 즉, “당국의 노력”이 있다면, 문제해결이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가정이 흔들리고 있고, 청소년의 일탈이 증폭되고 있다. 그렇지만, 최남선, 방정환, 루소, 페스탈로치의, 소년에 대한 한 없는 애정을 다시금 생각한다면, 법을 재정비하고 “다이버전(Diversion: 전환조치)의 확대” 즉, “공식적 사법절차 이탈”과 “사회 내 처우 프로그램 위탁의 확대”를 통하여,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후견적 뒷받침”을 해줘야 할 것이다.

워즈워드의 “소년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절실히 되새겨 생각할 때가 “바로 지금”임을 명심하자!!

이찬엽 논설위원
이찬엽 논설위원 다른기사 보기
pinetree051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