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반도에서 모난 돌,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의 판별법, 변화무쌍한 남과 북의 반역사적 권력투쟁, “정치 괴물”의 피해자 시민과 인민!
[사설] 한반도에서 모난 돌,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의 판별법, 변화무쌍한 남과 북의 반역사적 권력투쟁, “정치 괴물”의 피해자 시민과 인민!
  • 이찬엽 논설위원 pinetree0516@hanmail.net
  • 승인 2022.01.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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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엽 논설위원
▲이찬엽 논설위원

정치의 가장 본질적인 핵심은 무엇일까? “함께 살아가는 것(living together)” 아닐까? 정치는 “정치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공존의 위해” 함께하는 일체의 행위를 가리킨다.

그리고, 정치가 얼마나 발전되었는가는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수준”과 “내용의 건실성” 그리고, “자신은 인내”하고 “타인을 포괄”할 수 있는 범위의 범주를 판단해 보면 쉽게 파악된다.

최근, “벼랑 끝 전술”이 대유행이다. 정치적 자산을 거래하려는 사람도 등장했다. 정치를 “말로 하는 행위”라지만 “허언”을 연달아 내뱉는 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자도 생겨나고 있다.

짧은 시간과의 사투로 인한 종말이 어떻게 일단락될지 상상이 안 간다. 또한, 이벤트성 정치가 판치고 이벤트성 외교 및 남북관계가 판치고 “자중지란”과 “억지춘향”이 팽배하다.

남녀 간의 사랑이 이보다 “달콤할까”? 여나 야나 “토라진 자들” 때문에, 사랑의 표현이 왠지 어색하고 과격하기까지 하다.

야 후보와 대표만 해도 벌써 두 번째 “얼싸안았고” 대통령과 김정은도 두 번 “밀착 포옹”을 한 바 있다. 그러면서, 피가 물보다 진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는 국민의 “대혼란”이었다.

다만, 변함없는 것은 “정권교체 대세”, 계속되는 혈세를 저당잡은 “포퓰리즘(populism)” 남발, 괴이한 “미사일 발사체”와 과거 “철의 장막(소련)”과 “죽의 장막(중공)”보다 더한 “북한 정권”에 대한 불신이었다.

원칙을 알되 변통을 모르면 고착되고, 변통을 알되 원칙을 모르면 “일그러진다”라는 말(경니권패: 經泥權悖)이 현 정치권에 빗대어도 꼭 들어맞는 말 같다.

하루가 지나면 달라지는 원칙과 변통의 “롤러코스터 세태”를 풍자해도 들어맞을 것 같다. 그러나, 원칙과 이를 응용하는 변통이 공익을 위해 쓰인다면 “금상첨화” 또한 아닌가! 인물, 정책, 상대방과 본인의 프레임에 대한 혼돈이 가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모난 돌”은 누구일까? 그리고 “굽은 소나무”는 누구일까? 코로나 및 경기불황에 괴로운 국민은 또다시 정치권의 “이전투구”에 “밥맛”까지 떨어졌다! 야당의 지지율 하락에 여당은 흐뭇해하고 있다.

불구경도 그런 불구경이 없다! 그러나, 여당도 지지율이 “박스권 정체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매우 근시안적”이다.

“바다는 어떠한 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과거 명언(해불양수)은, 이제 사용가치에 의구심이 생긴다.

이제는 오염된 물은 “걸러내야” (정치)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순항하는 선단(船團)일지라도 마지막에 큰 파도를 만나면 일순간 “좌초됨”을 항상 경계하라!

그리고, 현 세태에서, 더욱 문제는, 누가 “진보”인지 누가 “보수”인지 분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욱이, 요즘 주가가 상승세에 있는 “국민의 당”도 과연 무엇을 추구하는 정당인지를 명확히 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민주당 후보도 “박정희 정신”을 본받자는 말도 자주 한다. 매우 헷갈리는 행보 아닌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종자(種子)까지 팔아서야!

과거, “이승만의 자유당”도 처음에는 어찌 보면 보수가 아닌 진보에 가까운 형태의 당이었다. 왜냐하면, 자유는 진보를 대변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조봉암과 대립”했던 박정희(멸사봉공견마충성?)도 처음에는(1952년) 종전 정치세력을 뒤엎으려는 진보적인 성향으로 인해 조(曺)와 궤적이 같았다.

조봉암이 제거된 이후(1956년)에는 진보 좌익계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고, 그것은 민주 대 반민주 그리고 보혁이라는 대립양상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자. 지금은 어떤가? 우선, 북에서 쏜 미사일을 가지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의외로 강경입장을 보인 것은 한국이 아닌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북에 상당히 우호적인 국가인데 뜻밖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프랑스는 북이 UN결의를 준수해야 한다며, 북한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나섰다. 프랑스는 북이 발사한 미사일이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공식화 했다. 재래식무기든 미사일이든 “대량살상무기”를 동반한 운반체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우리 국방부는 기술적 측면에서 발사속도 마하 6 미만, 발사고도 50km 이하, 발사 거리 700㎞ 미만인 점을 간접적으로 인용, “화성-8형”과는 다름을 애써 부인했다.

탄두부 모양이 화성-8의 경우 날카로우면서 다소 짧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보도와 반대였다.

북을 너무 감쌌다. “신형 기동식 재진입체(MARV)”는 본채 상하 좌우에 설계된 날개를 통해 상당한 거리를 비행하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방향을 45도 좌우로 틀어 적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교란 및 무력화 시키고 종국적으로는 목표물을 “정밀타격”하는 고도의 미사일체계 중 하나다.

재래식무기가 대부분인 북으로서는 자국을 방위하겠다는 의지로 보이나, 2021년 1월 22일 이후 북이 도발한 9번째 발사로서 간과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아니라고 한다. 헷갈린다!

이처럼, 북의 도발에 대하여 종전에는 야당에서만 비판적 기조를 보였던 것과 달리 표면적으로는 “여당 후보”도 이에 동참하는 형국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보수 내지는 중도층의 표밭을 공략하기 위해서, “간과 쓸개”까지 빼놓는 무리수가 통할까?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혀있는 것도 “이 원인” 아닐까? 게다가, 여당에서는 안(安) 후보의 급부상에 계산이 복잡하다!

쟁점으로 들어가 보자. 정치사에서는, 1997년 IMF 경제위기가 큰 전환점이 되었는데, 그 때 우리가 알던 종전의 자유를 지향하는 보수주의는 갈 길을 잃고, 오히려 권위주의를 내세우는 세력이 주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북의 핵개발과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를 기준으로 이에 동조 및 묵인하는 계열과, 엄단 및 비판하는 계열로 확연히 구별되었고, 종전의 대북강경론에 대한 보수와 수구의 분리도 의미가 없어졌다.

즉, 우리가 말하는 보수계열과 서양에서 말하는 보수주의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한국의 보수는 영미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즉,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면서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의미와 다른 기조를 보였다. 즉, 지금 정치권과 반대였다.

헷갈림은, 현재, 무상복지 개념인 “기본소득” 등이 대두되자 종전의 보수는 “우경”으로 몰리고 “친일”로까지 전락한 것에서 시작된다.

보수주의(conservatism)는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현재 체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태도를 말하는데, 그것은 심리적 보수주의와 이데올로기적 보수주의로 나뉘고, 심리적 보수주의는 전통주의를 의미한다.

즉, 원래 의미의 보수주의는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며 변화를 배척하는 입장이다. 반면, 진보주의는 이를 타계하려고 한다.

“심리적 보수주의”가 “소유의 안전”을 바라는 욕망을 추구했다면, 이데올로기적 보수주의는 “이데올로기 진보주의”에 대한 대립국면에서 발생한 “반사적 이념”이었다. 즉,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는, 봉건 “귀족계급”을 역사적 기반으로 했다(프랑스혁명 당시). 특정적인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응답”이 보수주의의 시작이었다.

본질이 “방어”인 것이다. “소극성”, “강령의 불확실성”, “사상의 무체계성”이 특징이다. 진보주의가 현존 제도의 전반적 개조, “유토피아건설”을 주장하는 것과 상이하다.

보수주의는, 보존의 원리로서 “현재에 대한 변화 부정”, “역행의 원리로서 과거사를 현재에의 이용”, “진보의 원리와 반사적‧유기적 타협”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나아가, “자신과의 특수관계”를 반영하는 “위치(상황)”를 상당히 중시한다.

특정의 집단이 다른 집단 간의 특수한 관계를 반영한다. “시민계급의 보수주의”와 “노동자계급의 진보주의”의 대립이 “본질”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치권은 어떤가? 솔직히 진보도 보수도 명확히 구별하기 어렵고, 과연 진보정당이 있는가도 의심스럽다.

자고 일어나면, 여당 후보가, 보수에서 주장하고 정립했던 사상을 지지하질 않나 보수당이 진보당 형태의 “권력투쟁”을 하지 않나 매우 헷갈린다.

과거, 6.25 전쟁이 “이데올로기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사상(死傷)한 사람을 보면 “일반 군인과 무고한 시민”이 대부분이었다.

주체세력은 살아남아 북에서는 독재(가짜 공산주의)를, 남한에서는 부를 축적, 온갖 부귀영화(蓄財)를 누리고 있는 것을 봤을 땐, 가짜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가짜 김일성”의 비속들을 존중하는 정부의 태도는 “반진보주의” 아니던가? 인민을 억압하는 자들을 존중한다?? 그리고, 협작에 의해 살아남은 그리 의롭지 않은 수구세력과 보수세력의 사고방식으로 한국을 이끌어간다?? 식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그들에겐 국가의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능력이 없다! 이게 문제다! “국민의 눈높이”를 못 맞추는 큰 원인이 여기에 있다.

공익의 사각지대에 있는 “한계 가족”을 보수도 진보도 그저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머리를 쥐어 짜내서 정책을 개발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이합집산 사리사욕 부귀공명”에 올인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순조로이 해결될 것인가?

종전선언(終戰宣言)도 그렇다. 북한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불참을 확정 공식화 했고, 이는 현 정부의 종전선언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북한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해 국민으로 하여금 통일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 바 있다.

불참 원인은 “적대세력들의 책동”과 “코로나 유행(세계적인 대유행 전염병)”이었다. 미국과 추종세력들의 반중국 음모 책동을 언급하며 중국의 비위를 맞추려는 종속적인 태도였다.

한마디로 그들이 말하는 “주체사상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헷갈린다. “3대 세습과 부정축재”의 “가짜 공산주의”가 “중국을 엄호”하려 든다!

그러나, 지난번 문 대통령의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불참을 비웃기라도 하듯, 북은 또다시 장막을 치고 있다.

현 정부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쟁 당사국인 중국, 북한과 더불어 미국을 설득하여 종전선언을 이끌어 내려는 계획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소식이었다.

또한번 현정부의 이룰 수 없는 “짝사랑의 비애”가 현실화 됐다. 200만명을 살상한 그들이 그리 좋은가??

다시 돌아가. 그럼, 총괄?하여, 2022년 남과 북의 정치판에서 모난 돌은 누굴까? 김정은? 청(靑), 안(安), 이(李), 윤(尹), 심(沈), 아니면 또다른 이(李), 김(金), 홍(洪), 유(劉), 박(朴)일까? 아니면 지지 철회로 탈당한 김 변호사, 시무 7조의 조(兆)일까?

그러나, “백인 백색”인데 그것이 큰 문제가 되랴? 정치는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만 하면 된다. 사이비 인민 사랑, 상식 밖의 정치 행보, 사리사욕에 불타는 내로남불, 국민과 인민이 이를 용납할까?   

깨어진 화병이 잘 봉합되어 아름다운 장식의 꽃병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장담하지 못하며, 지난 5년간 엉망이 된 경제를 다시 살리겠다는 역설적 발언도, 주체의 변동이 없다는 점에서 어불성설로 다수의 국민은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은, 부지런히 일하는 마당쇠가 필요할 때다! 

이찬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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