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인류 역사는 생물체다
[덕암 칼럼] 인류 역사는 생물체다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1.1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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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 사는 세상사를 살펴보면 잠시도 멈추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나 다름없다.

전쟁과 평화가 그러하고 억압과 자유가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영토 확장이나 정복욕구를 채우기 위한 명분의 대립은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모르는 동물의 세계와도 같은 것이다.

동물과 같이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존재하는 것 외에도 인간은 충족함의 끝이 없어 사냥본능으로 만으로는 그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먹고 남는 것을 비축하고 지혜를 모아 사육과 농사를 짓는 것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오늘은 인류역사에 한국사를 비교해서 다가오는 미래를 점쳐 보기로 한다.

남 얘기 할것도 없이 멀리 청동기시대까지 갈것도 없이 불과 430년 전인 1592년 조정에서 이율곡 선생이 10만양병설을 주장했지만 간신들의 만류로 참혹한 임진왜란의 7년 전쟁부터 논해 보자.

임금을 비롯한 조정의 오판으로 죄없는 백성들만 침탈의 시련을 겪게 되는데 다행히 충무공 이순신 같은 영웅이 있었으니 나라를 지켜낸 것이다.

이 당시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은 조선군 외에도 명나라, 즉 지금의 중국에서 도와준 덕분에 왜군의 침략을 견뎌낼 수 있었다.

당시 명나라에서 4만3천명의 지원군을 파견하여 이듬해 1월 8일 겨우 평양성을 탈환하고 4년만에 다시 쳐들어왔으나 이 또한 명나라 덕분에 막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신세를 지고도 청나라의 협박에 못 이겨 명나라를 배신해야 했으니 당시 조정에서 명나라와 맞짱을 뜨자는 척화파와 덤벼봐야 답이 안 나오니 알아서 기자는 주화파가 양분되어 임금의 판단에 심적 부담을 주었던 것이다.

일본에 7년 동안 뒤지게 당하는 과정에서 힘없는 백성들이 얼마나 참담한 현실을 견뎌내야 했을까.

1599년 겨우 전쟁이 끝나나 싶었을 때 40년도 지나지 않은 1636년 12월 청나라 태종이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2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살만하면 한번씩 외세의 침략이 조선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어제도 영하 8도를 웃도는 매서운 한파에 성남에 소재한 남한산성을 찾았다.

385년 전인 1637년 1월 19일, 이날도 결코 추위가 덜하진 않았을 텐데 당시의 추위를 체험해 보기 위해 두꺼운 점퍼를 벗고 성벽에 기대어 한동안 차가운 한기를 느껴보았다.

영화 남한산성의 한 대목처럼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덮고 밤새 청나라 군사들을 경계하며 보초를 섰을 조선군의 심경을 입장 바꿔 생각해 보았다.

알아듣지도 못할 만주어에 막대한 군사력으로 태산이라도 삼킬듯한 위세였을 것이고 임금의 피난길에 함께 한 조정대신과 양민들은 형편없는 군사력에 사기도 저하된 상태에 무슨 희망이 있었을까.

그 와중에도 주화파와 척화파의 대립은 첨예하게 누가 충신인지 간신인지 분간도 못할만큼 혼란을 야기했다.

역사에 실린 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평가는 후손들이 할 일이다.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에는 그만한 충신이 없다는 점이다.

임금의 체신이든 백성의 목숨이든 그 어느 것 하나 중히 여겨 충언을 아끼지 않는 국무위원을 보기 어렵다.

서로 임금 자리를 놓고 당장 나라를 뒤집어 엎을 만큼 허언공약을 마구 남발하며 자신만이 대통령의 적임자라고 거품 물고 온갖 쇼를 하고 있다.

과연 병자호란이 남의 일이며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는 전쟁일까. 인조의 삼배고두례로 비참한 군신의 관계가 된 조선은 그후 수 십 만명의 백성들을 청나라에 갖다 바치는 조공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백성이 무슨 죄였던가.오는 1월 30일이면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던 날이다. 이 땅에 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어디 있으며 누가 안정된 미래를 장담할 수 있을까.

절대 아무 일 없을 것 같은 조선에 불과 11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의 야욕에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치는 친일의 매국으로 인해 36년간 온 국토에 쪽바리의 더러운 정액으로 도배질하는 치욕의 시간이 있었다.

약탈의 극치를 달리며 온갖 노략질을 일삼을 때도 조선의 매국지도자들은 사리사욕을 채우고 나라 구해 보겠다고 목숨 걸던 애국지사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셋방살이를 전전하고 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경술국치)의 공포이후 1945년 해방되었다가 다시 6·25전쟁이 있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오래지 않았다.

불과 5년 동안의 평화는 다시 유엔군과 중공군의 대결로 확산되어 한번씩 전세가 오르내릴 때마다 전 국토는 난장판이 되었다.

이제 총성이 멈춘 지 불과 69년, 지리적으로 볼 때 언제 어떤 이유로 또 터질지 모르는 한반도의 긴장이 복에 겨워서일까.

연일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연습이 실전을 전제로 한다면, 그리고 남쪽에서 먼저 치자는 선제공격 운운하는 발언이 당연시 되고 국민 60%가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대외적으로 발표되는 걸 보면서 전쟁을 전자오락쯤으로 아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먼저 치겠다는데 가만 있다가도 그냥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 상대 또한 먼저 칠수 밖에 없는 것이고 소위 선방놓으면 이길 수 있을까.

일대일로 맞짱 뜨는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전쟁은 그게 아니다. 대통령만 될수 있다면 무슨 말이든 아끼지 않는 후보들의 발언을 들으며 평화가 너무 오래 지속됐나 하는 느낌이 든다.

시기적으로 볼때 70년 주기로 일어난 전쟁이 재발될 때가 온듯 싶다. 앞서 거론한 몇 가지 외세침략의 사례를 볼때 정작 전쟁을 일으킨 자와 아무 영문도 모르고 생목숨 갖다 바치며 고초를 겪어야 하는 민초들의 참담한 현실은 따로 있는 것인가.

국민없이 국가없고 국가없이 대통령 없다.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이미 당선된 것보다 더 화려한 청사진을 공약삼아 발표한다.

한낱 한시적 선출직 공무원에 불과한 정치인들이 나라를 통째로 들었다 놨다 요지경이다. 발표하는 사람이나 이를 대서특필하는 언론이나 언제부터 후보들 중심으로 내편·네편이 있었다고 멀거니 줄서서 임명장 받아들고 한자리 하려는 사람이나 모두 공범이다.

오늘밤도 남한산성의 성벽에는 차가운 북풍한설이 몰아치며 얼어 죽고 베여 죽은 군졸들의 원성이 들리는듯하다.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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