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국민과의 소통과 화합 의지, 청와대에 대한 조선 총독의 빙의(憑依), 김신조(북한 특수부대원)의 지엄한 지령(指令)!!
[사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국민과의 소통과 화합 의지, 청와대에 대한 조선 총독의 빙의(憑依), 김신조(북한 특수부대원)의 지엄한 지령(指令)!!
  • 이찬엽 논설위원 pinetree0516@hanmail.net
  • 승인 2022.03.2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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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엽 논설위원
▲이찬엽 논설위원

탑다운 방식이 옳은가 아니면 버텀업 방식이 옳은가. 콘클라베 방식이 옳은가. 그리고, 봄꽃은 언제 지는가. 지는 해와 뜨는 해 중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여야가 급속히 바뀌고 있는 현 정치권은 그래서 복잡하다. 그런데, 지금의 정권교체는 왕과 왕세자 간의 승계문제는 아니다. 

청와대는 어떤 곳인가. 과거 조선 총독이 노닐던 구중궁궐 아닌가. 관저 관련 인물인 “아베 노부유키”는 아베 전 수상의 조부이며, 일제강점기 마지막 조선 총독이다.

노부유키가 거처하며 조선을 탐욕 했던 발원지가 지금의 청와대 자리다. 또한, 관저 관련, 김일성은 주석궁(금수산태양궁전)에서 적화통일을 꿈꿨지만, 계속 바뀌는 김정은의 직무실은 룡성관저(55호 관저)로 거기가 아니다. 거기는 무덤이다. 미라 무덤이다.

즉,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를 김정일 이후에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 총독의 빙의(영혼이 옮겨 붙음)가 청와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악명높았던 “아베 노부유키”는 누구인가. 정신대를 비롯해 물적‧인적 수탈을 무지막지하게 했고, 우리(일본)는 패하였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며, 조선의 영화를 되찾으려면 최소 100년이 걸리고, 총과 대포보다 영향력 있는 “식민교육”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한국은 식민교육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후안무치의 말을 남기고 떠났던 자 아닌가.

그런 자가 지극히 사랑했던 곳이 지금의 청와대 자리인 것이다. 당시 아베 노부유키의 조선에 대한 간교한 책략은 조선인을 통한 조선인 견제였다. 

또한, 아베 신조(전 일본 총리)의 외조부(기시 노부스케, 1957 수상)는 어떠했는가. 기시 노부스케 역시도, 만주국 정부에서 산업계를 지배하면서 조선을 발판삼아 아시아를 통째로 삼키려는 야욕자였다.

조선 통감(이토 히로부미 외 2명)과 총독(데라우치 마사다케 외 8명)들은 하나같이 조선의 자치력을 폄훼했고, 그들이 산업화에 기여했음을 강조했다.

그후 일본 선생에게서 배운 지식인이 나라를 더 망쳐놨다. 학창시절, 법학자라고 역사학자라고 보란 듯이 활보하던 식민사관에 젖은 그들의 명강의?를 듣고 박수치던 자들이 얼마 이던가.   

또한, 그곳은, 1968년 1월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124군 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했고, 거기서 살아남은 김신조가 대통령 살해 미수에 그쳐 대한민국에 귀순하여 팔자를 고치고 목회자의 길을 간 곳 아닌가.

언급한, 청와대는 본관 2층의 청기와에서 유래됐다. 고려의 남경(별궁)이 있었던 곳이며, 조선시대(세종)에는 연무장, 과거장, 그리고, 왕이 친히 농사를 짓던 곳이었다.

수십년간 조선총독관저였다가 미군정장관의 관저로 사용되기도 한 이곳은, 정부수립후 경무대로 불렸으며, 윤보선 대통령 때부터 청와대로 지칭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일제의 잔재를 철거한 바 있다.

현재 청와대는 본관(대통령 집무 및 외빈접견, 1층-영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 무궁화실, 인왕실, 1층 별채-충무실(식당, 만찬장), 세종실(회의 접견), 2층-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백악실(식사), 집현실)), 영빈관, 대통령관저, 수궁터(구 본관, 농사터), 상춘재(외빈 접견, 총독부의 매화실(梅花室)), 녹지원(야외 행사장), 대통령비서실(여민1관, 2관, 3관), 춘추관(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와 출입 기자들의 기사송고실), 무궁화동산(청와대를 찾는 관광객 이용), 칠궁(왕을 생산한 후궁들의 위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용산 이전은, 과거, 총독관사 건물의 대(大)자 모양, 총독부 청사 건물의 일(日)자 모양, 서울시청 건물의 본(本)자 모양 즉, 대일본(大日本) 글자를 이루었던 지역을 떠나 새로운 시대를 열고 “국민과 함께 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풀이된다.

문제는 비서실 즉, 여민관인데, 청와대 비서실인 “여민관”은 원래 국민을 위한다는 의미에서 “위민관”(이명박)이었지만 현 정권이 이름을 바꿔놨다.

노후된 건물로서, 안전진단 불합격 건물이다(D등급). 비교되는 “여민락”은 조선조 개국의 당위성 및 태조 이성계의 위업을 송축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었다.

여민관의 의미가 “여민고락(與民苦樂)”이라고 했지만, 결과가 “서민고생(庶民苦生)”으로 나왔으니, “여민락”의 의미에 가깝게 됐다. 즉, 백성을 위한다는 의미였지만 대다수 국민만 고생고생하게 됐다.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도 왜곡을 두려워한 까닭 아닐까!  

외국의 경우, 미국은 백악관, 프랑스는 엘리제 궁전, 러시아는 크렘린, 이탈리아는 퀴리날레 궁을 관저로 사용하고 있다.

각국의 통치권자의 관저는, 오랜 전통을 간직하고 국가의 독립성과 자존심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국은 반대였다. 통치권자들은 하나같이 “일제 잔재 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왜였을까? 

표본이 된, “미국의 백악관”은 세 부분(중앙관저, 웨스트 윙, 이스트 윙)으로 나뉘며, 중앙관저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웨스트 윙(The West Wing)이 있고, 동쪽에는 이스트 윙(The East Wing)이 있다.

중앙관저(본관)는 대통령 일가의 거주 공간이며, 이스트윙은 영부인의 집무실로, “웨스트윙(West Wing)”은 “대통령의 집무공간”으로 사용된다.

웨스트 윙에는 대통령실(Executive Office-대통령 비서실장, 비서), 국가안보보좌관실, 부통령실(비서관 포함)이 있다.

특히, “오벌 오피스(Oval Office)”는 백악관 웨스트윙(West Wing)에 위치한 대통령 집무실이며, 원래 뜻은 “타원형 집무실”이다.

대통령은 중요한 대국민 연설시 오벌 오피스의 책상에 앉아서 한다(오벌 오피스 연설). 웨스트윙은, 오벌 오피스와 루스벨트룸, 국무회의실(캐비넷 룸: Cabinet Room)로 구성되어 있고, 백악관 전용 기자회견장(오벌 오피스 옆) 및 로즈가든(백악관 서쪽 정원, 정상들의 공동기자회견장)이 자리 잡고 있다.

오벌 오피스(Oval Office)에 있는 빅토리아 여왕의 선물(난파 영국 해군 레졸루트(Resolute)호 감사)인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에서는 수많은 담화가 이루어진 바 있다(쿠바 미사일사태-존 F 케네디, 9‧11테러 사태-조지 W 부시).

언론에서 “웨스트 윙에 따르면”이라고 할 땐, “백악관 참모진”을 뜻한다. 건물은 작지만, 다정감, 효과성 및 접근도는 최고다. 이에 비해 지금 청와대는 “납골탑”을 연상케 하지 않은가? 적막하기 그지없다! 쓸쓸하기 그지없다!! 그런 곳에서, 무슨 창조적 발상이 나오겠는가?

경복궁의 근정전(정전)과 사정전(편전)이 정치적 이념으로써 “근면한 정치”를 모색함과 아울러 임금의 “애민정신”과 “정도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백성과의 소통” 및 “신하들과의 담론”은 (100%는 아니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즉, 임금과 신하 간의 격 없는 만남과 민심의 흐름을 나름대로 잘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은 어떤가. 커다란 공간에서 대통령은 평시 혼자 8시간 이상 앉아 있어야 하루가 간다.

그리고, 여민관(비서실)과 거리는 조선의 임금과 신하의 거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멀기만 하다. 여기서부터 소통은 단절되었고, 세상과 담을 싼 감옥살이 아닌 “감옥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진다.

아무리 권력이 좋아도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길이 없고, 있다면 해외 순방을 자주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기는 말 안 통하는 외국인들만 가득 아닌가.

청와대가 도 닦는 곳은 아니지 않는가. 과거, 철종이 왜 강화를 죽을 때까지 그리워 했겠는가. 철종이 사랑한 것은 “사람 사는 냄새” 아니었던가!! 들판에 뿌려진 거름 냄새와 순박한 첫사랑의 “그녀의 향기” 아니었을까?

대통령 당선인은 집무실이 있을 곳으로, 용산 국방부 청사로의 이전을 확정했다. 그러면, 그곳은 어디인가. 국방부 청사부지와 용산공원이 있는 군사적 요충지다.

근대 이후 국내는 물론 외세가 가장 탐냈던 곳이다. 그런 까닭에 그곳은, 조선(병참기지), 청(임오군란시 청군 주둔), 일본(갑신정변시 일본군 주둔), 미국(주한 미군 주둔, 미 8군 사령부, 유엔군사령부의 평택 미군기지로 이전)로 이어지면서 “역사의 혼란 중심”에 항상 서 있었다. 이러한 군사 관련 역사적 사건이 끊이지 않은 곳에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하게 됐다. 

그런데, 이건,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청와대의 흑역사와 비교하여 용산의 흑역사 또한 처참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국가원수로서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임무와 의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고, 국민과 함께하겠다는 당선인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전직 대통령들이 교도소로 직행했고, 살해되거나 사망에 이르렀던 청와대에서 둥지를 틀고 싶은 대통령이 누가 있을까? 물론 국방부 청사 이전비용이 500억 정도 소요된다는 점은 다소 부담이 되지만, 청와대에서의 집무집행시 발생하는 비효율적 추가비용을 감안한다면 상쇄하고도 남을 “정(正)의 외부효과”가 많다!!

그리고, 협소한 청와대(25만m²)에서 벗어나 895만m²에 달하는 용산공원(용산미군기지 부지 및 인근 지역)으로의 이전은, 백악관(7만m²)보다 사용 용도 면에서 훨씬 넓은 정치, 행정, 외교를 펼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모든 것이 급박(急迫)하게 돌아가고 있는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도 잠자리(dragonflies)에서 용(dragon)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그리고, 국민과 “항상 호흡”을 맞추며 통치권을 조율해야 할 때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부지런하고 마당쇠같이” 열심히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지도자의 모습이 필요할 때다.

그렇기 때문에, 이유 불문하고,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여야 하며, “원효 대사”와 같이, “민중 속에서의 진리를 깨닫고” 같이 행복해하는 향후 5년이 되어야 한다.

조선 총독의 “끈질긴 빙의”를 떨쳐버리고 김일성의 김신조(북한 특수부대원)에 대한 지령을 이젠 과거로 과감히 돌릴 때다!! 김신조가 파괴하려던 청와대를 박차고 나올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찬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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