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만감의 교차 양상동의 봄
[덕암 칼럼] 만감의 교차 양상동의 봄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3.22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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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변두리에는 양상동이라는 지명의 조그마한 농촌 동네가 있다.

요즘처럼 봄이면 논두렁이나 들판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겨우내 숨어있던 달래, 냉이, 씀바귀가 싹을 내밀며 마당 한켠에는 누렁이가 연신 꼬리를 흔드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동네다.

하지만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전원풍경이 자칫 시체 태우는 연기가 자욱한 화장터로 변할 위기에서 벗어난 지는 불과 12년 전이다.

당시 안산시는 4개 후보지 중에서 사전에 내정된 양상동을 정해두고 본격적인 사업추진을 벌였고 조상대대로 농사일에만 종사하던 농민들은 행정기관이라는 메머드급 공권력 앞에 조족지혈이나 다름없었다.

재정, 전문인력, 조직 등 모든 분야에서 대항력을 잃은 주민들은 나름 반대를 외치며 저항했지만 속수무책 사업은 예상대로 진행되며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었다.

언론, 의회, 행정, 추모공원건립추진위원회라는 유령단체까지 합세하면서 정해진 절차를 밟고 있을 때 유일하게 아닌 건 아니라고 손을 들어준 시절이 있었다.

당시 안산시장 취임 초기부터 강력히 추진된 사업에 누구 하나 감히 반대할 용기나 의지가 없었던 시절, 필자의 용기는 객기가 되어 역린으로 비춰졌으며 지자체장의 재임 4년간 온갖 음해·모함과 핍박이 이어졌지만 진실을 이길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옛 얘기처럼 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행정기관의 조직적인 괴롭힘에 공보담당관의 행정 광고 배제는 물론 외부로부터 보도를 의뢰해 온 보도자료 마저 차단당한 채 고통의 시간을 보낸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했던 말들 중 “행정 광고비가 술집 여종업원 팁인가 기분에 따라 주고 보도자료가 공보담당관 개인적인 창작물인가 외부의 의뢰를 임의로 차단하는 것이 우편집배원이 기분 나쁘다고 우편물을 주고 말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며 항의했지만 우이독경이었다.

지속적인 직필의 의지로 안산시의회가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렸고 4년이나 끌던 양상동 화장터 사업은 막을 내렸다.

그러는 과정에서 시민들간 반대측을 견제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쌍방간에 폭력이 오가는 촌극까지 빚는가 하면 민민 갈등을 부추기면서까지 사업은 강행되었다.

안산시청사 앞에서 상여를 메고 통곡을 하던 주민들, 지금도 그 당시의 모든 과정이나 언론보도가 안산인터넷뉴스에 그대로 남아 있기에 살아있는 역사가 되었지만 무리한 사업 추진이 시민의 안녕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결국 안산시의회의 조사로 인해 양상동 화장터 사업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는 과정에서 발생한 행정력 낭비, 예산 낭비에 미안하다는 말도 한마디 없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종지부 지었고 어렵사리 마을을 지킨 주민들은 필자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상처뿐인 영광, 돌아보면 정론의 길을 걸었던 과정이 힘들었지만 뿌듯했고 앞으로도 유사한 일이 생긴다면 같은 의지로 맞설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해야 하나 4년이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인해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유골을 도심 한가운데 봉안한다는 정부방침에 이렇다 할 저항 한번 못하고 해당 부지까지 내준 안산시의 행정에 이유 있는 저항이 재현됐다.

세월호 석자만 붙이면 안 되는게 없던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안산시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2017년부터 시작된 세월호 추모 사업에 교육지원청은 기억교실로 바뀌었고 연간 고정예산을 편성해 온갖 트라우마 치료는 물론 해양체험관과 각종 시설물들이 착착 들어섰다.

결국 단원구 정중심에 있는 화랑유원지 한복판에 416생명안전공원이라는 명칭으로 공동묘지나 다름없는 봉안시설물이 들어서게 된다.

필자는 반대 단체인 ‘화랑지킴이’의 대표가 되어 150회가 넘는 집회 시위를 하며 화랑유원지를 지켜 줄 것을 요청했지만 12년전 양상동 화장터와는 판이 달랐다.

정부부처 산하 국무총리실에서 직접 주도하고 안산시가 짹소리 못하며 적극적인 협조로 진행되는 동안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희생된 학생들의 유골을 안치한다는 쟁점에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50년·100년 뒤에 시민들과 안산시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멀리보고 실질적인 의논을 거쳐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야당의원들도 선거때 세월호를 잘못 거론했다가 표를 잃을까 눈치 보느라 함구하니 여당 독주의 진행을 감히 막을 세력이 없었다.

이미 옳고 그른 건 뒷전이고 특정단체가 관련된 납골당은 문재인 정권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남게 됐다.

안산시청사 앞으로 상여, 행정기관의 막강한 공권력, 공보담당관의 광고배제, 안산시장의 민사소송, 어쩌면 12년 전과 판박이 처럼 같은 일이 자연스레 벌어지고 있다.

사계절 시민들이 즐거운 캠핑으로 휴식처가 되어야 할 화랑캠핑장이 과연 엄숙한 추모공간에서 고기 굽고 춤추며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대학생, 일반시민이 되어서도 세월호 학생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안전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한 성역으로 화랑유원지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은 많은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안산시 단원구청과 종합운동장은 물론 경기도립미술관과 예술의전당까지 모여 있는 곳이자 교통의 요충지인 초지역까지 끼고 있는 중심지 이지만 명칭만 화려한 416생명안전공원이 완공된 뒤에도 같은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만약 같은 장소에 반월·시화공단의 비즈니스센터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시설이 들어선다면 어떨까도 그림을 그려본다면 특정 개인의 정권유지를 위해 도시의 미래를 말아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안산시의 주인인 시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물어보고 동의를 얻어 하자는 취지였다.

역사는 흐른다. 어쩌면 정의란 이름만 화려한 수식어이지 실질적인 시대변화는 흐름에 따르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이젠 어느 게 옳고 그른지 구분도 하지 못한다. 오늘도 양상동의 봄은 따스하지만 필자의 언론환경은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차가운 겨울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과연 현재 추진 중인 세월호 납골당 사업이 원활히 진행될까.

쥐죽은 듯 짹소리 못하다가 대세에 따라 사업의 부당성을 보도하는 언론이나 주민들의 공감대가 선다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사람의 판단은 시류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질 게 아니라 상식과 원칙에 의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후손들도 인정하는 것이며 가치와 명분이 존중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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