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불 그리고 119
[덕암 칼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불 그리고 119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11.0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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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오늘은 제59주년 소방의 날이다.

당초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11월과 9일의 숫자를 더한 날인데 1991년 소방법을 개정하면서 정식 기념일로 제정된 날이다.

화재는 약 85%가 부주의로 일어난다고 하는데 실제 화재발생의 상당부분이 예방만 잘해도 자연발화는 극히 드문 편이다. 자고로 불이라는 게 ‘가연물·점화원· 산소’만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3가지 중 하나만 없어도 발생하지 않는데 실제 진화현장을 취재하다보면 산소가 화재발생에 얼마나 중요한 원인인지 알 수 있다.

특히 밀폐된 내부에서 발생한 화재현장의 불이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가도 다시 개문을 하는 순간 공기가 유입되면서 잠들었던 화마가 화를 내며 일어나듯 불길이 되살아난다.

불 이란 게 인정사정 봐가며 타는 게 아니다 보니 노후된 공단지역이나 강수량이 적은 산악지대에서는 마른장작에 불 지피듯 빠르게 번지기도 한다.

국가공단이 들어선 경기도 안산의 반월공단이나 시화공단의 경우 각종 가스배관, 전기 등 시설물이 낡아 발생되는 화재로 인해 현대판 화약고로 불리기도 한다.

식당이나 일반가정의 가스폭발사고는 이제 흔한 뉴스거리로 등장하고 사우나, 물류창고, 백화점 등 다중이용시설의 화재는 대량 인명피해를 내면서도 당시에만 오두방정을 떨 뿐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화재가 항상 남의 일일까. 국민들은 화재뿐만 아니라 다급한 일만 생기면 112 경찰보다 119 소방서로 전화를 한다.

그러다 보니 소방관의 주요 업무인 화재 진압보다는 심부름센터 수준의 별별 일에 다 출동하게 되는데 정작 필요한 상황에 출동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또한 국민들의 판단과 협조가 요원한 점이다.

굳이 출동 건수와 소방관의 폭행피해 실태를 수치로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국민들이 소방관의 노고와 헌신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바 알고 있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차이점을 거론하고자 한다.

일반 국민들은 소방관이 월급 받고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세금 내는 국민이 불편할 때 부를 수 없으면 어쩌냐는 식이다.

무릇 어떤 직업이든 일장일단은 있기 마련인데 소방관은 사실 기본적으로 봉사나 희생적인 심성이 없으면 보람도 그만큼 줄어든다.

박봉에 언제 출동할지도 모르고 잘한 건 온데 간데 없으며 뭐하나 늦은 건 사정없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직업이다.

직접 현장으로 수 십 번 동행취재를 해본 장본인으로서 시커멓게 그을린 소방대원들이 잠시라도 숨 돌릴 때면 그 모습을 목격하지 않은 사람은 함부로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대형화재 현장일수록 위험도는 더욱 크다. 폭발물은 물론이고 인화성 물질이나 기타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현장에서 목숨 걸고 뛰어들려는 용기나 경험은 금전으로 환산될 수 없는 무형의 국가자산이다.

어떤 분야든 특징이 있기 마련인데 같은 공무원이라도 검찰은 두려운 존재고 경찰은 다소 불편하며 소방이나 우체부 공무원은 심부름꾼이라는 인식이 문제다.

같은 공직에 종사하며 공직자 윤리강령을 준수해야 하는 국민의 공복으로서 하는 일은 다르지만 인식까지 달라서야 될까.

그렇다면 소방업무에 대해 국민들은 어떤 협조를 할 수 있을까. 일단 누가 일으켰든 진화했든 간에 불이 안 나는 게 최선이니 예방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화재로 번질 줄 알고 방치하는 사람은 없을 것임에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화재 발생건수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한번씩 대형화재가 발생하면 그 원인은 어이가 없을 만큼 사소한 부주의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큰일은 없다. 조금만 사전예방과 주의만 기울였더라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지만 화재가 발생하기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참으로 그 차이는 심각하다.

멀쩡한 시설물이나 제품들이 화재폐기물로 변해버리고 심지어 소중한 인명까지 잃게 되는 현장을 지켜보며 표어 그대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게 불조심’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도심이나 공장이나 산악지대까지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차나 헬기가 동원되어야 하는데 불과 얼마 되지 않는 현장을 앞에 두고 불법주차로 인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다행히 관련 법안이 개정되어 강제 견인이나 차선 규제봉 설치 등 추가적인 조치가 가능해졌다.

자고로 화재란 직접 목격하지 않고서는 불의 확산에 대한 공포나 위력을 알 수 없다. 일반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협조 중에는 돈들이지 않고 실천하기 쉬우면서도 큰 도움 되는 일이 많다.

가령 평소에 화재예방훈련에 대한 협조와 소방차 긴급출동 시 양보는 기본이며 골목길 진입시 사이렌 소리에 차량이동, 진화를 마친 대원들에 대한 응원의 박수와 실수에 대한 격려, 노고에 대한 언론의 홍보, 119신고에 대한 신중함으로 과잉출동의 방지뿐일까.

오늘처럼 소방의 날 주변의 지인들 가운데 손쉬운 축하 카톡의 이모티콘이나 간단한 커피선물이라도 전달하면 훨씬 더 반가움이 더해지지 않을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소방관 뿐만 아니라 함께 사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껴주고 위해주는 사회풍조가 성숙한다면 선진국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며 작은 마음들이 모아질 때 위기대응능력 또한 향상될 것이다.

각종 재난·재해로부터 늘 비상 대기하는 119, 비록 육체는 쉬고 있어도 쉬지 않는 긴장감속에 오늘도 출동 벨에 귀 기울이며 신발 끈을 조여 매는 소방관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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