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말로만 상공인의 날
[덕암 칼럼] 말로만 상공인의 날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3.16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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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하늘에 해가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점포는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 하늘에 별이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장부엔 매상이 있어야 한다.

메뚜기 이마에 앉아서라도 전을 펴야 하고 강물이라도 잡히고 달빛이라도 베어 팔아야 한다.” 일이 없으면 별이라도 세고 구구단이라도 외워야 한다. 김연대 라는 사람이 쓴 ‘상인일기’의 첫 대목이다.

상인은 오직 팔아야만 하는 사람, 팔아서 세상을 유익하게 해야 하는 사람, 그러지 못하면 가게 문에다 묘지라고 써 붙여야 한다고 마무리된다.

실제 현실에서 자영업자들의 비극적인 종말이 줄을 잇다보니 영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오늘은 49년 전인 1973년 3월 16일 한국의 상공업 신흥을 촉진하기 위해 지정된 ‘상공인의 날’이다.

이후 49년이 지나도록 정부는 온갖 미사여구와 탁상행정으로 일관해 왔지만 별반 달라질 게 없는 상공인들의 현주소는 열악함 그 자체였다.

장사꾼, 잡상인, 고객을 왕으로 치부하며 종이 되어버린 사회적 신분, 사업자의 인·허가부터 온갖 단속의 틀 속에 갇힌 채 말이 업주지 현실은 슈퍼 을이 되어버린 천민으로 전락했다.

극히 일부분이 먹고는 살만하나 이 또한 장기적인 미래까지 보장된다는 보장은 없다. 이러니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선택한 분야나 품목에 따라 수익구조나 종사환경이 천차만별 다르다.

같은 영업이라도 고급 자동차와 자전거의 매출과 고객층이 다르며 조그만 볼트를 제작하는 가내 수공업 수준의 제조와 대형 모터를 제작하는 공장과는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장이 잘 돌아가야 월급이 넉넉하게 나오는 것이고 식당도 미용실도 의류나 신발판매점도 다같이 먹고 사는 것이다.

그러기에 개별적으로 보면 각기 다른 독립재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있는 것이다.

사람은 사는 게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분업화된 사회는 누구하나 개인적인 독점이나 횡포로 살아갈 수 없도록 적당한 수요가 발생하면 자연스레 공급이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시대적 변화도 한몫 하겠지만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 했던가. 동네 구멍가게가 마트로, 다시 마트가 홈쇼핑이나 해외직구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뭘 잃었고 뭘 얻었을까.

지금은 지역상권 살리겠다고 아우성이지만 그 이전에 유통체계만 들여다 보자. 지금으로부터 약 35년 전 필자가 동네 구멍가게를 운영했을 때의 이야기다.

아침이면 야채, 과일 도매상이 물건을 내려놓고 오전에는 주류차량이 술과 음료를 갖다 준다. 이어 각종 공산품과 생필품, 잡화 등 도매상들이 줄지어 물건을 팔러온다.

물론 반입에 따른 반출도 있기 마련이라 아침부터 밤늦도록 점포를 찾아오는 동네주민들은 콩나물 더 달라거나 한달 내내 외상을 했다가 갚는 날이면 온갖 생색을 내기도 하고 외출하는 주부들이 맡겨놓은 집 열쇠까지 보관하는 일종의 동네 심부름센터 역할도 한다.

필자뿐만 아니라 동네 슈퍼 주인들은 그만큼 만만하고 미더우며 온갖 정보가 모아지는 곳이자 낯익은 사람들의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관할 지자체의 허가를 얻은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파격적인 소비자가, 다양한 품목, 쇼핑외에 문화센터까지 갖추면서 일명 원스톱 쇼핑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동네 구멍가게주인을 지나치던 주민들도 점차 발길을 멀리하고 줄어든 매출을 감당 못해 문 닫은 가게들이 하나 둘씩 늘면서 유통체계는 자연스레 대형마트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소액이라도 집 문앞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는 물론 마일리지 적립과 깜짝 세일 이벤트로 알뜰한 주부들의 구매찬스까지 챙겨주니 대형 마트 1곳이 생길 때마다 주민들의 눈과 귀를 대신하던 구멍가게 수 백 개는 폐업상황에 직면했다.

이제 외상을 할 곳도, 열쇠를 맡기거나 콩나물 값을 깎아 달라는 실랑이는 들을 수 없게 됐다. 우물 정보는 스마트폰의 SNS가 대신하고 동네에서 돌고 돌던 현금은 할인마트 본사로 집계되어 순환되던 유통구조는 그 모양새를 달리했다. 영원한건 없다던가.

대형할인매장의 매출은 인터넷을 통해 홈쇼핑으로 옮겨가고 가격 경쟁은 이제 국외로까지 이어졌다.

일명 해외직구나 제조사와 소비자를 직결시키는 다단계까지 출몰하면서 소박한 정담이 넘치는 구멍가게 이야기는 전설로 남게 됐다.

슈퍼마켓 말고 모든 업종이 유사했다. 양복과 구두는 물론 장인정신이 필요했던 수작업의 현실은 어느 날 갑자기 낭떠러지를 맞이했다.

대한민국의 상업·공업인들의 현실은 하루 아침에 대형화·기계화되면서 일명 무한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앞뒤는 물론 위아래도 가릴 것 없이 살벌한 경쟁이 당연한 듯 벌어지고 있다. 이게 과연 함께 사는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로 가는 길일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지금같은 추세라면 초밥이나 각종 조리는 물론 음식 운반까지 기계가 대신하면서 종래에는 인간의 설자리는 좁아지다 사라질 것이다.

이미 어지간한 3차 산업은 자판기나 셀프라는 명분으로 변해가고 있지 않은가. 은행도, 주유소도, 편의점은 물론 모텔까지 무인판매업소가 늘어나면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는 점차 축소되고 있다.

문명이 대신 할 수 있는 게 있고 해서는 안될 분야가 있다. 기계가 당장의 비용은 축소시킬지라도 사람의 감정이나 친절, 신뢰, 배려까지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재래시장을 가보면 처음에 팔리는 마수, 중간에 팔다보면 덤, 끝부분은 떨이 라는 게 있다.

물론 가난한 시장판의 아재 단어 정도로 들리겠지만 훈훈한 인심과 삶의 교향곡이 될 시장판의 외침은 현대 문명이 흉내 낼 수 없는 분야다.

다 잃고 변하더라도 사람만큼은 잃지 않도록 인본중심의 정책을 펼쳐야 어느 정도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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