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까마귀의 화려한 깃털
[덕암 칼럼] 까마귀의 화려한 깃털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4.0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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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전래동화의 한 대목이다. 하느님이 가장 멋진 새를 왕으로 뽑겠다고 하자 까마귀가 그 자리에 욕심이 났다.

결연한 의지로 임금을 꿈꾼 까마귀는 공작부터 꾀꼬리는 물론 앵무새, 심지어 참새 꼬리털, 닭 날개와 꿩의 머리털까지 모두 주워 모아 제 몸을 치장했다.

마치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가 남의 공약을 베끼거나 미사여구를 구사하기 위해 온간 단어 장난을 치는 것과 흡사했다.

이런 까마귀의 화려한 모습에 놀란 하느님은 새들의 왕으로 손색이 없다고 착각했고 다른 새들도 난생 처음 보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세히 보니 낯익은 털들이 하나씩 주인이 나타났고 한꺼번에 달려들어 제 날개를 뽑아가니 까무잡잡하고 볼품없는 까마귀 한 마리만 남아있게 됐다.

이처럼 타인의 노력과 투자된 결실을 허락없이 자신의 것처럼 꾸미거나 흉내 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오늘, 4월 4일을 ‘불법복제 방지의 날’로 정했다. 뜻을 풀이하자면 44데이의 첫째 4는 사양할 사이고, 복사할 사를 합쳐 만든 반 불법복제의 날이다.

정부에서는 저작권 보호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2006년 국회 과학기술정보 통신위원회와 문화관광위원회, 한국음악산업협회, 한국연예제작자 협회, 사무용소프트 웨어 연합이 함께 정한 날이다.

불법복제의 폐단과 보호가치에 대해서는 논란도 많다. 어느 선까지가 불법이며 현행 법률상 보호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제작자와 이용자의 구분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고생해서 만든 것은 보호되어야 하나 보호라는 명분 아래 주어진 권리를 남용한다면 이 또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를 안고 있다.

사용자가 별 생각없이 사용한 글씨 서체나 단어 심지어 오래도록 사용했던 상호까지 누군가 먼저 상표등록이나 저작권을 등록하면 주객이 전도되어 민사적 손해 배상은 물론 상황에 따라 형사 소송의 피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의 지인이 식당을 운영하다 30년동안 사용하던 상호를 어느날 갑자기 상표 등록을 안했다는 이유로 민사손해 배상을 청구 받아 간판을 바꾼 사례가 있었다.

전화위복이라고 지금은 운영자 실명으로 변경하여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와 달리 고의적 복사로 인한 상황을 방치하기 위해 영화상영 전이나 기타 특별한 사진, 영상, 심지어 언론사의 기사 하단에 무단 복제 및 재배포를 금하며 민·형사상 처벌받을 수 있다고 안내 문구가 적혀있다.

그래서인지 적잖은 언론사들이 공공기관이나 기타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복사해서 화면이나 지면을 채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미 자체에서 검증됨은 물론 특정 형식에 홍보의 가치까지 겸하고 있으니 복사해서 갖다 붙여도 별 이의가 없기 때문이다.

언론분야도 보도자료에서 일부 수정한 유사기사가 포털 사이트나 공공기관, 기업의 홈페이지에 버젓이 나열되고 있으며 심지어 오타까지 그대로 보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도 매일 1천 건 가량의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통해 주5회씩 칼럼을 전송시키고 있는 현직 글쟁이로서 간혹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안들은 사전을 찾아보고 인용하기도 한다.

특히 살아보지도 않은 수 백 년 전의 사건이면 더더욱 역사적 기록이나 백과사전에 등록된 내용을 베끼기도 하는데 일일이 누가 작성했는지를 첨부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삶의 경륜에서 얻은 기획이나 새롭게 떠오르는 감정까지 굳이 베낄 필요는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적어도 매일 칼럼을 쓰기에는 부족함 없다. 지면이 부족하고 하루에 두 번 쓰면 보는 입장에서 불편할까봐 말을 줄이고 글도 줄인 것이 작금의 나날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지체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신체적·정신적으로 불편을 겪는 사람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들의 신체적·정신적 불편함과 부족함은 주변의 배려나 사랑으로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지만 도덕적·양심적·인간적 정서 부재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이미 가르치기에는 천부적으로 악한 인성을 가졌으며 타인의 노력을 가로채거나 복사하여 자신의 것처럼 꾸미고 이를 감추기 위해 타인에게 자신의 죄를 뒤집어씌우는 범죄를 아무 양심의 가책없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이를 감싸는 것은 죄지은 자에게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더 큰 범죄의 가능성을 키워주는 것이며 사람이 사는 주변에는 항상 서성거리며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양의 가면을 벗어 버리고 늑대의 본능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고 한다. 아닌 건 아니라는 뜻이며, 인간 세상이 44는 두 번 죽어야 마땅함이며 민폐를 끼치기 전에 일찌감치 솎아내야 맞는 것이다.

마치 치아가 썩으면 발치해야 나머지 치아가 건강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원본과 이를 복사한 경우를 어떻게 구분할까.

영화나 기타 창작물이면 기술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사람의 각기 다른 인성은 보는 이의 견해에 따라 해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략한 현상을 나열하자면 이러하다. 먼저 모든 일에 부정적이다. 뭘 해도 트집이며 자신만이 옳다고 독선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다음 욕심을 부리다 들통날만 하면 타인에게 뒤집어 씌운다. 야비하고 교활해서 절대 앞에 나서지 아니하고 뒤에서 충돌질만 하는 경우다. 사자성어중 ‘일어탁수’가 여기에 해당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연못에 흙탕물을 일으킨다는 것과 같은 말인데, 이러한 부류가 특정 조직에 있으면 조직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고 부족한 부분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어 결국에는 모든 게 망가져야 다른 곳으로 옮겨 같은 짓을 반복한다.

한국인 평균 수명 83세, 성장기 20년 빼고 노후 20년 빼고 사회활동 잘해야 40년이다. 자는 시간 20년 빼고 먹는 시간 10년 빼면 따뜻한 인간성, 배려와 열정을 살 수 있는 시간은 불과 10년도 채 안 된다.

한정된 삶의 시간표에서 자신이 창작해도 짧은 시간을 언제 남의 것을 베낄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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