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 칼럼] 아프냐? 나도 아프다
[덕암 칼럼] 아프냐? 나도 아프다
  •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kyunsik@daum.net
  • 승인 2022.04.14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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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경인매일 회장 김균식

2003년 드라마 다모에 나오는 대사 중 한 대목인데 천한 다모의 신분으로 우포도청 종사관에게 어깨를 베인다.

종사관은 다친 어깨를 보듬으며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한 말이다. 이 대사가 요즘처럼 많은 자영업자들의 아픔을 내 일처럼 여기며 공감하는 주인공이 있어 만나 보았다.

K호텔 사장 R모씨. 평생 모은 돈으로 멋진 전경을 한눈에 담은 동해안 바닷가에 호텔을 건립한 지 5년, 개업이후 어느 정도 손익분기점을 치고 나갈 즈음 코로나19가 터졌다.

차가운 겨울바다는 더욱 을씨년스럽게 인적이 끊기고 텅빈 호텔 객실은 귀곡산장이나 다름없었다.

유니폼을 입고 객실을 누벼야 할 종업원들은 휴게실에 모여 앉아 한숨을 쉬고 기본적인 유지관리비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지출항목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한 달 두 달 기다리던 코로나19는 터널의 끝이 보인다는 대통령의 격려에 기대를 걸었고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은 바이러스 종식은 자영업자들의 몰락부터 시작되어 점차 외부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경제적 규모로 본다면 자영업 창업 평균 1~2억, 호텔건립에 투자된 비용을 비교하면 200배도 넘는 금액이 투자되었기에 사업의 실패는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다.

하루 이틀 견디다 경매로 넘어간 건물은 30%로 못 건지는 금액에 낙찰되었고 그나마 낙찰 받은 건물은 다시 20%도 안 되는 금액으로 사채업자에게 넘어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350억 원이 20억 원으로 추락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은것은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이 마치 동물의 세계에서나 있을법한 먹이사슬과도 같았다.

사자가 죽으면 독수리가 배를 채우고 하이에나가 달라붙으며 결국은 작은 벌레까지 먹고 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이 태어나면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부터 사망하면 장례식장과 화장터까지 먹고사는 직업이 함께 한다.

코로나19 발병이후 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자영업자 처럼 아프다 힘들다 말조차 못한다. 그래봐야 아무소용도 없고 어차피 망한 사업 자괴감만 더하기 때문이다.

유사한 입장의 오너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은 공통점은 코로나19로 인해 태풍피해를 겪은 사업자들이 예상보다 많다는 점이다.

나름 굵직한 사업체를 운영하다 방역당국의 거리두기 방침으로 인해 앉은 자리에서 숨도 못 쉬고 막대한 자산을 날린 사람들, 특히 투자 대비 리모델링을 수시로 하는 웨딩업계나 호텔, 리조트, 영화관은 물론 대형 스포츠센터 등 적게는 수십 억에서 수백 억은 기본으로 펼쳐진 사업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번에 만나본 R씨가 한말이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힘없는 서민들의 아픔을 이해하며 정작 자신처럼 규모가 있는 사업자들은 아프단 말도 못한다고 하소연을 남겼다.

필자 또한 적잖은 규모의 웨딩홀과 대형뷔페를 운영하다 접었지만 정부의 재난지원금은 1년을 넘어서야 지급되기 시작했다.

물론 폐업한 사업자는 해당사항도 없었기에 받지도 못했고 죽지 못해 임대료 내가며 버틴 사업자들만 겨우 몇 푼 받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현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행정의 모순에 욕설조차 아깝다는 표현이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같은 100만원의 지원금이라도 치킨 가게는 약간 도움 되고 대형 갈빗집은 별반 도움 안 되며 대형호텔이나 위락시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체에 따라 줄자로 재도 시원찮을 일을 플라스틱 잣대로 재니 당연히 현실적으로 심지어 같은 상황이라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불공평이 난무하는 동안 일반 서민들의 불황은 대표적인 수식어처럼 따라 붙는다.

밀린 월세로 보증금 까먹는 것은 출발이고 어렵게 장만한 집기는 중고매매상도 안 가져가고 나름 정성들인 인테리어는 철거비를 들여야 원상복구가 가능하다.

납기일이 밀린 대출금은 담보로 맡긴 부동산에 압류가 붙고 경매가 진행되며 동산은 일명 빨간딱지가 붙어 중고물품을 전문으로 챙겨가는 독수리가 눈을 번뜩인다.

이쯤되면 동행하는 게 납부해야 할 공과금이 기한을 넘긴데 대한 가산금과 밀린 급여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중재가 이어진다.

빈곤의 악순환은 관리비 체납으로 이어져 단전·단수 예고서가 날아들고 소지하던 스마트폰은 통화정지 안내가 이어진다.

일반 서민들의 어려움이 이 정도라면 규모가 큰 사업체들은 가늠하기 어려운 경제적 손실과 돌이키지 못할 낭패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경매나 공매 사이트에는 평소보다 많은 물건들이 나왔지만 유찰이 계속되면서 물건들의 가치 하락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한다.

정부와 공직사회는 시장의 물정을 모르고 행정적 이론에 잣대를 대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밑바닥부터 어느 정도 상류층까지 다양한 분야의 오너들을 만나보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들을 취합해보면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긴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명 ‘남의 심장 썩는 것 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아프다’는 말과 같다. 자본주의 특성상 상당부분의 해결점이 돈인데 가혹하다 싶을 만큼 온갖 수단으로 세금을 걷어 가면서 사용처를 보면 너도나도 먼저 가져가는 게 임자같은 형국이니 모순의 비애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가장 쉬운 돈이 걷은 세금 나눠쓰는 것이라면 정치는 새로운 도박판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펑펑써도 다시 걷으면 솟아나는 샘물같은 돈, 온갖 명분으로 해마다 다 써야 다음해에 다시 걷을 수 있는 돈, 세금만이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다.

그렇다고 중이 절을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일반 서민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점, 자신만의 아픔이라 여기며 절망감에 빠질 게 아니라 장마철에는 모두가 젖는 법이니 꿋꿋이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는 점, 이 또한 지나간다는 점을 고려하여 햇살이 화창한 날 언제 그랬냐는 듯 옛 얘기로 치부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하는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언제는 살만했는가. 아침이 오지 말았으면 하는 밤이 어제 오늘인가. 그렇더라도 여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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