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작 및 심사평] 제5회 2022 한국현대문화포럼 신춘문예 ‘미술 평론’ 부문 김형철 "이인상의 병국도(病菊圖) 속 미메시스, 파르마콘 그리고 심추(深醜)의 메타포"
[당선작 및 심사평] 제5회 2022 한국현대문화포럼 신춘문예 ‘미술 평론’ 부문 김형철 "이인상의 병국도(病菊圖) 속 미메시스, 파르마콘 그리고 심추(深醜)의 메타포"
  • 김장운 기자 tldhsrlawkdd@kmaeil.com
  • 승인 2021.12.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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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심사위원 문화평론가 김진부 [사진제공=한국현대문화포럼]
심사위원 문화평론가 김진부 [사진제공=한국현대문화포럼]

김형철의 미술평론 '이인상 병국도 속에 나타난 미메시스, 파르마콘 그리고 심추의 메타포'를 읽어 보면서 '왜 이 시대에 이인상일까?'를 먼저 생각했다.

그는 청나라가 전성기를 맞은 시대에, 당시로서는 시대착오적(?)인 존명배청(尊明排淸) 이념을 주장하고, 이를 평생 견지한 '아나크로니즘'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형철의 평론을 통해 본 이인상의 '병국도' 즉 '병든 국화를 그린 그림'은 오히려 현대미술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시대 착오적 이라기 보다는 아방가르드할 정도였다. 

김형철은 '병국도'를 한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덧없음과 영원한 것 사이에서 배회하는 현대 미술과 전형적인 문인화를 넘어서, 서양의 파르마콘적 신비와 동양의 심추(審醜)라는 모순적 심미관을 모두 충족시키는 ‘병국도’라는 놀라운 작품 앞에 우리는 숨 막히는 떨림을 가지고 설 수밖에 없다."라고.

파르마콘과 심추를 비교해 '이인상의 병국도'를 묘사한 이 대목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이어서 문인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평가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그는 평론에서 "이인상은 책과 사회적 텍스트에 기반을 두고 국화를 그린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국화를 그림으로써 자신의 형편과 마음을 담아낸 것이다. 이것은 텍스트 기반이 아닌 자신의 주관적 해석에 기반을 둔 미메시스"라고 표현해 작품의 가치도 차별화 했다.

재밌게도 김형철은 속도의 철학자 '비릴리오'의 질주학(Dromology)을 소환해, 이에 대비되는 '병국도' 즉 이인상의 '정주학'을 논하고 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을 통해 빠르게 변하는 장면을 보는 것과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공중에 떠서 마치 정지된 듯한 지상을 보는 것을 비교한 느낌이었다. 새로운 시각의 평론이었다.

추사 김정희나 연암 박지원이 존경했다는 인물, 이인상이라는 학자를 학문적으로 논하려면, 아마 그 방대함의 깊이는 한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거움과 방대함을 떠나, 단지 그의 '병국도' 한 작품을 현대 철학과 새로운 시각으로 비춰보는 작업도 의미 있다.

< 작가 의도 >

능호관 이인상 선생(1710~1760)은 담백하고 격조있는 문인화를 그린 18세기의 조선 사대부입니다. 능호관 이인상 선생은 신분 문제 때문에 제대로 된 관직을 맡지 못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사대부다운 기개를 가지고 일생을 살다 가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해 평생 아팠던 능호관 선생의 마음이 병들고 시들은 국화를 그린 ‘병국도’에 나타난다고 느껴졌고, 조선 후기 사회의 모순적인 시대상이 표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카라바조가 그린 병든 사과 그림은 자아의 내면을 나타내는 명화로 칭송을 받는 반면에, 후기 조선 사회의 모순을 직접 겪으면서도 강직한 삶을 살았던 능호관 이인상 선생의 ‘병국도’는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2020년은 능호관 선생이 돌아가신지 250 주기가 되는 해이기 때문에 저는 ‘병국도’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해보고자 하는 꿈을 갖게 되었고, 부족하지만 이 글을 통해 우리 역사에 큰 획을 남긴 이인상 선생의 병국도를 세상에 알리겠다는 꿈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 작품 줄거리 >

“도(道)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라는 노자 첫머리에 나오는 문구에 따르면 노자 자신이 말하는 ‘도’ 역시 ‘도’가 아닐 것이지만, 노자는 시종일관 자신의 입으로 ‘도’를 수없이 거론했습니다. 노자가 ‘도’를 말할 수 없다는 자기모순을 넘어서 ‘도’를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술 작품 앞에 선 사람들도 미술가를 이야기할수록 미술이라는 것을 논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인상이라는 미술가를 이야기함으로써 조선 후기의 미술을 이야기하게 되고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인상 선생은 ‘병국도’를 통해 성리학이라는 시대적 기호와 저자 개인의 서정성을 동시에 담아내기 때문에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이인상의 ‘병국도’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병든 국화를 그렸기 때문에 ‘형사’를 따랐고, 병든 국화를 그림으로써 자신이 정신을 표현했기 때문에 ‘사의’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인상의 ‘병국도’는 ‘형사’(形似)와 ‘사의’(寫意), ‘북종화’와 ‘남종화’라는 일반적인 분류로는 설명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러므로 굳이 병든 국화를 모방해 그린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서양적 개념인 ‘미메시스’를 새롭게 해석하여 접근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성리학이라는 전형성을 띤 기호를 그리는 시대적 흐름과 신분제가 동요하는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주관적 국화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부여된 기호를 담고 있는 ‘사회적 미메시스’와 개인적 입장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개인적 미메시스’라는 구별을 통해 18세기라는 역사 속에서 사회적 미메시스 작용과 개인적 미메시스 작용이 어떻게 이인상의 ‘병국도’에 영향을 주고 또는 배척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고상하고 심오한 이론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성리학은 임진왜란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은 왜군에게 허수아비처럼 무너져 버린 성리학을 신봉하는 사대부 지배체제에 대한 사망선고였고, 김장생에 의해 조선 성리학의 주류가 율곡의 이기일원론에서 예학으로 바뀐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조선의 성리학은 더 이상 철학이 아니라 흔들리는 사회 제도를 안정화 시키려는 보수적인 예학에 불과하게 된 것입니다.

미메시스는 서양 철학사에서 재현의 논리로 편향되어 이해되어져왔고, 이러한 점 때문에 많은 혼란이 야기되었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인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미메시스 작용을 했지만, 조선시대나 오늘날과 같이 문자가 보급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글자로 된 텍스트를 읽고 미메시스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것은 국화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인상은 책과 사회적 텍스트에 기반을 두고 국화를 그린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국화를 그림으로써 자신의 형편과 마음을 담아낸 것입니다. 이것은 텍스트 기반이 아닌 자신의 주관적 해석에 기반을 둔 미메시스인 것입니다. 

그리스어의 ‘파르마콘’은 ‘약’이라는 뜻을 가지면서 동시에 ‘독과 질병’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 단어입니다. 그리스어 파르마콘의 이중적 개념을 가진 동양적 용어로는 ‘심추’(審醜)를 거론할 수 있습니다. 청나라 유희재(1813~1881)의 예개(藝槪)에 보면 “醜到極處 便是美到極處”(추도극처 변시미도극처)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추하면 추할수록 아름다움은 커진다.”는 뜻입니다. 이인상의 ‘병국도’는 아름다움과 추함 그리고 질서와 혼란이 한 폭의 화선지에 담겨짐으로써 그리스어의 파르마콘이 갖는 이중성과 동양의 심추 개념을 그림으로 실현하고 있습니다. 

비릴리오는 전반적인 매체 상황에서 새로운 학문인 '질주학'(Dromology)을 제시하고, 이 ‘질주학’을 중심으로 어떻게 속도가 공간을 소멸시키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질주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변하는 현대사회를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인상의 시대는 ‘질주학’이 아니라 급격한 사회 변화를 철저히 막는 ‘정지학(停止學)’이 시대적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병국도’는 질주해야 하는 시대가 억지로 정지된 시대를 나타내고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병국도’에 나오는 국화처럼 꺾여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국도’는 이러한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병국도와 시대적 흐름을 같이 하면서 나타난 윤두서와 강세황의 자화상은 자기 자신을 찾아 가려는 새로운 정신세계를 보줍니다. 이처럼 성리학이라는 체계가 강제하는 기호를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그리려는 모습은 정선의 진경산수화와 민화 등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대적 정신의 씨앗인 것입니다. 

감성이라는 것은 하나로 종합하고 요약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감성의 자료들 간에는 어떤 결별과 단절이 있습니다. 또한 상상이든 현실이든 우리가 꿈꾸며 살아가는 삶의 한 순간은 금방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일컬어 덧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들레르는 이런 덧없는 것들에서도 핵심이나 정수를 찾아낼 수 있다면 완전한 아름다움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아름다움이란 덧없는 것들만 있어도 안 되고 영원한 것들만 있어도 안 되기 때문에 이 둘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인상의 ‘병국도’는 덧없는 병든 국화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덧없음과 영원한 것들의 조화를 이루어낸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덧없음과 영원한 것 사이에서 배회하는 현대 미술과 전형적인 문인화를 넘어서 서양의 파르마콘적 신비와 동양의 심추라는 모순적 심미관을 모두 충족시키는 ‘병국도’라는 놀라운 작품 앞에 우리는 숨 막히는 떨림을 가지고 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인상 [병국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제공=한국현대문화포럼]
이인상 [병국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제공=한국현대문화포럼]

이인상의 병국도(病菊圖) 속에 나타난 미메시스, 파르마콘 그리고 심추(深醜)의 메타포

Ⅰ. 들어가는 말
곰브리치는 “미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곰브리치의 바램과는 다르게 미술가를 통해 미술을 이야기한다. “도(道)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라는 노자 첫머리에 나오는 문구에 따르면 노자 자신이 말하는 ‘도’ 역시 ‘도’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노자를 읽어보면 노자는 시종일관 자신의 입으로 ‘도’를 수없이 거론했다. 노자가 ‘도’를 말할 수 없다는 자기모순을 넘어서 ‘도’를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술 작품 앞에 선 사람들도 미술가를 이야기할수록 미술이라는 것을 논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는 것이다. 

‘병국도’(病菊圖)를 그린 능호관 이인상(1710~1760)은 18세기를 같이 살았던 겸재(정선 1676~1759)와 단원(김홍도 1745~ ?)에 비하면 유명하지 않지만, 연암 박지원(1737~1805)과 추사 김정희(1786~1856)가 모두 존경했을 만큼 뛰어난 문인이자 예술가였다. 이인상은 증조할아버지 이경여가 서자였기 때문에, 자신이 서자는 아니었지만 서자와 비슷한 차별을 받았고, 서자로서 말단 관직밖에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망한 명나라에 대한 숭모 사상과 당대 노론 당파의 의리를 중시하는 소외된 강경보수 지식인 집단(단호그룹)의 주축이었으며, 이런 외골수적인 성향이 독창적 예술세계를 이룩한 근본 배경이 되었다. 

그림은 미술가가 그린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모습과 사상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사회 속에 전형적인 기호로 자리 잡은 주제들이나 기법들이 미술가 개인이 그리는 그림을 이미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리학이 전형적인 기호로 자리 잡은 조선 후기라는 시대 속에서 사회적 전형성을 가진 기호로서의 미술이 아닌 미술가 개인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인상의 ‘병국도’를 통해 사군자와 같은 사회적 기호가 아닌 미술가 이인상을 만날 수 있다. 이로써 ‘도’를 말하는 것의 무익성을 알면서도 ‘도’를 말한 노자처럼 감히 이인상을 통해 미술을 말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Ⅱ. 병국도에 대한 회화적 분석
능호관 이인상의 ‘병국도’는 여섯 송이의 국화와 십여 개의 잎사귀가 그려져 있는 사군자 그림이다. 사군자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의미하는데, 네 종류의 식물이 공통적으로 갖는 계절을 이겨내는 특징을 통해 사군자는 선비의 지조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고, 사군자 그림은 바람직한 선비의 모습을 그려내는 기호의 역할을 한다.

차가운 서리를 이겨내는 국화의 강인함을 통해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지조를 나타내기 때문에 하늘을 향해 활짝 핀 국화는 그림의 주제이자 목적이 되며, 사군자의 하나인 국화를 그린 전형적인 그림들 속에서 국화는 하나같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다. 하지만 능호관 이인상의 ‘병국도’ 속에는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인 국화가 축 늘어진 잎사귀들과 함께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잎사귀들마저도 모두 떨어지는 낙엽처럼 당장이라도 땅으로 쏟아져 내릴 듯이 시들고 말라 비틀어진 모습으로 땅을 내려다 보고 있다. 

‘병국도’에 그려진 국화들은 모두 시들어 있지만 화폭의 상단으로 갈수록 시들어 있는 정도가 심해지고, 좌측 최상단에 위치한 국화는 잎이 거의 떨어져 꽃인지 나뭇잎인지 구별이 모호할 정도로 그려져 있다. 어쩌면 이인상은 병들어 시들어가는 꽃과 잎을 구별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가장 많이 시들은 국화가 매달린 죄측 상단의 가지를 다른 가지들보다 더 진하게 표현함으로써 조만간 모두 땅으로 떨어져 흙으로 돌아갈 꽃과 잎의 마지막 생명력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형적인 국화 그림은 생명력이 넘쳐나지만 이인상의 ‘병국도’는 지조와 절개를 나타내기는커녕 위태롭기 그지없는 마지막 찰나의 순간을 보여주는 참으로 기이한 그림이다.

사군자 그림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방법은 그림에 나타난 상징성과 우의성(寓意性)을 가진 그림의 대상을 분석하는 ‘도상학적 방법’이나 상징성과 우의성(寓意性)을 초월하여 문화사적인 인식의 틀 속에서 이해를 시도하는 ‘도상해석학적 방법’이 전형적으로 사용된다. 곰브리치에 의하면 도상해석학은 전체적인 문화의 지평을 재구축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단일한 텍스트보다 많은 것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예술적인 배경뿐 아니라 문화적인 배경을 포함하는 하나의 컨텍스트 속에 들어간다.  

꽃과 풀 그림의 유래는 2천년 전 한나라의 고분벽화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돈황 벽화에는 많은 꽃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분벽화에서부터 그려졌다. 거기에서 우리는 인동초, 연꽃, 배꽃, 패랭이꽃 등 여러 가지 꽃과 풀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병국도’는 채색화가 아니라 먹으로 그린 수묵화인데, 먹이 그림 재료로 등장한 시기는 채색에 비해 한참 뒤져서 당나라 때 들어 비로소 주목을 받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먹은 글씨 쓰는 재료였다. 그러다가 당나라 때 수묵화가들이 적극적으로 먹을 쓰면서 새로운 기법을 개발해냈다. 하지만 능호관 이인상의 ‘병국도’는 전통적인 국화와 잎사귀의 형태는 물론 진하게 먹을 칠하는 조선 시대의 국화 그림들과는 다르게 마르고 거칠게 표현함으로써 도상학은 물론 도상해석학적 범위를 벗어나 있는 그림이다. 

기존의 국화 그림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병국도’를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이인상의 ‘병국도’를 보고, 서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 이인상의 신분적 슬픔과 자신의 학문과 능력을 펼치지 못한 개인적인 절망을 표현하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인상의 ‘병국도’는 슬픔과 절망을 표현하는 나약한 그림이 아니라 사군자의 하나인 국화가 가지고 있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적 기호 속에 개인의 회한을 담아낸 다의적(多義的)인 그림이다. 국화로 태어났으면 씨앗일 때도 국화이고, 꽃이 만개했을 때도 국화이며, 시들고 병들어 사라져갈 순간이 다가와도 국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슬픔과 개인적 절망이 가슴을 때리지만, 들판에 피었다 시들어가는 수 많은 꽃들 중에서 이인상은 국화를 선택해서 병들고 시들은 모습이지만 자신은 여전히 국화라는 것을 강하게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그림을 통해 지조와 절개 그리고 슬픔과 절망을 동시에 나타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이인상의 시도는 수학과 철학의 혁신을 이루어낸 데카르트의 혁신과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데카르트의 많은 혁신 중 하나는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geometry)과 아랍의 대수학(algebra)을 합쳐 해석 기하학(analytic geometry)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숫자와 기하학, 도무지 절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를 데카르트가 통합했고, 바로 그래프 원리를 만듦으로써 수식이나 숫자를 시각화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능호관 이인상은 ‘병국도’를 통해 연관성이 없는 두 가지를 통합한 데카르트처럼 국화가 가지고 있는 지조와 절개라는 사회적 상징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개인의 삶을 융합해냈다. 존재와 당위는 탈중심적으로 실재하는 본질의 자아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이중적 모습이다. 본질적으로 어디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인간은 유토피아적 존재이다.

그래서 '아직 아니다(noch-nicht)'라는 것을 유토피아적으로 강조하지 않고서는 '나는 나를 지닐 수 없는 나'가 된다. 이 말의 요점은 궁극적인 도달점에 대한 전망이 없는 역사적 무한이라는 의미에서 미래를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이인상은 ‘병국도’를 통해 주관적 감성을 객관적인 대상인 국화에 연결시킴으로써 주관과 객관을 융합시키려는 시도를 했다고 보여진다. 주관적인 감성에서 벌어지는 체험을 어떤 대상의 객관적인 힘과 결부시키려는 경향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주관과 객관의 조화라는 표현은 자연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감성적 상황에서의 객관은 항상 주관을 전제로 한 것이다.

어제의 비극을 극복했다고 해서 오늘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이 절대적 고통을 없애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호모 데우스’에 나오는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능호관 이인상을 짓눌렀던 과거의 비극을 극복했다고 해서 이인상의 오늘이 더 행복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행복해진다는 것과 비극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래서 이인상은 ‘병국도’를 통해 삶을 비극과 고통을 탈출하는 수동적 의미에서 바라보지 않고, 한 뼘이라도 더 행복해지기 위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병든 국화를 그린 것이다. '인간을 묻는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묻는 자리에서 출발하여 다시 인간의 문제로 되돌아온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연결 고리의 핵심에 예술이 놓여 있다.

인간에 대해 질문하고, 인간이 모인 사회에 대해 질문하고,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인간인 나 자신에 대해 질문을 하고 또 해봐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온통 질문들일 뿐 답은 없고, 거울을 들여다 보며 내 모습을 보듯 병든 국화를 그려서 오늘을 더 행복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서 국화를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라고 노래한 서정주 시인은 능호관 이인상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 듯하다.

Ⅲ. ‘병국도’에 나타나는 저자성의 이중성
가을 찬바람에도 꿈쩍 않고 홀로 피고, 서릿발 속에서도 꼿꼿하다고 해서 국화를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병국도’에 담긴 이인상의 국화는 축 늘어져서 죽음을 앞둔 생명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구륵법으로 국화를 그림으로써 창백하고 병든 국화의 모습을 더욱 부각시킨다. 이인상은 ‘병국도’를 그리고 그림 속에 “남계(南溪)에서 어느 겨울날 우연히 병든 국화를 그리다.”라는 사연을 적고 난 후에 ‘병국도’에 대한 시도 한 수 지었다. 

衰花猶不落(쇠화유불락)   시든 꽃잎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新花又嚬愁(신화우빈수)   새로 피는 꽃이라도 다시 시름 속에 잠긴다.
晩來風更急(만래풍경급)   뒤늦은 바람이 다시 급히 불어오니
顚倒不勝秋(전도불승추)   가을을 못 이겨 고개를 숙인다.

미술사를 연구하는 전기적 방법은 미술 작품을 작가의 생애 및 개성과 관련지어 연구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미술가와 그들의 예술이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저자성’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다룬다. 전기적 방법론에 따르면 작품의 의미, 즉 작품의 착상과 제작은 궁극적으로 작가가 결정하는 것이고 사회경제적 요인들은 이차적인 역할을 한다. 형식적인 양식 요소들도 도상과 별도로 존재할 수 없고 도상은 관례에 따른다 해도 어느 정도 미술가의 개인적 선택을 반영할 뿐이다. 메를로퐁티는 회화의 요소들을 기호라고 했다. 따라서 잭슨 폴록이 뿌린 물감은 폴록의 존재를 나타내는 기호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모네의 인상주의 회화에서 보이는 붓 자국들은 그의 존재를 나타내는 표시이다. 

반면에 ‘저자성’에 대한 집착을 부질없는 것으로 보는 관점들도 존재한다. 구조주의자들과 후기구조주의자들은 플라톤의 모방적 예술관에서 유래한 '본질의 복제'라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데리다 역시 "텍스트는 모방, 즉 이차적인 구성물로서 언제나 경험적 실재라는 일차적인 세계를 지시한다."라는 가정을 무너뜨린다. 이를 바탕으로 데리다는 텍스트에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라는 뜻의 확실한 '저자'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조선시대의 그림을 감상할 때 시대가 부여하는 성리학적 또는 중국화풍의 기호를 넘어서는 작가 자신만의 ‘저자성’을 밝히는 그림은 매우 드물다. 저자의 독창적인 붓 자국이 나타나는 그림이 다수 존재하지만, 표현기법이 아닌 주제에 있어서의 ‘저자성’을 주장할만한 그림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인상의 ‘병국도’는 18세기라는 시대의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저자성’이 상실되는 동시에 병든 국화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표현함으로써 ‘저자성’을 부각시키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작품이 된다.  

Ⅳ. ‘형사’(形似)와 ‘사의’(寫意)‘ 그리고 ’사회적 미메시스’와 ‘개인적 미메시스’
‘형사(形似)’를 ‘사실주의적인 양식으로 대상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표현하는 원채화풍의 화조화와 산수화’ 그리고 ‘사의(寫意)’를 ‘전신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정신은 객관적인 사물 가운데 존재하고 형상을 통해 정신이 표현된다.’고 보는 구분만으로는 이인상의 ‘병국도’가 가진 진정한 의미를 해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인상의 ‘병국도’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병든 국화를 그렸기 때문에 ‘형사’를 따랐고, 병든 국화를 그림으로써 자신이 정신을 표현했기 때문에 ‘사의’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인상의 ‘병국도’는 ‘형사’와 ‘사의’, ‘북종화’와 ‘남종화’라는 일반적인 분류로는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므로 굳이 병든 국화를 모방해 그린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서양적 개념인 ‘미메시스’를 새롭게 해석하여 접근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 이유는 그림이란 어차피 무엇인가를 모방한 것인데 모방이 사회적인 기호를 모방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해석을 통해 대상을 모방하는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동양의 ‘형사’와 ‘사의’의 이분법적 분할을 가지고 ‘병국도’를 ‘형사적’이다 또는 ‘사의적’이다 라고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양적인 개념인 ‘미메시스’를 새로운 관점에서 분류하고 정의하여 가장 동양적인 그림인 이인상의 ‘병국도’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이인상 이전에 전해지는 병든 국화 그림은 없다. 또한 이인상은 직업적인 화원으로 궁궐에서 그림을 그린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가장 보수적인 성리학을 추종했던 이인상에게서 성리학적 세계관 속에서 국화가 지닌 오상고절의 기호를 저버린 그림이 나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병국도’에 담긴 시대가 처한 모습과 이인상 개인의 모습을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인상의 ‘병국도’는 18세기를 이해하는데 적합한 도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인상이 ‘병국도’를 통해 무엇을 나타내려 했으며, 또 이인상이 인식하지 못한 채 수용한 사회적 영향까지도 파악해볼 필요성이 요청된다. 그래서 ‘병국도’에 대한 감상과 해석의 틀로 사회적 문제의 영향을 드러낼 수 없는 ‘형사’, ‘사의’를 사용하지 않고, 미메시스 개념을 새롭게 활용하여 이용하는 것이 상당히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비록 ‘미메시스’라는 개념이 서양적인 개념이지만, 미메시스를 기존의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기호를 모방하는 ‘사회적 미메시스’와 개인적 경험의 해석을 모방하는 ‘개인적 미메시스’로 분류하여 ‘병국도’에 접근한다면 ‘병국도’에 대한 적절한 감상과 해석을 할 수 있다. ‘미메시스’를 ‘사회적 미메시스’와 ‘개인적 미메시스’로 새롭게 분류하는 것은 “성리학과 이인상”, “18세기와 이인상” 그리고 국화를 바라보는 ‘개인으로서의 이인상’과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한 적절한 도구라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당시 성리학이라는 전형성을 띤 기호를 그리는 시대적 흐름과 신분제가 동요하는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주관적 국화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부여된 기호를 담고 있는 ‘사회적 미메시스’와 개인적 입장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개인적 미메시스’라는 구별을 통해 18세기라는 역사 속에서 사회적 미메시스 작용과 개인적 미메시스 작용이 어떻게 이인상의 ‘병국도’에 영향을 주고 또는 배척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헤르만 콜로에 의하면 미메시스의 원래 의미는 “춤으로 표현하다”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이데아로부터 분리된 현실을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예술작품은 이중적으로 이데아로부터 멀어진 것이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메시스는 플라톤에게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을 ‘행동하는 인간의 미메시스’ 또는 ‘신화의 미메시스’라고 정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를 예술의 영역에 한정시키고, 진리를 다루는 철학의 영역에서는 미메시스를 배제시켰지만, 허구와 신화의 세계를 묘사하고, 그것이 카타르시스 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미메시스를 높이 평가했다. 

프라이에 의하면 사람과 동물이 각기 어떤 본능적이고 신체적인 대화를 서로 나눌 때 동물은 그 대화를 기억하고 상상하지 못 하지만 사람은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인간의 능력은 프라이가 말하는 '두 가지 삶, 즉 하나는 실제의 삶이고 또 하나는 상상적인 삶'을 가능하도록 한다. 프라이는 상상적 삶에는 행동이 제외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가치들이 존재하고 각기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미술은 상상력이 표현되어 생긴 것이지 플라톤이 생각했듯이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하지만 상상력조차도 인간은 미메시스에 기반을 둔다. 즉 상상은 모방하는 대상에 대한 기호화인 것이다. 그리고 그 기호화는 사회적 기호일 수 있고, 개인적 해석일 수도 있다. 아무런 모방 없이 무에서 유를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상상 속에서도 미메시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Ⅴ. 병국도에 나타난 전형성의 파괴와 개인적 미메시스의 개화(開花)
미술이 현실을 모방한다고 할 때의 모방은 단순히 현실의 겉모습을 본뜬다는 뜻이 아니라 대상이 현실 속에서 갖는 허상이 아닌 실재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림이 특정 대상을 그릴 때 현실 속에서 갖는 허상이 아닌 실재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가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사가란 실재로 일어난 일을 기술하지만 예술가는 필연성과 개연성 있는 사건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화가가 국화를 그릴 때 화가는 국화에게서 어떠한 필연성과 개연성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을까? 조선 시대의 화가는 국화를 그리면서 자신이 바라보는 국화가 아닌 ‘오상고절’이라는 의미의 전형성을 가진 국화를 그렸다. 시든 국화를 보든, 벌레 먹은 국화를 보든 화가에게는 오로지 ‘오상고절’이라는 국화의 전형적인 모습만이 모방의 대상일 뿐이다. 동양에서는 난초, 대나무, 국화 같은 화조화의 몇몇 소재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특정한 상징적 의미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소재는 누가 그것을 선택하여 그리더라도 그 자체가 특정한 의미만을 갖는 것이라는 것을 화가나 감상자가 모두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전형성’이란 대상에 대해 집단이 가진 보편적인 특성을 의미한다. 관찰대상은 객체로 존재하지만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사회적인 것, 법칙적인 것을 반영한다. 전형성이란 사회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객관성을 주장하지만, 사실 사회의 주관적 가치판단을 기반으로 대상이 가진 여러 속성 중 특정한 특성을 기호화된 모습으로 나타낸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화가들에게 국화란 ‘오상고절’이라는 기호로 고정된 대상일 뿐이어서 사회적 미메시스의 영역에 있게 된다.

그런데 이인상의 ‘병국도’는 사회적 미메시스와 더불어 동시에 개인적 미메시스를 표현한 작품이다. 사회적 미메시스는 대상에 대한 기호화된 특성을 모방하는 것이고, 개인적 미메시스는 자신이 바라본 대상의 모습과 느낌을 모방하는 것이다. 서양 미술사를 볼 때 그리스 조각들은 이상적인 모습을 추구한 사회적 미메시스적 작품을 남겼고, 르네상스 이후에야 개인이 바라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는 개인적 미메시스적 작품을 그릴 수 있었다. 조선 초기 그림을 볼 때 모든 것은 기호화된 이상 세계를 표현했을 뿐이어서 조충도를 그릴 때조차도 그 속에 사회적으로 약속된 기호를 담아서 그리려고 했다. 하지만 가장 보수적인 성리학 노선에 있으면서 단호그룹이라는 극단적인 소수 보수집단을 이끌었던 이인상이 사회적 미메시스 외에 개인적 미메시스를 담아낸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극보수 성리학을 표방한 이인상에게서 성리학적인 관점을 벗어난 개인적 미매시스를 추구하는 모습이 나타났는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Ⅵ. 이인상이 처한 시대적 배경
송대의 성리학은 불교에 주도권을 빼앗겼던 유교 사상을 재정비하여 우주론과 존재론, 인성론 등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한 유교의 르네상스 운동이다. 성리학자들은 도교와 불교가 실질이 없는 공허한 교설이라고 배척하고, 공자와 맹자의 유학 사상을 형이상학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했다. 그들은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심성이 일치한다는 "천인합일"의 명제 아래 우주의 생성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기론의 체계를 세웠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인간의 심성을 탐구하여 도덕적 실천의 철학적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고상하고 심오한 이론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성리학은 임진왜란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임진왜란은 왜군에게 허수아비처럼 무너져 버린 성리학을 신봉하는 사대부 지배체제에 대한 사망선고였고, 김장생에 의해 조선 성리학의 주류가 율곡의 이기일원론에서 예학으로 바뀐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조선의 성리학은 더 이상 철학이 아니라 흔들리는 사회 제도를 안정화 시키려는 보수적인 예학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이기일원론을 주창한 율곡의 사상이 예학으로 변화한 것은 조선 후기 사대부, 특히 노론이 그들의 종주 율곡의 개혁정신을 저버리고 보수적인 정치당파로 퇴화했음을 잘 보여준다. 

17세기 이후 수리시설 확충으로 인해 못자리에서 모를 어느 정도 키운 다음에 그 모를 본논으로 옮겨 심는 이앙법(移秧法)이 확산되고, 밭고랑과 밭이랑으로 나누어 종자를 밭고랑에 파종하는 견종법(畎種法)의 발달로 노동력이 크게 절감되어 넓은 면적의 토지를 한 가구에서 경작할 수 있는 광작이 크게 보급되었다. 광작을 통해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다 팔기 위하여 생산하는 부농들이 나타났고, 농업의 발달은 상공업의 발달을 수반했다. 17세기 말에는 5일장으로 불리던 전국의 장시가 무려 1000 여개에 육박했고, 이인상이 활동한 18세기에는 장시가 단순한 5일장을 넘어 서로 간의 연계성이 강화되어 점차 전국 단위의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농업과 상업의 발달로 나타난 막대한 부를 소유한 농민과 상인의 등장은 기존의 신분제도에 큰 위협이 되었다. 

임진왜란을 통해 집권세력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가 붕괴된 상황에서 자신들의 신분적 기득권을 위협할만한 부를 지닌 새로운 세력이 등장한 것은 성리학이 철학이 아닌 예학으로 변질되도록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순수한 양반의 정체성 문제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었고,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인상과 같은 서자의 후손이나 서자들은 사회적 입지가 더욱 줄어들게 되었다. 

Ⅶ. 병국도와 자화상 그리고 자아를 향해가는 여정
예술은 이상적인 미와 현실의 추 사이를 매개하는 행위이며, 선험적이고 보편적인 미가 예술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미의식을 통해야 한다. 만약 미가 예술가의 미의식을 통하지 않고 바로 예술로 드러나면 공허한 형식주의가 된다. 그러므로 국화의 의미를 담아 그린 초창기의 화가들에게는 오상고절의 의미를 갖는 국화 그림이 화가의 미의식을 관통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지만, 선대의 화풍을 그저 따라 그리는 후대의 화가들이 풍성하고 싱싱한 국화를 그리는 것은 공허한 형식주의적인 예술의 성격을 갖게 된다. 

플라톤은 예술이 아닌 철학을 통해 본질적인 이데아에 도달하려고 했다. 이러한 태도는 성리학이 예술을 통해서 자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 깊이가 드러나는 그림을 좋은 그림으로 보는 것과 유사하다. 성리학에 있어서 예술은 성리학의 도구일 뿐이었고, 정신이 아닌 실재 모습만을 담은 그림을 비난했다. 

조선 초기에는 자연과 자아를 이상적인 모습으로 바라보고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몽유도원도’라는 이상 세계에 대한 그림이 나오고, 이상향을 나타내는 중국풍의 그림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새로운 모습이 나타난다. 즉 초상화에서의 변화가 보이는 것이다. 이전에는 임금이나 고관을 대상으로 하는 초상화, 고사 인물화, 도석 인물화, 산수 인물화, 달마도가 나타났지만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윤두서와 강세황에게서 자화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자화상이 나타나는 시점과 이인상의 ‘병국도’는 18세기라는 공통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조선의 18세기는 이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망한 나라를 다시 세워 나가는 시기였다. 나라가 두 번의 큰 전쟁으로 초토화되고, 두 번의 전쟁을 모두 패배했다면 해당 국가의 왕조는 멸망하고, 새로운 세력에 의한 새로운 국가가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조선은 큰 위기 속에서도 왕권이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노론이라는 기득권층 역시 그대로 유지되었다. 시대는 농업과 상업의 발달, 신분제의 동요 등으로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지만, 통치 철학으로서의 성리학이 아니라 흔들리는 기득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보수적인 성격의 예학만이 강조됨으로써 사회는 기존의 기호화된 전형적인 기호들을 이미 화석화된 것으로 보게 되었고, 사회 속에서 정해진 약속에 따라 자신과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점차 자신의 내면을 통해 주관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역사적 움직임은 개인에게 새로운 역동성을 부여하고, 이인상은 ‘병국도’를 통해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수용하여 상징 속에 매몰된 국화를 개인적 서정과 융합시켜 병들고 시든 국화를 그림으로써 이전과 다른 새로운 국화를 창조했고, 자아를 향해 떠나는 여행을 과감히 출발했던 것이다. 

Ⅷ. 병국도의 파르마콘적 이중성과 심추(審醜)
미메시스는 서양 철학사에서 재현의 논리로 편향되어 이해되어져왔고, 이러한 점 때문에 많은 혼란이 야기되었다. 그러나 미메시스는 재현되는 것(대상)과 재현하는 것 사이의 정태적 관계를 지칭하기 보다는 미메시스적 활동의 주체와 대상 사이의 역동적 간계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인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미메시스 작용을 했지만, 조선 시대나 오늘날과 같이 문자가 보급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글자로 된 텍스트를 읽고 미메시스 능력을 발휘한다. 이것은 국화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고대인이 동굴에 국화를 그린다면 그는 국화를 있는 그래도 그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화가들은 국화를 그릴 때 자신들이 읽은 책들의 텍스트에 기반을 둔 국화의 이미지를 그렸다. 하지만 이인상은 책과 사회적 텍스트에 기반을 두고 국화를 그린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국화를 그림으로써 자신의 형편과 마음을 담아낸 것이다. 이것은 텍스트 기반이 아닌 자신의 주관적 해석에 기반을 둔 미메시스인 것이다. 

그리스어의 ‘파르마콘’은 ‘약’이라는 뜻을 가지면서 동시에 ‘독과 질병’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 단어이다. 이중성과 애매성을 의미하는 ‘파르마콘’은 독이자 동시에 약이며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이기도 하다. ‘파르마콘’은 이중적이고 애매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에 텍스트에서 일목요연하게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데리다는 중추적 용어인 ‘대리보충’(supplement), ‘산종’(dissmination) 등의 해석을 통해 ‘파르마콘’의 이중성에 주목했다. ‘대리보충’이란 데리다의 해체주의에서 나온 용어로 원래의 것을 대신해서 보충하는 것을 말한다. 사투리는 표준말의 대리보충이라고 할 수 있으나, 표준말은 추상적인 원본일 뿐이기 때문에 표준말을 보충하는 사투리의 작동원리가 더 현실적이다. ‘대리보충’의 의미에서 볼 때 이인상의 ‘병국도’는 사군자의 하나인 국화를 그렸지만 전형적인 국화의 모습이 아니라 병든 국화를 그림으로써 사군자의 대리보충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데리다의 ‘산종’(dissmination)은 하나의 기표가 씨앗을 뿌려 다른 기표를 만들어 내면서 무한히 기표가 전개되는 형상을 말한다. 의미의 씨를 뿌리되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주된 것과 종속된 것의 경계가 사라지기 때문에 생긴 용어로 시작과 끝을 규정하는 확정성을 부인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인상의 ‘병국도’는 사군자의 다른 이름이고, 동시에 이인상 자신을 나타내는 자화상의 다른 이름이며, 18세기 조선의 모습을 표현하는 다른 이름이고, 무수한 다른 이름을 그 속에 담고 있는 데리다의 ‘산종’적인 그림이다. 

그리스어 파르마콘의 이중적 개념을 가진 동양적 용어로는 ‘심추’(審醜)를 거론할 수 있다. 심추란 진정한 대미(大美)를 체험하는 것을 말하는데, 심추의 태도로 사물을 관조하는 사유방식에 의해 형식미 속에 감추어진 추악(醜惡)을 들추어내는 이추견미(以醜見美)와 특정한 추가 진정한 대미임을 체험하는 이추현미(以醜現美)의 방식으로 실현된다. 청나라 유희재(1813~1881)의 예개(藝槪)에 보면 “醜到極處 便是美到極處”(추도극처 변시미도극처)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추하면 추할수록 아름다움은 커진다.”는 뜻이다. 또한 노자 2장에 보면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천하가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추악함일 뿐이다.”라는 뜻이다. 그림이 너무 복잡하기만 하면 난해하고, 너무 질서만 있으면 지루하다. 이처럼 혼란과 질서의 적절한 관계가 그림을 아름답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인상의 ‘병국도’는 아름다움과 추함 그리고 질서와 혼란이 한 폭의 화선지에 담겨짐으로써 그리스어의 파르마콘이 갖는 이중성과 동양의 심추 개념을 그림으로 실현하고 있다. 시들고 병든 국화를 통해 슬프지만 아름다운 서정을 나타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화라는 기존의 소재를 활용하여 질서를 추구함으로써 미와 추가 공존하는 심추의 경지에 도달한 그림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Ⅸ. '질주학'(Dromology)이 아닌 ‘정지학(停止學)’이 지배하는 시대의 그림
 비릴리오는 전반적인 매체 상황에서 새로운 학문인 '질주학'(Dromology)을 제시하고, 이 ‘질주학’을 중심으로 어떻게 속도가 공간을 소멸시키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질주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변하는 현대사회를 표현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변화속도가 빠르지만, 이인상이 살던 18세기 역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번의 전쟁을 치르면서 발생한 경제적 피해와 지배계급에 대한 불신 그리고 농업과 상업의 발달로 인한 사회 신분의 동요라는 현상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시대였다. 하지만 조선의 집권 세력인 노론은 성리학을 통치철학이 아니라 예학으로 변모시키면서 사회적 변화가 질주하는 것을 통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인상의 시대는 ‘질주학’이 아니라 급격한 사회 변화를 철저히 막는 ‘정지학(停止學)’이 시대적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므로 ‘병국도’는 질주해야 하는 시대가 억지로 정지된 시대를 나타내고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병국도’에 나오는 국화처럼 꺾여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병국도’는 이러한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병국도와 시대적 흐름을 같이 하면서 나타난 윤두서와 강세황의 자화상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려는 새로운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성리학이라는 체계가 강제하는 기호를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그리려는 모습은 정선의 진경산수화와 민화 등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대적 정신의 씨앗인 것이다. 많은 씨앗이 땅에 뿌려지지만 모든 씨앗이 싹을 내지는 않는다. 어떤 씨앗은 썩어서 자신의 싹과 꽃을 피우지 못하지만 결국 썩은 씨앗을 양분 삼아 다른 씨앗들이 싹을 내고 꽃을 피운다. 또한 피어난 꽃이 영원히 자신이 모습을 유지할 수는 없다. 반드시 꽃은 병들어야 하고 또한 땅에 떨어져 썩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또 다른 씨앗이 뿌려지고, 또 다른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이인상의 ‘병국도’는 시대의 흐름을 벗어난 그림처럼 보여졌기 때문에 후대의 미술사가들에게 철저히 잊혀진 그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인상의 ‘병국도’만큼 시대와 자신의 모순되는 모습을 잘 담아낸 그림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우리는 이인상의 ‘병국도’를 통해 그림 속에 녹아 있는 18세기라는 시대의 진면모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그림을 단순히 중국적인 미학의 기준으로 파악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우리 선조의 그림을 해석하기 위해 서양적 해석의 도구를 가지고 와서 적절하게 접목을 시키는 것도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질주학’이 아니라 급격한 사회 변화를 철저히 막는 ‘정지학(停止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이인상의 ‘병국도’를 접근하는 것은 ‘병국도’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도구가 된다. 

Ⅹ. 숨 막히는 떨림을 가지고
감성이라는 것은 하나로 종합하고 요약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감성의 자료들 간에는 어떤 결별과 단절이 있다. 감성이란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체 기관의 상태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며 우주를 알고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이 집중되는 추상적 사고이다. 우리는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을 가지고 있는데 감성은 지극히 자연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레비스토로스의 말처럼 원시민족에게는 자연이라는 개념이 항상 모호하다. 그래서 자연은 문화 이전의 것이며, 또한 문화의 아래에 있다. 그러나 인간은 문화를 구축하고 나서, 그것을 바탕으로 조상과 정령의 신들과도 만나고 싶어 하며, 예술을 통해 현실적 자신과 이상적인 자신을 동시에 만나고 싶어 한다. 현대인은 자연을 극복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오늘날에도 자연이라는 개념에는 초자연적인 요소가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현대 프랑스 시민에게 1789년 프랑스혁명이 현대 사회의 지형을 설명해준다고 말한다. 1789년이 만들어 놓은 지형을 좋게 보느냐 나쁘게 보느냐에 따라,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보는 방식도 달라지고, 또한 서로 다른 미래를 열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만들어 낸 가깝거나 먼 과거에 대한 상상은 신화의 본성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인상의 ‘병국도’는 이 그림을 감상하는 현대인에게 마늘과 쑥을 씹어 사람이 된 웅녀의 이야기 같은 신화처럼 다가와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에 대한 판단을 요청한다.  

고상한 정신을 담았다는 이유 때문에 중인과 천인들의 그림과 다르다고 보았던 문인화의 정신은 난해함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근을 망설이는 현대미술과 비슷한 점이 있다. 또한 스스로의 철학적인 지적 우월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도 현대미술과 문인화는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이인상의 ‘병국도’는 우리를 철학적 고매함으로 질식시키는 그림이 아니라, 18세기 어느 가을 한반도에서 피었다가 병들어 사라진 국화 한 송이를 그린 그림을 통해 우리는 이인상의 모습을 보고, 18세기 조선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상상이든 현실이든 우리가 꿈꾸며 살아가는 삶의 한 순간은 금방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일컬어 덧없다고 한다. 하지만 보들레르는 이런 덧없는 것들에서도 핵심이나 정수를 찾아낼 수 있다면 완전한 아름다움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아름다움이란 덧없는 것들만 있어도 안 되고 영원한 것들만 있어도 안 되기 때문에 이 둘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인상의 ‘병국도’는 덧없는 병든 국화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덧없음과 영원한 것들의 조화를 이루어낸 작품이다. 그러므로 덧없음과 영원한 것 사이에서 배회하는 현대 미술과 전형적인 문인화를 넘어서 서양의 파르마콘적 신비와 동양의 심추라는 모순적 심미관을 모두 충족시키는 ‘병국도’라는 놀라운 작품 앞에 우리는 숨 막히는 떨림을 가지고 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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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술사 방법론, 로리 슈나이더 애덤스, 박은영 옮김. 서울하우스. 2014, P60
2)  한국미술사 101 장면, 임두빈, 가람기획, 2009, P255~256
3)  조선시대 회화, 윤철규, 마로니에 북스, 2018, P38~39
4)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김대식, 21세기 북스, 2017, P35
5) 같은 책. P39
6) 인간에 대한 이해 예술에 대한 이해, 김광명, 학연문화사, 2008, P30
7) 감성시대의 미학, 박성봉, 일빛, 2011, P54
8) 호모데우스, 유발하라리, 김영사, 2017, P57
9) 인간에 대한 이해 예술에 대한 이해, 김광명, 학연문화사, 2008, P7
10) 미술사 방법론, 로리 슈나이더 애덤스, 박은영 옮김. 서울하우스 2009, P161
11) 같은 책. P242
12) 같은 책. P34
13) 중국회화이론사. 갈로. 강관식 옮김. 돌베개. 2010. P285
14) 한국의 미학. 최광진. 미술문화. 2015. P64
15)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김영 출판사. 2016. P24
16)  같은 책. P391
17) 한국의 미학. 최광진. 미술문화. 2015. P142
18) 20세기의 매체철학. 심혜련. 그린비. 2017. P23
19)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 류재화 옮김. 2018.  P56
20) 같은 책. P100
21) 아트 인문학. 김태진. 카시오페아. 2017. p 233

김장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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