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언제부터 한국이 이랬을까
[덕암 칼럼] 언제부터 한국이 이랬을까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1.12.2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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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지난 18일은 제20회째를 맞이하는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이었다.

이주노동자를 속칭 외국인근로자라고도 부르지만 사실상 대부분이 중국에서 입국한 조선족이나 한족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정착한 근로자들이 많은 편이다.

그중에는 일시적으로 취업을 할 목적이 있는가 하면 한국사회에 매료되어 정착하는 이들도 적지 않으니 이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편견이나 이방인을 대하는 어색함은 상당 부분 줄어든 편이다.

실제로 가장 많은 인원이 생활하고 있는 경기도 안산·시흥의 경우 사당역으로 가는 4호선 출·퇴근 시간열차에 탑승해 보면 한국인들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은 현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제 이들이 출입국관리소에 등록하고 취업 비자를 통해 정식으로 정착하는가 하면 체류기간을 초래하여 불법으로 거주하는 경우가 증가하다보니 단속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안산의 원곡동이나 서울 구로 등지에는 거리마다 쓰레기 투기나 무단횡단 등 기본적인 질서의식이 정착되지 않아 지자체에서 골머리를 앓을 만큼 불편해 하던 시절도 있었다. 경제적 상황도 열악했다.

저가 임금도 마다않고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던 근로자들이 점차 자리를 잡고 점포를 운영하는가 하면 자가용도 타고 다닐 만큼 영역을 넓혀갔다.

이제 현금 보유 측면에서 내국인 못지않게 성장했고 각종 의료보험 혜택이나 근로기준법에 대한 상식도 넓혀 가면서 그동안 당했던(?)서러움을 차츰 해결해 나가는 분위기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국내 인권단체나 종교단체, 지자체의 예산편성과 피부에 와 닿는 행정적 지원도 병행되었겠지만 무엇보다 외국인근로자 스스로가 자구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한몫 했다.

지금도 안산의 원곡동 만남의 광장 주변에는 동남아시아 각국의 음식은 물론 의복, 기타 생필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요즘이야 코로나19로 경제적 한파를 겪고 있지만 취업비자라도 현재는 입국이 금지되고 있으니 국내 1차 산업의 인력난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어쩌다 한국인이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못하는 국민이 되었을까. 외국인근로자들 아니면 공장 가동이나 농촌의 농번기가 마비될 정도이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돌이켜보면 이 또한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있다. 한국인들이 공사현장에서 성실히 일하고 인건비를 적절히 했다면 그 나름 선순환이 될 수도 있었다.

현장에 도착해서도 작업 속도가 느리거나 조금만 다쳐도 산재보험으로 입원부터 하는 일부 진상 근로자들이 고용주들에게 기피현상을 부추겼고 반대로 인건비도 저렴하게 부지런히 일하던 외국인근로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 있었다.

필자가 추운 겨울 새벽에 모닥불을 쬐며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내국인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 가득했던 날들이 있었다.

외국인근로자들이 신분증까지 위조해가며 이른바 덤핑을 치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고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도 외국인 보호정책의 과도한 지원으로 내국인들의 밥 굶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하소연이다.

그동안 외국인근로자들의 불법체류를 약점 삼아 급여를 제때 주지 않거나 근로환경 개선에 소홀한 예가 많았다.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다 참변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여성근로자의 경우 성범죄 대상이 되어도 항변하지 못하고 당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반대로 외국인근로자들이 국내 사회에 끼치는 부작용도 뒤따랐다.

기초질서 부족으로 인한 불편함은 그나마 낫지만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폭력을 행사하거나 한국 여성에 대한 성추행, 우범지대로 낙인찍혀버린 특정지역의 편견은 현존하는 내국인들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줄 수밖에 없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마냥 외국인은 보호 받겠거니 하는 안일함보다는 권리와 함께 병행되는 의무사항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시기적으로 이들을 한국사회에 정착하게 하는 행정적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일반 국민들의 이해와 협력도 병행되어야 하며 부족한 부분은 이해하고 동반성장 하려는 동행의 격도 높여야 한다.

언제부터 한국이 종 부리듯 어려운 일은 모두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떠넘기며 살았을까. 불과 40년 전만 해도 지구반대편인 서독으로 파견되어 지하 수천 미터에서 석탄을 채굴하던 7,900명의 광부들이 우리 민족의 현실이었다.

1963년 500명 모집에 4만 6천명이 지원할 만큼 먹고 살기 어려운 나라였다. 필자의 부친 또한 응모했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실의에 젖은 세월을 보내기도 했고 필자 또한 세월이 지나 파독광부들의 애환을 역지사지 고려하여 안산의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추석이면 콘서트를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동남아시아와 한국의 음악을 적절히 섞어 향수를 달래주면 그만한 애국이 없다고 여겼던 날들이었다.

어쨌거나 외국인근로자들에 대한 인구가 증가하고 행정적 예산편성이 늘다보니 이 같은 소재를 남용하여 단체나 법인을 설립하여 사회단체 보조금이나 국가 보조금을 부당하게 수령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이 또한 개선되어야 할 폐단 중 하나지만 이제 외국인 근로자들의 사회보장제도도 대폭 개선되어야 한다.

권리에 따른 의무도 병행시켜야 하지만 표를 의식해 지나친 보장제도의 확산은 신중히 해야 한다.

이들이 일시적인 수입을 목적으로 입국했다가도 한국의 멋에 매료되어 정착한다면 이 또한 글로벌시대에 한발 앞서가는 미래지향적 어울림이 될 것은 물론 이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한국에 대한 장점을 알린다면 이만한 민간대사가 또 있을까.

제일 빠르고 효과적인 홍보가 구전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은 국경을 넘어 세계적인 견해에서 볼 때 한국의 가치를 높이고 장점을 알리는 훌륭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적극 활용하여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고 동고동락하는 삶을 꾸린다는 것은 추후 우리 후손들이 타국에 가서도 브라보 한국인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씨앗을 심는 셈이다.

‘제20회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을 맞이하여 너는 틀리고 나는 맞는 게 아니라 너와 나의 피부색이나 언어만 다를 뿐, 함께사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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