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이천 창고화재는 인재였다
[덕암 칼럼] 이천 창고화재는 인재였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1.07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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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법대로만 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고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화재를 피할 수 있다.

일선 소방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화재의 대부분이 초기진화 실패나 평소 예방의 부재로 인한 실화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물 구경, 불 구경 싸움 구경은 돈 주고도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구경이라면 잘못된 표현이지만 현대판 화약고로 불리는 시화, 반월국가 공단의 화재는 경기도 안산, 시흥소방서의 초긴장을 요구 하는 바 시도때도 없이 언제 어느 때 사이렌이 울릴지 모르는 전시 상태다.

필자가 상주하고 있는 안산법조타운 건물은 안산법원 앞에 있지만 소방서와는 불과 3분 거리, 오랜 경험상 소방차 출동 경적이 연이어 울릴 때는 여지없이 대형화재다.

일반 출동과는 달리 소방차의 출동 대수나 출발하는 속도와 장비 대수만 봐도 감지되는 현장 상황은 상황실로 확인 전화 한통이면 현장 주소를 딸 수 있다.

거의 동시에 출발하다보면 간혹 소방차 보다 먼저 도착할 때도 있는데 대부분의 현장에는 초동진화에 성공했거나 화학물질이나 휘발성 연소재가 있을 경우 시뻘건 불길이 혀를 날름거리며 공장 전체를 집어 삼킬 듯한 형상도 볼 수 있다.

지금이야 안전을 명분으로 가까이 갈 수 없지만 어수선한 분위기에 미처 통제 하지 못한 길로 카메라 렌즈를 맞추다 보면 원형가스통이나 DANGER 라는 글자가 적힌 박스를 보게 되는데 내심 폭발물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물에 방화호스를 들고 나타나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볼 때면 불안함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이렇듯 현장을 목격하지 못하는 시민들이야 안방에서 텔레비전의 한 장면에 그칠지 모르지만 조그만 배려나 용서도 없는 화마는 인정사정 없는 것이다.

어쩌다 상가 건물 취재에서 유독가스를 마시거나 출입구를 못 찾아 헤매던 경험도 있었으니 다 지난 이야기다.

불에 대해 서두가 긴 것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오늘이 생각나서다. 2008년 1월 7일, 이천시 호법면에 위치한 (주)코리아 2000의 냉동 물류 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로 40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당한 바 있다.

오전 10시 50분부터 시작된 화재는 공장시공에 빠지지 않는 우레탄 폼을 태우며 삽시간에 번져 나갔고 마침 공사 중에 방치된 휘발성 물질들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기진화에 소방차 42대와 소방관 200여 명 추가로 투입된 장비와 인력이 200여대와 소방관 600여명이다.

4시간 만에 겨우 집힌 불길은 막대한 인명피해를 내고서야 진화됐다. 같은 해 12월 5일 낮 12시20분경, 이번에도 이천시 마장면에 위치한 GS리테일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비슷한 위치에서 발생한 두 사건의 공통점은 공사 중이라는 점과 부주의가 원인으로 밝혀졌다. 부주의, 관리·감독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고 이 또한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라는 점이다.

이 때도 8명의 사망자와 2명의 부상자로 인명피해가 따랐다. 12년 후 이번에도 또 이천이었다.

이천시에 대한 이미지는 창고 내지 화재로 각인되면서 애써 쌓은 도자기 축제나 임금님 진상미에 대한 사연은 묻히는 듯했다.

2020년 4월 29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640-1의 한 익스프레스 남이천 물류센터 냉동 및 냉장 물류창고 공사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오후 1시 반에 발생해 5시간 동안 건물전체를 태우고 38명의 사망자와 10여명이 부상당했다.

당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물류창고 공사 업체 측이 제출한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심사·확인한 결과 화재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 수차례 개선을 요구했지만 지적이 무시된 채 참혹한 결과에 직면한 것이다.

이천에서 발생한 3건의 창고화재만으로 대략 86명 사망에 21명이 부상당하는 사고를 기록했다. 이쯤되면 소방관들만 들볶을 게 아니라 특단의 조치가 따라야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까. 확인 결과 여전히 유독성 우레탄 폼은 공사용 자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공장뿐만 아니라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한 소재로 펜션이나, 상가에서도 여지없이 활용되고 있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불조심,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후 약방문을 반복할까. 이렇듯 문제를 지적 하는 데는 대안도 제시되어야 한다.

특정 지역에서 유사한 화재가 반복되는 것은 인재다. 화재가 산에서도 바다의 선박에서도 심지어 도심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지만 물류센터가 모여 있는 곳에 유사한 사고로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이는 분명히 실수의 범위를 벗어난 실패다.

천둥·벼락이나 화산이 폭발한 게 아니고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다.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우레탄 폼 사용이나 안전관리자에 대한 근무수칙을 강화하는 한편 화재발생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는 필요 이상의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

유사한 사고로 소중한 인명의 희생이 반복됐다. 화재현장을 백 번 이상 동행 취재했던 경험자로서 불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과 휘발성, 가스, 전기 등 어떤 형태로든 한번에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록 시간은 지났으나 화재현장의 피해자는 전쟁터 순국선열처럼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도 아니고 숭고한 희생으로 각인되지도 않는다.

보란듯이 어제도 평택의 냉동창고 공사장에서 3명의 소방관이 숨진 채 발견됐다. 언제까지 예견된 희생이 계속 되어야 할까.

특히 화상으로 인한 고통은 고도의 트라우마를 동반하는 만큼 환자 당사자가 감내해야 하는 깊이가 크다.

2022년 1월 7일 오늘 이천 창고화재 14주기와 유사한 환경에서 운명을 달리한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경제적, 정신적 충격을 감당하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표하며 같은 국민으로서 더 이상 같은 희생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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