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종교 편향”과 “알쏭달쏭한 제(諸) 정책”, 쓸어 담을 수 없는 불교 폄훼 발언, 역사와 전통에 대한 망각증상 재발, 심사숙고하지 않은 때늦은 대성통곡(大聲痛哭)!
[사설] “종교 편향”과 “알쏭달쏭한 제(諸) 정책”, 쓸어 담을 수 없는 불교 폄훼 발언, 역사와 전통에 대한 망각증상 재발, 심사숙고하지 않은 때늦은 대성통곡(大聲痛哭)!
  • 이찬엽 논설위원 pinetree0516@hanmail.net
  • 승인 2022.01.2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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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엽 논설위원
▲이찬엽 논설위원

한국 불교의 영예로움과 전통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평상시 생각한 대로 말한 정 의원의 “편향적 발언”이 “큰 파장”이다.

불교에 대한 이해와 역사의식이 과연 그에게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결국, 사달은 크게 났고, “엎질러진 물”을 쓸어 담기에는 한 참 늦었다.

가출한 처가 남편 과거급제 후 애걸복걸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복수불수(覆水不收)라는 말이, 정제하지 않고 거침없이 쏟아내는 정 의원에게 직접 통용될 줄이야! 또한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종교와 같은 “로마”로 재차 향하는 것을 국민 모두는 지켜 보고 있었고, 종교 편향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시 한번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김일성 주체사상을 외국의 종교학자들은 종교로 판단하고 있으니 앞으로 다가올 엄청난 소용돌이를 어찌 감당할까? 그들은 전 세계에는 21,000여개의 종교가 있다고 하며, 그중에서 놀랍게도 한반도에서 창시한 종교?가, 세계 10위권을 기록 중이라고 했다.

신도 수가 2,000만명이라니 그럴만도 한 것 아닌가? 짝사랑의 대상이 북쪽인데, 그렇다면, 종교 편향이란 말을 거기다 붙여도 허언이 아니질 않은가? 그렇게도 미사일을 쏘아대도, 속 시원한 경고 한 번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번 불교 비하 발언과 병립 가능한 것 아닌가? “북은 때리면 때릴수록 더 달려든다”는 말이라든지 “이번 선거에서 지면 감옥에 간다”든지 하는 말은 “사달 유발 발언”에 속할 수 있다!  

한국은 국교가 없는 나라다. 정교가 엄격하게 분리된 나라다. 개념상 정치와 종교는 엄격히 분리되어야 하고 정치권이 특정의 종교와 결부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종(政宗) 분리”를 뜻한다.

현재 한국의 종교 분포는 불교와 개신교가 각각 16% 전후, 그리고 천주교가 6%, 기타 무종교는 60%를 기록하고 있다.

즉, 무종교자가 우세다. 무종교의 자유도 종교의 자유에 해당한다. 또한 호감도면에서는 불교 20%, 천주교 13%, 개신교 6%를 나타내고 있다.

통계에서도 보듯이 한국의 정치와 비슷하게 종교계도 나타나고 있다. 정치계는 이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되며 정치로 종교를 회유하거나 찬양해서도 안 된다.

“강한 화살”도 종국에는 힘이 쇠약해지고(강노지말) “화려했던 풍선”도 바람이 빠지면 한낱 “쭈글쭈글한 고무”에 불과하다! 

한국 불교의 역사는 1,600여년이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 전진의 순도(順道)가 전래시켰다.

또한 기독교 역사는, 1816년 맥스윌과 홀의 군함이 군산‧서천군에 정박 조대복에게 영문성경을 전한 것을 시초로, 1832년 귀츨라프(네덜란드선교회)가 충청도에 전도문서와 성경을 전하면서 시작됐다.

기독교는 처음에는 침략을 기화로 이와 함께 한국에 전파되었다. 현재 불교종파로는 조계종, 태고종, 법화종, 천태종, 불입종, 일승종, 진각종, 진언종, 용화종, 정토종, 법상종, 미륵종, 천화불교, 원효종, 화엄종, 총화회, 영산법화사관음종, 구세불교, 보문종 등이 있다.

모두 부처님의 “자비”를 설파하고 한국 불교의 고유성을 구현하고자 한다. 추구하는 바가 이럴진대, 그 참뜻을 왜곡하고 폄훼해서 얻은 것이 무엇이었나? 경거망동 아닌가? 

종교 때문에 인류는 수많은 전쟁도 경험했는데, 이름하여 “종교전쟁(Wars of Religion)”이었다.

한 가정에서도 믿는 종교와 지지하는 정파가 달라 갖은 갈등과 반목을 겪는 경우가 자주 있다.

종교전쟁으로, 십자군과 알비즈의 전쟁(13C초: 이노센트 3세의 응징 요구), 후스의 전쟁(15C초: 얀 후스 화영, 보헤미아인 반란), 기사전쟁(16C초: 지킹겐 기사 트리엘 대주교령 습격), 스위스 신교 구교 전쟁(16C중: 츠빙글리 종교개혁), 슈말칼덴 전쟁(16C중: 카를 5세에 대항, 신교파의 제후와 도시의 슈말칼덴 동맹), 위그노 전쟁(16C후: 프랑스 신교파 위그노와 구교파 대립), 네덜란드 독립전쟁(16C후: 구교파 에스파냐 펠리페 2세의 칼뱅파 탄압), 영국‧에스파냐의 전쟁(16C후: 구교 부활 기도 및 스코틀랜드 여왕 M.스튜어트 영국 여왕 추대의 펠리프 2세와 엘리자베스 1세와의 대립, 무적함대 격파), 30년전쟁(17C초: 가톨릭파 페르디난트 2세의 보헤미아의 왕위 승계, 신구교 대립)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 모두는 순수한 종교적 문제로 인한 전쟁이 아니라 정치와 얽매여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는 점이 특징이다. 종교의 반목은 전쟁으로 이어졌고, 상처는 오래갔다! “대성통곡”한들 쉽사리 상처가 아물겠는가?

신앙의 자유는 “앙리 4세”가 사회적 화합과 평화를 구현하고자 “낭트 칙령”을 공표(1598)하면서 정착되었다.

거기에는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 신앙을 강요받지 않을 자유, 탈교의 자유, 신앙을 가질 자유, 신앙 선택의 자유, 포교의 자유, “종교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포함된다.

이로 인한 “사이비 종교” 또한 극성 중이다. “신천지”는 법인까지 취소됐다. 언급한 종교 간 분쟁, 종교 폄훼 발언 등 각 종교의 신자와 상대 신자 간의 안티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더욱 문제시 되는 것은 “사실상의 종교탄압”이다. 이는 드러내놓고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암묵적으로, 조직적으로, 장기적으로, 서서히, 눈에 띄지 않는 방법으로, 상대 종교를 억압하는 것이다.

북한 헌법상에도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종교탄압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하에서 종교활동을 한다고는 전해지고 있으나, 김일성 편향이 말이 되는가?

그런데,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처럼 수하르토 이래 무신론자를 공산주의자라고 판단하여 억지로 종교를 갖는 경우도 있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되 종교적 신념이 드러나는 것을 금기시했던 시기도 있었다(라이시테(laïcité), 프랑스). 이는 불필요한 갈등을 사전 봉쇄, 테러리즘의 발발을 억지시키고자 함이었다. 더욱이 국가무신론주의를 채택‧강요한 적도 있었다(엔베르 호자의 알바니아).

또한 중국도 발전적 종교정책을 쓰다가 시진핑에 이르러 기독교와 이슬람 탄압에 발 벗고 나섰다. 특히, 위구르의 이슬람에 대한 탄압이 극심하다.

할랄 식품(Halal food: 무슬림에게 허용된 식품)금지는 물론 히잡(hijab: 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와 상반신을 가리기 위해 쓰는 쓰개)도 금지하려 하고 있다.

최근 쿠데타로 문제가 된 미얀마의 경우 불교를 제외한 여타 종교의 포교를 금지하고 있다. 그 결과, “북한”과 지구상 “최하위 국가”라니?

그렇다면, “종교와 정치 간의 관계설정”이 중요해지는데, 이에 대하여는, 크게 세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로, 한국, 미국, 일본처럼 헌법상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분리하는 정교분리 형태가 있고, 둘째로, 독일, 이탈리아처럼 특정의 조약과 같은 형태(콘코르다트, 정교조약) 즉, 국가와 종교(로마 가톨릭 교회) 관계인 국가 간 조약과 같은 형태가 있다.

셋째로, 프랑스, 브라질에서 운용되는 방식 즉, “관용령 방식”도 있다(우세종교 존중). 얼마나 처절했으면?? 

그런데, 여당 정 의원의 불교계에 대한 “봉이 김선달”이란 사단으로 큰 사달이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대장동 사건, 형수 욕설 사건에 힘겨워하는 여당으로서는 악재가 또 발생한 것. 국립공원 내 사찰 문화재 관람료 징수를 “봉이 김선달의 사기 사건”에 빗댄 것이 파국이었다.

봉이 김선달은 본래 직업이 없이 조선 말 평양부에 살았던 희대의 사기꾼이었다. 소설에서는 김인홍으로 되어있다. 무과초시합격이면 선달이다.

봉이라는 말은 “닭을 봉”으로 거짓 여기게 하여 사기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선달과 비교되는 인물 “허생”은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유학적 입장의 이타적 선량이었지만, 김선달은 사회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득을 추구한 이기주의자였다는 상이점이 있다. “역사와 소설”을 주마간산 여긴 “과오”가 크다!!  

관련하여 정 의원은, “불교계에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서 참회와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고, “지난 몇 달간 많은 성찰과 사색의 시간을 가졌으며 불교계의 고충과 억울한 점도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하는가 하면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오신 불교계와 스님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고도 했다.

정 의원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본인의 정치생명은 물론 대선까지도 악영향을 끼치게 됐으니 통곡할 일 아닌가! 특히, 문제는 그 이후의 발언이다.

정치권에서 윤핵관이라는 말이 비호감 언어임을 누구나 아는 상황인데도, “이핵관”이라는 거북한 말을 지어내면서,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는 모양새다.

효과 없는 “자승자박” 행위를 계속했다! 국민의 눈높이, 나아가 불교계의 현 상황에 대한 오판이 계속됐다! 

당 관계자는 이에 대하여 스스로 탈당할 것을 권유하는 분위기다. 어떻게 만회한 의정활동인데, 이럴 수가! 승려대회에 참석하여 마지막으로 사죄하고 훗날을 기약하려 했지만, 정관론에서의 브리핑에 그치고 말았다.

분위기의 심각함을 의식한 송 대표도 특정 종교 편향 없을 것이라는 단호함을 보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송 대표의 속은 계속 타들어 간다.

다양한 종교의 공존과 상생을 목청껏 부르짖었고 종교 평화 차별 금지 위원회까지 설치하겠다는 대선공약도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구화지문(口禍之門)”도 여기에 비할까? “복수불수(覆水不收)”라 했건만, 이다지도 “엄(嚴)”할 줄이야! 어느 때고 복수불수하고 대성통곡해서 될 일이라면 역사책은 한없이 얇았을 것이다.

김일성도 역사를 올바로 인식했더라면 시대의 영웅이 될 수 있었으련만! 위정자들의 역사 및 전통에 대한 인식과 사고는 아무리 봐도 부족한 것 아닌가! “속세를 등진 자”와 “속세에 몸담은 자”의 갈등이 있다면 누구의 귀책인가?

비교하여,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도 결국은 종교분쟁에서 시작되었다. 방글라데시(동파키스탄: 1971)의 독립 문제를 놓고, 인도(방글라데시 지원)와 서파키스탄이 벌인 전쟁이었다.

과거 처칠이후 클레멘트 애틀리의 인도 독립 찬성신념은 지대했었다. 힌두교-시크교의 비무슬림과 이슬람(무슬림) 간 종교갈등은 피를 불렀었다.

허나 동벵골 지역의 파키스탄 자치령(방글라데시: 무슬림 다수)을 도운 것은 이교도에 대한 이간책의 결과치고는 인도의 민낯을 보는 듯했다. 애꿎은 “카슈미르”를 종교갈등의 희생양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한국도 김일성 주체사상을 종교로 본 외국의 종교학자들의 견해를 존중한다면, 결국 종교전쟁을 치른 것 아닌가! 파키스탄과 인도가 반목하는 것과 남북이 대립하는 것이 딱히 다른 점이 없는 것 아닌가! 알쏭달쏭한 대북 정책이나 불교 폄훼의 근본 원인이 혹여 같은 것 아닌가? 

국보 중 [제1호(숭례문)부터 국보 제336호(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까지] 거의 모두가 불교유산이다.

그리고 보물 중 [제1호(흥인지문)부터 보물 제2118호(지정조격 권1∼12, 23∼34: 원대 법전)까지] 90% 이상이 불교 유물이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불교의 역사가 민족의 역사였고 호국의 역사였다는 점이다.

이를 “사기꾼 봉이 김선달”과 비교한 것은, 이야깃거리인 소설만을 생각한 “가벼운 처사”였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국에는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느 한 종교에 편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당국도, 종교 때문에 수많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음을 직시해 보고, 연계하여, 현행 헌법 제20조에서 “종교의 자유”를 천명하고 “정교분리”를 힘써 강조한 까닭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이찬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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