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임인년 새해 절망에서 희망으로
[덕암 칼럼] 임인년 새해 절망에서 희망으로
  •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2.0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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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달력의 양력에는 서기 2022년 2월 1일이지만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 1월 1일이다.

우리 민족은 ‘설날’이라 하고 민족 대명절 분위기속에서 고속도로는 극심한 정체를 나타냈다.

제 아무리 코로나19로 고향방문을 자제하지만 오랜 풍습과 부모님을 위하는 국민들의 효심까지 정부가 막지는 못한 셈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2년간 얼마나 힘들고 절망 속에 인내로 견뎌왔던가. 자영업자만 힘든 것 같지만 나타내지도 못하고 숨죽이며 견뎌온 국민들도 참으로 많았던 날들이었다.

가난할수록 민심은 피폐해지고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이 누굴 도우며 위할 수 있을까. 돈이란 게 돌고 돌아야 세상이 부드러워지는 것인데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답답하기는 대동소이하다.

‘부익부 빈익빈’ 이라 했던가. 최근 언론에 보도된 보이스피싱의 통계를 보면 발생건수가 줄어드니 당연히 검거 건수와 인원도 줄어드는 현상을 나타냈다.

이쯤되면 전화사기업계(?)도 불황을 타는 듯 싶다. 문제는 건수가 줄어드는 반면 금액은 늘어났다는 점이다.

짚어보면 2019년 약 5만 명에 달하는 전화사기 피해자가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부터 해마다 1만 명씩 줄어들었으나 금액은 매년 600억씩 증가해 건수 대비 피해액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화 사기의 방법도 갈수록 교묘해지다보니 이제는 사법기관의 수사협조조차 전화사기의 일당으로 오해 받는 일까지 벌어진다.

간단히 요약 해봐도 계좌이체는 대폭 줄어드는 반면 직접 만나서 건네받는 대면 편취는 대폭 늘었다. 무슨 현상일까.

경제적으로 어렵다보니 중간 전달책에 많은 서민들이 동원된다는 증거다. 조직의 상층부는 배일에 쌓여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몇 푼의 돈으로 심부름하는 알바들의 희생만 늘어간다는 점이다. 이걸 보고 빈곤의 악순환이라고 할까.

당장 쓸 돈이 없으니 고액의 알바라는 유혹에 빠져 신세를 망치는 것이며 직접 담을 넘지 않을 뿐이지 간접적인 도둑이나 진배없다.

살림이 넉넉한데 담을 넘을 바보는 없는 것이며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구조치고는 꽤나 고약한 사람들이다. 돈을 사기당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예 넉넉한 사람이면 어떤 사기도 당하지 않겠지만 어설프게 잔고가 있는 사람들의 허점을 노리는 범죄 유형이 잘 먹히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유형으로 대출을 빙자한 계좌노출, 비밀번호 노출이 그 예이며 돈이 없으니 얼마라도 대출받으려는 것이 화근이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인한 정부지원금을 빙자한 사기는 가난에 허덕거리던 국민들을 속이기에 상당한 공감대가 서 있는 대목이다.

담보도 부족하고 신용도 낮은 사람에게 선뜻 돈을 빌려준다면 이 또한 공짜를 바라는 사람의 잘못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당장에 라면 살 돈도 없는데 대출해 준다고 온갖 개인정보 다 캐내고 금방이라도 돈을 이체 해줄 것처럼 계좌번호를 부르라 하니 누가 흔들리지 않을까.

특히 설 명절을 틈타 택배 배송까지 전화사기의 범죄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대출안내 전화부터 멀쩡하던 신용을 상승시켜주겠다고 헛바람을 넣는 전화, 가족이 다쳤다거나 스마트폰이 고장이라며 대신 건다는 유형은 이제 고리타분한 구식이다.

아무리 강조하고 지침까지 알려줘도 여전히 범죄가 가능한 건 순진하고 선량한 국민성 때문이다.

그 어떤 범죄보다 무거운 형벌을 내려야 근절될 수 있다. 돈을 잃는 것도 안타깝지만 그렇게 당한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누구든 믿지 않는 불신의 벽을 쌓게 되는 것이고 세상을 원망의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도 걸핏하면 걸려오는 대출안내를 받으면서 어떻게 번호를 알게 되었느냐는 질문에는 랜덤으로 돌려서 건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이스피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은 멀쩡한 전화사기라는 우리말을 두고 경찰부터 외래어를 쓰기 때문이며 랜덤 또한 무작위로 바꾸면 될 일이다.

경찰이나 사기꾼들이나 우리말 쓰기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논하고자 한다.

먹혀드는 사람, 즉 공급이 있으니 사기 치는 수요가 있는 것이다. 마치 성매매가 남자만의 범죄일까.

파는 여자가 있으니 사는 남자가 있는 것처럼 전화사기가 일체 안 먹혀들거나 검거시 중형에 처해야 근절될 수 있으며 종래에는 서로 믿고 신뢰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설 명절날 좋은 소재도 많은데 씁쓸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필자 또한 불편하지만 불신사회의 소재가 되는 전화사기는 임인년부터 강력히 다뤄서 신용이 살아있는 나라, 땀 흘리지 않고 남의 것을 가로채는 파렴치한의 설자리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안 그래도 코로나19로 인해 충분히 힘든 현실이다. 보태지는 못할망정 주저앉게 해서야 되겠는가.

혹여 돈이 사람의 생목숨을 끊는 동기가 된다면 더욱 엄벌에 처해야 한다. 간접 살인이나 마찬가지이며 한푼 두푼 모아둔 쌈짓돈을 목숨처럼 아끼는 어르신들의 마음에는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다.

조선시대처럼 태형을 마련하여 곤장을 치거나 인적사항을 대외적으로 공개하여 사회적 망신을 추가한다면 줄어들까.

남이야 망가지든 말든 사회적 약자를 이용하여 자신의 배만 채우는 범죄자는 가장 중한 벌로 다스려야한다.

또한 경찰이나 행정 공무원은 지금보다 더 정확하고 적극적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홍보에 나서야 할 것이며 당한 사람만 억울하고 마는 형식적인 수사는 근본부터 개선해야 한다.

서버가 외국에 있느니 당한 사람도 공짜를 바라며 그런 거니 하는 핑계만 댈게 아니라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라고 세금 걷어 월급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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